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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사랑법 ㅣ 스토리콜렉터 81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어딘가 조금 올드해 보이는 제목, 다소 의도적인 표지, 거기다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까지
아마도 출판사가 북로드가 아니었다면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작품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마이클 로보텀, 데이비드 발다치, 피터 스완슨 등
최근 몇 년 사이 스릴러 독자들을 사로잡은 뉴 페이스들의 첫 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읽어야 되겠구나, 라는 별 5개의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여자들을 교살하고 방부처리한 뒤 내다버리는 잔혹한 연쇄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시카고 경찰의 협조요청을 받은 FBI는 행동분석팀 요원 테이텀 그레이를 파견하는데,
그는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를 사건에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갈등과 협력을 반복합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두 사람은 점차 상대방의 장점과 매력을 인정하게 되고,
결국 각자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한 끝에 단서 하나 없던 사건을 해결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돌직구 스타일의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의 캐릭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흠뻑 빠져있던 그녀는
14살이던 1997년, 동네에서 벌어진 연쇄 강간살인사건을 거의 해결할 뻔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을 위험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FBI에 협조하는 범죄심리학자가 된 조이는
정확한 판단과 분석력, 그리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를 지녔습니다.
물론 그런 성격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도 큰 위험에 빠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프로파일러의 기지를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데
개인적으론 지금껏 접한 어느 여성 주인공 캐릭터보다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것은 물론
빨려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생각입니다.
파트너이자 남성 주인공인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는 상대적으로 다소 왜소하게 보이는데,
아무래도 여주인공인 조이가 엄청난 폭주 스타일이다 보니
그에게는 ‘조이를 진정시킬 브레이크’ 같은 캐릭터가 좀더 강하게 부여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력만 보면 그 역시 조이 못잖게 사고뭉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현장에서 용의자를 사살한 일 때문에 ‘좌천성 승진’에 의해 FBI 행동분석팀으로 왔고,
오자마자 상관인 맨쿠소 차장에게 “제멋대로 굴지 말 것”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 내내 그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의 착한 FBI처럼만 보일 뿐,
그다지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사고를 치진 않습니다.
물론 행동분석요원으로서의 그의 매력은 충분히 작품에서 드러납니다.
수사 도중 절망에 빠진 조이와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은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이후 두 사람의 파트너쉽은 물론 멜로 케미까지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이 작가의 또 다른 장점은 과장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리얼리티입니다.
프로파일러나 행동분석요원이 등장하면 어느 대목에서든 비현실적인 비약이 있기 마련인데
조이와 테이텀의 협업에선 그런 위화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의 행동이라 논리적인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여자들을 살해하고 방부 처리하는 범인의 심리 역시 설득력 있게 묘사됐는데,
덕분에 마지막까지 ‘조이+벤틀리 vs 연쇄살인범’의 대결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살짝 ‘비약’이 있긴 하지만, 거부감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이 호응을 얻어 후속작(제목은 ‘In The Darkness’)까지 출간됐다고 하는데,
책 뒷날개에 ‘근간’이라고 인쇄된 걸 보면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것으로 보입니다.
매력적인 조이와 벤틀리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작품 말미에 남겨놓은 엄청난 떡밥 덕분인지 더더욱 조바심이 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