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현상 - 신뢰받는 언론인이란 무엇인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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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책 읽지는 못했지만, JTBC 뉴스가 가장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으로서 읽어 보고 싶네요. 이제 MBC, SBS, KBS 뉴스는 볼 생각이 안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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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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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외면하는 습성으로 인해 지금에서야 이 책을 접했다. 뭐가 잘났다고 남들이 많이 읽고, 구매한 책을 무시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남들이 사니 다른 사람들도 그냥 따라서 샀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남들보다 낫다고 착각하는 우월 콤플렉스가 마음속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정신심리학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우리의 마음, 의도, 행동 등을 해석할 수 있다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정신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아들러 심리학이 유행한다고 해서 아들러가 직접 쓴 책을 골랐다. 이왕이면, 창시자가 쓴 책을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었다. 아들러의 강의를 풀어서 쓴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이 책을 구매했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 때 우연히 접한 '프로이트의 의자' 책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러 심리학도 알면, 나의 마음을 더 단단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구매로 이끌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노트에 1~2 페이지로 정리해 보았다. 아들러 심리학을 매우 쉽게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내용은 그다지 내키지 않고, 이해가 부족한 면도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 알아두자는 마음으로 요약을 했다.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좀 더 보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할 때 아들러 심리학 초급은 3가지 정도를 이해하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1. 목적론
이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원인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이다. 즉, 과거의 힘든 상황, 트라우마, 환경 등에 따라 지금의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결과를 목적으로 하기 위해 과거를 끄집어서 원인을 만들어내고, 탓을 한다는 것으로 이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잔혹한 말일 수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과거 탓하지 말자이다.

2. 현재 지향 사고방식
쉬운 말로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라는 것이고, 과정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에네르게이아'로 부른다고 한다. 현재는 점으로 되어 있고, 이 점들을 하나씩 찍다 보면 어느덧 방향을 만들고, 나중에 결과에 도착한다. 현재의 점을 올바르고, 충실하게 찍으면, 결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에 이야기한 'connect dots'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3. 인간관계의 중요성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인 거 같다.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해석으로 열등감을 가지고, 이걸 변명거리로 삼아서 열등 콤플렉스로 무장하거나 또는 자랑을 통해 우월 콤플렉스로 나아간다는 것을 이해해도 매 순간 이걸 기억할 수 있을까 싶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자아 구현, 행복 추구에 매달릴 시간도 부족한데, 나는 세상이 온통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온갖 매체에서 비교를 하고, 가족, 주변 지인, 회사에서도 항상 비교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우리 주위를 비교가 감싸고 있다. 비교를 함으로써 경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목적론을 생각해보면, 내가 비교를 통해 남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남의 부러움을 받을 목적으로 세상 탓을 하며, 비교와 경쟁을 묵인하고, 당연시하는 것이 아닐까?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다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권력 투쟁(경쟁)에서 물러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데, 현실 상황에서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 나도 이 책에 나오는 청년과 똑같은 거 같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하고,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서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개입을 안 한다는 것이 지원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이 둘의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자기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을 통해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아들러 심리학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다시 생각을 돌아보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상처, 스트레스, 불안감 등으로 어찌할 바 모르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제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아들러 저자가 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2017.02.12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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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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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커다란 여정을 끝낸 느낌이었다. 
총, 균, 쇠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어쩌면 약 600페이지의 분량이 적을 수도 있지만, 정독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읽을 수는 없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방대한 지식과 뉴기니에서 체류하면서 탐사 활동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사를 역사과학으로 생각하며, 논리적 전개를 통해 하나씩 궁금증을 풀어 나간다. 이렇게 풀어 나갈 때 설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어찌 재미있지 않겠는가.

책의 구성도 정말 짜임새가 있다.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에서 왜 민족마다 다른 진화를 하고, 어떤 민족은 멸망의 길로 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과정은 피사로가 잉카 문명의 절대 군주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사건을 통해 궁금증의 절정으로 유도한다.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에서 각 대륙마다 다른 진화 속도로 인해 발전이 달랐고, 민족의 우수성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환경의 차이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하나씩 설명한다. 사실 위주의 역사 내용을 기술하는 것을 뛰어넘어 진화생물학, 지질학, 생태지리학 등의 역사적 과학의 접근 방법을 통해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역사학이 아닌 역사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에서는 2부, 3부에서 설명한 내용을 토대로 각 대륙의 발전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2부, 3부 설명의 예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반복되는 내용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반복됨으로써 머릿속에 잘 각인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2부, 3부의 원인들이 떠올랐다.

