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마법 같다. 청소년기에 읽은 고전을 청년기와 중⦁장년기에 다시 읽으면, 그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저자는 중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고전을 읽기기 시작했다.
‘인생이 쉽지 않다’ 라는 것을 체험으로 아는 나이가 되자, 고전은 훨씬 더 깊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고전의 세계로 다시 발을 내디딘 것이다.
고전은 여전히 묵직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고전에 마음이 끌리는 지금, 함께 읽을 동지가 있으면 더 좋은데 그런 사람이 잘 없는 것 같다. 엄마가 같이 책을 읽고 아빠가 글을 쓰기는 하는 것 같다.
“참 감사하다!” “정말 다행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그야말로 ‘감사대장’이다. 일상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기어코 감사할 거리를 찾아낸다.
그 비결은 15세 때 세례를 받은 이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기도’에 있다. 어머니의 ‘평생 감사’는 언제나 마음의 주파수를 좋은 곳에 맞추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전화 너머로 하소연하면, 어머니는 한참을 가만히 들어 주시다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신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자의 고민은 문제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쭈글주글 구겨졌던 마음이 어느새 펴진다. 가슴 한쪽에 환한 전구가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라는 말은 너무 흔해서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말만큼 실감 나는 진리는 없다. 우리 삶에는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지만, 단 하나, 마음먹기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결국 인생은‘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고전은 인생의 일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네 마음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고전문학 중에는 이처럼 중요한 마음, 특히 부서진 마음과 지켜야 할 마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일본 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났메 소세키(1867~1916)가 1914에 발표한 소설, 《마음》이다. 저자는 《마음》을 읽는 내내, 선생님이라는 인물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자기혐오가 그를 염세주의자로 만든 건 이해가 되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내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통해 속죄하려는 모습은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불편하기도 했다.
《마음》은 메이지 시대 말기 근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포착해, 인간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지만, 제목이 《마음》인 만큼 역설적으로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가장제대로 돌보지 못한 일물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마음이다. 남의 마음이 아니라, 바로 내마음, 날마다 이 마음을 살피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잠깐씩이라도 짬을 내서 눈을 감고 기도하거나 명상을 해야 한다.
어쩌면 마음속 작은 멈춤이 삶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바로 고전이 마음부터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들을 알려주는 존재들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일 것 같다. 저자가 왜 고전을 좋아하는지 그 비밀을 잘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