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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의 얼굴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2월
평점 :
프리랜서 탐사보도 기자 스기야마 고헤이는 한 부부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심층 취재한다.
방은 온통 피바다였지만 정작 부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탓에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로 젊고 아름다운 제수씨를 탐내던 형 타츠야가 지목돼 체포됐지만,
명백한 증거와 단서가 없는 탓에 그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스기야마가 취재를 시작한 이후 용의자 또는 사건 관계자들이 연이어 죽어나간다.
그들은 누구를 두려워하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스기야마는 진실을 파헤치며 교활하게 가려진 진범에게 바짝 다가가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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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사라져 미궁에 빠진 사건을 열혈 기자가 취재하며 진실을 캐는 이야기’란 점에서
마에카와 유타카의 전작들과는 달리 꽤 서사가 간결하고 선명한 편입니다... 라고,
적어도 클라이맥스 부근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는 친절하거나 대중적이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찜찜하고 (독자에 따라) 불쾌감마저 느껴지는 엔딩을 남겨놓았습니다.
이 작품 전까지 그의 작품을 모두 번역한 이선희 님은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의 후기에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음표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끝난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 특징은 한국에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에 해당하는 코멘트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으로 처음 만난 이후 마에카와 유타카의 팬이 됐는데,
물음표, 찜찜, 불쾌 등의 태그를 달 수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신선해 보이는 서사가 무척 매력적이라 그의 후속작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출간된 작품마다 물음표, 찜찜, 불쾌의 정도는 점점 높아진 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만족도는 거꾸로 조금씩 낮아져서 아쉬워하던 와중에
‘진범의 얼굴’은 제법 대중적인 초반 설정이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딘가 기분 나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문장마다 배어있었고,
‘동생의 아내에게 욕망을 품은 끝에 동생 부부 살인범으로 체포된 형’이 등장하는데다,
조연들마저 관음증, 근친상간, 일그러진 성욕, 폭력성 등 불편한 캐릭터들로 채워진 탓에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네.”라는 탄식과 함께 절대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닐 것임을,
또, 사건이 결코 명쾌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스기야마는 경찰보다 뛰어난 추리와 탐문으로 많은 정보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 범인의 윤곽과 범행방법까지 유추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정황증거에 기초한 것이었던 만큼
스기야마의 기록은 대부분 ‘추정’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름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고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즈음,
자신이 취재했던 인물들이 자살 혹은 타살의 형태로 연이어 사망하고,
유력한 단서를 입수했음에도 사건과의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스기야마는 좌절합니다.
이런 식의 전개는 일반적으로 막판 반전을 통해 주인공의 그간의 노력을 보상하기 마련인데,
‘진범의 얼굴’은 그것과는 사뭇 상이한 전개와 엔딩을 내놓습니다.
물론 이런 전개와 엔딩이 훨씬 더 현실감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미스터리 픽션을 찾아 읽는 독자에겐 다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저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겪는 참 당황스런 경험인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제 더는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탐사 보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라는 홍보 문구가 있던데,
읽는 내내 이 작품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습니다.
스기야마가 변호사 또는 동료 기자와 이런 주제를 놓고 잠깐 논쟁을 벌이긴 하지만,
그건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양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작가가 이런 의도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면 설계 자체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고,
전적으로 독자를 향한 홍보용 문구라면 다소 초점이 어긋났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