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정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1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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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윙윙대며 떠나지 않게 만드는 한 가족의 일상과 선택이 펼쳐진다. 저자 조너선 프랜즌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헤아려주지 못하고 살아온 이 가족 개개인의 마음을 ‘제대로’ 들어주고, 헤아려주고픈 생각인지 정말 집요하고 끈질기게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파고들며 글을 써 내려갔다. 누군가 내 삶에 대해 이토록 꿰뚫어 글을 써내려간다면? 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조금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견딜 수 없는 마음, 도무지 어쩌지 못하겠는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서인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에너지가 점점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끼기도 했고, 가족에게조차, 아니 가족이기에 나 자신을 숨기고 완벽하면서도 꽤 괜찮은 자식인 척했던 순간에서 여전히 떳떳할 수 없기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진실을 명확하게 볼 수 없었음에도 안다고 생각하며 행동했던 과거의 죄책감까지 밀려와서일 것이다.


“목조 창틀을 댄 유리문으로 비치는 빛은 잿빛일지언정 대초원의 낙관주의를 품고 있었다. 천 킬로미터 이내에는 대기를 교란할 바다가 없었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오래된 오크 나무의 자세는 돌발적이고, 야생적이고, 도도하여 영원을 내다보는 듯했다. 울타리 없는 세상에 대한 기억이 이들 가지에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노년을 즐기는 은퇴자들로 갑판마다 활기가 넘치는 럭셔리 크루즈를 타고 있는 남편 ‘앨프리드’와 아내 ‘이니드’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들이 사는 곳이자 고향인 미국 중서부에 있는 세인트주드에서 자식들과 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안락하고 편안한 인생을 누리고 사는 가족으로 여겨지지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극복해야 할 속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고단해 보이는 어깨에 두 손을 살포시 얹어 사람의 온기만 건네도 마음이 사르르 녹아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이니드와, 파킨슨병에 걸려 점점 더 인격이 황폐해져 가고 늘 상상도 못한 완전히 새롭고 낯선 실존 속에 내던져지는 삶의 연속인 앨프리드.

겉보기에는 서부의 온화한 날씨를 닮은 듯한 이니드는 동부 도시 출신의 남성과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우아한 결혼식과 피로연을 열어주길 기대했던 필라델피아의 잘나가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활약하고 있는 막내딸 ‘데니즈’가 몬트리올 출신의 키 작은 중년 유대인 셰프와 법원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처음으로 위에 탈이 났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딸의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말해 무엇할까.

부익부 빈익빈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둘째 아들 ‘칩’은 종신 교수직을 박탈당한 뒤, 개당 3달러 89센트였던 아보카도 다섯 개를 집어 들고는 이내 다시 내려놓고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악몽 속에서 지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안에 가격이 붙은 물건들은 유행을 내세우며 “지금은 쇼핑하러 갈 때야!!!”라고 외치도록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이런 허영심과 욕망이 들끓는 세상 속에서 여동생 데니즈에게 빌린 돈으로 불안감을 잠시 숨겨줄 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건강과 활기를 원하는 순간에 머물러 있는 할말하않 칩의 일상과 선택을 들여다보는 것을 시작으로 내 눈도 서서히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돈과, 돈 없는 삶의 치욕이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핸드폰과 양키 캡 모자와 SUV는 하나같이 고문이었다. 그가 탐을 내거나 시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 없는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 (p. 158)

사방에서 새로이 탄생한 백만장자들 수백만 명이 특별함을 누리겠다는 동일한 목표에 매진했다. 빅토리아시대의 완벽한 제품을 구입하고, 그 누구의 흔적도 없는 비탈에서 스키를 타고, 유명 셰프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고, 발자국 하나 없는 해변을 즐겼다. 게다가 돈은 없으면서도 완벽한 쿨함을 추구하는 젊은 미국인들이 수천만명이나 되었다. (p. 289)

취미생활 목적으로 650달러짜리, 그것도 겨우 650달러라면서 카메라와 장비를 사달라며 조르고 있는 아들을 포함해 세 아이 아빠이자 은행 중역인 원칙주의자 장남 ‘개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필요 없을 만큼 경제적 빈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중서부를 벗어나 쿨함을 장착하고, 이상적으로 균형 잡힌 가족의 모습을 만들고 유지하려 애쓰는 그의 삶은 어떨까? 대다수 서민의 시선에서는 넘치는 과잉으로 쾌감을 상실한 자가 한가하게 정신적 고민과 사투를 벌인다고 냉소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점점 갈수록 과민과 불안으로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운한 결혼 생활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인생을 읽었을 개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한 형태로 주고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얻게 된 해결되지 못하고 묵힌 감정들로 홀로 사투라도 벌이는 중인 걸까...

