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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평점 :
일본 미스터리인데도 작가의 이름이 ‘오승호’라서 재일교포 작가겠구나, 생각만 했는데,
표지에 적힌 ‘2015년 6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란 문구에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미스터리 팬이지만 딱히 수상작 뉴스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지나간 것 같은데,
아무튼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더 흥미와 기대를 갖고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사건을 다룹니다.
하나는, 오사카 인근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 경범죄 사건이고,
또 하나는 13년 전 초등학교 강당에서 벌어진 희대의 살인사건입니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연쇄 경범죄 사건에 의문을 품던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는
13년 전에 벌어진 초등학교 살인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화두인 ‘도덕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내내 신인감독인 오치 후유나와 충돌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관한 의견충돌일 때도 있지만
왠지 13년 전 초등학교 살인사건의 진실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후시미가 마지막에 목도한 13년 전 사건의 진실은 상상을 벗어난 충격적인 모습이었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 경범죄 사건 역시 그를 패닉상태에 몰아넣고 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겐 좀 어려운 미스터리였습니다.
‘도덕’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에는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소(小)주제들이 등장합니다.
저널리즘의 문제, 교육의 문제, 가족의 문제, 불행한 성장기의 후유증 등이 그것인데,
물론 도덕이란 큰 주제가 모든 것들을 관통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탓에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호한 상태에서 페이지만 넘긴 듯한 느낌입니다.
미스터리 역시 그 전개나 해법에서 명료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진실을 추적하는 후시미도, 어딘가 다른 목적을 지닌 것 같아 보이는 오치도,
정확히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무엇을 위장하고 있는지 캐치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실이 드러나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 ‘몰이해’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무슨 이야기를 읽은 건지 확실히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3년 전 초등학교 살인사건의 진실은 이야기를 너무 이리저리 꼬아버린 나머지
현실감을 잃은 것은 물론 ‘도덕의 문제’라는 주제와 무관해 보이기까지 했고,
현재 벌어진 연쇄 경범죄 사건은 ‘도덕’이란 주제에 맞춰 재단된 듯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각각 다른 이야기였으나 두 이야기를 연결”했다는데,
개인적으론 연결하기 어려운 두 이야기를, 그것도 ‘도덕’이란 주제와 묶는 과정에서
미스터리도 모호해지고, 주제는 너무 현학적으로 그려졌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란포상 심사위원들 사이에 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보기도 합니다.
내용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는 애매한 인상 비평이 되고 말았는데
너무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렵고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오승호는 이 작품 이후 주목받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다는데,
다음엔 조금은 ‘쉽고 명료한 미스터리’로 만나보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