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2> 중에서...

꼭대기에서 하얀 먼지를 피워올리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언덕이었다. 폭신폭신한 산, 끝내지 못한 여행, 일시적인 천막, 바람에 날려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 되는 고장을 어떻게 지도로 표시할 수 있으랴? 이런 질문 때문에 그의 언어는 너무 추상적이었고, 그의 심상은 너무 유동적이었고, 그의 운율은 너무 불규칙했다. 그래서 그는 키메라 같은 형상들을 창조했고, 사자의머리 염소의몸 뱀의꼬리, 존재하지 않는 것들, 그들은 쉴새없이 모습을 바꾸었고, 그래서 고전적 순수성을 간직했던 문장 속에 통속성이 끼어들고 끊임없이 침투하는 우스갯소리가 사랑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아무도 그런 시를 좋아하지 않아, 하고 그는 벌써 천 번이나 했던 생각을 한 번 더 했고, 의식의 끈을 놓치는 순간,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없지. 망각은 곧 안전이다. - P121

‘적어도 정신 연령이 십대쯤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닫기 마련이다: 인생은 결코 익살극이 아니라는 것을, 하다못해 점잖은 희극도 아니고, 정반대로 오히려 본질적 결핍이라는 깊디깊은 비극적 심연에 뿌리내린 채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정신생활을 영위할 줄 아는 이들은 늑대가 울부짖고 밤의 음탕한 새가 지저귀는 위험한 숲을 물려받는다’ 명심해라, 이 녀석들아. - P160

그는 자기가 증오심을 오래 품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축했다. 역시 증오보다 사랑이 더 지속적인지도 모른다. 비록 사랑이 변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그림자일까, 아무튼 뭔가가 길이길이 남는다. 예를 들자면 파멜라에 대해서도 이제는 지극히 이타적인 애정을 느낄 뿐이다 증오심이란 어쩌면 민감한 영혼의 매끄러운 유리에 남겨진 지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없어지는 손자국 같은 것, 지브릴? 흥! 잊어버렸다. 더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봐라: 적대감을 벗어던지면 자유로워진다. - P175

내 아들은 그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인, 카리브인, 인도인,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키프로스인, 중국인-만약 우리가 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저 하늘을 건너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 P187

미르자 사이드는 잠들지 못했다. 스리니바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스리니바스는 자기도 머릿속에서는 간디주의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실천하기엔 너무 나약해서 탈이오. 부끄럽지만 사실이오. 나는 고통을 견뎌낼 능력이 없소, 선생. 차라리 마누라와 아이들 곁에 남아 있는 편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모험병 때문에 이런 꼴이 돼버렸소." 잠 못 이루는 미르자 사이드는 이미 잠든 장난감 상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집안에도 일종의 병이 있어요. 초연함이라는 병, 온갖 만물과 세상사와 감정에 무관심한 병.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연고 따위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머릿속에서만 살아왔어요. 그러니 현실에 대처하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지요. 다시 말해서 그는 지금의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 P300

비록 수많은 질문에 뒤덮인 어렴풋한 미래였지만 어쨌든 미래는 과거에 가려질 수 없다. 죽음이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시기에도 삶은 여전히 동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한다. - P342

상여, 꽃을 뿌린, 거대한 아기 요람 같은.
시신, 하얗게 감아놓은, 향기로운 백단향 대팻밥을 여기저기 잔뜩 뿌려놓은.
또 꽃, 쿠란 구절을 금실로 수놓은 초록색 비단 덮개.
구급차, 상여를 실어놓고 미망인들의 출발 허락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
묘지. 상여를 짊어지려고 달려가던 남자 조객들이 살라후딘의 발을밟고, 엄지발톱이 조금 부러지고.
조객 중에는 사이가 멀어졌던 창게즈의 옛친구도 한 명, 양측폐렴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따라왔고, 또 한 명의 노신사가 펑펑 울고, 그역시 바로 이튿날 숨을 거둘 테고,그 밖에도 온갖 사람들, 죽은 자의 일생을 보여주는 걸어다니는 기록들.
무덤. 살라후딘은 그 속으로 들어가 머리맡에 서고 묘지 인부는 발치에 선다. 창게즈 참차왈라가 아래로 내려진다. 아버지의 머리 무게가 내 손에 놓였네. 나는 그것을 내려놓았네. 편히 쉬소서.