이 가족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잡지에서 할인 쿠폰을 오리는 엄마 이니드의 모습과 식료품점에서 감초와 함께 고른 ‘행운의 요정’ 인형을 산 둘째 아들 칩의 모습에서 지금 이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들은 단순히 재미와 당첨의 의미 이상의 삶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욕심이 자기 비하로 연결되는 모습과 함께 미래의 불안함을 잠재워줄 만한 요인이 어느 하나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버리지 못하는 희망을 품는 두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이 가족의 현 상황이 안타까웠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규정해서는 안 되며,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과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것 또한 차이가 있을 테지만 내 시선에는 그렇게 보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화도 다르고 소통 방식도 다른 것은 이 집만의 일이 아닌, 보통 가정의 모습일 거란 생각에 더 이입되어서인지 뭔가 계속 가슴이 저릿하게 만들었다. 특히, 서로에게 감정이 소진된 사람처럼 온기를 잃은 첫째 아들 개리와 아빠 앨프리드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좁은 공간 안에 질식할 듯한 무거운 공기만 꽉 채울 뿐,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수가 없었다.


“아빠는 삶에 만족하나요?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개리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물었다.
“개리, 나는 고통받고 있어......”
“많은 사람이 고통받죠. 그게 이유라면 좋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안쓰러워하고 싶다면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왜 엄마까지 끌어들이죠?”

“삶에는 그저 견뎌야만 하는 것이 있어.”
“그런 생각이라면 굳이 왜 사나요? 대체 뭘 기다리는 거예요?”
“나도 매일 그 질문을 한단다.”
“그럼 답은 뭔데요?”
“네 대답은 뭐냐? 너는 내가 뭘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부자의 표정이 읽힌다. 지난 과거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며 앨프리드와 정반대의 삶을 살겠다는 의식적인 결단을 내리고 지내온 듯한 개리는 자신이 아버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 있지도 않은 에너지를 억지로 쥐어짜면서까지 맞춰 가며 이룬 안정된 가정을 보란 듯이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한 개리의 몸부림과 대비되는 앨프리드의 담담하고 절제된 감정에서 독자가 스스로 공허함과 먹먹함을 느끼도록 표현한 부분이 이 소설의 압권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많이 참아주고 인내하며 살아왔을 테지만, 여전히 듣고 싶은 얘기에만 귀 기울이고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이 가족은 인내심을 가지고 조절을 해 봐도, 밥 한 끼 먹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이제는 억지로 맞추려 할 것도 없이 암묵적 합의를 통해 그들이 지내온 모습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각자의 생각과 감정들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허탈한 관계 속에서도 낙관적인 희망을 발견하게 된 나는 이들 가족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면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을 텐데, 이들은 분명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부인하고 밀어내 보지만, 가슴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기에 아프고 상처받는 것이 아닐까?

흘려보낸 것들 속에는 분명 다가가기 위한 노력과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끌어올린 용기, 그리고 역시나 변하지 않음을 구태여 눈으로 확인한 뒤 얻은 허탈한 마음까지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삶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쾌락과 자극을 좇기도 하고, 물질 지향적 삶에서 나름 충족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가치는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모두 다 안다. 알지만 흔들리고 죄책감을 느끼며 혼란을 겪는 사람들의 숨이 막힐 듯한 심경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저자는 한 가족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만한 이야기를 소리 내어 숨 쉬는 것조차 잠시 잊은 채 집요하게 파고들 듯 극도로 집중하며 보게 만든다. 눈이 몹시 뻐근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쾌감의 요인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싶다.

