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담 - 운명적인 만남을 원한다면 목숨을 걸어라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장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모’, ‘절대정의’, ‘작열’, ‘유리의 살의등 그동안 읽은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품들이 반전의 맛이 잘 살아있는 미스터리였고 이 작품의 번역제목도 결혼기담이라 당연히 결혼에 얽힌 미스터리나 기담이 수록됐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기대가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런 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첫 수록작 이상적인 남자뿐이었고, 나머지는 결혼에 관한 일그러지고 비틀린 독설 같은 우화들입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거짓, 사기, 도촬,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살인을 제외하곤 (범죄성이 다분하긴 해도) 모두 재치 있는 반전으로 마감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婚活中毒’(혼활중독)입니다. ‘혼활은 결혼활동을 뜻하는데, 말하자면 결혼을 결심한 사람이 상대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거기에 중독이란 단어를 붙인 건 네 편의 수록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본인 혹은 자식의 결혼을 위해 결혼상담소, 야외 단체미팅, TV 맞선프로그램 등에 참가하여 굉장히 적극적으로 짝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각각 거짓, 사기, 도촬, 살인이라는 상황에 말려들거나 혹은 직접 그 행위들을 저지릅니다.

 

마흔을 코앞에 둔 여자가 결혼상담소에서 소개받은 이상적인 남자에게 반하지만 그 남자와 만났던 여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곤 당황하는 이야기(이상적인 남자), 친구의 고독사를 지켜본 남성이 결혼을 결심한 뒤 단체미팅에 나섰다가 대단한 미녀와 짝이 된 뒤 겪게 되는 당혹스런 상황들(결혼 활동 매뉴얼), 자신이 점찍은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TV 맞선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고군분투하는 공대 출신 로봇엔지니어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이과 여자의 결혼 활동), 그리고 미혼 자식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모끼리 먼저 벌이는 단체미팅에서 예비 안사돈에게 한눈에 반한 60대 남자의 애잔하지만 위험천만한 로맨스(대리 결혼 활동) 등 모두 네 편이 수록돼있습니다.

 

결혼할 뜻 자체가 없는 20~30대가 늘어가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결혼에 거의 목매다시피 하는 작품 속 주인공들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오래 전 작품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이 작품이 출간된 게 2017년이니 어쩌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결혼에 관한 관점 자체가 많이 다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전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키요시 리카코의 결혼기담은 가벼운 블랙코미디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과의례에 대한 조언 혹은 경고장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반나절이면 충분한 분량에 재미는 기본으로 갖춘 작품이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만나보실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정말 사소한 문제지만, 세 개 정도밖에 안 되는 간단한 주석(갸루, 단카이 세대, 고타츠)을 책 맨 뒷장에 실은 건 좀 무성의한 편집으로 보였습니다. 단어 옆에 괄호로 묶어 표시하거나 페이지 하단에 각주로 실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을 택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풍의 시간 스토리콜렉터 9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을 삼킨 소녀’, ‘끝나지 않는 여름에 이은 셰리든 그랜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독일의 명품 스릴러 타우누스 시리즈의 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가 10대 소녀의 성장통을, 그것도 미국을 배경으로 그렸다는 것 자체가 무척 특이한 일인데, 앞선 두 작품 모두 (출판사가 명명한) ‘미스터리 로맨스이상의 재미와 긴장감,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 덕분에 셰리든 그랜트의 마지막 여정이 너무 궁금하고 기대됐던 게 사실입니다.

 

1990년대 중반, 주민 1,500명에 불과한 네브라스카 주 소도시 페어필드에서 무자비하고 잔혹한 10대 시절을 보낸 셰리든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지만 그 여정은 시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이후 그녀의 삶은 21살이 되기까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시련으로 채워지고 맙니다. (여기까지가 앞선 두 편의 대략의 내용입니다.)

성실한 외과의사 폴을 만나 가까스로 안식처를 찾은 듯 보였지만 셰리든의 심장은 그 안식처가 절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리고 실은 자신이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결국 돌아온 탕아같은 모습으로 5년 만에 페어필드로 돌아온 셰리든은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지만 이내 다시 불안과 혼란에 빠져듭니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진정한 사랑을 나눌 남자가 나타났고, 그녀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아본 거대 음반회사의 러브콜이 도착합니다. 하지만 셰리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들은 언제든 그녀의 기적을 박살 낼 태세로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내 심장은 나에게 실수를 반복하게 했다.”


