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3의 선택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3 ㅣ 미치 랩 시리즈 2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CIA 국장 스탠스필드가 시한부 진단을 받자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일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꼭두각시가 될 인물을 후임자로 앉힐 음모를 꾸민다. CIA 대테러센터 본부장 아이린 케네디는 이들의 음모에 맞서면서 대통령의 명령으로 독일에 급파한 미치 랩의 임무를 지휘한다.
중동 테러리스트와 밀거래중인 독일 기업가를 암살하기 위해 침투한 랩은 왠지 모를 위화감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연인 애너와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임무라는 희망에 차있다. 하지만 작전 도중 랩은 아이린 케네디가 투입한 동료 첩보원에게 배신당하고 적진에 홀로 넘겨지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권력의 이동’에 이은 ‘미치 랩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CIA 대테러센터 내 비밀조직인 오리온 팀의 일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CIA 사람’이 아닌 미치 랩은 오로지 스탠스필드 국장과 아이린 케네디 본부장,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한 세 번째 선택, 즉 비밀첩보와 암살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최고의 킬러이기도 합니다.
전작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한 백악관을 구했던 랩은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지를 얻게 됐고, 덕분에 극소수만이 아는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덫에 빠지고 마는데, 이후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랩을 제거하려던 자들의 정체와 목적이 무엇이며 그들이 어떻게 독일에서의 비밀임무에 대해 알게 됐는가를 추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번 임무를 마지막으로 CIA를 떠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랩의 간절한 소망이 산산조각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홀로 고립된 랩의 가장 큰 딜레마는 독일에서의 임무를 아는 자들이 그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뿐이란 점입니다. 대통령, 스탠스필드 국장, 아이린 케네디 본부장이 그들인데, 그들 가운데 자신을 살해하려던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랩을 지독한 혼란에 빠뜨립니다. 특히 이번 임무를 끝으로 CIA를 떠나겠다는 의중을 밝혔던 터라 너무 많은 비밀을 아는 자신이 제거대상으로 선택됐을 수 있다는 추정은 랩에겐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랩의 추적은 눈앞에서 번번이 사라지는 단서와 증인들 때문에 난관에 빠집니다. 특히 애초 범인의 목적이 단순히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모종의 음모라는 걸 서서히 깨달으면서 랩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당혹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범인의 정체와 목적이 독자에게 비교적 초반에 공개되기 때문에 특별한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랩을 제거하고 CIA를 장악한 뒤 더 큰 야망을 이루려는 범인의 정치적 음모가 정교하고 치명적인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누가 범인?” 이상의 팽팽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여기자 애너 릴리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CIA를 떠나려는 랩의 소망이 이런저런 이유로 발목을 잡히는 가운데, 누군가는 랩의 정체를 파헤치려 하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또 누군가는 그의 연인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사방에서 협공을 당하게 된 랩으로서는 평소 그답지 않게 감정적인 동요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런 탓에 “어느 선까지 올라가든 마지막 한 놈까지 모두 처치해버릴 겁니다.”라고 대놓고 선언할 정도로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게 됩니다.
“미드 ‘24’의 속도감과 영화 ‘본 시리즈’의 묵직함이 결합한 파워 액션 서스펜스”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대로 미치 랩의 활약은 좀처럼 눈을 떼기 힘든 긴장감과 속도감을 발산합니다. 그야말로 미치 랩은 ‘24’의 주인공 잭 바우어와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을 황금비율로 합쳐놓은 캐릭터라고 할까요?
‘제3의 선택’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꽤 큰 떡밥을 남겨놓은 채 마무리가 돼서 이어지는 시리즈 3편 ‘권력의 분립’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는데, 과연 평범한 삶을 꿈꾸던 미치 랩이 워싱턴의 가공할 정치적 음모 속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사뭇 궁금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