연약하면서도 역겹기도 한 극심한 내면의 고통과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인간은 결국 한 발자국 스스로 내딛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온전히 나로 살 수 없다는 서글픔을 뒤로 하고 나를 살리기 위한 삶의 내디딤의 시작일지라도 말이다.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는 것이 많았던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위안 삼아 이기적이었던 타이밍의 내가 취한 행동으로 사로잡히게 된 죄책감을 덜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건네지 않는가? 온전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나는 이 모습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부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새로운 삶의 기류와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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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낮 거장의 클래식 3
츠쯔졘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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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조부모님이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셔서 중학교 여름 방학 때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낯선 풍경과 내 집 같지 않은 잠자리, 그리고 생소한 벌레들 속에서 즐거움에만 들떠서 왁자지껄 나눴던 대화는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1박 2일 외박이라는 사실 자체에 잔뜩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오디오가 비어 있을 틈이 없던 중딩 넷이서 말 한마디 없이 조용했던 순간만큼은 또렷하다. 그건 셀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별을 봤던 꿈 같으면서도 생생한 그 순간이 중국 북방 서민의 삶을 담은 츠쯔젠의 <가장 짧은 낮>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떠올려졌다.

1년에 딱 하루 목욕을 하는 섣달 스무이렛날, 가족들을 위해 목욕물을 데우고 오수를 버리러 강가로 가는 수고를 해야만 했던 「깨끗한 물」에 등장하는 소년 ‘톈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부터 황혼의 끄트머리에서 두려움 없이 힘이 넘쳤던 시절을 그려보는 노인의 서글픈 정경까지... 이 책에 담긴 열여섯 편의 단편은 역사적 운명과 사람 간의 인연으로 얽혀 눈이 녹지 않은 길을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걸어가듯 놀란 가슴으로 늘 안심할 수 없는 불안감을 가진 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부터 특별한 사건 없이 그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잔잔하게 흐른다.

얼음이 녹으면서 진흙탕으로 변한 마을 길에 너도나도 주르륵 미끄러져 집마다 엄마들은 늘어난 빨랫감과 함께 닳아가는 비누가 여간 아까운 게 아니고, 오늘은 좀 다르려나 했지만 영락없이 미끄러져 바지와 책가방에 잔뜩 진흙이 묻은 바람에 또 한 소리 들을까 봐 들어오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눈치만 보는 남편의 모습.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의 형편과 사정이 달라 제각기 나름의 골치를 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밤이면 하늘에 별이 가득하니 아름답기만 하고, 언제나 눈이 다 녹을까 하소연하지만 금세 또 계절이 지나 서서히 따스한 바람도 불어오고 밭일을 위해 농기구 손질을 할 때가 돌아온다. 그 와중에 내 식구끼리도 뜻이 달라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토라지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로하고 감싼다. 그러니 고단한 삶도 살아지는가 보다.

아무것도 위로가 안 돼서 콧물 한 번 훌쩍이며 밖으로 나가면,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맑고 차가운 달빛이 토라진 마음을 슬쩍 녹여주는 마법을 부려준다. 눈앞에 그려지는 자연과 사람들의 입김, 그리고 아이들이 듣기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껄껄거리며 주고받는 어른들의 대화를 비롯해 숨기지 못하고 저절로 툭 튀어나오는 본심을 실감 나게 표현해서인지 읽는 맛이 좋았다. 사소한 말도 더 재미있게, 그것도 본인은 웃지도 않고 시치미 떼듯 담백하게 들려주니 피식피식 웃어댈 일이 종종 생겨났다.

아빠는 얼굴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데다 코에는 연륜이 다른 푸른콧물 두 가닥이 얼어붙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얼굴이 문드러진 것 같았다. (「깨끗한 물」, p. 25)

순박하지만, 눈치 없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매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목욕통을 고쳐 달라는 이웃집 과부의 부탁으로 나갔다가 그 집에 화장(火墻)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게 마음에 걸려 연통 안에 남은 재까지 파내주느라 재 범벅을 하고 돌아온 모습을 담은 문장인데, 날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보다 연륜이 다른 콧물이라니?! 앜ㅋㅋㅋㅋㅋ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쑤저광’의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얼음이 녹아 진흙탕으로 변한 마을 길에 미끄러지기 일쑤라 낡은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깔끔하고 멋지게 구두를 신고 중산복을 차려입고 다니는 쑤저광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 살아가니 자기네들처럼 수확 걱정은 없을 거라 이기죽거리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속사정은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에 학교에 공선대가 쳐들어와 축목장으로 하방 되어 작업복을 입고 돼지를 키웠던 그가 복권되어 다시 원래의 직위로 돌아왔건만, 급작스러운 출장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침울한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다 평소 몰래 쓴 시가 적힌 종이들을 뒤적거려 본다.