뒷표지에 실린 이 카피는 셰리든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한마디로 잘 압축해놓은 문장입니다. 10대 시절부터 누구보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의지를 지녔지만 그녀의 삶은 늘 타인에 의해 뒤흔들렸고,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한 채 끊임없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만신창이로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출생의 비밀이 안긴 엄청난 충격,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된 의붓오빠의 광란의 살인, 결코 잊지 못할 강간의 악몽은 셰리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물론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들이었고, 21살이 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름을 삼킨 소녀가 세 번의 여름에 걸친 10대 소녀 셰리든의 고통스런 성장기였다면, ‘끝나지 않는 여름은 그녀가 고향을 떠난 뒤에 겪은 악몽 같은 나날들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폭풍의 시간은 롤러코스터처럼 번갈아 벌어지는 극과 극의 사건들을 이겨낸 셰리든이 가까스로 사랑과 안식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단순히 10대 소녀의 성장통 혹은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말랑말랑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잔혹한 서사들이 등장합니다. 살인, 폭력, 매춘, 강간, 연쇄살인범 등 끔찍하고 가혹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어지간한 범죄스릴러를 능가하는 긴장감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넬레 노이하우스 특유의 미스터리와 범죄스릴러 코드가 제대로 녹아있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폭풍의 시간은 앞선 두 작품에 등장했던 사건들과 셰리든의 10대 시절을 부족하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지만, 그 작품들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조금은 감정이입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앞선 두 작품에서 축적된 셰리든의 실수와 실패들이 폭풍의 시간속의 그녀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여름을 삼킨 소녀끝나지 않는 여름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쿄 외곽의 아이이데 시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동의 시신이 발견된다. 전날 집 근처 마트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춘 피해 아동은 목 졸려 살해당한 후 시신 훼손의 흔적까지 가해져 있었다. 뉴스를 본 주부 호나미는 소중한 외동딸도 범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한편, 경찰은 전력으로 수사를 펼쳐나가지만 범인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취한 행동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인데 제목이 성모(聖母)’입니다. 범인은 초반에 공개되지만, 사건의 큰 그림은 정교한 트릭과 반전을 거쳐 막판에 공개됩니다. 피해자가 어린 아동이란 점은 지독한 미스터리 마니아에게도 굉장히 불편한 설정인데,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안도감과 공감이 몰려드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성모는 제목, 사건, 트릭, 여운 등 모든 면에서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20페이지에 모든 것이 뒤집힌다.”는 일본 원서의 홍보 문구대로 막판에 불꽃놀이처럼 연이어 터지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독자에게 범인을 공개한 작가 입장에서 이만한 반전과 트릭을 구축하려면 분명 꽤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서평을 쓰기 위해 폰으로 찍어놓았던 인상적이거나 위화감이 들던 페이지들을 살펴보니 실제로 한 줄의 문장, 한 개의 단어, 한 개의 문장부호에까지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게 트릭을 설정하고 감쪽같이 덫을 숨겨놓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번역하신 이연승 님 말씀대로) “두 번은 읽어야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20페이지에 모든 것이 뒤집힌다.”는 홍보 문구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어 예전에 써놓았던 서평들을 뒤져보니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띠지 카피인 마지막 5페이지에서 세계가 반전한다!”와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아키요시 리카코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우타노 쇼고라고 하니 이 판박이 같은 홍보문구가 그냥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키요시 리카코는 암흑소녀란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됐다고(2015) 하는데, 검색해보니 명문 사립고 여학생들의 아슬아슬한 암투와 충격적 결말을 다뤘다고 합니다. 라노벨로 분류돼서 그런지 제목도 생소하고, 혹 소문을 들었다 해도 선정성에 기댄 듯한 표지 때문에 절대 읽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성모를 읽은 이상 큰 맘 먹고 한번 찾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 써놓고 훑어보니 정작 캐릭터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을 안 한, 무척 불친절하고 부실한 서평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인물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가능하면 작품의 미덕을 인상 비평하듯 나열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출판사 스스로 리뷰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사전 경고를 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끈적한 광기와 욕망이 뒤섞인 ‘7년의 밤’, 악의 민낯을 확실히 보여준 ‘28’. 이 두 작품에 빠져 정유정의 팬이 됐지만 이른바 악의 3부작의 대미를 장식했던 종의 기원은 전작보다 을 심오하게 다뤄야 한다는 작가의 중압감이 역력했던 탓에 실망감이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뒤에 나온 진이, 지니다정한 정유정이라는 카피 때문에 외면했는데, ‘완전한 행복은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겼고, 다시 정유정!”이란 카피가 붙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유정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이라면 분명 타인의 고통과 상처와 죽음을 자양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야기의 몸체는 ‘7년의 밤이나 ‘28’에 못잖은 서늘한 공포로 가득 차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 딸 지유를 둔 신유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은 물론 그에 저항하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은 사이코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입니다. 타고난 그녀의 악마성에 기름을 부은 건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할머니의 시골집과 인근의 반달늪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딸 지유를 낳았지만 그녀의 지독한 자기애는 전혀 무뎌지지 않았고 오히려 완전한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태연히 타인의 고통과 상처와 죽음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는 지론대로 그녀 앞의 불행의 가능성들은 하나하나 뺄셈에 의해 소멸되고 맙니다.