특별 증보판에서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추가 논문이 있다. 
뭐. 어디에서 왔을까? 당연히 한반도에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남을 침략하는 짓과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보면, 우리와 너무 달라서 그들의 조상은 대체 누구였는지 납득이 안 간다. 일본인들은 태생 자체에 열등 콤플렉스가 있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우등 콤플렉스로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는 거 같다.

그러면, 저자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해 본다. 인류 역사의 방대한 전개를 내가 요약해 본다는 것은 재레미 다이아몬드가 책을 얼마나 잘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역사학 자료와 과학적 논증, 추론을 통해 유라시아/남북 아메리카는 약 5000년 정도의 발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크게 보면 유럽, 아시아이지만 발전 시기로 보면 지금의 지중해 동안, 중동지역)가 가장 발전이 빨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식량생산에 유리한 종자와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식량생산과 가축화가 중요한 것일까? 


수렵 채집 생활을 떠나 정주형 생활을 하게 된 결정적 동기가 식량생산이 가능한 곳을 찾은 것이다. 식량생산을 할 수 있으면 굳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고, 필요한 것만큼만 구해서 나누어 먹을 필요가 없다. 계속 그 자리에서 식량을 생산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잉여 농작물이 생겨나고, 식량생산을 담당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이 군인, 관료, 기술자 등의 전문화 계층이 생긴다. 전문화 계층은 자신들의 분야에 힘쓰게 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서로 경쟁하면서 기술발전을 초래한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를 통해 식량생산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들 동물을 통해 병원균이 인간에게 전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짧은 시기 동안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지만, 점차 인간은 면역체계를 통해 극복한다. 유럽에서 창궐한 많은 유행병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후예들이 아즈텍, 잉카 제국을 공격하여 치명적인 병원균을 현지인에게 퍼뜨렸고, 현지인들이 극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머지 건강한 소수의 현지인들을 잔혹하게 말살함으로써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를 정복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인디언, 멕시코의 아즈텍, 페루의 잉카 모두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종자와 포유류가 존재했지만, 대규모 식량생산으로 확대되거나 가축화된 포유류 비율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유라시아가 월등하게 좋은 환경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문장에서 몇 마디만 바꾸면 바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중동 지역이 점차 사막화되고, 서유럽이 점차 비옥한 토지가 되면서 점차 서쪽으로 발전이 옮겨가고, 서유럽의 집중된 인구밀도와 민족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항해술, 중앙집권제, 군사기술 등이 발전한다. 
서유럽의 백인들이 뛰어난 것이 아니고, 환경적,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발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서유럽에서 빼어나지 않고, 미국 미시시피나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면, 그들도 인디언들과 똑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말에 일본 홋카이도를 방문했을 때 아이누족 마을을 방문하고,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마을에는 곰을 사육하는 장소도 있었다. 홋카이도는 곰을 많은 지역이고, 아이누족은 새끼 곰을 포획하여 키우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저자는 그들이 새끼 곰이 어느 정도 크면 잡아먹는다고 한다. 

곰을 가축화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점이 되지 않았을까? 만약, 말처럼 키울 수 있다면, 전쟁에서 수천 마리의 말을 대신해서 수천 마리의 곰이 달려든다면,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을 수도 있다. 일본인을 몰아내고, 다시 일본 본토를 수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같은 생각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동물에게 미안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가축화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이다. 영토 면적과 인구에서 중국, 일본과 확실하게 차이가 나면서도 역사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어찌 보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식민지를 피했음에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 당한 치욕은 있지만, 결국 그것도 극복했다. 물론, 아직까지 민족적 사고가 뒤떨어진 친일파들이 이 나라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축출하는 당면 과제는 안고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 나름대로 기술도 발전시켰고,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도 만들었고, 일본에도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유라시아보다 다소 늦지만, 중국도 고대 문명사회를 이룩했기 때문에 그 후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통일국가로 폐쇄적인 정책을 피지 않고,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로 구성되어서 좀 더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어쩌면 서유럽보다 동아시아가 먼저 북아메리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을 백인이 아닌 동아시아인이 건국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환경적, 지리적 요인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고, 정보와 지식을 구하기는 쉬워졌다.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환경적, 지리적 요인으로 핑계를 댈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더 힘든 시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민족과 국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전 세계가 비웃는 작금의 사태를 인지도 못해 태극기를 온몸에 둘러메고 거리에 나타나서 국가를 구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정세 판단을 못 해서 왜에게 침략을 당한 선조나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다가 청나라에게 침략 당한 인조 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천년 후에도 우리 후세에게 민족과 국가를 넘겨주기 위해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거시적인 측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중국이 장거리 항해를 못하도록 막고, 조선소를 모두 불태운 것으로 인해 나중에 서양의 각 국가들에게 치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2017.02.11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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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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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담요'를 읽었다. 그래픽 노블은 나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처음 접한 것은 동일 작가의 '하비비'였다. 이 책을 읽고, 재미있어서 '담요'를 샀다. 

