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0여 페이지의 단출한 분량이지만, 읽는 것도 서평 쓰기도 참 난감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중 어느 것과도 비슷한 경향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독자로서, 서평 쓰는 1인으로서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물론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작품은 거의 못 읽은 처지라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지막 장을 덮은 이후의 솔직한 느낌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읽은 게 사이코패스 이야기인지, 피와 뼈가 날뛰는 하드코어 폭력물인지 모르겠군.”

 

좀 매크로하게 정리하면,

전반부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사이코패스임을 인지해온 남자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자신의 폭주를 막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중반부는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뒤 패닉 상태에 빠진 남자가

사이코패스로서의 본색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후반부는, (작가가 앞부분에 대놓고 제시한 결정적 트릭을 놓친 탓이지만)

갑작스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피와 뼈가 날뛰는 하드코어 서사가 전개되다가

어딘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감동적이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뭐랄까... 한 작품 안에 적어도 두 개의 이야기가 혼재된 느낌이랄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결국 중반부에 등장하는 결정적 트릭에 의해 갈라질 것 같은데,

스스로 사이코패스임을 인지하고 있는 한 남자의 1인칭 고백 서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궁금함과 매력을 느끼고 열중하던 독자라면

중반부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결정적 트릭때문에 맥이 탁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 트릭에 대해 아무 거부감도 없거나 오히려 재미있다고 느낀 독자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피와 뼈가 날뛰는 액션 서사에 더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 중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잘 읽었다~!”라고 만족했던 작품은 외눈박이 원숭이뿐이었습니다.

랫맨은 뭔가에 취한 상태에서 읽은 듯 어질어질한 기분이었고,

투명 카멜레온은 이것저것 뒤죽박죽 믹스가 된 소동극을 본 느낌이었고,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심지어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작품이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가 여러 장르를 섭렵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작품 안에 두 개의 서사가 내장된 듯한 스켈리튼 키

저 같은 단순한 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중반부의 결정적 트릭없이 1인칭 사이코패스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전개됐더라면

어쩌면 평범한 미스터리 이상의 매력을 지녔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저의 이런 기대야말로

이 매력적인 작품을 평범하게 격하시킬 수 있는 무지함의 결과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찬찬히 찾아보면 제가 놓친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슴을 사랑한 소년 미아&뭉크 시리즈
사무엘 비외르크 지음, 이은정 옮김 / 황소자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르웨이 스릴러 미아&뭉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고백하자면, 전작인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의 서평 말미에

“‘미아&뭉크 시리즈는 이 작품에서 굿바이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약과 술에 취해 자살만 꿈꾸는 주인공을 더는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는데,

실은, 지지부진한 전개와 납득하기 어려운 엔딩이 더 큰 굿바이의 이유였던 게 사실입니다.

결국 두 주인공에 대한 마지막 애정 때문에 이 작품을 집어 들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엔 진짜 굿바이를 해야 되겠다는 게 이 서평의 요지입니다.

 

언제나처럼 기이한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희생자는 주사바늘로 가슴에 부동액이 주입된 채 사망하고,

현장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새겨진 카메라가 발견됩니다.

전작에서 입은 후유증 때문에 외국으로 장기 휴가를 가려던 미아 크뤼거를 비롯

해체됐던 특수 수사반 멤버들이 다시 모여 이 사건에 뛰어들지만,

희생자들 간의 연관성도 없고, 카메라에 새겨진 모호한 숫자는 해독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미아와 뭉크는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우선, 다 읽고 보면 범인의 범행 동기나 희생자 선정 방식 자체가 참 공허하게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들의 노력을 허망하게 만들 정도로 뜬금없고 억지스럽기 때문이고,

챕터마다 등장했던 무수한 조연들의 존재도 있으나 없으나 무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미아 크뤼거는 전작에 비해 많이 건강해져서 더는 술과 약물에 찌들진 않지만

여전히 죽은 쌍둥이 동생 시그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닙니다.

문제는 시그리의 이야기가 메인 사건과 전혀 별개인 것은 물론

그 자체의 서사도 왜 등장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한 동어반복이란 점입니다.

무엇보다 미아의 특기인 단서를 통해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특별한 직관력

마지막까지 제대로 발휘된 적도 없어서 주인공 형사로서의 존재감도 희미하기만 했습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뭉크의 가족 이야기 역시 별 의미 없이 의무적으로 배치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야기의 맥을 끊는 듯한 인상만 남겼습니다.