누군가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현실이었음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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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7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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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해야 할 일이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 거짓을 손가락질하는 일, 어느 한 편에 서서 논쟁을 일으키고 세상을 가다듬어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일”

AI가 아직 유머 감각까지는 학습하지 못했다며 창조적인 요소가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답게 일단 재밌다. 뭐랄까, 죽이 척척 맞는 동반자처럼 번역가 김진준 님이 루슈디만의 유머와 감각을 어찌나 맛있게 잘 살리는지 이 소설은 상상력으로 빚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과 진심이 나의 머릿속을 마구마구 헤집으면서도 따라잡힐세라 동서남북으로 핑퐁하는 통에 쉽게 판단하고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까지 더해져 정말 읽을 맛이 활활 불타오르게 했다. 혀가 어찌나 길고 넓은지 눈치코치도 없이 떠들어대며 정신을 사납게도 만들지만, 이 언어의 자유로움이 주는 경쾌함과 명랑함에 빠지면 (어르신께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루슈디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호불호도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호다! 호호호! 일단, 주인공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부터 해야겠다. 부모를 잃은 고아였지만 워낙 잘생겨서 일찍이 영화계에 발을 담가 배우가 된 지브릴 파리슈타!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 못지않은 최악의 바람둥이다.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전신에서 내출혈을 일으켜 죽을 고비에 처했다가 회복하게 되는데, 그가 깨어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한 가지 변화가 생기고 만다. ‘믿음’을 잃게 된 것!

알라시여, 그곳에 계시옵소서, 빌어먹을, 제발 있으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못느껴도 상관없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 변신의 날부터 병세가 변화를 보였고 회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신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지금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의 식당에 우뚝 선 채 돼지고기를 질질 흘려가며 먹어치웠다. (p. 55)

지브릴 파리슈타는 원래 이스마일 나지무딘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푸나, 제국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영국령 푸나였고 아버지가 봄베이의 발 빠른 도시락 배달원이었기에 열세 살 때부터 이스마일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세월은 흘러갔고,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생명을 되찾은들 무슨 소용이냐라는 도발적인 한마디를 듣고 난 뒤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런던으로! 지브릴 파리슈타가 아닌 턱수염을 기른 이스마일 나지무딘이라는 옛 이름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그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살라딘 참차’(자꾸만 참치로 보인다)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주인공 참차의 소개도 간략하게 해야겠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각종 농약과 인조 비료의 전국 최대 생산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참차는 어릴 적부터 땀 냄새가 풀풀 나고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 검은 물 건너 머나먼 곳을 동경했다. 가슴속 깊은 욕망을 더 이상 누르지 못해 도망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희망 없는 인도 땅이 아닌 파운드화가 잔뜩 쌓인 근사한 이국의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어야 하리라! 외침이 너무 컸는지 뜬금없이 아버지가 영국 유학을 제안해 그토록 원하던 런던에 가게 된다. 인도의 현실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없이 자라온 그가 영국식으로 바뀌어버린 인도인이 되었다. 말투를 바꾸는 재능이 있어 더빙 분야에서 큰 몫을 차지하며 영국의 방송 전파를 지배하게 되고, 영국인 여성과의 결혼까지 성공하게 된다. 얼굴은 감추고 목소리만 존재한 유령이라 해도 좋다. 성공과 돈과 아내가 있는데 뭐! 사반세기가 흘러 ‘용서’를 위해 다시 고향 땅 인도 봄베이로 날아온 참차. 용서를 해주려는 것인지 받으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왔다. <한밤의 아이들>에서 피클 국물처럼 들척지근한 향을 풍기는 주인공 ‘살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성 ‘파드마’가 있었다면, 참차에게는 그의 정부 ‘지니’가 있다. 옆에서 비위를 맞추며 부채질을 살살 해 주다가도 단번에 부챗살을 죄다 부러뜨려버릴 것만 같은 여성인 지니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에 사는 것으로도 든든한 자산이라 여기는 참차가 여간 밥맛이 아니었는지 냅다 재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 떠나버린다.

“사람들이 당신 곁에 너무 접근하지 못하게 해요, 살라딘 씨. 방어막을 열어주면 그놈들은 곧바로 당신의 심장을 찌를 테니까.” (p. 119)

그래, 다시 떠나자! 단정한 양복과 질서정연하고 만족스러운 런던에서의 삶으로! 그리하여 봄베이발 런던행 비행기에서 참차와 영화배우 지브릴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편, 지브릴이 믿음을 잃고 부정한 돼지고기를 먹은 후 그날 밤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존재였다. 대천사 지브릴. 천사가 된 그에게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희한하게도 잠들 때마다 중단되었던 부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곳, 똑같은 꿈. 지독한 악몽처럼. (이 소설의 홀수장에서는 지브릴과 참차가 마주한 현실이, 짝수장에는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의 꿈이 교차한다.)

