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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ㅣ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와카타케 나나미는 꽤 오래 전 읽은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이후 오랜만에 만난 작가입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이라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에 기대어 희미해진 기억을 떠올렸는데
흥미롭고 신선한 설정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2019년 이후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가 두 작품이나 출간됐음에도 제 눈길을 끌지 못했던 건
‘곰 그림이 들어간 귀여운 표지’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뒤늦게라도 이벤트를 통해 ‘이별의 수법’을 만나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와카타케 나나미가 창조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는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소속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뒤 미스터리 서점 ‘살인곰 서점’의 알바생인 된 하무라 아키라는
어이없는 부상으로 입원한 뒤 왕년의 스타 배우 아시하라 후부키와 한 병실을 쓰게 됩니다.
하무라가 전직 탐정임을 알게 된 후부키는 20년 전 가출한 딸 시오리의 조사를 의뢰합니다.
하지만 20년이란 시간의 공백은 하무라의 발걸음을 무겁게만 만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무라는 20년 전 시오리의 행방을 쫓던 탐정도 실종됐으며,
후부키의 조카는 교살당했고, 저택의 가정부들마저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정계와 연예계의 거물들부터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후부키 주위의 인물들을 조사하던 하무라는
20년 만에 드러난 충격적인 비밀은 물론 각종 살인과 실종의 진실까지 파헤칩니다.
다 읽은 뒤의 첫 소감은 “하무라에겐 하루 48시간도 모자라!”였습니다.
사실, 메인 사건은 실종된 후부키의 딸 시오리를 찾은 일이지만,
하무라는 20년 전 시오리를 쫓다가 사라진 탐정의 행방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다,
자신이 셰어하우스에 소개한 미스터리한 여성의 감시(?)까지 본의 아니게 떠맡게 된 탓에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만큼 온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처지입니다.
더구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수차례나 온몸에 부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덕분에 ‘하드보일드 탐정’이 아니라 오지랖 넓은 좌충우돌 캐릭터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무라의 이런 저돌적인 맹활약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금세 마무리짓게 만드는데
때론 읽는 독자마저 숨이 가쁠 정도로 이야기는 빠르고 쉴 틈 없이 전개됩니다.
탐문이 거듭될수록 예상치 못한 곳에서 20년 전의 단서와 목격자들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의뢰인인 후부키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하무라의 조급증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결국 하무라는 휴식이란 걸 잊은 듯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조사에 매진하는데,
이런 하무라를 뒤쫓느라 독자마저 마치 전력으로 100m를 달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에 밝혀진 진실은 충격적이고, 거듭된 반전도 마지막까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 스스로 헷갈릴 수 있을 만큼 사방에 뿌려진 크고 작은 사건과 해프닝도 잘 수습됩니다.
특이한 경험이지만, 열심히 일한 하무라가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안도감도 느꼈는데
덕분에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처음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됐습니다.
재밌는 건 이 작품 바로 앞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가 13년 전에 출간됐다는 점입니다.
‘잘 벼려진 칼날 같은 20대’였던 하무라가 직전 작품인 ‘나쁜 토끼’에서 31살까지 성장한 뒤,
무려 13년 만에 ‘사십견과 노안에 시달리는 40대 아줌마’가 되어 독자 앞에 나타난 셈인데,
그 사연에 관해서는 ‘작가 후기’에 실린 작가의 솔직한(?) 고백을 참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한국에서 먼저 출간된 두 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조용한 무더위’, ‘녹슨 도르래’)는
실은 ‘이별의 수법’ 뒤에 출간된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두 작품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을 마치 프리퀄처럼 읽을 수 있을 텐데,
그 나름의 흥미로운 책읽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품절, 절판 상태인데
기회가 될 때마다 중고서점을 탐색해서라도 한 편씩 모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너무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이제라도 만나게 돼서 다행이라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전해준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 출간연도는 일본/한국>
- 시즌 1
01 ‘네 탓이야’ (1996/2008, 북폴리오, 단편, 원제 ‘프레젠트’)
02 ‘의뢰인은 죽었다’ (2000/2009, 단편, 북폴리오)
03 ‘나쁜 토끼’ (2001/미출간, 장편)
- 인터미션
03-1 ‘어두운 범람’ (2014/2017, 엘릭시르, 단편, 두 작품에 하무라 등장)
- 시즌 2
04 ‘이별의 수법’ (2014/2020, 장편, 내친구의서재)
05 ‘조용한 무더위’ (2016/2019, 단편, 내친구의서재)
06 ‘녹슨 도르래’ (2018/2020, 장편, 내친구의서재)
07 ‘불온한 잠’ (2019/미출간, 단편)
* 시즌 구분은 ‘역자 후기’에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