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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신년 연휴, 여섯 명의 남녀가 초대장을 받고 도호쿠의 외딴 호텔 관설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내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면서 호텔은 고립되고, 숙박객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피해자 옆에는 범인의 메시지와 함께 묘한 마크가 그려진 카드가 놓여 있고,
사람 수가 줄어드는 것에 따라 오락실의 볼링 핀이 하나씩 사라진다.
한편 도쿄에서는 쌍둥이인 점을 악용한 형제의 강도 행각이 이어진다.
쌍곡선처럼 영원히 마주치지 않을 것 같던 두 사건은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말을 만들어낸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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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69년에서 1970년으로 넘어가는 연말연시입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게 1971년이니 무려 50년 전인데,
고전적인 클로즈드 서클에 쌍둥이 트릭까지 가세한, 그야말로 클래식 그 자체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의 아야츠지 유키토가 추앙해 마지않는 작가라서 그런지
출판사의 홍보카피도 “‘십각관의 살인’ 이전에 ‘살인의 쌍곡선’이 있었다!”라는,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작가의 도전장이 눈에 띕니다.
즉, 독자에게 이 작품에서 ‘쌍둥이 트릭’을 쓰겠다는 선언과 함께
“이로써 출발점이 같아졌습니다.”라는 대담한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쌍둥이 트릭’은 자칫 막판에 김이 확 빠지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트릭인데,
과연 작가가 이렇듯 공개선언까지 한 마당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해졌습니다.
도쿄에 사는 것 외엔 공통점 하나 없는 사람들이 깊은 산속 호텔에서 한 명씩 살해됩니다.
희생자가 늘어갈수록 ‘왜 우리인가?’라는 추리를 펼쳐보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존자들간에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까지 생겨나며 호텔은 생지옥으로 변합니다.
같은 시각, 도쿄에서는 쌍둥이 형제가 경찰을 농락하며 연쇄강도를 벌이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그 당시 ‘아날로그 경찰’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별개로 보이던 두 사건은 막판에 접점이 만들어지면서 한 갈래로 모이게 되지만,
경찰은 마지막까지 쌍둥이 트릭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호텔에 온 한 인물은 끊임없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언급합니다.
자신들의 상황이 그 작품 속 설정과 비슷하지 않냐, 라는 불길한 예감을 피력한 건데,
이건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오마주 혹은 일종의 도전이라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아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교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막판에 공개된 쌍둥이 트릭은 ‘고전에 어울리는 수준 아닐까?’라는
독자의 섣부른 예감을 훌쩍 뛰어넘는, 다소 놀라운 엔딩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온갖 기이한 트릭에 익숙해진 2020년의 프로페셔널 독자에겐 살짝 밍밍할 수도 있지만
작가의 도전장에 나름 투지를 가졌던 일반 독자라면 충분히 감탄하고도 남을 엔딩입니다.
1963년 데뷔 이후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한다는 작가의 내공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다만, 범인의 범행동기와 희생자들의 선택 과정은 조금은 공감하기 어려웠고,
쌍둥이 트릭에 대한 설명은 납득은 돼도 한 방에 이해하기엔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꽤 공을 들인 범행인데, 범인에게 좀더 강렬한 동기가 부여됐더라면,
또, 희생자들이 자신들이 왜 선택됐는지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이 설명됐더라면,
그리고, 트릭에 대한 설명이 좀더 친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북의 유즈루, 저녁하늘을 나는 학’, ‘이즈모 특급 살인’ 등
열차가 사건의 주 무대인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다소 황당한 해법이 종종 등장해서 늘 아쉬움이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니시무라 교타로의 대표작 역시 철도를 무대로 한 트래블 미스터리라고 해서
과연 어떤 식의 열차 미스터리를 만들어냈을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살인의 쌍곡선’이 선전한다면 그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분명 생기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