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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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물론, 평범의 색을 띠는 이야기들도 나 자신이 살아온 결과 다른 경우에는 ‘아, 이런 일도 생길 수 있구나. 아, 이런 감정이 들 수가 있겠구나.’ 할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자신의 민낯을 확인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있으므로 이 책 속의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어느 하나 낯선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을 빗겨 나갈 것이라 장담하지는 못할 것 같다.

<각각의 계절>은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사슴벌레식 문답>을 읽어내려가면서 ‘이해‘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스친다. 나 아닌 누군가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이해했는지, 이해하려 했는지를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가장 취약했던, 그리고 놓치고 지냈던 부분이었기에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 어딘가가 ‘콕‘하고 찍히는 것 같았다.

(P.36)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 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빛나던 청춘이었던 네 명의 친구들처럼 각자의 삶에 녹아들며 살다가 시간이 흘러 반짝이던 그때를 떠올리는 일이 복장을 짓찧는 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각각의 계절들을 각각의 사정들로 살아가기에 이 이야기 또한 각각의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여러 감정이 훑고 간 이후, 퍼석한 낙엽처럼 공허해진 나의 마음을 발견한다. 그동안 쏟아부은 감정들에 신물이 날 만큼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때, 상처받은 줄만 알았던 날들도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사실에 뒤늦게 밀려오는 괴란쩍음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싶을 때, 평화로운 오늘이 절실할 때, 이 고요함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그 조심하느라 온갖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한 것도 없이 나의 체력이 바닥이 되었을 때. 그럴 때 나를 위한 쉼이나 여행을 떠올려 봤어도 누군가를 위한 여행을 떠올리면서 살지 못했다. 끊어버리고 싶은 생각만 했었다. 아, 정말 얼마나 더 이기적일 수 있을까 싶다.

그렇기에 두 번째 이야기 <실버들 만천사>는 내 마음속에 잔파동을 일으켰다.
남편과의 이혼 후, 딸 채운과 떨어져 지내는 반희.
어느 날 그녀는 여행을 가자는 딸의 전화를 받는다.

(P. 49) 한적한 데 가서 가만히 숨만 쉬다 오면 괜찮지 않을까?

살기 위해서 도망쳐 나왔다. 집을.
딸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엮인 실을 끊고 감정의 거리를 두고 싶었던 반희.

(P. 75)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다 폭력 같아. 모욕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몰랐으면 하는 마음, 지나쳐주길 바라는 마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심경으로 서로 바라봤을까?

언제라도 곁을 떠나버릴 것 같은 엄마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살았던, 한순간에 터져버린 그 응어리에 눈물도 안 나오고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딸 채운과 엄마 반희의 엉킨 줄만 알았던, 그러나 끊어진 적조차 없었던 그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더 촘촘히 이어지게 한 그날의 여행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비참함과 애달픔이 느껴지지만 왜 인지 다 읽고 난 후에는 시원한 맥주를 간절하게 만든다. 엄마와의 맥주 한잔.

(P. 79) 사랑해서 얻는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때론, 환멸감이 들어 아웅다웅하며 사는 게 다 부질없고, 무가치하다 느끼며, 삶 자체를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삶을 너무나 쉽게 얕잡아 보며 우습고 시시하다 느꼈던 사소한 모든 것들이, 실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일이 기어코 나를 관통하고 만다. 그제야 이 보통의 일상만큼 간절한 것이 또 없어지더라.

어느 날, 언니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다.
˝ 너,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네 눈치 보고 지내는지 알아?˝
그 순간 머리에 정통으로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적 기억 속, 자라고 하면 자고, 먹으라고 하면 먹던 순하디순했던 부드러움이 물메기에 버금가던 그 시절에서 나의 시계가 멈췄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공부, 시험, 직장, 여행, 연애로 꿰어 넣고 있다가 세월의 흐름은 망각한 채, 멈췄던 시계를 내 맘대로 작동시켜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의 삶에 Ctrl+C , Ctrl+V 를 해버렸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쨌든 다 내 삶의 조각들이니까 자연스럽게 붙여지고 이어져 나갈 줄 알았나 보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만큼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것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편에서 오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지냈던 동생 숙이를 들여다보니 또 가슴이 따끔해졌다.
내가 그동안 받아먹기만 했을 잘 닦여진 정성과 보살핌들이 단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니란 걸 모르고 지냈던 나에게 독침을 쏘는 듯했다.