불행하게도 이 비행기는 런던 상공에서 폭파된다. 생존자는 단 두 명이다. 지브릴과 참차! 이들이 떨어져 내려오는 과정은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빙글빙글 공중 헤엄을 치며 발버둥 치고 거꾸로 선 채 비명을 지르며 도착한다. 엥?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하늘에서 폭탄처럼 내리꽂히듯 올 수 있느냐며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넘치는 세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니 뭐,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듯? 펜을 쥔 손에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까지 쏟아내는 말과 와다다다 시끌벅적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거의 만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부활인 것인가? 3만 피트 상공에서 떨어졌어도 살아남았다니! 낼모레면 구십 대가 되는 노파에게 발견되어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치고 영주권이 있다고 믿어달라고 소리치는 참차만 날름 잡아간다. 그럼, 지브릴은? 지브릴도 잡혀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추락과 동시에 두 사람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먼저 밝혀야겠다. 지브릴은 머리 바로 뒤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비치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뭔가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들고 비밀을 고백하고 싶게 만드는 천사의 모습이고, 참차는 염소 뿔 한 쌍이 시시각각 길어지는 털북숭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끌려가는 참차는 도와달라며 악을 쓰며 소리치지만, 지브릴은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그곳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


지브릴의 꿈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자힐리아(이슬람 등장 이전의 무지의 시대)에서 소개되는 인물들과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인도 영화계에서 힌두교의 각종 신들을 연기했던 무신론자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가 아닌 이슬람교의 대천사 지브릴! 지브릴의 시선으로는 이 꿈속에서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그저 영화 속 한 장면과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여겨질 뿐인데, 난데없이 사람들이 자신을 소환시키는 것이 아닌가? 대천사의 역할과 그 외 여러 배역을 맡은 정말 꿈속에서나 가능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일단 이 웃기는 상황에서 어리둥절하기만 하고 꿈이 창조한 자아가 느끼는 두려움에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헛일이다. 거기에다가 유일신교냐 단일신교냐 판단해 달라는 데 미칠 지경이다. 자신은 그저 악몽에 시달리는 멍청한 배우일 뿐인데, 뭘 알겠다고 자꾸만 사람들이 답을 원하는 건지 괴롭기만 하다. 환상과 환상을 오가고 신기루가 신기루를 덮쳤다. 여러 영상이 나타나 그의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 버리는 통에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가슴에는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지브릴은 현실에서 자신이 믿음을 버린 것을 벌하려고 미치게 만들려는 것인가라는 두려움과 함께 무력함과 무지함을 느낄 뿐이다.

루슈디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아랍과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장면 하나만 얘기하자면, 지브릴의 꿈속에서 등장한 장면인데, 알라트(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의 여신)가 번개 창에 맞고 거꾸로 내리꽂히면서 머리가 산산이 터지고 검은 얼룩만 남기며 죽음과 함께 ‘시간’의 종언이 선포된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시대 인물과 이란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인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을 적절하게 섞은 것인데, 이 혁명으로 많은 이민자가 발생했고 불법 이민자로 몰려 체포되어 불법 구금까지 당한 참차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참차는 누가 봐도 사람의 말 대신 “매애애애!” 소리를 내는 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한 데다가 이민국 요원에게 온갖 추행과 군홧발에 짓밟히는 공포의 세계가 펼쳐진 지금, 이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몸마저 부들부들 떨릴 만큼 추운 곳에 감금되어 비참함에 빠져 있다. 이 지독한 모욕과 좌절감이 언제쯤에야 끝날지 도대체 어느 곳이 목적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한 그는 낙심천만한 상태에서 이민자의 하숙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이제 완전한 악마의 모습을 갖춘 뿔 달린 염소인간 그 자체였고 사람들은 징그러운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면 놀라 자빠지기 일쑤였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악마가 나타났다고 하겠지만 참차는 그저 억울할 뿐인데, 그런 참차에게 손길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동포들이었다.

