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벌하고 싶었고 내 어리석음에 대해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P41
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술에 걸린 듯 그때까지 나와 정신적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꿰뚫고서는, 열정, 새로운 열정을 찾아냈습니다.(P. 53)‘새로운 기쁨‘ 이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에 맛 보았던 그 기쁨과 같았을 이 책의 주인공 롤란트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빠져들며 느꼈을 그 새로운 기쁨.롤란트의 젊은시절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봤다. 아니 자연스럽게 떠올려져서 책을 읽다가도 혼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듯 시선을 위로 올리고선 내 머릿속에 떠올려진 과거들을 천천히, 그리고 때론 부끄러워 뜨거워진 얼굴을 만져보며 후다닥 다른 생각으로 이동시키는 경험도 하고 꽤 나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좋을 수 만은 없는 온갖 것들)시간도 갖을 수 있었다.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를 읽고 바로 그의 책을 2권 더 구매하였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그 공감능력과 다정하고도 섬세한 그가 좋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은 나라는 사람의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큰 배움도 있고 자유스러움을 갈망했던 마음에서 얻는 공감은 꽤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부정적 마음의 표현조차도 고급스러우면서 지나치지 않도록 절제하되 그 뜻은 부족함없이 충만하도록 글로 잘 담아낼 수 있는건지 참 놀랍다. <감정의 혼란> 속 롤란트는 교수님의 구술을 받아적으며 느낀 감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선생님이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서술을 열광적으로 묘사할때는 창작자의 단어가 웅대한 울림으로 날아올랐습니다. (P. 101)롤란트를 한 순간에 압도시키고 그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켜 준 교수님의 존재가 심지어 한 인간으로써 부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으로 교수님에게 식어버린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롤란트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다.)‘나’라는 존재를 ‘지금의 나’로 결정지어 버릴만큼이라니...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그런데 완전히 교수님에게 압도당해 사로잡힌 롤란트의 감정이 내겐 조금씩 벅차고 두려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인물’ 혹은 한 ‘사건’에 치우친 삶을 살기로 선택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오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느정도인지 그 순간에는 완벽히 가늠할 수가 없고, 시간이 흘러 그로인해 내가 오롯이 겪는 실패와 후회를 끌어안은 채 산다는 것이 꽤 녹록치 않다는 것을 느껴본 자로써 앞으로 롤란트가 겪게 될 고난이 조금은 예상되어 불안함 섞인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혹시 나의 예상대로 그도 나처럼 생채기를 겪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해졌다. (물론, 나보다는 비교도 안 될만큼 뭔가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을 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허나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이더라.)자신의 감정을 살펴 볼 여유조차 없었던 롤란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향한 교수님의 ‘공감’뿐이었는데, 그는 조금은 무모하게 ‘멈춤’없이 교수님을 향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롤란트의 고백처럼 인간이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한 순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누구나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을 수도 있는, 혹은 단 한번도 겪어볼 수 없는 심미적 정신세계로의 여행을 통한 그 ‘감정’을 느껴본 자만이 가늠할 수 있는 그 무언가(혼란스러움)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것은 슈테판 츠바이크만의 빠져들게 만드는 서술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 솔직함과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혼란스러울 지언정.
그는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언어의 광휘로 낯선 나를 처음부터 사로잡았고, 더 깊은 그의 침묵, 이마 위에 떠도는 비애의 구름이 이젠 그와 친숙해진 나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 P86
아무 색채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흘러내릴 뿐인 뜨거운 열(熱)과 같은 사상이, 충동적인 격정의 주조에서 쇳물과 같이 흘러나와 서서히 그 형태를 갖추고 그 형태가 둥근 형상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명료하게 하나의 언어로 완결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P99
가끔, 그때의 나처럼 그 시절을 어리석게 보낸 젊은이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한 권 읽지 않았고, 이성적으로 말하지도 못했으며, 정말 생각다운 생각이라곤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 P27
젊은여러분들은 하나의 국가 그리고 그대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언어를 우선 최고로 아름다운 형식 속에서, 청춘의 가장 강력한 형태 속에서, 뜨거운 정열을 통해 만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 P44
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술에 걸린 듯 그때까지 나와 정신적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꿰뚫고서는, 열정, 새로운 열정을 찾아냈습니다. - P53
활발하고 화려하며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사람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방탕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비 지출로 인한 막대한 부채도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처리해줬던 착한 남편이자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약했던 루이 16세.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들의 특질들을 뜨끔 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많이 표현했지만 그것이 고통스러울만큼 혐오스럽거나 아프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자가 이들에게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가졌던게 아닐까싶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성에서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하는 일은 의상실에 있는 모든 의상을 조그만 견본으로 만든 책을 보고 무엇을 입을지 고르는 것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어렵고 책임이 막중한 선택이었을까? 라며 꼬집는다. 그러니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상황을 떠올리자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감싸줄 수 만은 없다.그녀의 세상은 늘 언제나 2,000만 프랑스 신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화려하고 텅텅 빈 머리를 높은 탑으로 쌓아올리며 그 탑의 손상을 막기 위해 마차도 무릎을 꿇고 타야하는 (고귀한 분들께서) 궁중 귀부인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그러니 이 당연한 것들을 별나게 여기며 언제나 근심 가득 찬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목소리는 딸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수록 그녀가 빠져죽을 것을 알고도 물가로 밀어 넣으며 자신들의 금고 채우기에만 민활한 주변사람들에게 환멸감을 느꼈다. 더 없이 부족함이란 것을 모르고 지냈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불안’과 ‘결핍’이 만들어낸 사치를 부추기는 그들.능력이 부족한 그 자리와 무게에 맞지 않는 자가 나라를 맡게 되었을 때의 그 처절한 과정과 눈에 훤한 결말은 나와 우리 모두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고 불행하게 현재에도 겪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가슴 답답하게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 아닌가......) 본인들이 부족해도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잘 닦아나갈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을 분별하지도, 다루지도 못 했다. 그렇기에 결국 세상 어려울게 없고 그저 원하면 다 얻을 수 있었던 동화 속 예쁜 공주님이 오색빛깔 찬란한 꿈속에서 눈을 떠 현실을 바라보니 눈 앞에는 시퍼런 단두대 앞이었다.그녀의 어린시절은 정말 놀기 좋아하는 15살 아이였다. 체력은 어쩜 그리도 좋은지 늦은 새벽까지 놀아도 몇 시간 잠도 안 자고도 활기를 띠는 그녀의 일상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참 가혹하고 안타까운 인생처럼 느껴졌다. 내심 그녀를 너무 측은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의 시선에 그녀는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악의라고는 하나 없는 보통의 여자아이.“인생이 까닭없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람들이 운명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에는 은밀한 값이 매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P. 134)고통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첫 스승이었고 삶을 배우게 하였고 철들게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괴로움이 그녀에게는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하게 죽는 일 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