만화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내용의 깊이는 대단하다. 철학적, 종교적, 사색적인 내용과 남녀 간의 사랑 묘사 등으로 봤을 때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담요'이지만, 개인적으로 '하비비'가 더 재미있는 거 같다. '하비비'는 이슬람교 기반의 내용 전개이지만, '담요'는 기독교 기반의 내용 전개이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의 종교적 이해 수준도 꽤 높은 거 같다. 왜 책 제목이 '담요'인가는 책을 끝까지 읽어 봐야 알 수 있다. 주인공을 사랑으로 감싸 주고, 성숙함으로 이끌어 주었던 매개체 정도로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다.

기독교를 믿는 부모님, 동생과 함께 지내는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다른 내면세계와 사고를 가진 주인공은 주변에서 왕따를 당한다. 그러던 중에 방학 때 기독교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고, 그곳에서도 무시를 당하는 중에 한 여자를 만난다. 서로의 친밀했던 기억은 캠프 끝난 후에도 서로를 찾게 하고, 방학을 맞이해서 여자의 집에서 같이 보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면서 주인공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같이 옆에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의구심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어렸을 때 교회 활동을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교회를 열심히 다닌건지 아니면, 마음속에 그분을 섬기고 싶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현실을 알고, 역사를 알면서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 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기독교라고 말한다. 누가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보면, 교회는 안 다닌다고 말한다. 신을 믿지만, 그 신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교회를 다니면, 천국을 가고, 안 다니면 천국을 갈 수 없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를 안 가면, 천국을 못 가는가? 이건 누구의 뜻인가? 신의 뜻인가? 교회의 뜻인가? 교회가 정치적인 발언과 행위를 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 질려도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서는 누가 만들었을까? 성서를 만든 의도가 있지 않을까? 그 의도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일까? 교회의 뜻일까?

나는 정답을 모른다. 아니 정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전도서 내용 중에 서로 상반된 내용이 있고, 전도서는 솔로몬 왕이 쓴 걸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사람이 솔로몬 왕 사후 600년 후에 썼던 내용이 덧붙여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의 의견에 교회 목사는  이 모든 걸 성서의 성장 과정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답변한다. 이에 주인공은 혼자 독백을 한다.


성장 과정?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성경의 구절들이 신의 입에서 곧장 나온 말씀이라 배웠다.

이렇듯 수대의 필사를 통해 수정되고, 번역을 통해 희석된 것이라면, 그 진실은 적어도 내 눈에는 퇴색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신의 말씀처럼 신성한 것을 <대량 생산한> 물질의 형태로 고정시킨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보였다.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 사람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는다. 평화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아타우알파와 잉카인들은 비무장으로 왔지만, 피사로는 미리 병력을 숨겨놓고, 기습 공격을 하여 수천 명의 잉카인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아타우알파를 잡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한 것이므로 하늘과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고, 이는 그대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까지의 야만스럽고 사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심이오. (중략)

하느님도 그대의 자만심을 꺾고 그 어떤 인디언도 기독교인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이 일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중에 더 많은 잉카인들을 학살하고, 아타우알파를 죽인다. 하느님을 알고,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려고 하면 교화를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자신을 믿지 않은 모든 이들을 무조건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고, 멸망시키라고 말했나? 아니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는가? 이게 정녕 하느님의 뜻인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을 채운 한심한 인간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알리고 싶어서 하느님을 이용한 것인가? 이쯤 되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이용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이제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의 내면 심리,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이나를 만나서 서로 좋아하고, 알아가고 점차 사랑에 빠지는 연애 소설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아니 왜?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결단을 내리는 주인공 때문에 내 마음도 상처를 입었다. 아닐지도. 내가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제대로 이해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의 하나처럼 이 모든 것을 전개하고, 그 이후에도 아무 설명 없이 담담하게 주인공의 생활과 심리를 묘사한다. 마치 주인공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지독한 고통과 너무 대조적이다. 