운명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이기에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세계가 이렇게 나를 거부하게 만드는가. 이미 오래전에 전령했다고 믿었던 이 도시의 성문에서 이렇게 쫓겨나야 한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노릇이냐!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내 동포들을 까마득히 멀게만 생각했건만 이제 와서 다시 그들의 품속으로 내던지다니 이 얼마나 비열하고 속 좁은 짓이냐! (p. 392)

하숙집의 높은 다락방에서 지내게 된 참차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밤거리를 순찰하는 공격 준비가 된 민병대, 촛불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미움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곳곳에 있는 공격성을 가진 성난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참차는 꿈속에서나 봤던 악마의 모습이 따로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향살이하는 이민자들이 뒤죽박죽 변환의 과정에서 얻은 상실감도 보았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 고향의 푸른 물길은 사라지고, 느긋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조차 없는 귀신 도깨비 나라 같은 곳에서 집안의 문은 죄다 걸어 잠그고 기도나 올리는 것조차 모자라 자식들은 모국어를 쓰지 않으며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진짜 현실을 바라본다. 끝내 참차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만물은 정해진 운명의 쇠사슬에 매여 있다.”라고 말한 고대 로마 시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분명 탓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악몽에서 깨어나도 근본적인 상황은 똑같았다. 반평생 인도 땅을 벗어나려 애써오며 진짜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던 참차는 이제 꿈과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쓰디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일까.

주제 의식이 분명하면서도 무거운 이 소설은 툭 하고 내뱉듯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도 실존 인물과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기에 허투루 읽어내리기가 어렵다. 저자의 익살스러움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의 유머는 절대 가볍지 않다. 끈적한 공기와 열기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질식할 것만 같은 공간에서 깨달음과 동시에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던 이의 심정은 도리어 처연한 가을바람 같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불경스럽게 다뤘다며 작가의 목에 수십억의 현상금이 걸리고, 불태워진 이 책을 비롯해 루슈디가 이 세상에 내보인 소설들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끔찍한 공포와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삶 또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쾌함과 동시에 착잡함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지브릴이 꿈속에서 천사들조차 그 너머로 나갈 수 없다고 하는 낙원의 경계에 있는 로테나무의 가지를 끝내 붙잡지 못한 채 꿈속에서 시를 노래하는 것처럼 그는 글을 써 내려갔으리라.

로테나무의 가지를 붙잡으려 하고, 그러나 놓치고, 내리꽂히고, 철퍼덕.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죽을 수도 없고, 지옥에서 조용한 유혹의 시를 노래했다. (p. 146)

소설 속 인물의 삶이 전부 작가의 삶을 비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과 함께 같은 땅을 밟고, 뛰어놀고, 역사를 목격했으며, 분노를 감출 수 없었고, 말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그 땅을 떠난,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삶을 조용히 비추는 조그마한 공간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읽게 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왜 고향을 등지고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려 무언가 잃어버렸지만 찾을 수 없이 헤매야만 하는 이들의 끝도 없는 우울함을 헤아려볼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연민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떠나 개인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감명 깊게 다가온 가장 큰 이유를 말해보자면, 그는 온갖 일에 휩쓸리면서 저항할 수 없던 상황을 겪으면서도 분노를 비난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말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였던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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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17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게도 저도 자꾸만 참치나 참자로 읽게 되네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즐거운 독서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곰돌이 2026-02-17 22:32   좋아요 0 | URL
참차로 읽기까지 참치와 참자를 거쳐야 하는 건 아마 저와 잉크냄새님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그쵸? ㅎㅎ 잉크냄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악마의 시 1> 중에서...

생각해봐, 스푸노, 그려보라고, 도시락 서른 개 마흔 개를 담은 길쭉한 나무 쟁반을 머리에 이고, 기차가 멈출 때마다 일 분 이내로 다녀오지 못하면 기차를 놓치고, 그때는 트럭 버스 스쿠터 자전거 기타 등등을 요리조리 피하며 전속력으로 하나둘, 하나둘, 도시락이오, 도시락, 자, 도시락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장마철에 기차가 고장나면 철도를 따라 냅다 달리거나 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게다가 불량배들이 있어서, 살라드 바바, 정말이야, 조직적인 도시락 도둑패였는데, 워낙 굶주린 도시니까 어쩌겠나, 하지만 우린 놈들을 너끈히 처리했지, 우린 어디든 없는데가 없고 무엇이든 모르는 게 없었으니, 어떤 도둑인들 우리 눈과 귀를 피할 수 있었겠나, 경찰을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우리 스스로 동료들을 돌봐줬으니까. - P37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브릴 파리슈타가 살라딘 참차에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려면 우선 죽어야 해. 나야뭐 반쯤 죽었을 뿐이지만 그런 일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병원과 비행기에서 말이야, 합산하면 한 번은 죽은 셈이지. 그러니까 스푸노, 친구. 지금 여기 빌라예트의 진짜 런던에서 자네 앞에 서 있는 나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새사람이라고, 스푸노, 이거야말로 기차게 멋진 일이잖아?" - P57