그 외에, 단순 조연들을 위해 몇 페이지씩 의미 없는 묘사가 할애된 점도,

독백인지 회상인지 알 수 없는 이탤릭체의 모호한 문장들의 홍수도,

메인 사건과 무관한 보조 사건들의 어정쩡한 마무리도 모두 아쉬움만 남긴 대목들입니다.

 

이 작품 또는 시리즈의 전작을 안 읽은 독자에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서평 내용이지만,

혹시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어서 꼭 한 편 정도는 읽고 싶은 독자라면

첫 작품인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쉬움이 적잖긴 하지만 적어도 미아와 뭉크의 매력만은 잘 살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 나무꾼
쿠라이 마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공한 변호사 니노미야는 쾌락과 분노 외엔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어느 날 괴물 마스크를 쓴 남자에게 도끼로 공격당하지만 천운으로 살아남은 그는

너희 같은 괴물들은 죽어야만 한다.”는 괴물 마스크의 한마디에 의구심을 품고

복수를 위해 그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한편 도쿄에서는 사람을 살해하고 뇌를 꺼내 가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 수사가 진행된다.

경시청 형사 토시로 란코와 관할서 형사 이누이는 탐문과 조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26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괴 사건과 연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 ●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해서 예상치 못한 엔딩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는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사이코패스뇌 과학이라는 소재도 흥미롭고,

기이한 살해수법, 연쇄살인 이면에 숨은 비극적인 과거사, 뜻밖의 범행동기 등

미스터리의 모든 요소가 정교하고 탄탄하게 잘 엮여 있습니다.

 

사이코패스 변호사 니노미야가 자신을 죽이려 한 괴물 마스크를 찾는 과정과

란코-이누이 형사 콤비가 뇌 도둑연쇄살인범을 찾는 과정이 한 챕터씩 번갈아 등장하는데

두 이야기가 하나의 접점을 향해 달려가면서 이야기는 더욱 속도감을 높입니다.

특히 프롤로그에 소개된 26년 전 유괴사건의 실체가 설명되는 중반부쯤부터는

누가 범인인가?’ 못잖게 괴물은 어떻게, 왜 탄생됐는가?’라는 테마가 독자의 눈길을 끄는데

이 부분은 엽기적이고 역겨운 느낌과 함께 비극적인 정서까지 함께 내포하고 있어서

미스터리 이상의 묵직한 주제의식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워낙 많아서 자세한 소개는 어렵지만

이 작품의 메인 소재인 사이코패스와 뇌 과학은 어쩌면 근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아주 위험천만하면서도 유혹의 힘이 강한 분야라는 생각입니다.

직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숙명’, 노장 딘 쿤츠의 사일런트 코너’, ‘위스퍼링 룸역시

다른 인간을 지배하거나 조종하기 위한 사악한 뇌 과학을 다룬 작품이었는데,

미지의 영역인 인간의 뇌를 신처럼 좌지우지하려는 욕망이 왜곡된 목적을 갖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참혹한 비극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궤는 달라도 괴물 나무꾼과 비슷한 주제의식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연쇄살인범을 쫓는 란코-이누이 형사 콤비의 이야기가 왜소해 보이는데

그건 아무래도 24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족처럼 보일 수 있는) 수사과정을 생략한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좌천되어 관할서로 내려온 이누이 형사와 신참 티가 나는 란코 형사를 잘 활용했다면

이들 콤비의 이야기 역시 사이코패스와 뇌 과학못잖게 흥미로운 내용이 됐을 것입니다.

 

미스터리와 주제 모두 매력적인 작품인 건 분명한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치기 어리거나 아마추어 티를 벗어나지 못한 유치한 문장들이 곳곳에 보였다는 점입니다.

올드함의 대명사인 아니 뭐라고!”는 기본이고,

불필요한 동어반복식 되물음이나 독자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본 투의 문장도 꽤 많았습니다.

