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활동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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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돼있지만 인터넷서점의 출판사 소개글을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지만 성적도 인격도 외모도 극과 극인 이영과 김세연은

어느 날 등굣길에 아파트 담벼락에 버려진 여고생의 시체를 함께 발견합니다.

이영은 CCTV에 찍힌 시체 앞 자신의 모습이 인터넷에 돌면서 범인으로 오인받기 시작하자

어딘가 수상쩍은 CCTV 관리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지만,

그로 인해 이영은 물론 김세연까지 피비린내 진동하는 엄청난 살육전에 휘말리게 됩니다.

 

화재로 부모를 잃었지만 인터넷에서 부모를 죽인 패륜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이영은

툭하면 싸움질이나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 왕따 아닌 왕따로 지내는 남학생인 반면,

김세연은 중학생 시절 세계 해커대회를 휩쓴 경력과 함께

뛰어난 미모, 압도적인 성적, 극강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캐릭터 때문에 역시 왕따 아닌 왕따가 된 여학생입니다.

 

이들이 상대하는 은 살인을 취미로 삼는 미스터리한 집단 동호회입니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짠 후 돌아가며 무고한 여성들을 살해해온 쾌락 살인마 집단이며,

선생이라 불리는 자가 모든 악을 설계하고 조종하는 최고위 배후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에 사건이 벌어진 기간 역시 만 이틀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영-김세연 콤비가 동호회와 벌이는 전쟁은 최소 몇 배 이상의 스케일로 펼쳐집니다.

희대의 연쇄살인집단과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갖고 있지만,

CCTV를 통한 사냥, 최고보안등급의 메신저, 기상천외한 해킹, 흉기로 돌변한 무인자동차 등

양측이 보유한 전투력은 마치 첨단 기술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이고,

액션 장면 역시 천재 미소녀와 왕따 꼴찌 콤비가 펼치는 거침없는 청춘 액션 스릴러라는,

어딘가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는 홍보카피와는 거리가 먼,

피와 뼈가 난무하는 잔혹한 장면들을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대로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킬링타임용 스릴러로서 매력도 있고,

길지 않은 분량 때문에 첫 장을 열면 단숨에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영과 김세연의 캐릭터도 살짝 판타지처럼 보이긴 해도

액션물 주인공으로서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살인집단 동호회의 모호함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의사, 교사, 사장, 공무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계획을 짠 후 돌아가며 살인을 저지르고

서로 알리바이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살해해 온 쾌락 살인마집단이라는데,

정작 이런 정체성은 누군가의 짧은 설명 또는 인용으로만 묘사될 뿐입니다.

물론 이영과 김세연이 형사가 아닌데다 작가의 목표 역시 단순한 범인잡기가 아닌 탓에

동호회의 그간의 범행들을 현재 시점에서 상세히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만 설명되고 마는 동호회의 악행은 별로 현실감이 없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론 기승전결 중 이 쏙 빠진 채 에서 바로 로 점프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이 자리에 동호회의 정체성과 악행이 그려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반 판타지로 불린다는 작가의 전작 이계리 판타지아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다음 작품이 역시 엔터테인먼트 스릴러라면 충분히 기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 명의 새로운 한국 장르물 작가를 만나게 돼서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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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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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문 마지막 줄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쓴다면 뭘 써야 되나?”

그런데, 말미에 실린 역자후기를 보곤 다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자 역시 후기를 쓰기가 몹시 껄끄럽네요. (처음엔 편집부의 후기 요청을 거절했는데)

정말이지 이 후기가 책에 안 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999리입니다. .”라며,

진심으로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 중 하나인 요쓰야 괴담을 재해석해서 새롭게 그려냈으며

교고쿠 나쓰히코가 그리는 기괴한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전직 무사 이에몬과 무가의 딸 이와 사이의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건 맞지만,

번갈아 한 챕터씩 이끄는 조연들의 역할과 그들만의 스토리도 주인공 못잖게 비중이 커서

굳이 정리하면 에도 시대 한 마을에서 벌어진 광기의 향연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가문의 몰락 이후 목수가 된 전직 무사 이에몬은 웃음 따윈 모르는 무뚝뚝한 인물입니다.

그런 이에몬이 중매를 통해 하급무가의 딸 이와의 남편이 됩니다.

거침없는 돌직구 스타일의 이와는 한때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며 혼담을 독차지했지만

뒤늦게 걸린 포창(천연두) 때문에 몸과 얼굴이 모조리 망가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이와의 대쪽 같은 성격은 전혀 변함이 없었는데,

그런 탓에 자신의 의지보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이뤄진 이에몬과의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 좌충우돌, 끝없는 싸움과 시비의 연속으로 점철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당대 최악의 소시오패스인 이토 기헤이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의 악연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동시에 끔찍한 죽음들을 야기하기에 이릅니다.

