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파괴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5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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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범 영혼파괴자는 젊은 여자들을 각성 혼수상태, , 뇌는 살아있지만 오감은 제거되고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진 상태로 만듭니다. 구조된 희생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얼마 못가 목숨을 잃고 맙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둔 겨울밤,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정신병원 토이펠스 클리닉에 입원해있던 카스파를 비롯한 환자와 의사들이 영혼파괴자의 습격을 받습니다. 희생자가 등장하고, 의문으로 가득 찬 문구가 적힌 쪽지가 발견됩니다. 밀폐된 건물 안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추적하지만 영혼파괴자는 유유히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며 연이어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폭설과 혹한 속에 외부와 차단된 토이펠스 클리닉에서 벌어지는 영혼파괴자와 병원에 갇힌 자들 간의 하룻밤 동안의 사투를 다룬 작품입니다. 범인은 영혼파괴자라는 별명만큼이나 독특한 범행수법을 이용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르는데, “그들은 강간도 고문도 당하지 않았다.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다. ‘영혼파괴자는 살아있는 몸속에 그들을 가둬버렸다!”라는 홍보 카피대로 희생자들의 정신을 파괴한 후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기이한 행태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르던 영혼파괴자가 왜 정신병원에 나타나 자신의 패턴과는 상이한 방법으로 무차별 살인에 나서는가, 입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토이펠스 클리닉에 입원한 카스파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데, 그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으면서 영혼파괴자의 악행이 자신과 무관치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심지어 함께 갇힌 사람들 중 일부는 카스파가 영혼파괴자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는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영혼파괴자와 정면으로 마주치지만 후반부에 드러난 진실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평생 잊히지 않을 상처를 남겨 놓습니다.

 

수십 년만의 폭설과 혹한, 그리고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공포심을 극대화시키는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분위기도, 서사도 전혀 다르지만 영화 큐브를 보며 느꼈던 전율도 맛볼 수 있습니다. 비주얼에 대한 묘사도 뛰어나서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활자와는 또 다른 공포와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반전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초반에 발견할 수 있겠지만, 설령 눈치 챘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워낙 롤러코스터처럼 업다운이 심해서 책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발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는 부자연스러운 인공미가 작품 전체에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요점만 말하면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리하게 짜맞췄다.”라고 할 수 있는데, 범행동기도, 수법도, 마지막 반전도 모두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결과를 위해 억지로 설명되고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영혼파괴자의 정체와 범행동기가 맥을 빠지게 만들었는데, 좀 거칠게 말하면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요란하게 난리를 쳐야했는가?”라고 할까요?

사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취향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입니다. 차단된 공간, 기이한 범행수법, 꿈과 기억이 혼재된 몽환적인 서사 등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만한 자극적인 설정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이라 별 세 개에 그쳤지만, 다섯 개를 준 독자의 서평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 작품은 다른 사람이 쓴 서평만으로는 이야기의 몸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내용들이 워낙 많은데다, 직접 읽지 않고는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장치들 역시 많이 포함돼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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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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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 대가 중 한 명이지만 한국에 소개된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은 여섯 편에 불과합니다. 데뷔작인 문신살인사건’(1948)이 패전 직후의 혼란을 배경으로 고전 트릭과 함께 주술적인 문신의 세계를 다뤘다면, ‘대낮의 사각’(1960)은 천재적인 경제 사기범을 그린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였고, 그 외에 파계재판’(1961), ‘유괴’(1961), ‘법정의 마녀’(1965)로 이어지는 이른바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 시리즈는 법정물에 본격 미스터리가 가미된 작품들입니다.

