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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세라 슈밋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1892년 8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리버의 한 저택에서 앤드루 보든과 애비 보든 부부가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범행 자체의 잔혹성에 더해 부부의 둘째 딸인 리지 보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이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리지는 “여성이 이렇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범인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는 그로부터 백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무성한 소문과 추측을 낳은 이 미제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잔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현실에서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요즘 사람들은 사실 어지간히 엽기적인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거의 불감증에 가까운 무덤덤한 반응밖에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129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딸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은 헤드라인 자체만 놓고 보면 요즘 사람들, 그것도 미스터리와 스릴러 마니아에게 크게 어필할 만한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논픽션은 물론 영화, 드라마, 뮤지컬로도 제작된 적 있고, ‘87분서 시리즈’를 집필한 경찰소설의 대가 에드 맥베인도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리지’를 출간한 적 있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곤 이 사건엔 뭔가 특별한 게 있구나, 라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팩트는 살해된 부부의 몸에 남은 ‘여든한 번의 도끼질 자국’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사건이 주목을 받는 건 어쩌면 “딸이 범인?”이란 의혹보다 끔찍한 범행의 흔적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이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셈이지만 말입니다.
세라 슈밋은 네 명의 1인칭 화자를 등장시킵니다. 용의자로 지목받은 리지, 그녀의 언니 에마, 아일랜드 출신 가정부 브리짓, 그리고 리지와 에마의 외삼촌이 고용한 해결사 벤저민(유일한 가공의 인물)이 그들입니다. 재미있는 건 어려서부터 소시오패스 기질을 타고난 듯한 리지 외에 나머지 인물들도 보든 부부에 대한 살의를 리지 못잖게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흔이 되도록 혼자 몸인 에마는 평생 동생 리지에 비해 차별받고 무시당해온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돈을 벌기 위해 다정한 가족들을 떠나 미국까지 온 가정부 브리짓은 부부로부터 부당하고 억압적인 처우에 시달려왔으며, 가정폭력을 휘두르다 끝내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해온 해결사 벤자민은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인 자매의 아버지를 ‘손 봐주라’는 의뢰를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건보다 그 가족에 대해, 그런 집에서 사는 일은 어땠을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 왜 사람이 잔혹한 폭력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p414, ‘작가 노트’ 중)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 작품의 중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가정부 브리짓의 “이 빌어먹을 가족은 모두 미쳤다.”라는 일성은 보든 가문 사람들의 한껏 일그러지고 비틀린 인격을 한마디로 잘 대변하고 있는데, 작가는 그 인격들이 어떻게 싹을 틔웠고, 어떻게 무자비하게 자라났는지를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또 그 인격들의 민낯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서 풍기는 온갖 악취, 등장인물들의 기분 나쁜 구취와 체취,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쏟아내는 오줌과 토사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더욱 고약하게 만드는 8월의 폭염 등 꽤 불편하고 불쾌한 장치들을 동원합니다.
여러 매체의 평가에 “범죄 현장에 스민 여름의 열기처럼 불안감을 자극”, “밀실공포증을 일으키는 악몽 같은 이야기”, “긴장감 넘치는 심리학적 탐구”라는 문구가 담긴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심리스릴러의 요소들이 다소 모호하거나 몽환적으로 그려진 대목들이 많아서 쉽고 편한 책읽기가 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용의자로 몰렸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리지에게 주목했던 독자들은 ‘옮긴이의 말’대로 “리지의 심술과 변덕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듯한 찝찝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부모는 물론 언니 에마와도 극심한 갈등을 벌이는 리지의 행보는 소시오패스와 정신분열이 뒤섞인 듯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보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그런 이유로 별 한 개를 뺐는데,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사족이지만, 리지의 무죄판결문에는 “여자가 그런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을 리 없다.”, “자신보다 거구인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살해하기 어렵다.”란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1892년이란 점을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지만, 드물긴 해도 요즘에도 비슷한 ‘수준’의 판결을 지켜본 것 같은 기시감은 아마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