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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평점 :
시장의 정의는 승자의 논리일 뿐!
우리나라 경제학자인 이정전이 쓴 경제 정의에 관한 책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가 쓴 것지이지만 내용 이해도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나라 경제서들을 몇 권 읽었지만, 어려운 용어와 그래프들이 나열되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졌던 적이 몇 번 있었던지라 이렇게 경제 상황과 이론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 책을 만나기 힘들었다. 오히려 외국의 경제 서적이 더 쉽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였으니, 전문적으로 경제 공부를 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경제가 더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정전의 이 책은 경제 정의에 대해서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에서부터 칸트와 롤스와 경제 정의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 등의 이론들을 살펴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이클 샐던의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그 책보다도 더 여러 경제 상황에서의 문제 제기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학자들 간의 논란은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적혀 있어서 좋았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이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그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승자를 위한 허울 좋은 이론적 배경을 자유시장경제 이론이 어떻게 뒷받침해 주고 그 근거를 형성해 주고 있는지 이론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하다고 신봉하는 자유시장경제 이론이 현실적으로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고착화시키고 있는 게 확실한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론을 아직도 맹신하고 있는지 항상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1%를 위한 사회 경제적인 정책이 행해지고 있어도, 99%는 그것을 바꿀 만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투표권'이 있는데도, 여전히 세상은 1%를 위한 사회가 되고 있을 뿐이다. 왜 더 많은 다수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99%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를 읽으면서 밀의 천재성에 놀랐다. 그리고 진정한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행했다는 점에서 이런 사람이 왜 우리 사회에는 별로 많지 않은지 안타까웠다. 도덕성이 사라지고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정말 이상하게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게 바로 오늘날 한국의 암울한 모습일 것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자살과 폭력과 살인과 도덕성과 염치가 사라진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살, 어이없는 사건 사고,,, 이것이 바로 이정전이 말하는 '행복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돈만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우울해진다. 그것은 또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와서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고 취직이 어려운 사회 현실, 암울한 미래, 어디에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롤스가 새롭게 '정의'를 재정립한 것처럼, 우리도 무너진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을 현대 사회에 맞게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한 도덕성의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 '사회의 정의로움'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공기처럼.
우리의 시장은, 경제는, 사회는,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단지 그 정의는 승자의 논리일 뿐, 그것이 99% 대중을 위한 것은 아니다. 깨달아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처럼 시장은 완벽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도 가진 자들의 조작일 뿐,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처럼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고 바꿔야 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넘어가서는 안된다. 자유시장을 부르짖는 1%의 가진 자들은 그 자유시장의 법칙 위에 존재하고 있어 손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칙을 모두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게 어떻게 모든 사람이 공정한 상태에서 경쟁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허울 좋은 논리에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