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 마음속 108마리 원숭이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각산 엮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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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

 

 

자기계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맨날 똑같은 말만 하고 다 알고 있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재밉게 읽혔다. 다양한 일화들을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잔 브라흐마의 유쾌하고 느긋한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마음을 안정시켜야 할 정도로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자신이 이별하고 난 후에 이별 노래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잔 브라흐마가 누군지 몰랐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불교 쪽에 귀의해 있었다. 그는 원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불교의 수행승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불교협회 지도자이며 보디냐나 수도원장이다. 그는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까? 그것은 바로 명상이다.

 

그는 오늘날에는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사람들은 여기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어딘가로 가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사람들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가만히 존재하는 법을 잊어비리게 된 것일까? 나도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버스에서도 뭔가를 생각하거나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뭔가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그 미래에 무엇이 있기 때문일까? 바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어느새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도 행복하고 미래도 행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건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아잔 브라흐마도 보디냐나 수도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다. 어느 날 절의 행정 업무로 정신이 없을 때 그의 친구가 일이 어떻게 돼가냐고 물었다. 그는 다 돼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때 그의 친구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딘데?"라고 물어본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한다.

 

"자네가 날 제대로 구해줬네. 이렇게 허둥대다 보면 내가 곧 가게 될 곳은 오로지 황천뿐이겠군."

 

......내 경우로 말하자면, 나는 도착했다. 나는 여기에 도착했고, 나 자신을 '여기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는 아주 안락한 곳이다. 끊임없이 어딘가 다른 데로 가려고 하고, 여기에서 늘 뛰쳐나가려는 대신에, 누구나 여기 이곳으로 와서 한동안 머물기를 권한다. (184쪽)

 

이 외에도 책 제목에서 나오는 원숭이 일화를 살펴보자. 어떤 노스님이 시끄럽고 분주한 원숭이 마음이 되지 말라고 타이른다. 이 말을 들은 원숭이들이 화를 내며 자신들도 명상을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바나나를 갖고 오고 까야 하고 입에 넣어야 하고 먹어야 하는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들은 명상을 위해 먼저 무언가를 해치우려다가 결국 명상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을 무덤 속에서 밖에 경험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 어느 누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비난을 하고 욕을 해도 내가 그를 동정하고 이해하면 마음은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명상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명상이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아무리 절망스럽고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나중에 그게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게 운명의 신비로움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양한 일화들이 나오는데, 아주 짧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아잔 브라흐마의 촌철살인과도 같은 문구들이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건 짧지만 의미 깊은 말들이었다. 그리고 '고요한 장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조용한 곳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산을 올라가도 요즘에는 라디오를 크게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밖에는 덥거나 춥고 카페는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다른 곳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넘쳐 난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그런데 가끔 이해되지 않는 일화가 있기는 했고 일화들이 조금은 중구난방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주제별로 크게 묶기도 힘들지만 그렇게 나뉜 이유도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겨들어야 할 말들은 많았다. 사람에게 100점이 아니라 70~80점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왜냐면 실패도 좀 해야 그 실패에서 교훈을 음미하며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행기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그는 즉석 화장과 비용 절감, 운 좋은 다음 생의 이유를 들어 걱정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하였다. 그는 다운증후군 학생으로부터 받은 포옹에서 깊은 감성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것 외에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내 마음 속 시끄러운 원숭이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나중에는 생활 속에서 명상을 직접 실천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네이버 책좋사 나무옆의자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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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5 최재천 - 최재천 편 -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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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는 즐거움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한 호에 한 인물을 다루는 격월간지이다. 잡지 전체에서 명사의 삶과 철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깔끔한 디자인이 읽기 쉽게 느껴졌다. 최재천 이전에는 이어령, 김부겸, 심재명, 이문열을 다루었다고 한다. 이어령이야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으로 유명한 분이고, 김부겸은 지역갈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전 국회의원이고, 심재명은 1세대 여성 프로듀서로서 <접속>과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만든 명필름 대표라고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잘 몰랐던 잡지인데, 최재천이라는 이름만으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전체적으로 양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보통의 잡지와는 다르게 고급스럽게 느껴졌는데, 분량은 생각보다 적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담은 잡지이기는 한데, 자서전이나 잡다한 내용이 담긴 잡지라고 하기에는 다소 내용이 부족해 보였다. 어쨌든 잡지는 깔끔하고 여백의 미도 많이 살려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쉬면서 읽기에 딱 알맞은 분량이었다. 그런데 글자가 다소 작게 느껴졌는데,,, 그렇게 넓은 공간을 두고 글씨를 작게 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더 깔끔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최재천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이다. 생물학을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는 몇 되지 않은 국내 학자로서 동물을 연구해 보고 싶은 많은 제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최재천을 보면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걸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