혹시 크레이그 톰슨의 그래픽 노블을 읽어 보고 싶으면, '하비비'를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담요'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종교를 대하는 다른 방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7.02.04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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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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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연휴 때 한 권이라도 읽기 위해 선택했던 이 책을 4일 만에 읽었다. 
연휴이므로 3일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읽고 있었던 다른 두 권을 마저 읽느라 하루 더 걸렸다. 가족들이 모이면, 가족들끼리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모두 TV 삼매경에 빠진다. 난 TV 보는 것을 안 좋아하므로, 조용히 방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다. 2016년 9월에 나왔는데, 알라딘 베스트셀러에서 아직 20위안에 있다.
저자는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윤답장' 선생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직업이 의사지만 작가가 되는 꿈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직업에서 성공하고, 개인 병원도 가지고 있고, 이제 책까지 출판했으니 섣부를지 모르지만,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니면, 결국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자신이 얻은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책을 쓰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가 죽기 전에 책 한 권 써서 출판하고 싶다는 것이다. 언젠간 말이다.

일단, 자존감의 정의부터 알아보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이다. 영어로는 self-esteem이다. 곧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지 또는 낮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레벨을 의미한다. 자존감 점수가 높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을 사랑하면 된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굳이 이 책을 읽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사랑,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자존감을 설명하고,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들을 살펴보고, 자존감 회복을 위한 습관, 극복할 것들, 실천 방법 등을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다소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실천적인 방법에 중점을 두면서 '해보자'라는 시도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저자는 직장 만족도, 직업 만족도, 자기만족도를 구분하라는 말을 한다. 직업은 만족해도 직장은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퇴근 이후의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은 직장이니 직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난 가끔 부하직원에게 집에서도 밥 먹을 때, 샤워할 때, 자기 전에 아이디어를 고민하라고 말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는 회사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는 좋은 의도였는데, 지금은 잘못했다고 반성한다. 
나의 상사가 회사일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했을 때 '아, 일이 잘 되기 위해서 나도 잠 못 잘 정도로 고민을 해야 하는구나' 생각을 하곤 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번 명절 때 회사에 취직한지 얼마 안 된 조카에게 회사 생활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조카는 회사에서 꼰대가 한 명이 있어서 힘든 때도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신입사원에게 꼰대라고 불릴 만한 자리는 회사에서 내 자리가 아닐까 생각이 드니 순간 긴장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명절 때 가족에게 나를 꼰대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음.. 


퇴근 후 전화를 하거나 업무 지시를 하지 않는 게 사실은 정상이다. 받아주니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고민해야 한다면 그 고민조차 근무시간에 해야 한다. 그 고민까지가 월급에 포함된다.

가정, 회사,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비난을 받을 때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의 비난 때문에 힘든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비난은 받을 수 있다. '남'과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어떤 의견을 제시하거나 평가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일리 없다. 개인적인 의견이고, 언제 변할지 모른다. 비난하는 그들은 이미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상태다.

'남'이 '나'를 비난할 때는 '남'의 감정에 이상이 생겨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물론, '나'가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암튼, '남'은 화가 났고, 화가 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찾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남'의 감정에 공감하면 된다. '나'가 잘못했다고 할 필요가 없다. '나'의 어떤 행위로 인해 '남'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니 그 감정에만 공감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공감을 하고, 그다음에 '나'의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남'이 부당하다면, '나'가 바뀔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의 실수(잘못이 아니다. 실수이지.)라면, 다음에는 실수를 안 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예측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 아래 내용이 앞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것'

아니지. 프레젠테이션은 미래잖아. 지금 뭘 하고 싶으냐고?

'지금은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지. 그런데, 지금 준비한다고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 그건 미래고,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

'지금은 준비를 열심히 하고 싶은데, 벌써 밤 11시가 되어 버렸어. 퇴근 후에 친구랑 영화를 봤거든.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그건 과거잖아. 지금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지금 여기서는 한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정리하고 싶어'

그래 그럼 적어보자. 나는 지금 [여기서 한 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정리하고 싶다.]라고 이 문장을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놔. 그리고, 미래가 불안하거나 과거가 후회될 때마다 바라보는 거야. 그래야 자료 정리에 집중할 수 있어.

저자는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남'과 '과거'이다. 절대 인위적으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인데,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왜 다른 사람에게 찾는가? '남'이 바뀌면, '나'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이 아니고, '나'이다. '남' 때문에 힘들면 '나'가 떠나면 된다. 떠나지 못하는 '나'가 문제이다.

'남'을 비난하지 말고,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사실 위주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남'의 감정에 공감하되 '나'의 결정을 통해 '나'의 자존감을 높이며,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2017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7.01.30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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