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증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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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출간된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청계산장의 재판’, ‘곤충’, ‘붉은 열대어에 이어 네 번째 만난 작품인데,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방범죄, 연쇄살인, 사적 복수, 화상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기억마저 사라진 유능한 형사,

칼을 든 프로파일러란 별명은 물론 조직 내에서도 외딴 섬 같은 존재인 열혈 프로파일러,

그리고 끊임없이 위화감을 갖게 만드는 정교한 설정 등 여러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경감 이수인은 카피캣이란 별명의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던 중 큰 부상을 입습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어 앞을 못 보는 건 물론 충격으로 인해 기억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서울청 프로파일러 한지수 경사는 이수인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씁니다.

또한, 냉각기를 거쳐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카피캣 체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용의자를 지나치게 압박한 끝에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감찰을 받고 있던 한지수는

과학수사팀이 놓친 단서들을 찾아내 자살한 용의자가 실은 살해됐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카피캣과 연관 있음도 밝혀냅니다.

하지만 이수인의 기억은 여전히 혼란스런 상태이고 경찰 상층부의 압박은 거세지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상태가 좋아진 이수인은 파격적인 방법으로 카피캣을 유인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줄거리 정리 자체가 어려운데

하나는 작가의 설계도가 워낙 복잡한데다 반전 역시 여러 차례 거듭된다는 장점때문이고,

또 하나는, 복잡한 설계도에 비해 다소 모호하고 불친절한 설명이 잦다는 단점때문입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이만한 설계도를 짜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경탄하게 되고,

그 설계도의 디테일을 문장으로 풀어내기 위해 또 얼마나 고생했을지 거듭 놀라게 됩니다.

이런 내용들을 몇 줄의 줄거리로 정리하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다 읽고도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건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 몇 군데 있는데,

문제는 그 대목들이 이 작품의 미덕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지점들이란 점입니다.

사적 복수의 화신으로 보이는 연쇄살인마 카피캣의 목적,

그를 체포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수인과 한지수의 목표,

정치적 야망 때문에 조기 체포에 열을 올리는 경찰 상층부의 실체,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 사건의 진실 및 후속작을 염두에 둔 듯한 엔딩의 의미 등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돼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다들 모호한 상태에서 마무리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작가는 사건과 인물과 관계들에 대해 좀더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가 쾌감을 만끽할 수 있게 배려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임에도 서사의 두께는 600페이지 급 스릴러에 버금가는데,

그만큼 많은 것이 압축됐고,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역시 무모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제는 클리셰가 넘쳐나는 사적 복수 코드를 신선하게 창조해낸 점도,

정교한 설계와 연이은 반전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인물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과 개운치 않은 마무리,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 몇몇 결정적 순간들 때문에 별 0.5개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인은 접할 수 없는 범죄수사 잡지의 편집장이란 작가의 이력을 보곤

이 작품의 생생한 디테일의 원천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물론 이 작품의 아쉬움들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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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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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에만 벌써 4번째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야쿠마루 가쿠입니다.

2017년엔 두 편만, 2018년엔 아예 한 편도 소개되지 않았는데,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네 편, 그것도 출판사가 모두 제각각인 걸 보면

한국에서 야쿠마루 가쿠의 진가가 이제야 발휘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부터 구원(舊怨)과 악연, 아물지 않을 상처를 지닌 개인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구사해온 야쿠마루 가쿠가 이번엔 불치병에 걸린 범인과 형사의 대결이라는,

사뭇 특이한 구도를 들고 독자를 찾았습니다.

 

경시청 5계의 사냥개라는 별명을 지닌 아오이 류는 승진 따윈 관심 없는 타고난 형사입니다.

하지만 3년 전 발병했던 위암이 재발되면서 말기 판정을 받자 그는 절망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도쿄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교살사건 해결을 위해 그는 고군분투합니다.