(P.199)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짓누르는 무게에 도저히 ‘벗어남‘ 말고는 해답이 없을 것만 같았던 순간들도 돌이켜보니, 그나마 그런 나의 무게까지 떠받치고 있었던 희생을 택했던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점차 가벼워 질 수 있었다는 것을. 이마저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살다 보면 겪어보지 못한, 그래서 가늠도 안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그간 삶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것들과 세월의 경험에서 얻은 검열 안 된 자신감으로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자체 종결시키는 행위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무지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하고, 사람의 마음을 차게 식게 하는지를 큰 노력 없이도 조금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목격할 수 있다.

북적북적. 웅성웅성.
떨어진 모이를 주워 먹듯 자리 하나씩 차지해서 더는 주워 먹을 게 없어지면 ‘후두둑’하고 먼지와 불쾌함을 남기고 날아가 버리는 모습들을 바라본다. 때론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럼 곧이어 어디선가 다시 북적북적.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두둑’ 하고 먼지와 불쾌함만을 남기고 간 그 새의 고충과 사정은 읽지 못하는 저 이기심 좀 보라며, 두루두루 살피고 바라볼 줄 모르는 저 얕은 그릇 좀 보라며......
돌고 돈다. 그리고 잊히고 또 돌고 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는 자신의 아픔을 숨기며 지내다가 결국 신장암으로 사망한 ‘마리아’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위선을 목격한 한 여성이, 결국 자신도 그 위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또 산다.

(P. 114)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 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확실한 색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해하는 삶’에 가닿을 때, 섞이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은 그동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놓치고 있었던, 아니, 받기만 하고 못하고 지냈던 것. 더 솔직히 말하면 피하고도 싶었던 것.
바로 먼저 내미는 ‘손길’ 이었다.

딱히 정답을 내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각각의 계절>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나 혼자 잘나서 이룬 것 같은 모든 것들도 그 속에는 누군가의 포기와 좌절과 애달픔이 함께 있었고, 녹록지 않은 삶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준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힘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힘은 가족이다. 바보처럼 뒤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P. 241)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그 사람을,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던 그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땐 내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와 공감한 인물에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 책을 통해 느낀 감정이 미래의 내 모습에도 조금은 영향을 끼치게 될까?

뭐,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겠지......

(P.204)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 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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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거리며 늘어져 흔들리다 바람이 불면 펄럭이고 바람이 잦아들면 가라앉고 그늘이 드리우면 은은하게 시름에 잠긴 듯한 깃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리아는 불가해한 아름다움에 전율했고 마치 둘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레 첫아들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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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 먹을 것 놓고 대차게 한번 싸워보자. 서로 절대 덜어주거나 얹어주지 말고 짐승처럼 막 싸우면서 먹어보자.
그래, 좋다. 독하게 훈련해보자.
엄마, 힘들지? 이제 그만 내려갈까?
응, 내려가. - P67

채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먹을 거 놓고 마음껏 싸우지도 못하게 된 건 뭐땜에 그런 걸까?
음, 반희가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물고기랑 같은 이유겠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세상 뭐 다 이렇게 슬픈 얘기야. 젠장. 채운이 맥주를 벌컥 마시고 말했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반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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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칸을 메우듯이 차근차근 해나가는 그 과정이 난 좋아. 그러면서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아. - P24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이유가 뭐든 과정이 어떻든 시기가 언제든 우리는 이렇게 됐어. 삼십 년 동안 갖은 수를 써서 이렇게 되었어. 뭐 어쩔건데?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 P28

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말은 미안할 방법이 없다는, 돌이킬 도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행로 속에 존재했던 불가해한 구멍, 그 뼈아픈 결락에 대한 무지와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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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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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날.
나에게 전달된 양장 노트 한 권.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아서였을까?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영원할 거라 여기듯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절망의 가까움.
그것이 쓰게 만들었을까?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그 많은, 모든 것들을 들려주기엔 어느 하나도 빠트려질 것이 두렵고 아쉬운 마음이 쓰게 만들었을까?

가벼운 무게만큼이나 힘없이 흘려서 쓴 기록을 보니 피하고 싶었던 ‘그날’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었음을 가늠하며 그 순간 목구멍에 슬픔의 덩어리로 목이 메 차마, 더는 읽지 못하고 덮은 양장 노트를 가슴에 품고,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그날들’을 난 알아야 했기에, 알고 싶기에 다시 펼칠 수밖에 없었다.