유일하게 못 읽은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1955)문신살인사건에 이은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 시리즈인데, 제목이나 주인공 캐릭터로 보아 본격 미스터리 계열로 추정됩니다.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작가라 마니아 외에는 그다지 어필하기 어렵지만 방대한 그의 작품 수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유괴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 시리즈중 한 작품이지만 정작 주인공 햐쿠타니가 등장하는 분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카메오처럼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후반부 막판에야 제대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비중과 분량을 차지하는 건 진범인 의 범행 과정과 그를 쫓는 경찰들의 고된 수사기록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와 경찰소설의 향기는 물론 논픽션 혹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색깔까지 깃들어있는데, 그런 면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믹스된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범인 는 희대의 아동 유괴살인사건 재판을 지켜보면서 자신만의 유괴범행 계획을 면밀히 수립합니다. 범행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퇴로는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를 재판을 통해 꼼꼼하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운까지 따라준 덕분에 의 범죄는 완벽하게 실행되고 경찰은 엉뚱한 곳만 조사하며 허송세월을 보낼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면서 변호사 햐쿠타니가 개입하게 됩니다. 놀라울 정도의 직감과 추진력을 지닌 그의 아내 아키코는 전대미문의 범인추격전을 제안하는데, 과연 베일에 싸인 범인이 그 추격전의 그물망에 걸려들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요즘 독자의 눈높이로 보면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조금은 답답할 정도의 느린 전개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진범인 의 범행계획은 꼼꼼하긴 해도 다소 어수룩해 보였고, 경찰의 탐문과 범인 추격은 일지를 기록한 듯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유괴된 아동의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추하고 탐욕스런 이전투구 역시 관찰 기록처럼 자세히 묘사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디테일이야말로 고전의 맛과 매력중 한 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막판에 등장한 주인공 햐쿠타니와 그의 아내 여전사아키코가 이끌어내는 급격하고 놀라운 반전의 효과는 분명 거북이걸음마냥 차곡차곡 쌓여온 미스터리 서사 덕분인데, 성격 급한 독자라 하더라도 초중반의 지루함과 느슨함을 잘 견뎌낸다면 고전 미스터리의 흥미로운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검색해보니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 시리즈는 모두 여덟 편이 출간된 걸로 나옵니다. 한국에는 단 세 편만 출간됐는데 2017법정의 마녀’(엘릭시르) 이후 4년이나 소식이 없는 걸 보면 큰 기대를 하긴 어렵지만 (검은숲의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2015년에 개정판 형태로 출간된 문신 살인사건이후 통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한두 편 정도는 더 소개되지 않을까, 가망은 별로 없지만 나름 간절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현대 미스터리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고전이 때때로 그리워지는 건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누구나 갖는 로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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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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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능한 회사원이지만 과거 완전범죄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아쿠쓰 기요하루. 그리고, 공범의 유서 때문에 살인용의자로 조사받았지만 결국 혐의를 벗은 뒤 유능한 경찰로 활약 중인 노리모토 아쓰코.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유즈키 레이미라는 여성으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의 진상과 실종된 언니의 행방을 알아내라.”라는 협박에 가까운 지시를 받습니다. 경찰도 찾아내지 못했던 과거 자신들의 살인에 관한 증거를 들이민 레이미의 협박에 두 사람은 도리 없이 파트너가 되어 수사에 나섭니다. 난관 끝에 진실 가까이에 다가가지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자신들처럼 살인을 저지르고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작품에는 크게 세 그룹의 머더스’, 즉 살인자들이 등장합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추적해온 부녀자 납치범을 직접 단죄하는 전직 경찰,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망가뜨린 괴물을 완전범죄를 통해 살해한 두 주인공, 자신을 괴롭히는 을 스스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해하곤 법의 심판을 피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야말로 주인공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온통 살인자 캐릭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표현만 좀 다를 뿐 이들은 같은 종()처럼 보입니다. 출판사 소개대로 자신만의 정의에 함몰되어 각자의 집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 그룹의 정의는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누군가의 정의는 개인적인 신념이나 복수심에 근거하지만, 누군가의 정의는 집단적인 광기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 채 충돌하는데, 이런 설정 덕분에 머더스는 겉으론 살인자들간의 혈투를 그린 액션 스릴러로 보이지만, 실은 정의에 관한 살인자들간의 논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적 복수를 다룬 장르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머더스는 이야기의 뼈대와 캐릭터가 워낙 특이하게 설계된데다 폭력적인 액션 장면까지 가미돼서 지금껏 읽은 여느 사적 복수 장르물들과 전혀 다른 인상을 줍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언니의 실종의 진실을 밝히고 사적인 복수를 가하려는 레이미가 무능한 경찰 대신 완전범죄로 사적 복수를 이룬 두 명의 능력자를 고용한다는 설정이나, 그 능력자들이 밝혀낸 진실 뒤에 또 다른 사적 복수 살인자들이 숨어있다는 설정은 다소 인공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름 참신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 인물들 모두 을 사적으로 처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정의와 신념 때문에 불가피하게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다보니 그 누구도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 작품만의 독특한 미덕이기도 합니다. “이 살인자와 저 살인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누구를 선으로, 누구를 악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흥미로운 딜레마는 마지막 장까지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주인공 기요하루와 아쓰코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너무 쉽게 포착하는 점이나 그들이 상대하게 되는 살인자들의 광기와 신념이 지나치게 인공적인 나머지 현실감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 자신만의 정의에 충실한 세 그룹의 살인자들 사이의 차별화가 조금은 모호해 보인다는 점은 읽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은 게 사실입니다. 사소한 문제지만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한 기요하루가 이른바 스파이 수준의 재능과 액션 히어로에 버금가는 폭력을 구사하는 장면도 통쾌하긴 해도 위화감이 더 강하게 든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나가우라 교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니 특수기관에서 스파이 훈련을 받은 주인공이 활약하는 리볼버 릴리’, 중국 반환 직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다룬 언더독스등 첩보와 액션이 버무려진 스릴러 작품이 대부분인데, 권총 한 자루 등장하기 어려운 아시아라는 무대를 감안하면 꽤 특이한 장르를 파고드는 작가로 보입니다. 일본에서 대체로 좋은 성적과 평가를 받았다는 출판사 소개대로라면 앞으로 그의 작품을 주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이 작품의 주인공인 완전범죄 능력자 커플기요하루와 아쓰코 콤비의 활약을 그린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개인적으론 꼭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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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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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한 관람차에서 기괴한 인질극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말단 야쿠자 다이지로. 동행한 30대 여성 니나를 인질로 잡은 그는 관람차를 정지시킨 뒤 그녀의 아버지에게 6억 엔이라는 거금을 요구합니다. 탈출이 불가능한 관람차 주변을 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다이지로의 인질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한편 다이지로의 앞뒤 칸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인물들이 타있습니다. 4차원 전업주부 아사코와 가족들,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던 70대 노인 긴지, 그리고 이별해결사라는 묘한 직업을 가진 미스즈 등이 그들인데, 왠지 평범한 관광객도 아닌 것 같고 눈앞에 닥친 인질극에 대해서도 수상한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뭘까요?

