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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멀홀랜드 댐 인근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베트남 참전 동료 메도우스임을 알게 된 보슈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수사를 펼친 끝에 기어이 FBI와의 공조까지 끌어냅니다.
보슈와 호흡을 맞출 FBI의 파트너는 이후 그와 기구한 인연을 이어갈 엘리노어 위시.
보슈와 엘리노어는 메도우스의 죽음이 1년 전 은행 강도사건과 연관된 것은 물론
20년 전 베트남 전쟁 중에 벌어진 추악한 흑막과도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하지만 LA경찰국과 FBI의 방해, 도청과 미행에 이은 살해위협까지 받게 되면서
보슈와 엘리노어의 수사는 갈수록 위태로워지기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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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 시리즈’와 이 시리즈에 중요한 조연(Also Featuring)으로 등장했던
매력적인 인물들(잭 매커보이, 테리 매케일럽, 캐시 블랙)이 주연을 맡은 작품들까지 포함하여
제 마음대로 만들어본 ‘해리 보슈+@ 순서대로 다시 읽기’의 첫 작품인 ‘블랙 에코’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시리즈 최근작 ‘블랙박스’에서 보슈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인데
이제 갓(?) 마흔인 팔팔한 보슈의 첫 번째 활약을 다시 읽고 있으니 묘한 반가움과 함께
속절없이 흘러간 보슈의 세월과 나이에 안쓰러움과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리즈의 첫 편이지만 보슈는 어설프지도, 어려 보이지도,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나름의 정의, 이유 있는 반골,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돌직구 기질’로 무장한 채
자신의 첫 등장을 독자들에게 뚜렷이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6병 묶음 맥주 팩과 나른한 재즈를 즐기는 고독한 코요테를 닮은 분위기,
하드보일드와 감상적인 로맨티스트를 넘나드는 캐릭터 플레이는
다른 어느 시리즈에서도 맛보기 힘든 매력적인 형사 캐릭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작품들을 대부분 읽은 덕분에 첫 편인 ‘블랙 에코’는 마치 프리퀄처럼 읽혔는데,
후일 보슈의 인생에 기쁨과 절망을 모두 안겨줄 엘리노어 위시와의 첫 만남,
타고난 반골 기질과 정의감으로 인해 LA경찰국에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사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임시가정과 청소년 쉼터를 전전했던 암울한 성장기,
또 그의 오랜 트라우마인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내용 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들은 앞으로 이어질 작품들에서도 보슈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인데,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물론 ‘베트남 전쟁’입니다.
멀홀랜드 댐 굴에서 발견된 시신은 베트남 전쟁 당시 보슈와 함께 땅굴을 수색하던 동료였고,
엘리노어는 아끼고 의지하던 오빠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잃었습니다.
특히 보슈는 베트남에서 땅굴로 들어가는 순간의 공포를 뜻하는 은어 ‘검은 메아리’,
즉 블랙 에코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20년이 지나 희대의 은행강도를 체포하기 위해
오랫동안 잊었던 그 트라우마와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두 번째는 FBI와 LA경찰국 내사과로 대표되는 ‘내부의 적들’입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보슈의 성미를 건드리곤 하는데,
그의 반골 기질에 열광하는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더없이 좋은 장치입니다.
조직이 그를 아웃사이더로 밀어붙일수록 보슈의 매력은 급상승하게 되고,
그를 못살게 굴던 조직이 망가질수록 독자들의 쾌감은 치솟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불행한 성장기입니다.
‘히에로니머스 보슈’라는 특이한 이름을 남겨준 어머니는
보슈에겐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이자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블랙 에코’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간략하게만 소개될 뿐인데,
어머니와 보슈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다른 작품에서 좀더 상세히 설명됩니다.
‘베트남’, ‘내부의 적들’, ‘불행한 성장기’는 이후 보슈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합니다.
현실에서라면 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들고도 남을 만큼 극단적인 설정들이지만,
고독과 반골, 적절한 폭력성을 겸비한 보슈에게는 매력적이고도 완벽한 포장임에 분명합니다.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내용보단 작품의 큰 틀을 소개하는데 주력한 서평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스포일러 설정들이 워낙 많아서 상세한 내용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음에도 여전히 큰 감흥을 전해줬는데,
그동안 뒤죽박죽 또는 군데군데 빼먹은 시리즈들을 순서대로 읽어나갈 생각을 하니
예상치 못한 선물 폭탄을 받고 하나씩 포장을 벗기는 어린 아이마냥 흥분될 따름입니다.
(최근작인) ‘블랙박스’까지 19편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맛있게 음미해볼 생각입니다.
사족으로...
지금까지 해리 보슈가 장신에 한 덩치 하는 인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블랙 에코’에는 보슈에 대해
“키는 180cm에 많이 모자랐고, 몸도 가느다란 편이었다.”라고 묘사돼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상상이 전부 착각이었던 겁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뒤늦게 읽은 시리즈 첫 편 ‘사랑받지 못한 여자’에서 그때까지 아담한 체격으로 알고 있던
피아 키르히호프가 실은 180cm의 장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