두 눈 위로 펼쳐진 정사각형 때론 직사각형의 천장이 늘 마주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것처럼, 나의 세계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지냈을 그 ‘비참함’으로 농축된 나날을 겪었던 이들, 아니면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누군가 들엔 와 닿을 수밖에 없는 그 깊게 박힌 감정들을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시베리아 여행 중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래도록 누워 지냈다고 한다.
한 시절을 잘 건너왔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슬픔과 절망이 배인 씩씩함이 느껴졌다. 바랄 수 없는 것들을 결국엔 내려놓을 수 있게 한 용기를 다시금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정말 죽도록 노력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기록하지 못할 수많은 날의 좌절과 고통만큼, 죽도록 노력했으므로, 그렇게 했기에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P. 20) 매번 돌아오는 봄이 지난날의 봄이 아니듯이. 매번 돌아오는 꽃이 지난 계절의 꽃이 아니듯이. 언어적 문맥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날아오는 순간을. 그렇게 자기 개시의 순간이 활짝 펼쳐지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언제까지나 어리둥절한 채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 봄을 모른다. 오늘 나는 다시 꽃을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꽃의 또 다른 이름 앞에서 문득 울게 될 때까지.


켜켜이 쌓아가는 삶 속,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행복에 가려진 그늘과 불행이 막아놓은 빛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균형을 이루려고 할 때,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했던 그 찰나를 기억하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 과정의 고통과 회복의 기쁨을 모두 떠올리게 하는 음악.

책을 읽을 때 그 책과 어울릴만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읽는다. 그럼, 그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올 때,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어슴푸레 느꼈던 감정의 조각 조각들이 떠올려지곤 한다.
그렇기에 그 책을 기억하고, 그 음악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니 난 늘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을 때는 “Wilhelm Kempff”의 연주를 들었다.)

(P. 57) 애초에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오고 있는 타고난 울음을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진동을 통해 내 속에서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것이니까.

(P. 61) 노랫말과는 무관하게 어떤 인물을,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데, 이것들은 아주 모순되게도 바닥의 어둠과 천상의 환희를 동시에 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한 빛에 이를 수 있는지, 어떻게 그 희미한 불빛으로 어둡고 지친 누군가를 건져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죽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내게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늦은 새벽에 듣는 음악에서 타고 흘러오는 ‘그때의 기억들’이 있는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그 슬픔’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어떤 책은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싶게 하지만 어떤 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을, 내 삶에 덧대어 정리되지 않은 솔직한 내 감정들과 맞닿은 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케 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강요받지 않는, 요구하지 않는, 그래서 불편함 없이, 조바심 없이, 그녀가 보내는 따뜻한 손길에, 그 다정함에, 그 배려에 난 아주 좋았다. 때론 책을 읽다가 쏟아지는 낱말들에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그릇이 다 담아내지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으로, 이 책에서 나는 다정함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빛나는 낱말들이 천천히, 잔잔하게, 나와 속도를 같이 해주기 때문이다. 쉼표의 개수만큼 천천히...천천히...
사람마다 흘러가는 시간이 다르기에, 창문을 열어 어두운 방에 빛을 들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는 속도가 다르기에, 그래서 그것을 알아주는 듯, 겪어봤기에 조금은 안전하게 일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마음이 내게 감동을 줬던 것 같다.

(P. 77) 내 손목시계는 떠나왔던 곳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제부터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과거를 향해. 우리가 있었던 곳을 향해. 우리가 놓여 있었던 빛을 향해. 어둠을 향해.

(P. 106) 어제의 너는 죽고 싶었는데 오늘의 너는 내일을 계획하며 한 줄 더 써 내려간다. 작고 희미한 가능성이 되어. 이 봄의 새싹은 녹색이 아니라 검정이라고 쓰면서.


이 책을 소중한 사람들 머리맡에 놔두고 싶다.
잠들지 못하는 힘든 밤, 위안이 되어줄 만한 당신이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서, 이 순간만큼이라도 아무 부담 느끼지 말라고.
고요한 이 새벽을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못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렇게 놔두고 싶다.

다시 빛나는 얼굴로 만나자며.

(P. 224) 도착하는 순간에야 알 수 있는 것을,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매일의 책상 위에서. 삶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흐릿한 믿음에 의지한 채로, 모든 순간을 다시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알고 있는 이름을, 얼굴을, 표정을, 색깔을, 소리를, 거리를, 공간을 잊고. 마치 처음 본다는 듯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손가락과 심장으로. 순간속에서 순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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