스스로 심사 위원이 되어 살아남아야 할 시와 총살당해야 할 시들을 판결했다. 그의 심사를 받아 살아남은 시는 다섯 수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판결한 시들을 팔이 잘린 비너스 상처럼 수기로 쓴 『납란사(納蘭詞)』 한 권과 함께 신문지로 싸서 복도에 있는 화로 속에 넣어버렸다. 파박-하는 소리와 함께 화로가 잠시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그의 재물들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한숨을 내쉬고 화로 곁을 떠난 쑤저광은 사무실로 돌아와 마른 나무처럼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해빙」, p. 75)

소자산계급 정서가 느껴지는 시와 함께 아궁이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욕망이 조금이라도 내비치는 시는 퇴폐적이라 태우고, 이건 이래서 태우고 저건 저래서 태우고 나니 남은 건 찬바람 도는 처량함뿐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 시절을 견디는 쑤저광을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억울해하거나 분노하고 시대를 비꼰다는 느낌은 크게 받지 못했다. 국가 시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오늘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촌 마을 사람들, 그리고 각자 처한 상황에서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과 말은 거칠어도 서로의 형편을 헤아리고 힘을 보태는 모습에 더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옛 우리 어른들의 삶을 들추어보듯 말이다. 애간장만 죽도록 녹이면서 아슬아슬하게 긴장하고 있다가 막상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한시름 놓고 이내 술 한 잔 마실 생각을 한다든지, 이웃에게 받은 배려에 당장은 고마운 마음이 커서 담배 한 보루라도 사서 갖다주려고 나왔다가 이내 본전 생각이 나서 도로 집으로 쓱 들어가 버리기도 하는 그런 서민의 삶 말이다.

동물과 교감하며 서로 측은지심을 갖는 이의 모습에 마음의 기름때가 벗겨지는 듯한 동화 같은 이야기부터 삶의 애환에 인간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글까지, 내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리운 시절과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기억이 더욱 마음 한편을 시리게 하는 계절이 와서인지 빈 공간이 유독 선명해진 탓에 생긴 허전함을, 열여섯 편의 단편을 애달파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동안 마음 온도가 높아져 시린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었다. (훌쩍)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독한 기운이 빠지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며, 자칫 지나쳐도 감성에만 치우칠 수 있다. 그런데 손으로 휘저으며 목욕통 속 물 온도를 마침맞도록 조절한 듯한 이야기가 골고루 담겨 있어서인지,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나에게는 딱 맞는 따뜻한 물에 몸을 푸~욱 담가 본 느낌이었다.

어둠에서는 손전등을 켜야 주변을 살필 수 있듯이, 여유롭고 화려함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삶을 헤아려보는 그녀의 넉넉한 마음이 읽히면서도 내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고 추스르느라 소홀했던 것들이 떠올라서인지 쌓아둔다고 소용은 없는데도 후회와 죄책감을 탁 털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님을 느낀다. 그래도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는 듯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이야기 덕분인지 잊지 못할 멋진 광경과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떠올려보는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신중하게 맥을 짚듯 무게를 실어 전하는 격언이 담긴 이야기 뒤로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를 담은 풍경과 함께 여러 사람의 모습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비춰주기에 꽤 많은 분량이지만 꾸역꾸역 읽어내야 할 일은 단연코 없었다. 이제는 기력도 예전만 못하고 시든 풀과 차가운 눈이 시야에 더 들어온다는 츠쯔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하긴 해도 분량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조금씩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각 단편에 담긴 긴 여운이 댕강 잘려나가듯 하지 않으니 말이다. 특히, 톈두가 올려다본 밤하늘에 뜬 별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을 것 같다.

톈두는 머리를 목욕통 위에 얹어놓고 있어 창밖의 깊은 어둠을 바라볼 수 있었고, 밤의 어둠 속에서 오래 꺼지지 않는 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별들이 이미 망망한 어둠을 가로질러 자기 방 창문 안으로 들어온 목욕통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연노란 쥐엄나무 꽃처럼 맑은 향기를 내뿜으면서 한 해의 풍진을 다 씻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깨끗한 물」,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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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02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 소설 속 배경은 예전 우리네 삶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서 옛 추억에 빠져들곤 합니다. 삶의 구체적 방식은 다르지만 그 바닥에 흐르는 삶의 정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더군요.