 

꽤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기구한 사연들을 풀어내다가 대부분 그 사연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실은 그 모든 사연들과 죽음은 같은 뿌리에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아직 이와가 남자들의 관심과 혼담을 독차지하던 시절,

상급관리인 소시오패스 이토 기헤이가 이와를 욕심냈지만 거절당한 바 있습니다.

이후 이토는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지역민들을 향해 참혹한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와가 이에몬과 결혼하자 이토는 두 사람의 파멸까지 획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이토의 만행으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자들의 복수극까지 개입되면서

이야기는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피로 얼룩진 괴담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최애 시리즈 중 하나인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2과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고,

이야기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보니 초반부터 흥미롭게 읽힌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고쿠 나쓰히코 특유의 의도된 모호함이 계속 발목을 잡았는데,

가장 두드러진 건 완결되지 않은, 그래서 독자 스스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문장들이고,

또 하나는 좀더 세세히 그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에몬과 이와의 사랑입니다.

 

교고쿠 나쓰히코를 두세 편밖에 읽지 않았으니 그의 특유함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략과 축약이 과도한 나머지 통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문장들이 너무 많은 건 사실입니다.

, 이에몬과 이와의 사랑 역시 ?’라는 의문을 자주 자아낼 만큼 모호하고 난해했는데,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이에몬은 왜 저럴까?”, “이와는 왜 저럴까?” 등에 대해

교고쿠 나쓰히코는 대체로 불친절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독해력이나 이해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애잔하면서도 불멸의 향기를 지닌 듯한 두 사람의 엔딩이 쉽게 납득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이해가 쉽고 선명하게 그려진 인물은 소시오패스 이토 기헤이였는데,

이 작품의 모든 불길한 기운과 참혹한 비극이 그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술도, 돈도, 권력도, 여자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가 희열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은 타인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만끽할 때뿐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아이를 잃은 상중(喪中)의 여인을 겁탈하며 만족을 느끼는 정도이니,

소시오패스 중에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이에몬과 이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낸 반면,

확실한 악행의 주인공 이토 기헤이는 오히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캐릭터였습니다.

 

주위에서 이 작품을 교고쿠 나쓰히코의 최고작이라고 평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이에몬과 이와가 조금만 더 이해하기 쉽게 그려졌더라면

저 역시 분명 그런 평가를 내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설정과 서사를 지닌 작품이란 뜻인데,

제게는 동시에 그만큼 아쉬움이 깊게 남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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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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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마이클 코넬리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 라스트 코요테였습니다.

그 뒤로 팬이 되어 출간순서 같은 거 따지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어왔는데,

거의 10년만에 다시 만난 라스트 코요테는 첫 인상 때와 마찬가지로 명품 그 자체였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33년 전 어머니 마저리 로우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보슈의 고된 여정입니다.

LA를 휩쓴 지진으로 집은 붕괴될 위기에 처하고 보슈 본인은 무기 정직을 당한 상태입니다.

경찰국의 명령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보슈는

더는 늦출 수 없는 자신의 사명, 즉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배지와 총을 반납한 상태에서 보슈는 과거 수사 자료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지만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엉터리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됐음을 알게 됐고,

매춘부였던 어머니와 관련 있는 인물들(검사, 후원자, 포주, 친구)의 행적까지 파악합니다.

보슈는 생각보다 빨리, 명확하게 진실을 캐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늘 그랬듯 그의 앞엔 수많은 함정과 덫과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슈의 처지는 그야말로 사방에 적 또는 낭떠러지만 존재하는 위기일발그 자체입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게 생겼고, 상관 폭행혐의로 무기한 정직을 선고받은데다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은 오히려 보슈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자극할 뿐입니다.

지진으로 터전을 잃은 삐쩍 마른 코요테 한 마리에게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보슈의 삶이 더 이상 피폐해질 수 없는 지경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33년 전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긴 보슈에게는 주저할 것도 두려워할 일도 없습니다.

정직상태의 불리함을 회피하기 위해 상관의 신분을 도용하기도 하고,

어머니와 함께 매춘부 생활을 했던 여인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내기도 하고,

엉터리 수사를 했던 당시 담당형사를 만나기 위해 플로리다까지 날아가기도 하고,

지문 대조를 위해 그답지 않은 애걸복걸과 그다운 무자비한 압박을 겸비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으로 똘똘 뭉친 보슈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이라는 더 이상 무거울 수 없는 주제가 깔려있다 보니

어느 한 대목도 가볍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상관 폭행으로 드러난 그의 폭발적 스트레스에 대해

정신과 의사로부터 블루 앙스트(우울한 고뇌)’라는 진단까지 받게 된 것은 물론,

수사 과정에서 적잖은 희생이 벌어지고 그것이 자기 탓이라는 자괴감에 빠진 보슈가

자신의 삶과 직업을 저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는 한없이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심지어 보슈는 이 사명을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라는 자책에 이르기도 합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보슈가 조금도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더 큰 고통과 회한에 빠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인데,

그래선지 작가가 이 작품 뒤에 바로 보슈의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고

잭 매커보이라는 새 주인공을 앞세워 시인이란 작품을 내놓은 것은

어쩌면 보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보슈는 사랑을 합니다.