최재천은 어렸을 때부터 강릉의 물가에서 노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강릉으로 놀러가기를 원했고 나중에는 혼자 찾아가서 놀고 싶어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시를 쓰거나 미술도 배우지만 결국 두 번의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진학한다. 다른 진로를 찾아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있던 김계중 교수와의 인연으로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조수가 되어 일주일 간 전국의 개울을 돌며 하루살이를 잡았다. 그것을 계기로 최재천은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전임 강사, 미시간대학교 조교수,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의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이 된다. 그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국내에 소개하여 '통섭'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현재에도 책을 읽고, 연구하고, 환경 운동을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최재천이 부인과 떨어져 지내면서 아들을 돌봤다는 내용이었다.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따로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는 함께 회식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려면 집에서 애나 보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의 회식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이론 등을 나누는 자리도 아닌데 무슨 친목을 다지겠다고 그렇게 매일 모여 회식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술을 마시고 노는 것 뿐인데 말이다. 최재천은 그것을 모두 물리치고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지켰다. 그 결과 최재천은 오히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무의미한 회식보다는 이런 활동들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최재천은 천상 자연을 벗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글 속에 들어가 동물들을 관찰하고 싶은 게 꿈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글 속에 첫 발을 디뎠을 때는 설레여서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불편한 생활을 감수한 그에게는 정글 속이 오성급 호텔보다 더 멋진 곳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박사학위 주제인 민벌레를 보러 가다가 개미나 거미, 나비 등에 정신을 팔리기 일쑤였다. 그가 얼마나 정글을 즐겼는지 정말 행복한 감정이 읽는 것만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는 정글이 악몽같은 곳일지라도 최재천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인 것이다. 나 같으면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인터뷰 속에서 최재천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안 되더라도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에너지 넘치는 파이팅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통섭,,, 모든 것은 하나이다. 서로의 특성이 사라진 융합이 아니라 서로의 특성을 유지하며 발전적인 결합을 이루는 방식인 것이다. '통섭'의 제목을 붙이기 위해 1년을 고민했다고 하니, 그 제목의 의미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어떤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자연을 지켜 나가는 '호모 심비우스', 즉, 공생하는 인간으로 우리가 거듭나기를 바란다.

 

 

* 네이버 책좋사 스리체어스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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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페르소나
이석용 지음 / 책밥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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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자들의 숙명

 

 

이름은 무엇일까?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자 내게로 와서 꽃으로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무언가로 불린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에서 백화가 마지막에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는 것과 같이 사람 간의 관계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떨 것인가?