특히 초반에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원작 자체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씩이나 헛웃음이 난 나머지 남은 분량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흔들린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중반 이후부터는 이런 아쉬운 상황들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데뷔작이지만 복잡다단한 설계를 능숙하게 해낸 점이나 미스터리의 맛을 잘 살린 걸 보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2018년에 이 작품이 나왔으니 이제 슬슬 신작 소식이 들릴 때도 된 것 같은데,

괴물 나무꾼이 호평을 얻는다면 머잖아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정식 사무실 하나 없이 링컨 차 뒷좌석에서 업무를 보는가 하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은 죄책감이고, 수임료는 수임료다.”라며

명백히 유죄로 보이는 나쁜 사람들을 위한 변호에 전력을 다하지만,

실은 정의감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미키 할러입니다.

 

이번에 미키가 맡은 사건은 여러 가지로 심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신이 변호해 석방시킨 의뢰인이 음주운전으로 시민을 사망하게 한 사건 이후

죄책감은 물론 딸 헤일리에게 절연 선언까지 당해 심신이 모두 피폐해져 있던 미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살인사건 용의자인 디지털 포주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문제는 그에게 살해당한 여자가 한때 사랑했던 콜걸 글로리아라는 점입니다.

용의자가 글로리아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미키를 찾아가라.”라고 했다며

자신의 무죄를 진심으로 주장하는데다 정황 상 범인이 따로 있다고 판단한 미키는

글로리아를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출발한 이야기에 또 하나의 사건이 끼어듭니다.

8년 전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중범죄자가 새삼 무고를 주장하며

당시 사건에 개입했던 미키에게 소환장을 보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특히 그 사건에 글로리아 역시 개입된 사실을 떠올린 미키는 혼란에 빠집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두 사건이 실은 한 갈래의 사건이라는 점을 깨닫고

8년 전 사건과 글로리아 피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 중 200여 페이지가 법정 공방 장면입니다.

물론 사이사이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사건이 끼어들긴 하지만

역시 법정 스릴러답게 검찰과 판사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이 작품의 백미입니다.

하지만 모호한 접점을 가진 두 개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도 매력적이고,

나쁜 사람을 변호하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 헤일리와의 갈등도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재미있는 건, 지금은 요양병원에 있는 미키의 멘토리걸 시걸의 역할인데,

그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법정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혜안을 갖고 있는 건 물론

궁지에 빠진 미키에게 인생 선배로서, 변호사 선배로서 진지한 조언을 건네는 인물입니다.

그 외에 두 번째 전처이자 사무장을 맡은 로나, 그 로나와 결혼한 전천후 조사관 시스코,

링컨 차를 운전하는 얼 브릭스, 새내기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 등

미키의 든든한 아군들이 펼치는 활약도 스릴러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요소들입니다.

 

작품 곳곳에서 눈에 띄는 단죄의 신들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이 작품의 원제목인 ‘The Gods of Guilt’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직설적으로는 12명의 배심원단을 뜻하기도 하지만 미키에게는 좀 특별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나를 축복하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들.”

 

즉 삶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그들 하나하나가 미키에게는 배심원이자 단죄의 신이며,

미키는 늘 그들 앞에 서서 자신을 위한 변론을 펼쳐간다는 뜻으로 설정된 개념입니다.

물론 작품 속에서 묘사된 미키의 여러 가지 심란한 상황들로 볼 때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이 개념이 적절해 보일 때도 있지만,

조금은 이야기 자체와 동떨어진, 그러니까 어딘가 을 위한 설정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100% 동감하기에는 미키의 고뇌가 그리 강렬하게 그려진 것 같지 않았고,

글로리아 살인사건 자체에 몰두한 전형적인 스릴러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느닷없이 등장한, 엔딩을 위한 멋부림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배심원단이라는 번역 제목도 참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이 작품에서 법정의 배심원단은 특별한 역할을 맡은 게 없고,

그렇다고 미키의 인생 배심원단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제대로 그려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직역에 가깝게 단죄의 신들이란 제목이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언제나처럼 마이클 코널리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재미와 긴장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배심원단역시 첫 페이지를 펼치면 한 호흡에 마지막까지 달릴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기대했던 반전이나 막판의 짜릿함은 전작들에 비해 약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미키의 캐릭터가 왠지 자꾸 이복 형 해리 보슈를 따라가는 것 같다는 점이 아쉬웠고,

그래서인지 미키 할러 시리즈만큼은 재미 만점의 법정 스릴러로 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애정 섞인 조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전편 다섯 번째 증인도 한정아 님이 번역하셨는데,

로나의 남편 이름은 데니스 뵈치에호프스키(일명 시스코)’에서 시스코 보이체홉스키,

새내기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의 별명은 불락스에서 송아지로 바뀌었네요.