곰돌이 2025-11-02 10:28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이유에서인지 계속 손이 가네요. 조금씩 찾아서 읽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ㅎㅎ 아직 읽어본 책이 몇 권 안 되지만, 이 책은 혹시라도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분들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 수정> 중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간은 한없이 느려지고, 한 단어와 다음 단어 사이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영원의 시간을 발견했다. 혹은 단어 사이의 공간에 갇힌 채 서서, 그를 놔두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 안의 경솔한 소년이 어둠에 묻힌 채 숲속을 헤매느라 쿵쿵 부딪는 동안, 공간에 갇힌 어른 앨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기묘한 긴장감 속에서 이 작은 소년을 지켜보았다. 공포에 질린 소년이 여기가 어디인지, 이 문장의 숲에 들어섰던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면서도 얼떨결에 빈터로, 숲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니드가 기다리고 있을 빈터로 들어서지는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 P23

아버지는 수많은 낯선 이들 사이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달려들듯이 칩에게 벌컥 다가와 그의 손과 손목을 밧줄이라도 되는 양 꼭 쥐었다. - P28

"요즘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빠?" 칩이 가까스로 물었다.
"이보다 더 좋으면 천국이고, 이보다 더 나쁘면 지옥이겠지." - P33

"나는 내가 좋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는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말할 수 없었다. 멜리사의 어디가 문제인지 전혀 지적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자기애 넘치는 부모, 연극적 태도와 자신감, 자본주의에 대한 열렬한 애정, 자기 또래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 ‘매혹적 내러티브’마지막 수업 때의 느낌이, 그가 모든것에 대해 실수했다는 느낌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며 문제는 그 자신한테 있다는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바람에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야 했다. - P92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진정 상태가 되었다. 몸을 숙이고 한 손을 다른 손으로 잘 받치고는 버터 돛을 단 범선이 뒤집히지 않게 접시에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는 입을 벌렸고, 물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듯한 배를 쫓아가 꿀꺽 삼켰다. 해냈다. 해냈어. - P104

어느 여름날 1막을 다시 읽다가 구제할 길 없이 엉망이라는 사실에 새로이 충격을 받은 그는 바람을 쐬러 서둘러 밖에 나가서는 브로드웨이를 걸어가 배터리 파크시티의 벤치에 앉았다. 허드슨강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었고, 쉴 새 없이 윙윙대는 헬기 소리와 트라이베카에 사는 백만장자 어린아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가운데 그는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팔팔하고 건강한데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니. 일을 잘하기 위해 푹 자고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낯선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며 마가리타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신나게 휴가 기분을 내지도 못했다. 이렇게 실패하느니 병이 나 죽어가는 편이 훨씬 나을 듯했다. 데니즈의 돈과 줄리아의 선의, 자기 자신의 능력 및 지금껏 배운 것,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제 호황의 기회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건강한 육체까지 강가에서 햇볕을 쬐며 헛되이 날리고 잇었고, 이 때문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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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그럴싸한 이유가 부추긴 것은 아니고 그저 구매욕이 뿜뿜하여 오랜만에 여러 권을 한꺼번에 샀다. 10월에 구매한 책들 중에서 제일 먼저 펼친 것은 츠쯔젠의 <가장 짧은 낮>인데 두껍고 무겁고 튼튼하며 표지도 예쁘다. ‘내 문학의 강’이라는 제목의 저자의 말을 적어본다.

“점점 흐려지는 노안으로나마 어느 정도는 푸른 풀과 밤하늘의 별빛, 비와 이슬과 눈물, 꽃과 밥 짓는 연기를 볼 수 있다.”

기력이 청년 시절만 못하다고 고백하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시든 풀과 차가운 눈일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이제는 어딘가 생기를 잃고 마음을 시리게 하는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도 푸르른 풀이 시들기까지, 이슬이 맺히고 비가 내리다가 눈으로 변하기까지의 그 과정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해오며 살아왔을 것이다. 한순간도 흐름을 멈춘 적이 없었던 자신의 문학을 강으로 표현한 저자에게 흐르는 대로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발견한 것들을 이 책에 담았을 것 같은 기대감을 조금 누르고, 횔덜린의 시선집 <생의 절반>을 조금 훑어보다가 눈길이 머무는 시를 발견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신성(神性)의 상(像)이네.
하늘 아래 있는 듯, 대지의 사람들은 떠도네,
위를 보네. 그러나 마치 천문(天文)을
읽어내는 듯, 인간은 무한을, 풍족함을
모방하네. 한 겹의 하늘이
과연 풍족하던가? 은빛 구름들은
마치 꽃잎과도 같은데. 그러나 바로 저곳에서
이슬과 물기가 내려오는 것이네. 허나
저 푸름, 한 겹의 푸름이 꺼져버리고 나면 드러나는
흐린 것, 대리석을 닮은 것, 마치 청동처럼 빛나는,
풍족함의 징표.