 

예상했던대로 첫 페이지부터 온몸을 짓누르는 불편함과 불쾌감이 찾아들었습니다. 중반쯤 지날 쯤엔 몸은 중노동의 뒤끝처럼 천근만근이었고 머릿속은 급성 스트레스의 공격에 넉 다운되고 말았습니다. ‘7년의 밤이 그랬고 ‘28’은 훨씬 더 가혹했지만 완전한 행복역시 만만치 않은 정유정다움을 발산하는 작품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 뺄셈에 뺄셈을 거듭하는 신유나의 행보는 평범한 긴장감이나 공포심과는 레벨이 달랐고, 오래 전에 본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미저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숨을 턱턱 조이는 마성까지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건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화자를 맡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신유나 본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챕터는 없다는 점입니다. 신유나의 심리나 감정이 모두 타인의 입, 표정, 행동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안 그래도 읽던 도중에 좀 의아하다 여겼는데, 정유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스스로도 화자 가운데 주인공이 없는 서사에 대한 첫 도전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보다는 어떻게?”를 더 디테일하게 그림으로써 뺄셈의 공포를 더욱 강렬하게 묘사했다고 할까요?

 

캐릭터만큼 눈길을 끈 건 공간입니다. 공간은 장르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인데, 특히 정유정의 작품은 공간 자체가 배후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7년의 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이 댐으로 둘러싸인 불길하고 음산한 호수 세령호였고, ‘28’의 주 무대가 정체불명의 빨간 눈 괴질때문에 봉쇄된 뒤 피범벅의 아수라장이 돼버린 화양시였다면, ‘완전한 행복은 폐가나 다름없는 시골집과 그 일대의 습지, 그리고 그 습지 끝에 있는 반달늪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 장소들은 사이코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인 신유나의 캐릭터와 일심동체처럼 느껴지는 악의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 가차 없이 뺄셈을 휘두르는 신유나에게 시골집과 반달늪은 말하자면 사악한 에너지를 무한충전 받는 성소 같은 곳이라고 할까요? 사족이지만 밤마다 기괴한 울음을 내지르는 되강오리의 존재는 반달늪의 공포를 더욱 배가시키는 소름 돋는 설정이었습니다.

 

분명 몇몇 곳에서 아쉬움을 느낀 대목들이 있긴 했는데, 딱히 어디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든 건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불온하고 불편한 여운에 압도당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읽으면서 5개는 어렵고, 0.5개 정도는 빼자.”라고 생각했던 일만 떠오를 뿐입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김효선 MD에 따르면 완전한 행복은 정유정의 욕망 3부작중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매번 스트레스에 사로잡히면서도 정유정의 마력에 허우적대는 독자 입장에서 욕망 3부작이란 타이틀은 그저 반가운 소식일 뿐입니다.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떤 위험한 욕망이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개주막 기담회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서운 영화나 드라마는 잘 못 봐도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 건 좋아하는 취향이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괴담이나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개주막 기담회라는 제목에 바로 눈길이 끌렸는데, 특히 미야베 월드 2처럼 시대물 기담이라 더 관심과 기대를 가졌습니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이 실려 있는데, 수록작들의 공통점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삼개주막이라는 공간입니다. 마포나루의 다른 이름인 삼개나루 인근에서 30대 후반의 주모 김씨가 3남매를 키우며 꾸려가는 삼개주막엔 보부상, 방물장수, 전기수(傳奇叟, 돈을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가), 허름한 양반 등 그야말로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듭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합석한 손님들이나 삼개주막 식구들에게 자신이 직접 겪은 기담 혹은 괴담을 들려주곤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만 보고 현재 혹은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정확히 그려내는 신비한 노인의 이야기(그림 그려주는 노인), 잔혹한 죽음을 불러온 처첩간의 혈투에 환생 코드가 버무려진 이야기(첩의 환생), 탐욕에 눈이 멀어 무차별 아동 유괴살인을 저지른 자들의 만행(유괴된 아이), 한밤중에 길을 잃은 선비가 만난 숲속 외딴 저택의 양반 일가족의 비밀(과거 보러 가는 길), 멀쩡한 며느리를 죽여 열녀문을 하사받으려는 사악한 음모(열녀) 등 호러와 판타지와 괴담이 골고루 포진돼있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하나는 수록작 대부분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작가는 매 작품마다 본 이야기가 일단락된 뒤 비하인드 스토리또는 마지막 반전을 마련해놓긴 했지만 그것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음을 상쇄시킬 만한 큰 힘을 갖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첫 수록작인 그림 그려주는 노인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신선한 소재 덕분이란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이야기 자체가 대체로 정직하고 얌전하다는 점입니다. 소재가 진부하더라도 이야기가 예상 밖의 전개를 보였다면 이 작품만의 강점이자 미덕이 됐겠지만 대부분은 소재만큼 낯익은 전개에 머무르고 말아서 읽을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첩의 환생이나 열녀는 다 아는 (혹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를 단지 조금 세련된 형태로 정리해놓은 느낌이라 실망감이 가장 컸습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 한국 역사 기담이라는 출판사 홍보카피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6편의 수록작 중 전자가 1~2, 후자가 4~5편 정도라고 할까요?

 

마지막 수록작인 옹기장의 꿈의 엔딩을 보면 작가가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다음 작품에선 좀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줄 것을 바라고 싶습니다. 귀신, 환생, 예지력을 다루는 호러 판타지 기담은 작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은 비교적 자유로운 장르지만 삼개주막 기담회는 왠지 틀에 박힌 점잖고 모범적인 교과서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찾아 읽긴 하겠지만 여전히 진부한 기담을 만나게 된다면 그 뒤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