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의 사람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던 바바. 눈물 흘리는 걸 본 적도 없는 거대한 산 같던 그가 자신의 하인인 알리와의 이별에는 눈물을 흘렸으며, 총으로 위협하는 러시아 군인에게 조롱받는 한 남성의 어린 부인을 위해 “ 전쟁은 품위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평화로울 때보다 더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전하시오.” 라며 당당히 맞섰던 바바. 이제는 암환자가 되어버린 바바를 바라보는 그의 아들 아미르. 그가 떠난 뒤의 빈 공간을 떠올리며 더 깊숙히 그 공간속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무 말라버린 바바를 바라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을테지만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날이 될 오늘을 위해 잠시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먹먹함들은 보류하는 아미르에게 나는 조금 섭섭함을 느낀다. 하지만 누구도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의 큰 슬픔과 믿겨지지 않는 예정된 이별을 앞두었던 나의 경험이 떠올려졌다. 나 역시도 아미르처럼 냉정함을 찾고 현실을 핑계삼아 ‘아픔’을 잠시 보류 했었다. 상대를 향한 미안함과 나 자신을 향한 거북함에 마주할 순간이 분명 올 것이라는 걸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 감당 안에는 스스로가 행복에 있어 ’감히 누려도 될 만큼까지를 그어놓고 지켜야 하는 것’도 포함이다. 행복 마지노선 이라고 해야할까......

바바는 머리에 물을 묻혀 뒤로 빗어 넘겼다. 나는 그가 깨끗한 흰 셔츠로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는 걸 도와주다가, 목깃 단추와 바바의 목 사이의 빈 공간이 2인치쯤 되는 걸 보았다. 나는 바바가 세상을 떠나면 뒤에 남게 될 빈 공간을 생각했다.
나는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려 애썼다. 그는 떠난 게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오늘은 좋은 생각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 밀려오기 훨씬 전에, 마을들이 불타고 학교들이 파괴되기 훨씬 전에, 지뢰들이 죽음의 씨앗처럼 심어지고 아이들이 돌 속에 파묻히기 훨씬 전에, 카를은 내게 유령들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언청이 유령들이 사는도시.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바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좋은 걸 생각해라. 뭔가 행복한 걸 생각해라.”
좋은 것이라. 뭔가 행복한 것이라. 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자 좋았던 기억이 떠올았다.
파그만에서의 어느 금요일 오후. 꽃이 활짝 핀 뽕나무들이 넓은 들판 여기저기에 서 있고, 하산과 내가 발목까지 올라오는 풀 속에 서 있다. 나는 연줄을 당기고, 못이 박힌 하산의 손에서는 얼레가 돌아가고, 우리의 눈은 하늘에 떠 있는 연을 향하고 있다. p.187

그게 어느 달이었는지, 아니 어느 해였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 기억이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걸 알 뿐이었다. 좋았던 과거의 일부가 완벽하게 보존된 형태로 말이다. 무기력한 회색 캔버스가 되어버린 우리의 삶에 색채를 부여하는 붓놀림으로 말이다.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말이 내 이름이었던 사람을 태운 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우리가 수없이 구슬치기를 했던거리 모퉁이에서 차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 뒷좌석에을 웅크리고 있는 하산의 흐릿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비뿐이었다. 은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비뿐이었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나는 내가 한 짓을 잊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다. p.123

내가 마음의 결정을 내릴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마지막 기회였다. 하산이 과거에 나를위해 그랬던 것처럼, 골목으로 들어가 하산의 편을 들어주고 싸우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결과를 감수하거나, 혹은 달아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달아났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