한편, 사카키 신이치는 주식으로 번 돈을 기반으로 호화맨션에 사는 데이트레이더입니다.

그는 어릴 적 첫사랑인 스미노와 오랜만에 재회하면서 마음이 들뜨지만

자기도 모르게 불쑥불쑥 폭발하는 살인 욕구 때문에 스미노를 대하기가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어릴 적 뭉텅이로 사라진 기억 속에 그 살인 욕구의 근원이 숨겨져 있다고 추정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그 사라진 기억은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의사인 선배로부터 말기암 선고를 받은 사카키는

가까스로 억눌러 온 살인 욕구를 남은 시간 동안 마음껏 터뜨리기로 결심합니다.

사카키의 첫사랑이자 그의 사라진 기억을 온전히 알고 있는 스미노는

사카키가 말기암에 걸린 사실을 알곤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켜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스미노는 알아선 안 될 진실을 발견한 탓에 패닉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사명입니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지만 使命이 아니라 죽게 된 목숨이란 뜻의 死命입니다.

부제인 죽어야 하는 남자들은 언뜻 보면 살인마에 의한 희생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말기암에 걸린 두 주인공 아오이와 사카키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껏 살인을 저지르려는 자이고,

한 사람은 역시 죽기 전까지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형사의 안쓰러운 가족사와 범인의 유년기의 비극이 끼어들면서

단순히 시한부 형사 대 시한부 범인이란 구도를 넘어 꽤 깊고 두터운 서사를 구축합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처음부터 범인을 노출시키고 출발한다는 점인데,

반면, 범인의 살인 욕구의 뿌리인 유년기의 비극을 마지막 미스터리로 배치해놓았습니다.

범인은 자신만의 욕구 해소를 위해 무자비하게 여성들을 살해하는 흉악한 인물이지만,

독자는 그가 단순한 쾌락살인마가 아니라는 점을 조금씩 알게 되는 탓에

마냥 그를 혐오하거나 악인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대체 유년기의 어떤 사건이 이 남자를 이렇게 망가뜨렸나?’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그가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또 병마에 목숨을 잃기 전에

어떻게든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게 되는, 아이러니한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막판에 드러나는 유년기 사건의 진상은 너무도 참혹하고 충격적이라 멍해지기도 했는데,

진상 자체도 그렇고 그 사건이 범인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서도 의견이 꽤 갈릴 것 같습니다.)

 

말기암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해결하려 분투하는 아오이는

경찰로서의 캐릭터도, 가족들과 불화에 빠진 가장으로서의 캐릭터도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야쿠마루 가쿠 특유의 진정성 있는 묘사 덕분에 주인공다운 매력을 담뿍 지닌 인물입니다.

누가 ?”냐고 물을 때마다 형사의 감이다!”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아오이는

어쩌면 한물 간 옛날 경찰의 마지막 세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은 결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게 아니라 분명한 근거를 갖고 작동하고 있어서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와타세 경부 같은 매력을 만끽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을 소개해주니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니 아직 미출간된 작품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선 하반기에도 여러 작품이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한편으론 맛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나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느 작품이 됐든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은 늘 반갑고 또 반가울 따름입니다.

 

(사족 한마디만 붙이자면, 신생 출판사 같은데 편집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아서 실망했습니다.

오타도 제법 있었고, 잘못된 띄어쓰기도 곳곳에 보이더군요.

제가 읽은 건 가제본이었는데, 정식출간 때는 모두 수정돼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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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계가 끝날 무렵 - W-novel
아야사카 미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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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인공은 지난 1년 동안 등교 거부를 한 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는 와타루입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쓰기 시작한 소설 미소녀 살인사건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와타루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과 고양감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쓴 소설과 거의 똑같은 방식의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누군가로부터 협박이 담긴 쪽지와 전화를 받으면서 와타루는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문제는, 와타루가 연재를 중단한 뒤에도 사건은 계속 이어진다는 점.