지니가 소리쳤다. "입 닥쳐! 그런 얘기는 뭣하러 해? 안 그래도 이사람은 우리를 무슨 야만인이나 열등한 인종처럼 생각하는데."
한 가게에서는 근처 크리슈나 사원에서 태울 백단향과 함께 분홍색과 흰색 에나멜을 바른, 삼라만상을 볼 수 있다는 ‘크리슈나의 눈’을 팔았다. 부펜이 말했다. "봐야 될 게 너무 많죠. 그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 P92

보름달이 진 후 동트기 직전의 어둠, 바로 이때가 그들이 나타날 순간이다. 굽이치는 돛, 번뜩이는 노, 기함의 뱃머리에 우뚝 선 정복자, 따개비가 즐비한 나무 방파제와 뒤집어놓은 몇 척의 경주용 보트 사이로 덮쳐오는 함대.-오, 한때는 나도 많은 일을 볼 수 있었지, 옛날부터 그 능력을 가졌으니, 환상을 보는 눈을. 정복자는 코를 덮는 쇠붙이가 달리고 끝이 뾰족한 투구를 쓰고 그녀의 집 앞문으로 들어서고, 케이크 스탠드와 등받이 덮개를 씌운 소파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고, 마치 이 추억과 갈망의 집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메아리처럼, 그러다가 고요해진다. 무덤처럼. - P205

참차는 생각했다. 우리는 높이 오르려고 노력하지만 천성이 우리를 배반한다. 왕관을 얻으려 하는 어릿광대. 벅찬 슬픔이 밀려왔다. 한떄는 나도 더 명랑하고 더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지. 그러나 이제 내 혈관 속엔 검은 물이 흐른다. - P263

이 임시 고향에서는 밤낮없이 중앙난방을 최고 온도에 맞춰놓고 창문도 꼭꼭 닫아놓는다. 망명객은 데시의 건조한 더위를 잊지 못하므로 이렇게 흉내라도 내야 한다. 마치 갓 구운 차파티에서 버터가 떨어지듯 달빛마저 뜨겁게 뚝뚝 떨어지는 그곳, 과거의 땅 미래의 땅. 그리운 땅이여, 해님과 달님은 남성이되 그들의 뜨겁고 감미로운 빛에는 여성의 이름이 붙는 그곳이여. 밤이 되어 망명객이 커튼을 가르면 낯선 달빛이 방안으로 스며들고 그 차가움은 쇠못처럼 눈을 찌른다. - P320

잔디밭에 떨어진 알라트의 시체는 차츰 오그라들어 이내 검은 얼룩만 남는다. 그리고 데시의 수도인 이 도시의 모든 시계가 일제히 종을 울리는데, 열두 번을 넘어, 스물네 번을 넘어, 천 번하고도 한 번을 넘어, ‘시간’의 종언을 선포하며 때를 알린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각, 돌아온 망명객의 시각, 물이 포도주를 이겨낸 승리의 시각, 이맘의 ‘비非시간’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각. - P331

그는 오비디우스를 버리고 루크레티우스를 선택했다. 변하기 쉬운 영혼, 만물의 가변성, 자아, 그 모든 것.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살면서 많이 달라져 아예 타자가 될 수도 있다. 역사로부터 분리되어 개별적 존재가 된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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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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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땐 세상이 그 어느 것도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만 같다는 억한 심정이 든다. 좁아진 시야 속에서 방황하는 이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괜한 원망을 해 보기도 한다. 이 책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 유독 시리고 아픈 날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공감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삶의 어떤 부분이 지나가고 있음을 진지하게 느끼는 동안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지금의 나를 응원하며.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이다. 필명이다. 똑같이 두툼한 책 두 권이 희한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년에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생일을 핑계 삼아 딱 한 권만 구매한 것이 바로 이 <언어의 무게>인데,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의미에 이끌렸는지 손이 가는 대로 생각 없이 집어 들어 펼쳐봤다. 대단히 긴 시간이 흐른 것만은 아님에도 이 책을 받아봤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때는 조금은 의미심장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책을 집어삼키면서 괴로움의 시간을 죽이고 또 죽이는 용도로 희생시켰다.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느꼈다. 늘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 마음의 무게가 소리도 없이 증발해 버리기라도 했는지, 안개가 걷힌 것처럼 서서히 사람과 사물이 보인다는 것을. 실은 변한 건 없지만 마음이 단단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헛된 수고로만 그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했다는 것, 나의 노력이 드러나는 이 순간에 괜한 뿌듯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익숙하기만 한 소리와 그 울림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듣는 순간, 그동안 이 울림과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깨닫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다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헤아려본다.

