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원작 소설, 공식 출판작,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스탄불에서 칼레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폭설 속에 고립되고,

한 남자가 열두 번이나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다른 열두 명의 승객들이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가운데,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미스터리에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도전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난데없이 오랜만에 고전을 집어 들었습니다.

언제쯤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갑작스레 별미 간식처럼 다시 한 번 읽어보고픈 욕심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1934년에 출간된 고전 중의 고전인데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 시리즈의 대표작 중 하나라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나름 기대감을 갖고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폭설로 고립된 채 외부와의 연결이 두절된 특급열차,

너무 빤해서 오히려 의심을 사는 명확한 단서들,

외부 침입의 가능성이 희박한, 즉 승객 중 범인이 있을 것이라는 정황,

그리고 진술 외에는 진실에 다가갈 방법이 거의 없는 난감한 상황 등

아무리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라도 당황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좁디좁은 객차 안에서, 그것도 새벽 시간에 벌어진 사건인데다

승객들의 동선과 알리바이는 누구 하나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피살자의 몸에 난 수많은 칼자국만 보면

우발적인 범행이 아닌 것은 물론 엄청난 증오심이 범행 동기임이 확실한 탓에

에르퀼 푸아로는 누군가 세밀한 계획 하에 완벽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퀼 푸아로는 특급열차 간부인 부크, 의사인 콘스탄틴과 함께

12명의 승객을 일일이 만나 꼼꼼한 심문을 하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인 에르퀼 푸아로는 스스로 안락탐정임을 자처하면서

12명의 승객들의 진술을 깨알같이 분석하고 또 분석한 끝에 진실을 파악하는데,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읽지 않은 독자라도 범인이 누군지는 대략 알고들 있겠지만)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는 가히 충격적일뿐 아니라

진실을 파헤친 에르퀼 푸아로의 마지막 조치역시 꽤나 파격적이어서

1934년의 독자들이라면 어지간히 세게 뒤통수를 맞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현대의 독자라도 백지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면 엇비슷한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데뷔한지 10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개정판이 나오고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런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다소 올드한 느낌이 드는 번역이었는데,

그것이 고전미를 살리기 위해 의도된 것이든 번역가의 개성 때문에 나온 결과든

현대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조금은 거칠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읽으면서 수시로 , 이 사람들은 1934년 사람들이지!’라는,

말하자면 일종의 소격 효과 같은 부작용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자체만으로 번역판의 격을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 라는 우려가 들기도 했습니다.

 

깔끔하게 개정된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을 볼 때마다 불쑥불쑥 소장 욕구가 일곤 했는데

오랜만에 맛본 고전의 향기에 취한 덕분인지 그 욕구가 더 강렬해지고 말았습니다.

덩달아 홈즈, 뤼팽, 엘러리 퀸 등 아주 오래 전에 만났던 고전의 주인공들도 생각났는데

이러다가 언젠가 한 해쯤은 독서 목표를 고전 다시 읽기로 정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환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스다 나오시는 칸첸중가 등반 중 눈사태로 사망한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형의 자일에 누군가가 손을 댄 것을 발견한다.

칸첸중가에서 두 남자가 생환하지만, 사고에 대한 두 사람의 증언은 정확히 반대로 엇갈린다.

둘 중 누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형의 죽음은 정말 사고였을까?

열린 폐쇄 공간인 칸첸중가를 배경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개인적으로 등산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거친 산악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에 딱히 관심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인생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는 클라이머즈 하이때문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클라이머즈 하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산악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항공기 추락사고 보도 전쟁을 다룬 저널리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참사의 공간이 험준한 산악지형인데다 그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워낙 크다 보니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 클라이머즈 하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본도 아닌 네팔 접경 지역의 험준한 고봉 칸첸중가 등정 중에 벌어진 의문의 사건을 놓고

희생자 유족인 마스다 나오시와 산을 좋아하는 잡지기자 에리나가 진실을 찾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 열린 클로즈드 서클이나 다름없는 광활한 칸첸중가에서 사건이 벌어진데다

눈사태로 인한 참극에서 살아 돌아온 두 사람의 진술이 완전히 엇갈린 탓에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사건의 진실을 찾는 두 주인공의 애로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또는 죄책감이라는 부제가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산 또는 다른 상황에서 누군가를 잃고 자신만 살아남은 상처를 갖고 있고

그로 인해 삶이 황폐해져버린 비극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그 상처를 잊기 위해 산을 찾지만,

누군가는 자신만 남기고 떠나버린 이들의 곁으로 가기 위해 산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칸첸중가를 찾았던 이들에게 또 다시 비극이 찾아왔고

그 비극의 진실을 캐는 두 주인공의 집요한 추적이 이 작품의 뼈대입니다.