 

'클럽 페르소나'라는 공간에는 역사 속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은 이름이 특이하다는 것 외에도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과 같은 역사 속 인물을 설명할 때는 생기가 돌면서 어떤 열기를 느끼게 했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그 역사 속 인물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이곳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위안을 얻었다.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클럽 페르소나를 처음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모았던 허균이 클럽 2층의 방 욕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이곳에 투입된 40대 아줌마 서효자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서 형사는 이곳의 바텐더와 여러 회원들을 만나며 클럽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허균을 죽일 만한 원한 관계가 있는지 파악한다. 그러면서 클럽의 유산이 바텐더에게 가도록 정리되어 있다는 점을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클럽이 되기 전에 소유권이 바텐더에게 있었던 터라 더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클럽에서 찍고 있던 <신아리랑>에서 또 다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먼저 이 소설이 형사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건지, 역사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우리나라는 탐정 제도가 없는 탓에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탐정소설보다는 형사소설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여자 형사가 등장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트릭이나 속임수보다는 사람들의 고백이나 과거 이야기가 더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탐정 소설들도 과거가 등장하지만 속임수나 트릭이 대부분이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난 이후에 고백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대부분 클럽 페르소나의 정체에 대한 고백이 더 많은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클럽 페르소나에 열광할까? 그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들이 하나의 가면을 쓰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의 힌트라고 할 수 있는, 빨간 립스틱으로 적혀 있는 '불수호난행, 즉,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라는 조선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 <야설>의 일부분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해석해 준 사람이 바로 클럽 회원 중 한 명인 박문수였다. <야설>은 백범 김구의 휘호로 유명해진 시인데, 허균과 함께 클럽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안두희를 향한 문구라는 것이었다. 안두희는 백범 김구를 시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결말을 보면, 작가가 형사소설보다는 역사소설을 더 지향했던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허균이 죽은 이후에 다른 사건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클럽 페르소나의 등장 인물들이나 형사가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떤 고백을 하기에 급급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클럽 페르소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인물과 관련된 역사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역사에서 잘못한 일을 사과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작 본인들이 한 일도 아니지만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임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름의 의미가 더욱 더 무겁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이름에 대해서 말이다.

 

 

* 네이버 책콩 책밥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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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자서전 범우 사르비아 총서 107
안중근 지음 / 범우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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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나라의 광복

 

 

광복 70주년을 맞아 8월 14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역사를 되돌아 보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꺼내 든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숨이 나오며 부끄럽고도 한심스러운 사회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광복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광복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친일파들이 아직도 그 재산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우리나라에 전쟁 등의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누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들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할까? 결국 나라를 팔아먹고 같은 민족을 죽인 자들이 더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나라를 위해 돈을 모으고 군대를 가라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웃기는 소리다. 자신들은 갖은 핑계를 대어 군대가 면제되면서 말이다. 그리고 세금도 내지 않고 나라의 권리만 찾는 고위층들이 너무나 많다. 안중근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인 지배층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나라가 없으면 우리 민족도 없다고 말했다. 내가 볼 때는 제대로 된 국민이 없으면 나라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인들에 의해 더 숭배되고 떠받들어지는 것 같다. 천주교의 세례를 받았던 안중근은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몸소 실천했다. 한일합방 전에 일본군과 각개전투를 벌이면서 일본군 포로를 잡게 되면 죽이지 않고 풀어주고는 했다. 자신이 일본군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 등과 같은 권력자라고 하면서 말이다. 일본인 개인의 죄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소수 몇 명의 문제로 국한 시킨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버린 후라서 그 흐름을 몇 명의 힘만으로는 거스를 수 없었다는 한계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안중근은 명연설가였다. 자신의 굳은 의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감동을 받아 그를 숭배했던 것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함께 행동을 일치시킨 사람이었다. 말만 번드르르 하게 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개화가 시작되고 서구 열강들이 판을 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혼란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안중근...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 빌붙어 살아남을 것인가?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재의 상황을 알고 나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그 당시 독립을 위해 행동한 사람들은 아마 후회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신을, 나라를 믿었던 자신들을 말이다. 그래도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나 미국 등의 속국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일본이나 미국 등의 국민이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고 있을까?

 

안중근은 명분가의 자손으로 나라를 위해 사비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였고 뜻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염원했다. 우리나라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재산을 가진 일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행동하고 싶지도 않다며 안중근을 피하기도 했다. 그때 안중근이 겪은 좌절이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힘차게 일어나 나라의 원수인 이토를 죽이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댓가로 안중근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것은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필요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죽인 자들은 석방되면서 적군으로서 행한 일은 사형이 선고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 잃은 설움인 것이다.