계단에 들어서서 여권을 넘기다가 자기 사진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본 것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개인 서재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사진이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다시 열린 어떤 남자의 모습이었다. (p. 7)

마치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 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나 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 여길 만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까지도…. 마음에 끌리는 문장이 많아 방지턱을 넘기 전 속도를 줄이는 자동차처럼 빠져들어 읽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하기를 반복해야만 했고, 그 덕분에 문학적 매력을 느끼면서 느긋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인공 레이랜드의 삶의 여정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읽었는지 남은 부분의 두께를 종종 체크해 볼 만큼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는 갤러리를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사람의 마음처럼, 매혹적인 문장을 즐기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하여 읽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찾은 그 순간의 안도감과 펑펑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 곳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길을 걷는 고요함 속에서 찾은 생의 경이로움과도 같은 감정을 오롯이 담기 위하여 단어 하나에도 공을 들이고 고심하는 이의 마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 섬세함으로 가득한 책이 불어넣어 주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게 다 씻겨 내려간 것만 같은 이 깨끗함에 정신이 맑아져 그동안 움켜잡고 한 발짝 내딛지 못해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니 말이다. 최소한의 어휘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글에서 얻는 감동과는 또 다른 형태로 마음을 붙잡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레이랜드는 언제나 단어들에만 묻혀 산다. 문학적 요소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것을 이어받은 단어가 금방이라도 그 순간의 풍경을 눈앞에 그려지게 만들기 위한 멈추지 않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번역가이자 출판사 사장인 그는 어릴 적 삼촌에게서 들은 아라비아어를 듣고 마법에 걸린 듯 새롭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한 눈빛을 보였던 꼬맹이였다. 언어의 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자 특별하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으로 자란 그가 61세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음과 동시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글로 담았고, 그들은 다시 레이랜드의 공간을 채우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알고 겪고 나서야 아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새로 시작한다기보다는 정리의 시간에 가까웠을 그에게 또 한 번의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그의 검사 결과가 오진이라는 것. 다시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아진 것이다. 놀라우면서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행복한 감정으로 마치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제껏 살아온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자연을 더 경험하고 무더기로 사들인 책은 바닥에 쌓였으며 필사적으로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을 이어 나갔다. 예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을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지금 사는 삶이 바라던 삶인지, 상상하던 삶인지를.

이 소설은 뭐라도 적어 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규정 검토를 하는 것이 업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을 가진 건조한 단어와 더 가까운 사람이기에 과거의 기억을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게 해줄 단어를 생각해 보거나, 아니면 떠올리더라도 뭔가 새로운 단어를 고민하는 경험은 드문 일이다. 그런 나마저도 무엇이든 적어 보고 싶게 만들었다. 언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자극이 되었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나만의 글로 적는다는 것이 어려운 행위로 여겨지는 이들에게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묘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레이랜드가 움켜쥔 펜 끝에서 떨어져 나오는 글자들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삶의 회한을 통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마음에서 한 걸음 나아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심적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다.


