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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발명 - '엄마'라는 딜레마와 모성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평점 :
'모성애'의 사회학적인 의미 해석
우리는 항상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아주 밀접한 관계로 생각한다. 그 관계는 너무나 확고해서 세계 어느 곳, 어떤 문화든지 적용되는 생각이다. 모성애를 가진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성애'라는 사고 체계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대부분의 미디어에 의해 하나의 큰 주제가 된다. 그런데 그런 '모성애'가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발명된 것이라니? 이 책은 '모성애'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모성애'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나타난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집안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집안일도' 해야하는 슈퍼우먼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독일에서 1975년에 출간되었는데, 특히 주부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01년에 출간되었는데, 한국의 여성 독자들도 바로 '나'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부분이 많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낙태, 주부우울증, 순결강박증, 여자의 성적 주체성과 해방, 이혼 증가 등의 40년 전 독일의 여성들의 문제가 몇 년 전까지의 한국 여성들의 문제와 닮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들까지도 단숨에 뛰어넘어 버린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포세대나 사포세대라는 말이 떠도는 것처럼,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해 버린 시점에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보다는 먼저 취업과 주거의 문제가 너무나 크다보니, 그저 현재의 삶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위는 없이 말이다.
어쨌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직장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대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핵가족이 되었다. 대가족일 때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 아이의 육아나 집안일 등을 서로서로 도우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핵가족이 되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해줄 사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일과 육아 등을 온전히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슬로건은 '모성은 위대하다'는 관점이었다.
부모가, 특히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경우는 특수한 사정이 있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불편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성애'라는 이데올로기가 발명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여자'라는 존재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나 또한 여자지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뒷바라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고 있는데, 이 생각이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교육을 받아 온 결과라는 것이다.
색다른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아이를 내다 버리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육아는 여성에게만 주어진 의무 사항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수행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동안 외벌이를 하면 집안일과 육아를 온전히 여자 혼자서 감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맞벌이를 해도 대부분의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 경우가 많은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집안일과 육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왜 외벌이든 맞벌이든 대부분의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까? 지금은 예전보다는 함께 집안을 하는 남성이 늘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집안일은 여성이 해야 하고, 남편은 그것을 '도와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집안일 분배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사회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자신의 전력을 다한다. 그러면서 남성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는다며 경계심을 가진다. 이렇게 되면서 언제가부터 인터넷에서는 서로의 성을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혐과 남혐,,, 이러한 대립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두려워 졌다.
너무나 살기 팍팍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인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그 분노를 누군가든, 무엇이든,,, 표출하고 싶다. 자신의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 헤맨다. 나보다 약한 무언가를. 절망과 슬픔, 분노로 인해 썩어 문드러진 가슴,,, 점차 손쓸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희생양을 짓밟는다. 그것이 언젠가 '나'이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