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마주하게 된 사람들에게서, 우연히 포착한 사물의 움직임에서, 그리고 점점 그것들과 서서히 혹은 너무 빨리 멀어지거나 다가가지 못한 어느 한 구석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음에도 용기를 내고 삶을 더 잘 살아내고 싶게 만들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무엇으로 불려지길 원하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그토록 신경 쓰며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잘 하지 않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권여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다시 이런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단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8편의 단편으로 담아냈다.


한 사람의 내면으로 천천히 다가가 들여다 본 그들의 여정은, 낯선 거리감 속에서 마치 조금씩 반짝거리는 빛 줄기를 만난 듯 한 발 나아간 앞 날이 예상되는 누군가도 있었고, 세상과는 고립되어 자신은 겪어보지 못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통해 더욱 더 깊은 어둠으로만 빠져들어가는 누군가도 있었으며, 서글픈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세상에 뿌려진 수 많은 타인들을 만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감정들을 파고 들어가며 살아가야 했던 누군가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마주했다.

<모르는 영역> 편에 담긴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 속에서의 위태로움을 가까이에서 바라봤던 입장으로써 안타까움과 불안감을 가진 채 들여다 봐야 했지만, 서서히 느슨해지는 이들의 변화에 묘한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기에 괜시리 뭉클하기도 했다.

각자의 사정을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포기는 하지말라고 하는 듯,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심어주고 싶었던 노력과 애달팠던 마음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기쁨을 저버리지는 말라고 하는 듯.


물론, 때로는 포기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참 씁쓸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당장에 불행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예쁘고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 조심스럽게 뜯어보는 그 순간의 행복도 물론 좋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좋은가. 기대감을 가져본다는게.

그런데 나와 우리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 그들의 실제 음성이 들려오듯 그 감정 그대로 전달되는 공감의 글을 볼 때만큼 와닿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다시금 실감했다.


엄마가 떠넘기고 간 그 빚을 고스란히 받은 언니가, 또 다시 어린 동생인 소희에게 주고 떠나버린 이야기를 담은 <손톱> 편은 어린 소희에게 이 세상과 상황이 너무나 가혹했다.

어떻게든 또 감당하고 살아내야 했기에 남들 눈에는 모지락스럽게 보일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다.
먹는거 입는 거 줄이고 줄여서 돈만 미친듯이 벌고 살아야 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도대체 언제쯤에야 끝날지,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더 들어야 좀 나아지는건지 까마득하기만 한 소희의 이야기는 쉽게 다가가고 안아줄 수 없을만큼 조심스러웠다.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다쳤을 그녀에게 무슨 수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섣부른 위로는 소희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할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불쌍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가혹함을 줄까봐.

그러니 이 순간의 감정들을 담아 내는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자신과 닮은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던진 웃음에 같이 웃어주는 소희다.
어느 날 운 좋게 앉아서 갈 수 있었던 버스 안,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뜻하다’ 느끼며 이 순간의 좋음을 느껴보는 그런 소희다.


기대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 있듯이, 당장에 고통이 덜 한 삶, 덜 불행한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알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드러내기 보다는 덜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박탈감 느끼지 않도록 인간의 정신을 곰곰이 들여다 본 사람처럼 생각해주는 저자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용기가 생긴다.
이 용기가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잘 살고 싶어졌다.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그럼 그 바닥에 맞닿아진 채로 또 살아보자 생각하면서 표면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그냥 잘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 힘을 얻었다.
주어진 삶을 만끽하다가 괴로운 날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럼 그 삶 마저도 살자. 잘 살자. 더 잘 살아내보자.


그들은, 우리는,
비록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닐지라도 주어진 대로 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드러내기를 주저하며 덜어내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느꼈을 서글프고 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담아준, 또 그렇기에 쓰라린 마음으로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준, 하지만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음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아직 멀었다는 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홀가분함은 너무 가벼운 대신 밀려오는 분노와 서글픔은 가눌길 없이 묵직했다.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힌 느낌, 바삭하게 구워지는 과자처럼 겉은 점점 검고 단단해지는데 속은 끓는 시럽처럼 뜨거운 핏물이 휘도는 느낌. 겉과 속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하리. - P28

그게 무엇인지 알수 없지만 그에게 왔던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영영 지울 수도 없으리라고 그는 침울하게 생각했다.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