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편적으로만 기억한다. 일부러 잊으려 했거나 현실 부정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정신이 없을 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야가 제한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대신 원래부터 알던 것이 흐릿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이곳에서 산 지도 이제는 꽤 오래되었다. 나도 내가 더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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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어머니는 언제나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니, 루피?"
"당연하지. 손님이 없으면 그래. 왜 안 되는데?" - P38

비명소리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가운데 남자의 몸이 튀고, 경련하고, 밧줄 속에서 뒤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엎드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저들은 왜 멈추지 않는 걸까!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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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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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누리고 즐겨 온 모든 것이 계급, 인종차별, 성 소수자, 성별 등의 따라 누군가에게는 ‘투쟁’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과 결국 그 ‘외침’으로 역사적 성과를 만드는 사회문제까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나는 자신의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분투하며 사는지,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나의 본질을 얼마나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지의 대해서도 궁금해졌다.(나를 구축한 배경 속에서 수치스러움에 묻어두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글쎄, 솔직함으로 털어놓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누군가는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조금 머뭇거릴 것 같다.


(P. 188) 나 자신을 교육 체계로부터 축출하지 않으려면 - 혹은 축출당하지 않으려면 - 내 가족과 내 세계로부터 나 자신을 축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영역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 충돌없이 이 두 세계에 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자신의 운명을 벗어났다는 기쁨에 후회의 자리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디디에 에리봉. 자신을 이기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글쎄, 나는 그렇게까지 이기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분리’된 삶 속에서 저자의 가족들이 느꼈을 감정은 또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가슴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자신의 가족들을 품은 채 살지 않았을까?

그는 요구하지 않는 침묵이 당연했던 배경의 삶 속, ‘낙인’찍혀버린 자신에게 앞으로 펼쳐질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에도 그에 맞서 실천의 원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분투한 노력하는 한 사람이었을 뿐. 고백하자면 나란 인간은 나의 ‘재발명’ 자체를 인식하며 살지 못한 주어진 일상에 굴복하여 받아들이는 것에 머물러있는 사람이다(물론, 체념에 가까운 받아들임은 아니다).


가족들이 있는 랭스를 떠났지만, 자신은 탈출이라 표현했던 그들의 삶을 측은하게 바라보고(계급이 주는 결말은 늘 재생산되는 현실의 씁쓸함이 담긴), 결국 나의 근간이 되어 준 ‘랭스’로 되돌아가 뒤늦게 깨달은 것들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며 수치심을 자긍심으로 바꾼 디디에 에리봉이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는 이미 정해져 있는 그 운명의 삶 속에서 자식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당연한 한계가 있었던 거니까.


우리는 겪어보지 않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책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갖는다. 물론 ‘깨달음’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게 하는 그 힘은 오롯이 나 자신이 동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는 나의 기준으로 어려운 용어들이 있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책이 만들어내는 효용적 가치를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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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은 과거로부터 나온 인용이다. 그것은 이전에 수많은 발화자에 의해 반복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장 주네의 시구가 잘 표현하고 있듯, 그것은
"시대 깊숙이에서 온, 현기증 나는 단어"이다. - P226

‘인식론적 특권‘이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의 시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할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의 정체에 관해 확보한 지식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방식과 관련된다. - P239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따라서 우리는 표명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표명되고 재창조된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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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을 읽는다>

기온이 어제는 꽤 높아서 드라이브의 유혹에 슬슬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가는 나. 이럴 땐 빠른 결정이 답이지. 반일연가를 내고 미리 모아 둔 책을 몇 권 친구한테 나눔도 하고 그 덕에 귀여운 자동차 키케이스도 받고 신나게 집에 와서 먼지와 함께 했다. 쌓인 먼지 보내기가 뭐가 그렇게 아쉽다고 여태 미뤘다가 마음먹고 청소를 한 것이다. 그 참에 책 정리까지!! (뿌듯)

새벽 일찍 일어나는 주말. 내가 책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그 시간. 늦은 저녁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지는 감성이 샘솟는 다소 위험하기도 한 이 새벽에 눈을 뜨고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감사하다. 이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참 감사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인데 현재의 만족을 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고통이나 밀려오는 무력감을 예전보다는 금방 증발시켜 날려버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어서 그럭저럭 다스릴 수 있음에 가까워졌긴 했다. 하지만 완성형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럴 땐 나름의 수고가 따른다. ‘ 잠시 우울감이 드는 것뿐이다. 사실 별거 아니다. 이 정도로 삶에 대한 상실감이나 무력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간다.’ 생각나는 말들을 내 안에 욱여넣어 본다. 그조차도 도움이 되지 못할 때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에 나를 맡겨본다. ‘저 나무는 뿌리가 어마어마하게 깊겠지? 금세 단풍이 더 들었네? 이 새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굽이굽이 꽤 높아 보이는 저 산을 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그렇게 말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인데 동시대를 다룬 내용은 아니지만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압둘라자크 구르나와 노동자 계층에서 나고 자란 디디에 에리봉, 이 두 사람이 들려주는 메시지 속에서 때론 같은 울림을 느끼기도 한다. 고국을 떠나 식민 모국에서 살아가는 죄의식을 느꼈던 압둘라자크 구르나, 그리고 출세에 도움이 안 되는 벗어나고 싶은 고향을 떠나 ‘그들(브르주아지)‘이 사는 곳에서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과거를 탐구하는 디디에 에리봉. 그들의 이야기에서 머무르는 중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당연할지도…. 작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책은 나에게서 처음엔 거의 뭐랄까…. 생존 독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내 마음과 딱 들어맞는 문구를 보면 그날 하루는 정말 소중한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그게 그렇게 힘이 되더라. 그러면서 책에 더욱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나의 치유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유까지 얻는, 믿지 못할 감정에 맞닥뜨리게 되는 행운도 다시 얻었다. ‘배움’이란 참 중요하다는 걸 매 순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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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도 예쁘고 책들도 좋네요. 사진 확대해보니 반가운 책들이 많이 보이네요~! 책과 음악과 커피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휴가 ㅋ

곰돌이 2025-03-15 13:02   좋아요 1 | URL
총균쇠 읽고 바로 주문한 사피엔스는 지금 독서탑 가장 밑에 깔려서 도대체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어요. 벽돌책을 정말 벽돌로 두는 것 같아요 ㅋ 오늘은 날씨도 좋아 덩달아 더 좋은 주말이네요. 책과 음악과 커피와 함께 하기 딱입니다 :)

transient-guest 2025-03-1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님의 방 같아요 ㅎㅎ 음악과 독서 참 좋은데 주말 이른 새벽이라면 더더욱!

곰돌이 2025-03-15 15:33   좋아요 1 | URL
정리의 보람이 있네요. 희희 :) 새벽이 주는 고요함은 나만의 사색 시간으로 참 좋은 것 같아요. 그 날 하루의 시작을 차분하게 열 수 있게 하는데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transient-guest 2025-03-16 00:51   좋아요 0 | URL
저도 주말엔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책보고 운동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