결국 와타루는 자신의 소설을 지키고 현실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잡기 위해

스스로 미스터리 해결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 ● ●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라곤 전무했지만 제목과 표지에 끌려 무작정 읽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좀 읽다 보니 라노벨의 향기(?)가 슬슬 풍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심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자라는 생각을 먹었던 게 사실입니다.

주요인물인 중학생들은 히키코모리, 오타쿠, 왕따, 미소녀 등 라노벨의 전형적 캐릭터였고,

주인공이 인터넷에 올린 미소녀 살인사건 라노벨이 사건의 출발점으로 설정됐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 진짜 라노벨이 맞았고,

‘W-novel’이란 시리즈 타이틀은 위즈덤하우스의 라노벨 레이블이더군요.)

 

하지만 이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첫 페이지를 연 뒤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소설 속 소설이라는 치밀한 구조, 소설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상사건의 정교한 배치,

그리고 (약간 작위적인 면이 있지만) 의외의 결말을 이끌어내는 힘 등

라노벨이라고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탄탄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구체적인 내용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확실해보여서

서평에서도 이 이상의 줄거리 소개를 하긴 어렵지만,

350여 페이지의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꽤 여러 번의 변곡점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미스터리의 힘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라노벨에 대해 저와 같은 편견을 가진 독자라도 매력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정말 라노벨스러운설정과 전개가 군데군데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작품의 힘과 매력을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그런 필력 덕분에 라노벨 분야 외에도 여러 미스터리 문학상에서 주목받은 듯 한데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라면 놓치지 말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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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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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핀과 레일라는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귀가길 휴게소에서 핀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녀가 남긴 것은 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작은 러시아 인형뿐.

적어도 핀이 경찰에 진술한 대로는 그렇다.

12년 후, 핀은 레일라의 언니 엘란과 약혼한다.

하지만 결혼식 직전, 핀은 경찰로부터 12년 전 실종된 레일라가 목격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엘란마저 레일라를 목격했다고 말하고, 집 앞에서 레일라의 러시아 인형까지 발견되자

핀은 패닉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레일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 ● ●

 

비하인드 도어브레이크 다운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B. A. 패리스의 작품입니다.

가족, 배우자,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겪게 되는 공포와 혼란이 그녀의 주된 테마인데,

이번에는 실종 이후 12년 동안이나 생사를 알 수 없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레일라가

옛 연인인 핀과 그의 약혼녀가 된 언니 엘란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레일라는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을 통해서만 핀과 엘란 앞에 나타납니다.

, 핀과 엘란으로선 곳곳에 놓인 러시아 인형과 수시로 날아드는 이메일이

진짜 레일라가 보낸 것인지, 누군가 레일라를 사칭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레일라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비밀까지 언급하자 두 사람은 더욱 충격에 빠집니다.

문제는, 왜 레일라가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쓰는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레일라의 옛 연인인 핀은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이 등장한 뒤로 갈등에 빠지는데,

자신의 진짜 사랑이 레일라와 엘란 중 누구를 향한 것인지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받은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에 대해 엘란에게 알리지 않기 시작하면서

심리적 갈등과 막연한 공포와 무책임한 기대감이 한꺼번에 뒤섞인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 레일라가 마치 자신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뉘앙스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자

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엘란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맙니다.

 

첫 작품인 비하인드 도어가 눈에 보이는 명백한 상대로 인한 충격과 공포를 다뤘다면,

브레이크 다운은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스스로를 조기 치매로 의심한 주인공이

실체 없는 공포와 맞서 싸우다가 진실을 알아내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브링 미 백은 어쩌면 이 두 작품의 딱 중간쯤 되는 서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이라는 명백한 단서가 있긴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보낸 레일라는 도무지 현실인지 착각인지 음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핀은 12년 전 레일라가 사라졌을 당시 살인용의자로 조사를 받은 이력도 있기 때문에

레일라의 등장이 기뻐할 일인지, 두려워할 일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공포와 혼란에 빠집니다.