옛 담당형사를 만나기 위해 날아간 플로리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또다시!) 어딘가 보슈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이는, ‘그림 그리는 여자재스민 코리언입니다.

어머니의 진실을 찾는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여정 가운데 유일한 안식을 준 인물이지만,

그녀 역시 보슈가 짐작조차 못한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밝혀집니다.

출간연도로만 보면 라스트 코요테이후 2년 뒤에나 다음 작품인 트렁크 뮤직이 나왔는데,

과연 그때까지 재스민과의 인연이 이어질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렁크 뮤직역시 오래 전에 읽었지만 전혀 기억이 없네요.)

 

보슈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세 가지 요소 가운데 베트남전쟁은 거의 등장하지 않은 반면

어머니내부의 적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어머니가 보슈의 깊은 슬픔과 고통의 서사를 전하고 있다면,

내부의 적들은 독자로 하여금 분노와 통쾌함을 번갈아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 스릴러에서 맛볼 수 있는 두 가지 최고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란 뜻입니다.

뒤죽박죽 순서 없이 읽은 해리 보슈 시리즈가운데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기억하고 있던 게 이 작품이었는데,

그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인상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사족으로...

번역에 관해 몇 군데 애매하거나 아쉬움이 느껴진 대목이 있었는데,

제가 읽은 건 구판이라 표지가 바뀐 개정판에서는 수정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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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 김희재 장편소설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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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에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과 설정들이 꽤 많이 공개돼있는데,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 범위 안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윤색작가 서원의 삶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습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연인이던 건축디자이너 승우는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제야 뱃속에 자신과 승우의 2세가 자리 잡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정진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넘긴 서원은

그의 진심어린 구애에도 승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번번이 거절했지만,

정진의 집이 오래 전 승우가 자신을 위해 설계했던 바로 그 집임을 알게 되곤

오로지 승우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정진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완벽한 IOT(사물인터넷)가 구현된 정진의 집은 겉으로는 이상적인 집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재 그 집 2층에는 서원과 정진 외에 또 한 사람의 남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서원이 정진 몰래 끌어들인 옛 연인 승우입니다.

 

영화감독 김성호의 추천의 말을 좀 축약 편집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착에 관한 심오한 심리소설, 남녀 성인의 설레는 에로틱 소설,

그런데 거기에 SF에 나올 법한 판타지와 결합된 공포소설이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하우스는 이러한 복합장르 소설로서는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요약한 줄거리만 보면 집착, 심리, 에로틱까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이 가지만

SF, 판타지, 공포 같은 코드가 어떻게 결합됐다는 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목까지 서평에서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스티븐 킹의 중단편의 향기가 물씬 배어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외딴 언덕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외경에 완벽한 IOT가 구현된 꿈에 그린 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집을 감도는 분위기는 무척 불편하거나 음울하거나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사라진 연인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그의 아기를 임신한 채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한 서원과

도무지 정을 줄 수 없는 아기는 물론 늘 예민한 서원 때문에 마음이 아픈 정진의 관계는

완벽한 외경과 인테리어, IOT의 편안함과는 달리 집 전체에 싸한 분위기만 맴돌게 만듭니다.

 

하지만 집의 분위기는 정진이 출근함과 동시에 180도 바뀝니다.

아기를 안은 승우가 2층에서 내려오면 서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뜨거운 열정에 휩싸인 모습이랄까요?

그렇지만 위태위태한 세 사람의 동거는 예정된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미권 심리스릴러가 생각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

저 역시 그런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작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기막힌 후반부를 내놓습니다.

물론 이 대목에 대해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꽤 갈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낯설 수도, 억지 같아 보일 수도, , 앞서 읽은 이야기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반면

영화감독 김성호의 추천의 말대로 복합장르의 신선함에 매력을 느낄 수도,

스티븐 킹의 공포물이 전해주는 막판의 짜릿함 때문에 환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소실점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덕분에 김희재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대됐고,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점을 작품 곳곳에서 여러 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에 대한 호감을 상기시키며 호평을 써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호불호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도 택하기 어렵게 만든 클라이맥스와 엔딩 때문에

고민 끝에 꽤 야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별 3.5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김희재의 신작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고 주목할 것은 분명합니다.