단순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내겐 필요하다. 특히,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놓치고 있던, 잊고 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독서가 참 좋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비슷한 이유로 독서를 하는 것 같은데 괜히 거창하게 얘기하고 있다. 점잖은 척 하려니 여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뒤에서 자꾸 누가 옷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 목적의식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고 마음이 가다듬어지기도 해서 편안해진다. 그런 이유로 박완서 작가님의 책도 곧잘 읽는다. 중고로 구매했는데 뒤에 붙은 스티커를 살살 떼어내서 책상이나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한 번씩 ‘톡톡’ 붙여서 버리고, 앞부분만 슬쩍 들여다봤다.

공부를 못하는데다가 산동네 아이 티가 더덕더덕 나는 촌스러운 옷차림을 한 아이는 자연히 외톨이 신세였다. 그러나 그걸 그닥 고통스러워한 것 같지는 않다. 동네 아이들과 다른 학교를 다니니까 으슥한 인왕산길을 혼자서 등하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걸 즐기면 즐겼지 무섬을 탄 것 같지도 않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공상을 할 수 있었다. 그 길은 어린 날의 나의 꿈길이었다. 구질구질한 산동네와 나보다 잘난 아이만 있는 교실로부터의 해방구였다. (<기나긴 하루>, p. 28)

외출할 일이 있으면 정성들여 손을 씻지만 대강 씻고 무심히 외출한 적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고 사람을 만날 때면 열심히 내 손을 테이블 밑으로 감추지만 속으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비죽비죽 웃음이 나온다. 며칠만 나의 때 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내 손톱 밑에 낀 것은 단연 때가 아니라 흙이므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p.17)


살만 루슈디의 책은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시작으로 너무 재밌어서 여러 권을 후루룩 보는 바람에 조금 천천히 볼 생각이다. 물론, 한 치 앞을 내다보는 재주가 없어 장담이란 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찍먹을 하는 중에도 냅다 들이붓고 와구와구 먹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 몇 권 남지 않았으니 아껴봐야겠다.

그 시대가 우리 모두를 영원히 변화시켰다. 다만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우리의 미래가 말해주리라. (<2년 8개월 28일 밤>,p. 17)

매일 쏟아지는 환영과 계시로 가득 찬 이 꿈의 시는 아직 제 코앞밖에 못 보는 단조로운 사실에 짓뭉개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 본인은 경이로운 이야기, 특히 그를 벼락출세하게 해줄 수도 있고 목숨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한 이야기에 의해 자신의 문 밖으로 쫓겨났다. (<피렌체의 여마법사>, p. 23)


은행나무의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중 조너선 프랜즌의 <인생 수정>은 제법 두꺼워서 좀 더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서 앞부분만 조금 훑어보는데, 책장이 계속 넘어가는 거다. 지금 읽고 있는 똑같이 두꺼운 <가장 짧은 낮> 다음으로 읽을 책으로 정해진 듯하다. 다만, 새털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알 수가 없긴 하다.

강요된 이송과 수송이 잇따르자 그나마 어렴풋이 유지되던 질서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손잡이 하나가 반쯤 떨어져 덜렁대는 채로 먼지 주름 장식을 켜켜이 단 노드스트롬 백화점 쇼핑백은 내쫓긴 난민의 비극적 정서를 자아냈다. 뒤죽박죽된 <주부생활>더미와, 이니드의 흑백 스냅사진과, 상추를 살짝 익히는 조리법을 담은 채 갈색으로 산화된 신문 쪼가리와, 이번 달 전화와 가스 요금 고지서와, 50센트 이하의 채무는 무시하라는 상세한 설명을 담은 임상검사 센터의 첫 번째 통지문과, 무료 크루즈 여행 때 화환을 목에 건 이니드와 앨프리드가 속을 파낸 코코넛에 담긴 음료를 홀짝이며 찍은 사진과, 자식들 중 두 아이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출생증명서 따위로 가득 찬 채. (<인생 수정>, p. 15)