 

한국에는 단 네 편의 작품밖에 소개되지 않은 기노시타 한타는 개인적으로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에 비해 너무 저평가된, 또 너무 덜 알려진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앞서 읽은 악몽의 엘리베이터삼분의 일’, 그리고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엔터테인먼트 스릴러의 미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데,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감과 롤러코스터 같은 좌충우돌 전개에 코믹과 액션과 감동과 반전까지 골고루 지닌 수작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악몽의 관람차는 치밀하고도 격정적인 복수 코드까지 가미된 덕분에 앞서 읽은 두 작품과는 사뭇 다른 여운과 인상을 남기기도 했는데, “도대체 이렇게 판을 벌려놓고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지?”라는 의문을 수시로 갖게 만드는 기노시타 한타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캐릭터가 복수라는 진지한 코드와 만나면서 재미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납치 인질극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 관람차에 갇힌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 그리고 인질극의 마무리 등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있습니다. 특히 과거사를 다룬 중반쯤에 이르러 범인 다이지로와 인질 니나는 물론 앞뒤 칸에 탄 인물들이 결코 우연히 한날한시에 이 기괴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독자는 작가의 교묘하고도 빈틈없는 설계에 여러 번 감탄하게 됩니다. 또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왜 굳이 관람차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가가 폭로되는 순간 독자는 그저 재미있게만 읽혔던 앞의 내용들을 새삼 다른 감정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야말로 재미와 감동과 안타까움이 절묘하게 뒤섞인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악몽 시리즈는 한국에 출간된 두 작품 외에도 惡夢のクロ-ゼット’(악몽의 벽장), ‘惡夢商店街’(악몽의 상점가), ‘惡夢のギャンブルマンション’(악몽의 도박 맨션), ‘惡夢のドライブ’(악몽의 드라이브) 등이 일본에서 출간됐습니다. 가장 최근에(2014) 한국에 소개된 삼분의 일이 포함된 분수 시리즈역시 삼분의 이’, ‘오분의 일’, ‘칠분의 일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어느 곳에서든 그의 매력적인 작품들을 출간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노시타 한타의 독특함과 기발함이라면 충분히 한국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한국 소개작 중 아직 못 읽은 그의 작품은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만이 남았는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서 중고서점을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읽었던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빠른 템포와 숨이 찰 정도의 재미난 스릴러를 찾는 독자라면 이번 여름에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들과 만나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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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마이클 코리타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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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소년 제이스는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한 일로 중요한 증인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잔혹한 킬러인 블랙웰 형제의 타깃이 됩니다. 제이스를 보호하던 민간 경비요원 제이미는 뛰어난 생존기술 교관 이선 서빈에게 제이스를 숨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거친 산악지대에서 생존 캠프를 운영하는 이선은 아내 앨리슨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제이스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블랙웰 형제는 기어이 제이스의 행방을 알아냈고, 깊은 산속에서 훈련 중이던 이선과 제이스는 그들이 코앞까지 추격해왔음을 알게 됩니다. 험준한 산악, 뇌우와 폭풍, 그리고 거대한 화마까지 덮쳐온 가운데 제이스를 죽이려는 자들과 구출하려는 자들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옮긴이의 말의 첫 줄은 코맥 매카시가 클리프행어를 소설로 쓴다면?”입니다. 비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유일하게 읽은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지만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비유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작품에 등장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부업자 안톤 시거를 연상시키는 살인마 블랙웰 형제가 주인공들 못잖게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기대될 정도로 소름 돋는 캐릭터였습니다.