이 소설 안에는 바흐의 곡이 많이 등장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계속해서 떠올리는 레이랜드의 모습에서 내가 배경음악을 선택해 볼 수 있다면, 루이스 미겔(Luis Miguel)의 Hasta Que Me Olvides(당신이 날 잊을 때까지)를 고르고 싶다. 침착하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내였던 리비아.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인 트리에스테 집에서 제일 높은 층계에 나란히 앉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언어를 고민하는 두 사람의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이었고 로맨틱했다.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조금은 빛이 바랜 보석함에서 꺼내보는 그 순간들을 좀 더 깊게,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에 맞는 단어를 고심하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옛 시절의 감성이 느껴지는 루이스 미겔의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배경으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애틋함을 담아. 리비아가 고른 화려한 샹들리에보다도 젊음으로 반짝이던 그 시간을 떠올려보는 동안 자유에 제한받지 않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레이랜드가 이제는 번잡하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현재를 잃어가며 무엇을 느껴야 했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실감했을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괴롭고 나아질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것들을 철저히 단속하며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알맹이 없이 바깥세상에서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죽여야만 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나로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지치고 절망도 하게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국엔 방향을 틀어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게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있음을 느껴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데, 잠시라도 개인의 일상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다시금 살아있음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순리대로 연결해 보며 그간의 여정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레이랜드의 침잠하지 않은 감성과 특정한 발음과 말의 울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생각하는 세심함과 집요함은 그의 내면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마저 끄집어 올렸다. 특별한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욕심이라기보다는 그 언어를 나눴던 대상이 특별하였기에 다른 그 무엇과 구별된 언어를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레이랜드의 삶의 순간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중압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오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면에 이어 바깥으로 방향을 틀게 할 것이며 주변을 둘러보도록 할 것이다.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더 열어 보이고픈 욕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드러내 보이는 것에 서툴다면,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말이 없는 침묵으로 평온함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굳이 언어를 통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안타까움의 표정을 읽는 것으로도 침묵의 공간을 애틋함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으니까! 나와 당신 모두가 발견의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레이랜드의 삶 위주로 적어보았지만, 각자의 언어로 삶을 이야기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레이랜드는 자기 삶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에 푹 빠져본다. 이 모든 게 다 지나갔다는 걸 잊은 듯이. 시간으로 엮인 끈을 더 가까이 잡아당겨본다. 언어와 기억이 서로 얽히면서 증발하지 않고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이 남았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찾은 이 아름다움은 레이랜드에게 현재 주어진 삶을 지탱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삶을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 삶을 만들어가는 그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

자기 인생의 시간에 대한 질문을 새로 던져야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시간을 마주하려고 이곳에 왔으니까.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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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2-09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꽤나 인상깊게 읽었던지라 이 책을 구입해뒀었어요. 근데 책 두께가 상당하다보니 쉽게 손이 가질 않아 계속 바라만보고 있었어요.
이 책은 특히나 제목부터가 파스칼 메르시어 작가가 어떤 문체로 썼을지 좀 상상이 간달까요? 암튼 곰돌이 님의 리뷰를 읽다 보니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곰돌이 2026-02-09 07:09   좋아요 2 | URL
주인공 레이랜드와 그 외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기가 막히도록 좋더라고요. 일기장으로 가야 할 이야기들이 자꾸만 튀어나오는 바람에 지우고 또 지워야만 했어요. 덕분에 저의 일기장이 오랜만에 주인과 상봉했다는 해피엔딩! 이런 시간을 갖도록 해주는 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졌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고요. 대신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꺼운 책에 담긴 긴 이야기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오랜 시간을 들여 읽기까지 하면서 정작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들어주고, 귀 기울여주지 못했다는 게... 나중에 언어의 무게 속 길고 긴(?) 여정에 책나무님도 탑승하시게 되면 반가운 마음으로 마중 나갈게요! ㅋㅋ
 

<언어의 무게> 중에서...

계단에 들어서서 여권을 넘기다가 자기 사진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본 것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개인 서재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사진이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다시 열린 어떤 남자의 모습이었다. - P7

유리창 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버티려고 꽉 잡는 게 아니었고, 이제 안개에 대고 시험 삼아 해보는 말도 망설임이나 복잡함에 대한 불안 없이 평소처럼 물흐르듯 가볍고 경쾌한 기쁨을 드러냈다. 평생 지속됐고, 그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큰 행복을 의미했던 가벼움과 기쁨이었다. - P36

사랑하는 사이먼, 너는 늘 강하고 경탄스러운 아이였고, 아무도 모르게 학교와 부모님 집을 떠나서 대도시의 불빛과 그 아래 다니는 기차로 도망친 소년이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진기하며 위험한 의지인가! 도박꾼의 의지다! 두려움에 떨 때도 많겠지만 얼마나 큰 자신감이 필요한 일인가! 네가 이렇듯 뜨겁고 정신 나간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바탕이 되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불태워서 너 자신의 단어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펜을 잡길 바란다. - P46