이 작품으로 김희재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소실점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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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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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거리의 여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곤 진하게 화장(化粧)을 시킨 기행 때문에

인형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연쇄살인마를 사살한 해리 보슈.

하지만 지원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방비 상태의 용의자를 사살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슈는 LA의 시궁창이라 불리는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형사의 미망인이 제기한 민사소송의 피고인이 된 보슈는

잘 해야 과잉진압, 잘못하면 엉뚱한 시민을 살해한 혐의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합니다.

문제는, ‘인형사와 동일한 수법에 의해 살해된 시신이 재판 도중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 4년 전 보슈가 사살한 건 연쇄살인마 인형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 ● ●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보슈의 추락 전 과거추락중인 현재가 동시에 등장하는데다,

치열한 법정 대결, 모방살인범 찾기, 보슈의 애틋한 로맨스까지

세 가지 서사가 함께 전개되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제목인 콘크리트 블론드인형사와 동일한 수법에 의해 살해된 뒤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발견된 새로운 희생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금발과 큰 가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시신이 콘크리트 아래 매장됐다는 뜻인데,

자신이 사살한 인형사가 되살아났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한 보슈는

100% ‘인형사의 수법을 잘 아는 모방범의 범행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이 사건은 “‘인형사는 원고 측 주장대로 무고한 시민이었으며

진범은 아직도 LA를 무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보슈는 법정과 사건현장을 오가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이르는데,

이 와중에 전작 블랙 아이스를 통해 연인이 된 실비아 무어와의 관계마저 위태로워집니다.

살인사건 수사도 그것을 사명으로 아는 형사에겐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보슈는

지독한 워커홀릭에 고독한 코요테를 닮은, 소위 철벽을 친 남자입니다.

그런 보슈의 사랑이 보통 사람들의 그것처럼 순탄하고 열정적으로 흘러갈 수는 없다 보니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에 빠져 몸뿐 아니라 마음과 일상까지 나눈 실비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바칠 수 없는 것이 보슈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보슈의 모방범 이론을 받아들인 LA경찰국은 특수팀을 꾸리는 한편

특정된 용의자들의 행태를 물샐 틈 없이 추적하지만 좀처럼 단서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주포(主砲)인 보슈가 법정에 매인 상태라 더더욱 난감한 상황만 이어질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슈는 경찰 조직의 부패와 무능에 대해 지독한 독설을 날립니다.

 

정치성 박테리아에 감염된 조직의 상부에는 관리자들이 넘치는 반면,

하부는 인원이 모자라고 허약하여, 거리로 나간 말단 경찰들은

자신들이 봉사하는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자동차에서 내릴 겨를도 없었다.”

 

재미있는 건, 늘 보슈를 잡아먹을 기회만 엿보던 부국장 어빈 S. 어빙이

이 작품에서는 꽤 보슈를 챙겨주고 지원한다는 점인데,

그는 과거 인형사 사건을 핑계로 보슈를 할리우드 경찰서로 내친 주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슈가 소송에서 지거나 모방범의 범행이란 점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

자신이 입게 될 치명적인 상처 때문에 어빙은 전에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전작인 블랙 아이스에서 보슈에게 잡힌 결정적인 약점 탓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 밝혀지는 (보슈와 관련된) 그의 과거역시 태도 변화의 한 원인이기도합니다.

 

이 작품에서 보슈 못잖게 매력적인 캐릭터는 원고 측 변호인 허니 챈들러입니다.

지독한데다 능력과 욕망까지 갖춰서 머니 챈들러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녀는

보슈로 하여금 증오와 존경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인데,

거리의 여자들을 사냥했던 인형사를 어떤 이유에서든 기어이 사살한 보슈의 행동을

매춘부였던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결부시킬 정도로 잔인하고 지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 냉정한 논리를 갖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독자로 하여금 이후에도 보슈와 악연을 이어가길 바라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는데,

그녀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 자체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스토리와 관련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 진범의 정체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보슈는 예상외의 진범을 지목하고 체포하는데 성공하지만,

왠지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독자에 따라 끝내준다!”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스토리 외적으로는 번역의 아쉬움을 언급하고 싶은데,

시리즈 초반 세 작품의 번역가가 전부 다른 탓에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들,

, 직책과 부서명, 또는 인물들간의 관계나 대화체가 제각각인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이 세 분의 번역가가 이후에도 번갈아 시리즈를 맡은 것으로 아는데,

1년에 한두 편 정도 띄엄띄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연이어 다시 읽기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위화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의 교통정리를 위해 편집자가 있는 걸로 아는데

제가 읽은 구판만 그런 건지 새 표지의 개정판도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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