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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버지 노릇을 해주고 싶습니다 .  아버지...그런 건  필요없어요 .  제 딸도 이제는 아기가 아닌 걸요 . 이제 좀 있으면  스무 살이 되는데 새삼스레 아버지가 뭐 필요하겠어요 . 제가 단성 생식을 했다고 여기는 걸요 . 그러면 왜요 ? 제가 비뚤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새아버지는 늘 의붓딸을  성추행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요 . 비뚤어져서는 아니고  세상에 그런 사람도 많다고 보도가  되고는 하니까 그럴 거예요 .  그럼 나중에 따님이 출가할 때까지 기다려보죠 , 뭐 . 그때쯤이면 우리 두 사람이 변할 걸요 .   그럴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 호르몬 작용은 좀 멈추더라도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사이가 되기는 힘들겠습니까 ? 그런가요 ? 저는 혜준씨랑 성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면 친구처럼 의지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는 누구를  의지하는 거 싫어요 . 그래도 사람은 어떤 방식이건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고 위안받으며 교류하는 거 아닐까요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요 . 실망하지 않는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완벽한 여자처럼 보였습니다 .   많은 부분이 그랬고요 . 하지만 그렇게 예쁘고 교육도 잘 받고 깔끔한 여자가 이상하게도 목욕탕에서 남이 쓰던 수건을 집어 와서 차 닦는 수건으로 쓴다든가 화장실에 생리대를  잘 처리하지 않고 그냥 버린다든가 하는 게 이상해서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듯 그렇게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 목욕탕 수건은 흔히 가져와요 . 당신은  남의 것 슬쩍 가져오는 적 없어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 그러나 수퍼에서 산 물건 계산이 잘못되면 적게 된 경우는 다시 돌려주러 가지는 않습니다 . 그런 건가요 ? 그래요 . 사람에겐 그런 부분이 있어요 . 그 정도를 가지고 양심이나 양심불량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어요 . 인간은 어쩌면 어떤 부분에선 무지 쪼잔해지는 부분이 있나봅니다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전에 들은 말인데 어떤 신문사 사장이 재벌사 회장인 자기 매형이 시킨 비자금전달 심부름에서 몇 억을 떼어 먹었대요 . 정말요 ? 그래요 . 신문에 났어요 . 그 사람이 돈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 졸렬하니까 그랬겠죠 . 근데 그  매형은 뭐라고 했다나요 ? 전자수첩 같은 거 던지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 전자회사도 운영하고 있으니 전자수첩은 얼마든지 공짜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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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은  좋았던 것 같아요 . 아니 , 늘 불안한 상태였지만 ...오래되어서 잊었어요 . 그리고 몇 달은 조금씩 서로가 낡아간다는 걸 느꼈어요 . 그리고 별로 준비되지 않은 생태에서  임신을 하고  그 사실을 통보하자 암말도 안했어요 .  마침 그는 돌아갈 데가 생겼거든요 . 그에게 빈틈이 있었을 때 , 그때 같이 살았거든요 . 슬펐습니까  ? 아니요 .   같이 살았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상태는 아니었어요 . 상처로 만나서  상처를  치유해주는 단계였는데 당시엔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 그런 상태에서 그가 간다고 해서 헤어졌어요 . 임신을 했는데... 그는 당연히 제가  낙태를 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 아가를 낳고 전화를  했어요 . 그랬더니 전화하지 말라더군요 . 전처랑 다시  합쳤으니까 불편하다고요 . 전처가... 있었습니까 ? 별거상태였거든요 . 제가 아는 여자에요 . 아니, 사실은 그 전처가 제 친구예요 . 그래서 아기를 낳았단 사실을 말하진 못 했어요 . 하지만 아기 생일이 돌아오면 꼭 한 번씩 전화를 했어요 .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나요 ? 바꾸어도 소용없어요 . 그 전처 전호번호를 알거든요 . 전처는 두 사람 일을 압니까 ? 아기를 낳았다는 건  알겠죠 . 제가 미혼모라는 건 대개 아니까요 . 다만  그 아기가 자기 남편 아이인 건 모를 것 같아요 .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거든요 .
여자가 사막에서 눈물을 흘리고, 사막에 오기 위해 오랫동안 저축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여자가 미혼모란 고백을 들으면서 ,준성은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 젊지도 않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것도 아니며 재혼 상태로 합당한 처지도 아니었지만 .  