그건 그렇고, 배송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겠지만 책 모서리가 눌려져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살짝 쓰리다. 만지작거린다 한들 소용도 없는데 괜히 자꾸 만져본다...(흐윽) 미련 둔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이번에 처음 만나보는 작가의 책인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와 커트 보니것의 <나라 없는 사람>과 <제5도살장>으로 시선을 얼른 돌려본다. 조금씩 읽어보는 동안 공통점을 발견했다. 넋 놓고 봤다가는 이 책들도 책장이 계속 넘어갈 것 같다는 거다.

빌리는 노망이 든 홀아비로 잠이 들었다가 결혼식 날 깨어났다. 1955년에 하나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1941년에 다른 문으로 나왔다. 그 문으로 다시 들어가니 1963년의 자신이 나왔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여러 번 보았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그 사이의 모든 사건과 무작위로 만난다. (<제5도살장>, p. 39)

나는 드레스덴이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폭격 이전에 멀쩡했던 드레스덴을 보았고 폭격이 멈췄을 땐 방공호에서 빠져나와 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보았다. 그로부터 생겨난 반응 중에는 분명 웃음이 있었다. 맹세컨대 웃음은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다. (<나라 없는 사람>, p. 13)

저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과 보라색을 띤 그녀의 입술을 발견했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언제 첫번째 단추를 풀었는지 그녀의 두 손이 두번째 단추에서 떨리고 있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처럼 단단하게>, p. 39)


존 말코비치 주연의 <미스터 블레이크>를 봤다. 영국의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블레이크가 아내가 죽은 뒤 은퇴하고 처음 그녀와 만났던 프랑스 저택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 저택의 주인 여성 역시 4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중단한 상태였다. 편안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다. 특히, 이 저택에서 키우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만큼이나 주인공 역할의 말코비치가 발랄(?)하면서도 귀엽게 나온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찾은 저택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이전에 주변을 향해 온화하면서도 강력한 힘으로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블레이크를 보면서 한 사람의 온기로 여러 사람이 활력을 찾고 다 같이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보는 내내 굉장히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횔덜린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꽃이 피었다가도 지듯이 구름이 끼고 비가 세차게 오다가도 또 그 비를 맞고 새싹이 푸른색을 띠며 돋아난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책과 영화를 보고 나니, 사소한 일상 속에서 ‘희망’이 청동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단,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늘 망각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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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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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나의 열여섯 살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누구나가 거쳐가는 과정을 예외 없이 거치면서 손발이 오글거리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그때는 가족보다 친구가 좋았기에 유독 눈길이 가는 친구와 베프가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실로 대기권을 뚫고도 남았다. 그리고 왠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저 친구랑 베프가 될 것만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 주는 확신 같은 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열여섯 살 소년들이 이런 찰떡같은 예감을 상기시켜줘서 옛 감성에 너무 젖은 것인지, 그때의 순수함을 찾을 수 없는 타성에 젖은 직장인의 모습을 한 내 모습이 되려 이질감이 들고 영 기분이 그저 그렇다. (흐윽)

193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짤막하고 투박하며 잉크 물이 든 손을 가진 유대인 소년 ‘한스 슈바르츠’는 같은 반에 전학 온, 희고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손을 가진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리고 슈바르츠도 나처럼 찰떡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감히 손을 내밀기도 어렵기만 한 호엔펠스와 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 말이다. 이미 잘생기고 매력적인 전학생 주변을 하이에나처럼 에워싸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국 그 녀석들을 제치고 호엔펠스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었던 슈바르츠가 마침내 친구 이상형에 딱 걸맞은 호엔펠스와 친구가 되었다는 이 설렘과 벅찬 기쁨이 어땠을지는 전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저 온 천지가 봄이었으니 말이다.

친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소년이었던 슈바르츠에게 호엔펠스는 ‘희망’이었을 것 같고,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며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던 것이 아닐까? 그의 진심이 묻어나는 글에서 호엔펠스와의 우정이 슈바르츠의 삶에서 얼마나 귀중했는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얻게 할 만큼 빛나고 소중한 우정이라니...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라 여기며 행복해하는 모습과 함께 이들이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묘사가 이 모든 것을 조금도 훼손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만 가득 차게 만들었다.