 

안중근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과연 큰 죄인이다. 다른 죄가 아니라, 내가 어질고 약한 한국 인민 된 죄로다."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여러 감정들은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도, 안중근의 준엄한 꾸짖음을 읽고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사람은 한국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라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정'이라도 느꼇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민이 뭔가를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한 나라를 구성하는 정부로서 해야 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 안중근의 유해라도 고국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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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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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훈훈해지는 나른한 오후의 추억

 

 

이 소설은 한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겨울 호빵이 생각났다. 손이 시려운 한겨울에 뜨거운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기억,,, 그렇게 삶에 지친 나에게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변화되는 세계,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누구나 한여름에 가족들과 냇가나 바다나 산으로 놀러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이 어느새 아련한 추억들로 남아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가족들과 물놀이를 다닌 것처럼 나도 커서 결혼해서 자녀들과 함께 여기저기 물놀이를 다닐 것이다. 그럼 그 아이들도 이러한 추억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서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남기고 그리워 하게 될 것이다. 이게 우리의 인생이고 행복일 것이다. 돈을 벌어서 쓰느라 빡빡한 삶에서 조금 물러나 이러한 소소한 기쁨들을 누리고 사는 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남자 주인공인 아이바 싱고와 여자 주인공인 가와이 나쓰미가 오토바이를 타고 외진 곳을 달리다 구멍가게인 '다케야'에 우연히 들려 지장 할아버지와 야스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지장 할아버지는 야스 할머니의 아들이었는데, 예전에 몸을 다쳐서 걷는 게 조금 불편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싱고는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다케야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면서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반딧불이도 보고 아름다운 풍경들의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케야에 가끔 오는 사카키야마 운게쓰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운게쓰는 살아있는 불상을 조각하는 것으로 유명한 불사였다. 그들은 다케야에 지내면서 지장 할아버지와 야스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간다...

 

책의 중간 부분에 냇가에서 놀면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를 잡는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 곳곳을 여행하며 작가가 직접 체득한 방법들이라고 하니,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데,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반딧불이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환경 오염으로 인해 반딧불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슬퍼졌다. 우리의 추억도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잔뜩 소개해주고 싶어졌다.

 

"아무렴. 좋아하지. 민들레꽃은 죽으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하늘에 둥실둥실 날려 주지 않니? 그래서 참 멋진 꽃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57쪽)

 

"타인과 비교하면 내게 부족한 것만 보여 만족을 모른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127쪽)

 

"재능이란 건, 각오랑 같은 뜻이기도 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인간이라도 뭔가를 이루기 전에 포기하면 그 인간에겐 재능이 없었던 게 되지. 굳게 마음먹고 목숨이라도 걸 각오로 꿈을 이룰 때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녀석만 나중에 천재 소리를 듣게 돼." (244쪽)

 

시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내 안의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여 이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겠지. (252쪽)

 

그대로 계속 붙은 채 날아가서, 같은 땅에 내려앉아, 이웃으로 함께 쑥쑥 자라서, 활짝 피운 예쁜 꽃을 서로 보여 주며, 그렇게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생을 같이하다가, 마지막엔 또 함께 많은 씨를 하늘로 날리면 좋겠다. (263쪽)

 

이 책을 읽으며 '행복'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다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이렇게 자신을 좀먹고 불행하는 게 주변이나 타인이 아니라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고민해 보았다. 남과 비교하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내 자신, 그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마는 내 자신,,,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그건 '진정한 나'가 아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나약하고 여린 나'의 발버둥일 뿐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그런 나'를 한번 안아주고 토닥여 주자. 넌 말이야, 정말 잘 하고 있어...

 

 

* 인터파크 이덴슬리벨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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