한 번은 진지하게 물었다 .  


우리 함께  살래요 ?  

아니요 .  


단호했다 .
생각 좀 해보고  답변하시죠 .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똑같아요 . 딸이  없으면 모르지만 딸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 제 딸은 제 어미에게 가버리고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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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기를 낳았는데 그날 밤  한잠도 잘 수 없었다 . 계속 요의를 느꼈지만 왜 그랬을까 ? 도무지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 아, 오줌 마려워 , 오줌 마려워 . 그러나 좀처럼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 한 방울도 ..한 방울도 .....

터키여행에서 사막에 자리 잡은 카파도키아에 갔다.  괴레메 골짜기의 동굴 교회를 본 뒤 휴식 시간을 가졌을 때 혜준은 참을 수 없어서 눈물을 흘렸다 . 조용히, 그  막연한 사막을 보는데 왜 눈물이 흘렀을까 ? 그런데 그 모습을 그만 준성이 보고 말았다 . 준성은 아무 말도 안하고 눈물 흘리는 혜준 옆에 서있었다 . 혜준도 굳이 피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 하염없이 . 하염없이 . 
 

나중에 준성은 물어보았다 .
그날 사막을 바라보면서 왜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걸 한 마디로 축약해서 말할 수는 없어요 .  이 지난한 세상을  그냥  맨발로 살아온 저에게 이 세상은 그냥 사막이거든요.  사막 한 가운데를 맨발로 걸어가는 한 무리의 집시들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그건 논리적인 설명은 불가능하죠. 그때 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로 갈 때 투즈굘 소금호수를 볼 때도 눈물이 났어요 . 그게 다 눈물 같았어요 .바다가 변해서 소금호수가 되듯이 내 눈물이 떨어져 소금연못이 되었을 거예요 . 사는 게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그냥요 ..남들도 저만큼은 힘들었을 거에요 .저희 아버지랑 동생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어서 그냥 그런대로 먹고 살기는 하지만 애아버지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어요 . 
 

준성은 , “ 어떤 사람인데요 ? ” 하고 묻지 않았다 .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 여자의 상처에서  진물 같은 게 지물지물하게 흐르는 게 보이는데  당신의 상처를  한 번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진성은 자신에게  상처에 손을 대면 순식간에 그 상처가 낫는 그런 힘을  가졌다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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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소금연못

 

1.꿈
아주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꿈을 꾸었다 .울산바위만큼이나 아주 커다란 바윗덩어리의 무게로 끈적끈적한  합성수지 덩어리가 짓눌렀다. 이집트면으로 꾸민, 그다지 무겁지 않은 이불이 너무나 무겁다 . 엎드렸다가 제쳤다가 바로 누웠다가 다시 새우처럼 꼬부렸다 . 그래도 무겁다 . 그러다가 혜준은 벌떡 일어났다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꼈다 . 아, 어쩌나...19 년 전 그날도  그랬는데..... 
 