읽는 내내 엄흥길 대장이 실종된 대원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로 향했던 일이 생각났는데

뉴스로만 접했던 그 상황이 얼마나 참담하고 비극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칸첸중가라는 무대만큼이나 장대한 서사, 엄청난 노력이 기울여졌을 디테일한 정보들,

그리고 복잡다단한 미스터리와 인물들의 심리묘사 등 장점이 무척 많은 작품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메인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동기나 캐릭터가 다소 모호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 읽은 뒤에 굳이 그렇게까지들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뒤늦게 들기도 했고,

마지막에 밝혀진 진실은 오히려 위화감이나 인공미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나무만 보면 매력적이지만, 다 읽고 천천히 을 관조하다 보면

애초 사건의 발단 자체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독자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비장미와 감동 코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칸첸중가라는 무대의 압도적 배경에 호기심이 이는 독자라면

꽤 인상 깊은 책읽기가 될 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쇠락한 도농복합시인 안덕에 연쇄 방화 및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남편과의 이혼소송 끝에 검사직마저 내던지고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온 세휘는

아들 수민의 양육권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딘가 음험해 보이는 당숙 장정호가 내민 협박에 가까운 의뢰를 받아들이고 만다.

자신의 측근들이 연이어 실종된 사건에 대해 경찰보다 먼저 알아내서 보고하라는 것.

좌천당한 기자 한병주와 함께 사건의 이면을 쫓던 세휘는 일찌감치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도무지 단서도 증거도 잡을 수 없어 애를 태우기만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페이지를 넘길수록 주인공이 점점 늪으로 빠져간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의 엔딩은 거의 예외 없이 무척 불편하거나 답답한 여운을 남기게 되는데,

그 불편함과 답답함이 작품의 미덕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콘크리트는 독자에 따라 전자일 수도, 후자일 수도 있는 작품인데,

말하자면,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미스터리처럼 시작되지만

뒤로 갈수록 불온한 태풍, 지독한 악취, 도시를 뒤덮은 거미 등 온갖 불편한 코드들과 함께

미스터리 자체가 어둡고 축축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연이은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당숙 장정호의 측근들이자 안덕의 실세들이 실종되면서

무능한 경찰 대신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여변호사가 진실을 찾아나선다는 설정까지는

누가 봐도 과거사로 인한 복수극또는 슈퍼 히로인 미스터리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안덕이라는, 종말을 목전에 둔 듯한 도시를 집요하게 묘사한 문장들 때문에 이 이야기가 세휘가 진범을 찾고 양육권을 지키고 밝은 미래를 약속받는’,

이른바 깔끔하고 해피한 엔딩을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작가가 어떤 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칠까, 역설적으로 더 기대감이 든 게 사실입니다.

 

용의자는 일찌감치 세휘의 레이더에 걸려듭니다.

하지만 단서나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라는 부분에서 세휘는 번번이 좌절하고 맙니다.

그런 그녀가 사소한 위화감에서 출발한 추리 끝에 1차적인 진실을 알아내긴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진짜 진실을 목도하곤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독자들의 호불호를 확 갈라놓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이 부분은 콘크리트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자 특징이기도 한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자세히 언급할 순 없지만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론 100%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긴 합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라고 호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우세할지는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읽어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국 장르작가의 데뷔라 더 반갑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공을 갖춘 묵직한 문장들이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만한 필력이라면 머잖아 두 번째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가 어떤 장르, 어떤 소재를 선택할지 조심스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등굣길에 납치됐다가 어느 날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 사만타.

사건 당시 거액의 조사비만 챙겼던 탐정 브루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납치범을 찾아 나선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납치범은 하트 모양 눈이 달린 토끼 가면을 쓴 남자로, 일명 버니.

하지만 경찰은 비협조적일 뿐이고, 브루노의 조사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다.

결국 실마리를 잡기 위해 사건이 시작된 곳을 찾아간 브루노는

버니의 어린 시절을 추적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큰 위기에 빠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속삭이는 자’, ‘이름 없는 자’, ‘안개 속 소녀까지 매번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다음에 이 작가의 작품을 또 읽어야 되나?” 고민하곤 했는데,

언제나처럼 신간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 끝에 또다시 고통스러운 책읽기를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사건 자체보다는 살의를 부추기는 내면의 끔찍한 그 무엇(또는 그 누군가)’가 핵심이다 보니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들은 줄거리나 주인공 캐릭터보다는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아주 기분 나쁜 분위기를 뇌리에 더 깊이 박아놓곤 합니다.

