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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아내 제니와 딸 이지가 괴한에게 살해당한 후 장례식까지 마친지 벌써 3년.
하지만 게이브는 여전히 전단지를 들고 딸 이지를 찾아다닙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 시간, 낯선 차에 타고 있던 살아있는 이지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지가 타고 있었던 낯선 차를 발견한 게이브는
트렁크 속 부패한 시신과 함께 ‘디 아더 피플’이라는 글씨의 흔적이 남은 수첩을 발견합니다.
‘디 아더 피플’이 사적 복수를 주고받는 은밀한 조직이란 걸 알게 된 게이브는
어쩌면 아내와 딸의 죽음이 자신의 과거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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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범죄자가 넘쳐나는 세상. ‘디 아더 피플’이 대신 처리해드립니다.
의뢰한 모든 요청은 반드시 실행됩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크 웹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은밀한 조직입니다.
그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대로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법망을 빠져나간 죄인을 처단합니다.
그들은 처단에 관해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 신세를 졌으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다른 처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걸 거부하는 자에겐 ‘디 아더 피플’의 잔혹하고 끔찍한 응징이 기다릴 뿐입니다.
사실, 출판사의 홍보카피만 봤을 때는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가 떠올랐습니다.
사적 복수를 위해 모인 그룹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복수가 주된 내용일 거라 추측한 거죠.
하지만 ‘초크맨’의 C. J. 튜더라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적 복수를 다룰 것 같았고,
역시 기대한대로 전혀 새로운 서사가 450여 페이지의 분량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사적 복수를 위한 다크 웹 상의 조직) ‘디 아더 피플’은
이야기의 뒷면 혹은 행간에만 등장할 뿐 복수극의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또, 법망을 빠져나간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조직’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통쾌한 사적 복수를 기대한 독자들에게 의외의 설정으로 보이겠지만,
개인적으론 “상투적일 수도 있는 사적 복수를 이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는 특별한 경험을 겪은 작품이었습니다.
‘초크맨’ 서평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디 아더 피플’ 역시 초반부 이상의 줄거리를 소개하기가 난감한 작품입니다.
중요한 설정이나 변곡점들이 꽤 많다 보니 그 어느 것을 소개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고,
그 부분들을 소개하지 않으면 두루뭉술한 인상 비평 이상의 서평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복수를 의뢰했다면 반드시 그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디 아더 피플’의 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참혹한 비극을 겪는다는 설정만으로도
스릴러 마니아의 기대와 관심을 얻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란 건 분명합니다.
사적 복수를 다룬 스릴러 서사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만큼 눈길을 끈 건 유려하면서도 적확한 언어들로 만들어진 ‘맛있는 문장들’입니다.
C. J. 튜더의 국내 출간작은 물론 스티븐 킹의 작품을 주로 번역한 이은선 님 덕분이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런 문장들을 구사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저절로 들 정도로
C. J. 튜더의 필력은 스릴러 서사 못잖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별 다섯 개도 모자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0.5개를 뺀 이유는 딱 한 가지인데,
왠지 작가가 욕심을 부린 것만 같은 사족 같은 호러 판타지 코드 때문입니다.
이 역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하게 소개할 순 없지만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현실 속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작품에
왜 굳이 낯설고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호러 판타지 코드를 넣은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사실 ‘초크맨’ 서평에도 “곳곳에서 스티븐 킹의 호러 판타지의 느낌을 받았다.”라고 썼는데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작가의 강력한 취향 중 하나가 스티븐 킹과 동류항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질감이 너무 심한 나머지 막판에 살짝 어이없게 여겨진 게 사실입니다.
‘초크맨’과 ‘디 아더 피플’ 중간에 출간된 ‘애니가 돌아왔다’는 아직 못 읽었는데,
‘옮긴이의 글’을 보니 내년에도 C. J. 튜더의 신작이 나올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바빠집니다.
잉글랜드 남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음습하고 불길한 일들을 다룬다고 하니
아무래도 스티븐 킹을 연상시키는 호러 판타지 성향이 강한 작품일 것 같은데
‘초크맨’과 ‘디 아더 피플’에서 살짝 맛배기(?)만 보여줬던 작가가
어쩌면 자신의 진짜 취향과 진면목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