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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 ㅣ 아르테 오리지널 12
에이드리언 매킨티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평점 :
누군가 내 딸을 납치하곤 “몸값을 보내고 다른 아이를 납치하면 딸을 풀어준다.”라고 한다면,
그런데 그 납치범 역시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내 딸을 납치했다면,
즉, 진짜 범인은 다크웹 속에 깊숙이 숨은 채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몸값만 챙기면서
끊임없이 선량한 부모들을 무고한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면...
이혼 후 암과 투병 중인 35살의 레이철은 딸 카일리를 이런 방식으로 잃습니다.
다크웹 속 진짜 범인은 암호화된 전화와 메시지로 지시만 내리고 돈만 챙길 뿐
실제 납치 행각은 모두 아무 죄도 없는 부모들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레이철이 딸 카일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다른 아이를 납치한 뒤, 그 부모가 또 다른 아이를 납치하는데 성공해야만 합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납치의 사슬’은 무수한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시킵니다.
살아 돌아온 아이는 불면과 악몽과 야뇨 등 납치 후유증에 시달리고,
부모는 납치극이 종료된 후에도 잔혹한 미션을 맡기는 ‘체인’의 강박에서 못 벗어납니다.
체인은 자신들을 거역한 자들이 어떤 응징을 받게 됐는지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그런 탓에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그 누구도 체인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지 못합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있습니다.
1부 ‘실종된 소녀들’은 딸 카일리를 구하기 위한 레이철의 나흘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고,
2부 ‘미궁 속 괴물’은 말 그대로 다크웹 속에 숨은 체인을 향한 레이철의 전쟁을 그립니다.
평범한 여성이자 어머니인 레이철이 패닉에 빠진 채 몸값을 준비하고 납치를 계획하는 1부는
꽤 세고 독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다소 느슨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조력자가 필요하다 보니 이혼한 전 남편의 형이자 해병대 출신인 피트가 등장하는데
문제는 피트가 ‘화려한 전력의 전사’가 아니라 약물에 중독된 ‘나약한 인물’이란 점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설정 덕분에 이야기가 현실감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2부는 시작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거침없는 액션스릴러를 풀어놓습니다.
레이철은 체인을 박살내지 않는 이상 후유증과 악몽이 평생 자신과 카일리를 따라다닐 것이며
거기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힘으로 체인의 정체를 밝히고 끝장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다크웹 속에 숨은, 단서 하나 없는 범인을 레이철의 힘만으로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기에
작가는 두 번째 조력자를 레이철에게 붙여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체인을 향한 레이철의 무자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장 약한 고리를 물고 늘어지는 희대의 범인 ‘체인’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사랑’이란 감정 자체가 결여돼있습니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체인’의 성장과정을 그린 챕터를 읽다 보면
소시오패스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는데,
뛰어난 두뇌와 거칠 것 없는 폭력성으로 중무장한 ‘체인’을 향한 레이철의 유일한 무기는
카일리에 대한 사랑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작가는 단순한 할리우드 식 복수극 이상의 숨은 비밀을 클라이맥스부터 하나씩 공개하는데,
덕분에 그저 피와 살이 난무하는 총격전을 넘어선 흥미와 탄식을 만끽하게 되고,
1부의 나른함과 느슨함은 어느 새 잊힌 채 마지막 장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됩니다.
주인공인 레이철의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강철 멘탈도 매력적이지만,
레이철의 두 조력자나 딸 카일리 등 조연들의 활약도 리얼리티와 재미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별 0.5개를 뺀 유일한 이유는 1부가 좀 느슨하고 길었다는 점 때문인데,
그 점만 빼면 별 5개 이상의 평점을 줄 만한 명품 스릴러라는 생각입니다.
에이드리언 매킨티는 이 작품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됐지만
그의 명성과 수상이력에 저절로 수긍이 가면서 다른 작품들의 출간도 기대하게 됐습니다.
홍보카피에 따르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준비 중이라는데
어쩌면 원작 이상의 흥미진진한 스릴러액션물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