나무와 월계수 덤불 사이로 몇 킬로미터씩 뻗어 나간 숲들을, 그리고 절벽이며 성채들, 미루나무들, 포도밭과 오래된 도시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 하이텔베르크와 라인 강을 거쳐 북해로 빠져나가는 네카어 강을 볼 수 있었다. 밤이 내리면 경치는 피렌체의 피에솔레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불빛들, 재스민과 라일략 향기가 실린 따뜻하고 상쾌한 바람, 사방에서 들려오는, 너무 많은 음식으로 졸려 하거나 너무 많은 술로 정열에 취해 만족스러워 하는 시민들의 이야기 소리와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마법에 홀린 듯했다. (p. 77)

갖가지 꽃과 나무의 색을 느끼며 사는 인생의 행복이 얼마나 평온하면서도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지를 알려준다. 저자가 화가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어서인지 자연에 대한 묘사에서 풍경을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며, 물감에 없는 색은 두 소년이 보여주는 우정의 반짝임으로 칠하여 완성하듯이 낭만적으로 표현해준다. 그래서인지 평온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여유를 만끽하는 이 봄이 더 오래 지속되길 바라게 만든다.

얼마 전, 필리아님이 올려주신 <횔덜린의 광기> 리뷰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특히 ‘거주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그런 이유로 ‘프리드리히 횔덜린’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슈바르츠와 호엔펠스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횔덜린이라고 한다. 그가 정신 착란에 시달리며 36년 동안 은둔하며 지냈던 튀빙겐에 있는 탑을 내려다보며 두 소년이 횔덜린의 시 「반평생」을 낭송하는 장면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시를 낭송했을지 상상해보니 왠지 가슴 한 켠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적어본다.


노란 배들이 매달리고
들장미 가득 심긴
땅이 호수에 비치니.
너희 고귀한 백조들은
키스로 물을 마시며
신성하고 냉철한 물 속에
네 머리를 담그누나.

아아, 나는 어디에서 이 겨울에
꽃들을 찾을 수 있을 거나
또 햇빛과 지상의 그림자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거나.
깃발들이 덜컹거리는
바람 속에서 벽들은
말 없이 차갑게 서 있는데.


시를 통해 내가 느낀 감정선이 슈바르츠와 호엔펠스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서야 그토록 원하던 친구와 우정을 쌓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행복감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었던 유대인 소년 슈바르츠가 이상과 현실을 고뇌하는 마음,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할 만한 환경에서 살아온 귀족 소년 호엔펠스가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그려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여러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성장해 나가야 할 청소년기에는 흔들림이 없을 거라 스스로 장담하며 고집스럽게 내세운 신념조차 흔들리고 무너지는 반복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더욱이 광기와 분노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어른들조차 혼란의 연속이 아닌가. 시내와 학교에서 나치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유대인을 향한 모욕과 경멸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슈바르츠와 호엔펠스 각자가 가진 신념이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들의 순수한 우정을 바라보며 안도감을 갖지 못하고 안타까움과 불안함을 가진 채 읽어내려가야만 했다.

두 소년의 심리가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분명했지만, 서문과 추천사에 쏟아진 찬사만큼의 감정까지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순수하고 단순한 시선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고 서로의 관심사에 더 흥미를 느끼며 우정을 쌓아갔던 초반부의 이야기들이 아름다웠고 좋았다. 그래서 슈바르츠와 호엔펠스가 사랑하는 횔덜린의 시를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그런 이유로 <횔덜린의 광기>와 함께 읻다 출판사의 횔덜린 시선집 <생의 절반>을 주문했다. 시집은 서너 권 정도 읽어본 게 전부인 나의 해석 수준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진입 장벽이 높게만 느껴져 감히 시선을 두지 못했는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빛바랜 종이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독일의 경제 회복을 위해 유대인의 재산을 강탈하고 수단으로써 이용하며 더 많은 희생양을 원했던 히틀러와 나치의 잔인함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인간다움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가치 있는 삶’에 뜻을 두고 그 마음을 담아 이 책의 결말을 정한 것이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짧은 생각을 해보았다. 계절과 함께 흘러가고 변화되는 주어진 삶, 그저 처한 운명에 따라 어떻게든 살아가면서도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실패자로 본다.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되어서가 아니다. 영원의 상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다 실패자들이니까. (p.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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