한번은 리비아가 집에 돌아와서, 패트가 음식을 가져다준 후에 구름이 걷히고 별이 나타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나는 하늘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 레이랜드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나쁜놈. 단테의 <신곡> 지옥편 마지막 장면이잖아.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에서 나와서 드디어 별들을 다시 볼 때 말이야." 그러고 책을 가지고 와서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사람 안에는 다른 삶이 있어." 언젠가 소피아가 한 말이었다. - P134

"뭔가 다른 의미에서는, 더 깊은 의미에서는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네.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에 뭘 해야 하지? 이제 ‘중요한’ 건 뭘까? 번역을 다시 시작하자 약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네. 이 질문에 내포된 절망적인 불안감이 문장을번역할수록 뒤로 물러나고, 차분하고 명확한 감정만 남은 거지.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중요한 것은 내가 제일 즐겁게 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즉 올바른 언어를 찾는 일이었네. 이 감정이 흔들리지 않고 확고했다는 뜻은 아닐세. 정신 나간 짓을 많이 했다네. 하루 종일 배를 타기도 하고, 폭우가 내리는 바깥으로 나가기도 하고, 더는 읽지 못할 책을 산더미처럼 사들이기도 하고,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했지. 하지만 언제나 다시, 특히 밤이 되면 항상 파베세의 책으로 돌아왔네. 아침 여명이면 책상에 앉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언어와 함께 보내리라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네." - P219

"쉼표가 중요하군. 없애면 유치하게 들리네. 짧고 건조해. 그게 끝이야. 사실 의미가 없지. 잊힌 모든 기억이 어떻게 풍요로움에 도움이 되겠나? 그렇다면 그건 전혀 모르는, 알 수 없는 풍요로움일세. 그게 어떻게 풍요로움이 되겠어? 쉼표는 모든 것을 바꾸네. 추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이 추억인지 우리는 그제야 알게 돼. 그리고 쉼표 뒤에서야 우리가 이 보물을 잊고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기억하지. 또한 쉼표에 내포된 망설임은 잊어버린 이 보물을 추억을 통해 다시 반복하라는 요청으로도 익히네. 그러면 방향을 제시해주는 깊은 문장이지. 진부하고 단순한 문장을 쉼표가 위대한 문장으로 만드네." - P237

타인의 소망이 자기 자신의 의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런 일도 있었다. 타인의 단호함이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찰을 던져주므로. - P340

소피아가 구원의 소식을 들고 그의 집으로 달려온지 이틀 후, 레이랜드는 기차를 타고 밀라노로 가서 오랫동안 대성당에 앉아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여서 저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위하고 있었다. 레이랜드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오르간으로 바흐를 연주했다. 바흐를 이렇게 들어본 적이 있던가? 이렇게 내면이 울린 적이 있나? - P342

온갖 폭포, 갈등의 다급한 폭포. 나는 이게 어떤 모습이어야할지 알 고 있었고, 모든 것은 이론의 여지 없이 저절로 일어났답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닫고 무척 행복했지요. 내 안의 풍경을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더라는 뜻이에요. 숨어서 침묵하던 지식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식이 됐어요. 추상적이 아니라 경험으로 들어와서 영향을 끼치는 지식이었어요. 내가 첫 상상력과 문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각성, 멈출 수 없는 각성과도 같았고, 나는 더는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 P345

닳은 느낌이엇네. 많은 생각과 감정, 단어들을 너무 많이 찾다가 닳아버린 느낌. 당시에 나는 사십 대였고 이제 곧 예순이네. 내가 그때와 같은 사람인지 그사이에 달라졌는지 묻는 건 의미가 없어. 이런 말은 친숙한 동시에 낯설고, 놀라운 동시에 권태로운 그 중요한 무언가를 다시 느끼게 하지 못하니까. - P363

"작고 초라한 접수대 뒤에서 나도 일종의 모자이크에 열중했어. 단어들의 모자이크였지. 어두운 예배당의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모자이크를 볼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네. 그 모자이크는, 그러니까 문장과 텍스트는 누가 알아채든 아니든 그냥 ‘옳아야’ 했지. 지금도 번역을 할 때면 나는 어두운 예배당에 있는 것과 같아. 시정으로 가득한, 도드라진 현재의 순간을 경험하네. 그러다가 번역이 출간되어 세상에 공개되면, 예배당의 어둠을 떠나 현란한 빛속으로 나오면 거의 유감이라고 느낄 때도 이따금 있지. 정신 나간소리 아닌가?" "아니, 전혀 아니야." 디 로시가 대답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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