 

심리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사건보다는 캐릭터 플레이 위주의 서사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핀의 공포와 혼란을 동어반복처럼 거듭 그린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이전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을 읽고 쓴 서평에서도

거의 절반 넘는 분량을 사건하나 없이 캐시의 공포심 묘사에 할애한 점을 아쉬워했는데

브링 미 백에서는 핀이 그런 아쉬움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 결말부에 드러난 진실이 꽤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얌전한 직구처럼, 또 다소 안이해 보이는 방식으로 설명된 점은

앞서 읽어 온 이야기들의 존재감을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극으로 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느낌이랄까요?

 

신비한 현상이나 존재에 의해 벌어지는 비현실적 공포보다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겪게 되는 공포는 훨씬 더 서늘하고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B. A. 패리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영역과 매력을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스토리의 힘이란 면에서만 보면 앞선 두 작품보다는 살짝 처져 보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매년 여름마다 한 편씩 출간된 걸 보면 내년 여름에도 만나게 될 것 같은데,

그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보다는 스토리의 힘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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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킬러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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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분서 시리즈가운데 일곱 번째 작품인 레이디 킬러1957년에 집필된 작품입니다.

62년 전의 작품이니 아날로그올드함보다도 더 골동품 같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데

잉크롤러와 패드로 지문을 채취하는 장면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9일 동안 썼다고 고백한 점입니다.

이 책에 뛰어든 순간 책에 휩쓸려 책이 이끄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레이디 킬러는 아주 직선적이고 간결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87분서에 오늘 밤 8시에 레이디를 죽이겠다. 어쩔 텐가?”라는 살인예고장을 보내고

코튼 호스와 스티브 카렐라 등 모든 형사가 12시간 동안 범인을 쫓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딱히 반전이나 충격적인 대목 없이 레이디라는 불특정 피해자를 찾는 탐문이 주된 내용이고,

결말에선 약간은 우연과 행운에 기댄 추리를 통해 피해자와 범인을 찾게 됩니다.

 

사실, 앞서 읽은 87분서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 플레이였습니다.

애초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라가 맹활약하며 멋진 모습을 보인 점이 그랬고,

세컨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코튼 호스가 87분서에 처음 와서 좌충우돌하는 내용,

또 맛깔난 조연들이 자기만의 사연을 과시하며 팀 플레이를 선보이는 이야기 등

사건 자체만큼이나 재미를 주는 캐릭터 플레이가 매력적이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레이디 킬러굴러온 돌코튼 호스가 스티브 카렐라 대신 주인공으로 활약하는데,

캐릭터 플레이라기보다는 수사 과정을 객관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처럼 읽혔습니다.

창녀와 가수 등 레이디후보를 찾아다니고, 경찰서를 지켜보는 수상한 자의 뒤를 쫓고,

몽타주 그림을 들고 막연한 탐문에 나서기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건이라도 좀 긴장감 넘치게 전개돼야 하는데,

대범한 살인예고장, 12시간이라는 시간제한, ‘레이디라 지칭된 막연한 잠재적 피해자 등

흥미로운 코드들은 여럿 배치됐지만 정작 사건은 대체로 밋밋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코튼 호스가 살인 장소를 추리해내는 대목은

살짝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이해했다 해도 다소 우연에 많이 기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9일 만에, 그것도 여름휴가 중에 빨리 이 책을 끝내고 싶었다.”는 욕심으로 쓴 탓인지,

아니면 삐딱하게 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출판사를 골탕 먹일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연에 대해서는 살인자의 선택에 실린 작가 후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읽은 87분서 시리즈 가운데에는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설령 1957년이라는 출간시기를 감안하더라도 약간은 태업(?)의 냄새가 났다고 할까요?

다음 작품에선 사건도 사건이지만, 87분서의 매력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맛깔나고 화려한 캐릭터 플레이를 꼭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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