, 추악한 욕망이나 일그러진 정신에 기반한 일반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도무지 그 목적도 속내도 짐작할 수 없는 정신조종자들이 범죄를 사주하는 이야기들이라

읽고 있다 보면 머릿속이 한없이 오염되는 듯한 불쾌한 느낌까지 받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이 불쾌한 느낌이 그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이기도 합니다.

 

자위적 사이코패스는 도나토 카리시의 특징을 응축한 개념인데,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하면,

이들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폭력을 가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끼며,

나아가 피해자들이 직접 몹쓸 짓을 하게 만든다.

이런 경험 때문에 피해자들 중 일부는 성장하여 자신이 가해자가 되고 만다.”

, 정신을 속박하고 학대한 끝에 자신의 승계자로 만드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자들입니다.

앞선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들 속 악마들이 대체로 이런 범주의 인간들이었는데,

미로 속 남자의 악마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진화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악마의 진화가 역설적이게도 작품에 대한 호감을 절하시켰다는 점입니다.

앞선 작품들 속 악마 역시 100% 따라가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막판에 이르러 미스터리가 밝혀지면서 나름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미로 속 남자의 악마는 왠지 인공미가 너무 가해진 나머지 현실감이 떨어진 것은 물론

이야기를 독하게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라는 불편함까지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끔찍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도록 타인을 세뇌하고 마음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미스터리와 잘 결합되기만 한다면 엄청난 매력을 지닌 게 맞지만,

미로 속 남자는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설정 자체의 매력이 휘발됐습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서평이란 게 원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쓰고 보니, 줄거리나 주인공 얘긴 없고 인상비평 같은 서평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느 대목을 소개하든 자칫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많아서 이렇게밖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막판에 후속작을 염두에 둔 듯한 꽤 큰 떡밥이 제시되긴 했지만,

도나토 카리시의 다음 작품이 또다시 속삭이는 자시리즈라면

그땐 정말 읽어야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앤 블루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정세윤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블랙 앤 블루는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시리즈중 한국에서 8번째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편인 매듭과 십자가2015년에 출간됐으니 벌써 만 5년이 다 됐는데,

이만하면 해리 보슈, 해리 홀레, 피아&보덴슈타인 등 쟁쟁한 캐릭터들과 맞먹는 실적입니다.

네 번째 작품인 스트립 잭을 제외하곤 모두 읽은 터라 나름 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블랙 앤 블루는 좀 짜게 매긴 평점대로 전작들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압도적인 분량에다 작가의 서문에도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엿보였지만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불편하고 힘든 책읽기였던 게 사실입니다.

 

리버스가 마주한 사건 또는 미션은 분량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의자에 묶인 채 2층에서 떨어져 사망한 석유회사 직원의 미스터리가 메인이지만,

30년 전 자취를 감춘 소시오패스 바이블 존을 모방한 듯한 연쇄살인마에 대한 추적,

20년 전 멘토였던 선배 형사와 함께 체포했던 한 살인범에 대한 원죄(冤罪) 논란 및 감찰,

거기에 예전의 연인이던 질 템플러 경감이 제보한 대규모 마약 사건까지

두 세편의 작품에 나뉘어 실려도 충분할 것 같은 큰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다뤄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 가운데 대부분은 하나의 큰 줄기로 점차 수렴되긴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산만하거나 복잡하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탓에

도무지 집중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여러 갈래로 전개되던 미스터리들이 중후반 이후 급격하게 한 줄기로 수렴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다분히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였습니다.

하필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그 많은 미스터리가

스코틀랜드 북부의 애버딘이란 도시와 그곳에 자리한 석유회사에서 접점을 갖게 되는데,

리버스 스스로도 또 애버딘이야?”라고 자탄할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공간도 리버스의 홈그라운드인 에든버러를 비롯, 글래스고, 애버딘으로 분산되는데,

인명이나 지명을 가리키는 은어 또는 은유적 표현들이 각주나 보충설명 없이 등장한 탓에

리버스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또 누구와 만나고 있는 건지 종종 헷갈리곤 했습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전작들에서도 자주 목격됐지만 이번처럼 혼란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그 이유가 원작 탓인지 아니면 8번째 작품에 와서 바뀐 번역자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또는 리버스 특유의 비꼬는 듯한 블랙 유머가 잘 살아있고,

번역에서 큰 위화감을 느낀 대목이 없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원작 자체가 산만했던 것 같은데

시리즈를 처음부터 쭈욱 읽어온 독자조차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존 리버스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리버스 시리즈를 애정했던 독자로서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어느 하나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줄거리 정리 자체가 쉽지 않아서 생략했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이나 책 뒷표지의 요약문은 읽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읽기도 전에 김빠지게 만드는 소소한 스포일러들이 꽤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