또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산악 액션스릴러 영화 클리프행어의 살벌한 긴장감 역시 이 작품에서 제대로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거기에다 화재에 관한 영화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분노의 역류의 매력 역시 이 작품 속에서 울창한 거봉들을 집어삼킨 거대한 화마를 통해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마이클 코리타의 밤을 탐하다오늘 밤 안녕을이 할리우드에 딱 어울리는 엔터테인먼트 액션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제겐 호러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초자연 스릴러 작품들인 숨은 강죽음을 보는 눈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긴 탓에 오랜만에 만난 그의 산악+액션+화재+킬러 스릴러는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 쪽이 그의 전공인지 애매해지는 대목이지만 좋게 해석하면 스펙트럼이 무척 넓은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합니다. 살인을 목격한 14살 소년 제이스를 놓고 그를 죽이려는 무자비한 킬러 형제들과 그를 살리려는 여러 사람들의 긴박한 추격전이 대자연의 재앙을 배경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생존기술 캠프를 운영하는 이선 서빈, 그의 아내이자 산악지대 토박이인 앨리슨, 최정예 소방대원이었지만 동료를 잃은 뒤 화재 감시탑 요원이 된 해나 페이버가 제이스를 살리기 위한 고된 여정에 동참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 작품의 제목은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아니라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자들이 더 맞는지도 모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20215월 개봉) 속 주인공은 제이스를 찾기 위해 악전고투를 펼치는 생존기술 교관 이선 서빈이 아니라 화재 감시탑 요원이 된 해나 페이버(안젤리나 졸리)란 점입니다. 아무래도 제이스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다 보니 각색 과정에서 소설과는 다른 주인공이 탄생한 것 같은데, 그 때문에라도 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액션 스릴러의 모든 것을 담고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인데, 평점에서 별 1개를 뺀 이유는 막판 반전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언급은 못하지만) 이름까지 바꾸고 험악한 산악 캠프에 몸을 숨긴 제이스를 킬러 형제가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는지 계속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지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반전이지만 개인적으론 쉽게 죽일 수 있었는데 왜 굳이 이런 골치 아픈 판을 벌인 건가?”라는 의문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 읽은 탓인지 작가의 설명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다소 억지스런 반전이었는지는 다 읽고도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막판 반전의 모호함과 아쉬움만 제외한다면 적잖은 분량임에도 한 호흡에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거의 6년 만에 마이클 코리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는데, 아직 출간 안 된 그의 작품이 좀더 한국에 많이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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