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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동영상 ㅣ 스토리콜렉터 90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FBI 소속의 민간인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는 사상 최악의 동영상을 마주하고 있다.
땅속에 묻힌 채 비명을 지르며 관 뚜껑을 두드리는 한 여자가 등장하고,
분할된 화면에는 하반신만 드러낸 채 관 위로 흙을 퍼붓는 남자가 보인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동영상 제목이다. ‘실험 1호.’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예감한 조이는 이 충격적인 동영상 뒤에 숨은 괴물을 잡기 위해
파트너이자 FBI 요원인 테이텀 그레이와 함께 수사에 나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조금 올드해 보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제목과 표지, 거기다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까지,
아마도 출판사가 북로드가 아니었다면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스릴러 독자들을 사로잡은 신진들의 첫 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읽어야 되겠다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올해(2020년) 2월에 출간된 이 작품의 전작 ‘살인자의 사랑법’을 읽고 쓴 서평의 일부입니다.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와 FBI 행동분석팀 요원 테이텀 그레이를 앞세워
일반적인 수사물과는 사뭇 결이 다른, 범죄 심리에 좀더 주안점을 둔 이야기를 펼쳤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이 상대하는 소시오패스 역시 심리적으로 심히 뒤틀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범행 자체도 엽기의 극치를 달리는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중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조이와 테이텀 콤비의 두 번째 활약을 다룬 ‘살인자의 동영상’ 역시 일관된 경향을 보이는데,
이번에는 텍사스 일대에서 ‘젊은 여자를 생매장하는 소시오패스’가 그들의 상대로 등장합니다.
범인은 치밀한 계획 하에 희생자의 집 앞에서 대담한 납치극을 벌인 뒤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관을 묻으며 희생자의 끔찍한 비명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괴물입니다.
그리곤 자신의 ‘성과’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명성’을 획득하기를 염원하기도 합니다.
조이와 테이텀은 메인 사건인 ‘생매장 사건’ 외에도 각자 끔찍한 ‘족쇄’에 발이 묶인 상태인데
조이의 경우 동생 안드레아를 위협하고 있는 연쇄 살인마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고,
테이텀은 아동 성범죄자를 사살한 일로 새삼 FBI의 내사를 받게 된 일이 그것입니다.
두 사람의 상관인 맨쿠소 팀장은 이들을 각자의 ‘족쇄’에서 좀 떨어져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멀리 떨어진 텍사스에서 벌어진 ‘생매장 사건’에 투입한 것인데,
특히 자신 때문에 연쇄 살인마의 표적이 된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는 조이는
텍사스에 온 뒤로도 수시로 버지니아에 홀로 남은 동생 걱정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문제는,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테이텀과 크게 충돌하는 바람에
조이는 더더욱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수사에 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생매장은 이어지고 범행 장소는 오리무중이며 범행 동기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태에서
조이는 그야말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고 맙니다.
전작인 ‘살인자의 사랑법’의 범인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감금으로 인해 괴물이 됐는데,
이 작품의 소시오패스 역시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감금의 공포’를 희생자에게 되갚음으로써 쾌감을 얻는 그는
복수, 성욕, 탐욕 등 일반적인 연쇄살인마의 범행 동기와 달리
일그러지고 뒤틀린 심리 그 자체를 범행 동기로 갖고 있다는 얘긴데,
바로 이 대목이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다른 스릴러 주인공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며
동시에 증거와 단서보단 범인의 심리를 토대로 진실을 쫓는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파트너인 테이텀이 경찰과의 협업을 통해 증거와 단서에 좀더 주력한다면,
조이는 범인의 언행이나 그가 이메일에 사용한 단어 등이 상징하는 ‘심리’에 더 집중하는데,
이런 프로파일링은 수사과정 중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범행 동기와 희생자 선정 기준 등 범인의 윤곽이 밝혀질 즈음에는
그녀의 프로파일링이 지닌 섬세함과 정확성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나곤 합니다.
사건도 특이하고 조이와 테이텀 콤비의 갈등-협력 과정도 무척 흥미롭긴 했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 느슨하고 평평해 보인 이야기 전개 탓에 별 0.5개가 빠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현실적인 소시오패스 캐릭터’ 때문으로 보이는데,
피도 눈물도 없고 감정이라곤 메말라버린 무차별 살인마가 아니라
겁도 많고 소심한데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듯한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 탓에
범행은 갈수록 잔혹해지지만 팽팽한 긴장감은 다소 위축된 느낌이란 뜻입니다.
물론 거꾸로 그런 ‘현실감’ 때문에 훨씬 더 서늘하고 소름 끼쳤던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막판에 다음 이야기를 위한 거대한 떡밥이 투척된 탓에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했는데,
검색해보니 이미 ‘Thicker than Blood’(2020)가 출간됐고,
요약된 줄거리에 따르면 “피해자의 피를 마시는 살인자가 등장한다.”라고 돼있습니다.
조이와 테이텀이 상대했던 소시오패스들보다 좀더 잔혹하게 진화한 범인으로 보이는데,
조급증이 분명하긴 하지만 하루빨리 후속작 소식이 들려오기만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