필요해서 수정한 부분이겠지만 시리즈를 계속 읽는 독자 입장에선 다소 혼란스러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5월 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네 번째 작품인 악덕의 윤무곡을 읽은 뒤

당분간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좀 멀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제목에 클래식 작곡가의 이름이 들어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주인공 캐릭터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은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그리고 초기 소개작이라 잘 몰랐던 법의학 교실 시리즈를 제외하곤

스탠드얼론을 포함 국내 출간작 23편 중 12편을 읽은 셈이었는데,

악덕의 윤무곡을 읽곤 왠지 나카야마 시치리에 대한 피로도가 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를 내뿜는 핑크빛 표지와 비웃는 숙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 탓에

또 다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집어 들고 말았습니다.

이것까지만, 그리고 한 1년은 나카야마 시치리는 쉬자, 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하지만...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속도감, 긴장감, 다소 과한 폭력성과 선정성, 막판 반전 등

재미 면에서 보면 나카야마 시치리의 장점이 가장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

이 작품까지 제가 읽은 13편 가운데 Top3에 꼽아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포함돼있습니다.

미리 봐도 별 문제는 없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뛰어난 미모와 화술, 상대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극강의 카리스마를 지닌 가모우 미치루는

중학생 시절 자신의 첫 사냥을 시작한 이래 순탄하게 소시오패스로서 진화를 거듭합니다.

그녀의 사냥감은 대부분 필요와 목적에 따라 선정되기지만,

때론 즉흥적으로 또는 우연히 선정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그녀의 진정한 악마성은 사냥을 위해 누군가를 완벽히 조종하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냥에서 그녀는 자신의 피에 손을 묻히는 일이 없습니다.

대신 자신에게 흠뻑 빠져든 누군가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사냥하게 만든다는 얘깁니다.

 

이 대목에서 아마도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 시리즈를 떠올리는 독자가 있을 텐데,

사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정신 조종자가 다소 호러 느낌이 들기도 하고

독자에 따라 저게 가능해?”라며 비현실적이라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반해,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진정한 악녀 가오루 미치루의 조종은 너무나도 현실적입니다.

물론 그녀의 사냥을 위해 선택된 누군가는 대부분 벼랑 끝에 선 위태로운 사람들입니다.

 

학교폭력에 시달린 나머지 살의에 물든 여중생,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쇼핑 중독에 빠진 나머지 감당 못할 횡령을 저지른 은행원,

취업 문제 때문에 가족에게 바보 취급을 받은 나머지 극도의 스트레스에 빠진 청년,

그리고 해고된 후 소설가가 되겠다는 공상에 빠진 채 가족을 내팽개친 남편을 둔 주부 등

옆에서 누군가 버튼 하나만 눌러주면 그대로 폭발하고도 남을 임계점에 이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고민해주는 미치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정도로 빠져드는데,

결국 미치루의 친절한 조언한마디에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고 마는 것입니다.

 

소소한 이야기 몇 가지만 더 하자면...

사실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여러 번 떠오르기도 했는데,

두 작품 사이에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비교해보면서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번역하신 문지원 님은 이 작품을 이야미스 계열로 설명했는데,

(이야미스 =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음습한 심리를 섬세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해지는 장르)

개인적으론 오히려 독자 대부분이 그 반대의 감상을 경험하게 될 거란 생각입니다.

, 희대의 악녀 가오루 미치루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이상한 감상이라고 할까요?

 

다만, 가오루 미치루가 재판을 받는 마지막 챕터의 반전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야마 시치리 식 반전의 맛이 충분히 살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초반부에 이 반전의 트릭을 눈치 챌 수도 있는데,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대목이 등장하면 곰곰이 이후의 전개를 예측해보기 바랍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후 가오루 미치루가 주인공인 후속편(‘또다시 비웃는 숙녀’)은 물론,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한 인물과 미치루가 2인조로 활약하는 작품도 출간한다고 합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에 대한 피로도가 극에 달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시리즈는 몰라도 이 두 작품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희대의 악녀 가오루 미치루에게 저도 푹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