안방으로  급히 간 혜준은  비데에 전원을 켜고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 아, 미치겠다 . 왼쪽 배꼽 아래 방광부분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 아, 어쩌나 ...‘훼미리주스’ 병 가득하게 차오르던 좀 불투명한 바랜 치자빛 오줌을 보며 몸에 가득하던 불안이 빠지는 듯했던 기억, 기억이 수면 아래서 기포를 뿜으며 떠오르는 것 같았다 . 혜준은 오줌보를 눌러보았다 . 아프다 . 그런데 이게 물풍선은 아닌지 눌러도 오줌은 나오지 않았다 . 아, 어쩌나...오줌이 나오지  않는다 .  할 수 없이 비데 단추를 눌렀다가 세척 단추를 눌렀다가 몇 번씩 반복을 해보았다 . 차가워서 그런가? 좀 따뜻하면 나으려나 싶어서 온수를 3 단계까지 눌러서 따뜻한 물이 나왔다 . 엉덩이를  적절하게 조금씩 움직여 성기 외음부 쪽으로 따뜻한 물이 닿도록 조처를 했다 .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오줌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 어쩌나, 터질 것 같은데...몇 시지 ? 의료원 응급실로 가봐야 하나 ?그날도 그랬다. 1990년 11 월 23일 밤, 출산은 고투였다 . 예기치 못한 임신에 준비되지 않은  출산은 너무나 어설펐다 . 아, 어쩌지 ? 임신인 것 같아, 라고 느끼는 순간부터 안개를 만난 기분이었다 . 차선이 보이지 않았다 . 그런데 옆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이 너무 많았다 . 과속을 하는 차들...그들이 왜 달리는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모두 속력을 내서 마구  달리는 중이었다 .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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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78매)

1.

“ 아유! 넌 왜 핸드폰이 없냐 ? ”

“ 미안하다 . ”

“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

세영이가 순순하게 미안하다고 하니까 박치자는 당황스러워했다 .

“다른 게 아니고 ...조구연 선생님하고 이정목 선생님이 우리들 좀 보자고 하셔서 날짜 잡으려고 하는데 넌 어떠니 ? ”

“ 뭐가 ? ”

“ 언제가 좋으냐고 . ”

“ 다 좋아 . ”

“ 스케줄 괜찮아 ? ”

“ 스케줄이랄 것도 없으니까.”

대답하면서 세영은 출렁,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 이정목 선생님은 졸업한 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이정목 선생님이 너 꼭 나오라고 하셨어 . 그 선생님이 네가 자기 좋아했던 거 다 아시더라 . ”

“ 그러니 ? ”

아셨을까? 아셨겠지. 도서관 앞 그 숲 속에서 , 저, 선생님, 좋아해요 ...라고 고백했으니까. 그때 이정목선생님은 그러냐... 간결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 세영은 삼십 년 전 기억이 새삼스러워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지나간 일들은 사진처럼 기억으로만 남았다 .

“어쨌든 나올 거지 ? ”

“글쎄...옷도 없는데......”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나와 . ”




치자는 간단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나가야 하나 ? 박치자 남편은 치과의사였다 . 그 남편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 이진규치과는 아말감을 하러 간 사람은 무조건 금으로 하고 나오게 만든다는 거였다 . 그리고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예약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 병원에 갈 수 없었다 . 한 번은 세영 딸 진형이 이에 문제가 생겼다 . 그래서 예약을 하고  치자남편네 치과에 갔다 . 그런데 금으로 하려니 23만원씩이나 하는데 여덟 개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 도저히 그 돈을 낼 형편이 아니었다 . 그래서 좀 싼 걸로 하자고 하니까 이진규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 결국 8만 원짜리로 여덟 개를 치료하기로 하고 두 개만 한 다음 날은 가지 않았다 . 그리고 동네 치과에서 8 만원에 하고 말았다 . 예전에 집에서 만난 일이 있어서 이진규는 세영을 아는 처지였다 .




잠시 후에 또 전화가 왔다 .

“ 세영아! 치자 전화 받았니 ? ”

“ 응. ”

“ 나갈 거니 ? ”

“ 나오라는데......”

“ 나도 나갈 거야. 너 꼭 나와 . ”

뭐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늘 수상한 일을 하는 윤정우였다 . 만나면 언제나 볼펜을 들이밀었다 .. “ 학교 급식 지원재정조례안” 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럴 때는 “ 학교 급식 개선과 조례제정을 위한 운동본부 ”라고 했으며 “한미 FTA결사제지 서명안” 에 서명하라고도 했다. 그럴 때는 또 당연히 “결사제지 운동본부 ”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 아니, 사실 정우는“ 한국 사교육 자영업자 위원회 ”에서 근무하는 처지였다 . 자기가 지어낸 단체 이름이지만 .

“ 또 서명 받을 거 있니 ? ”

“ 에이~ 왜 그래 ? 부담 안 줄 거니까 걱정 마 . ”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정우는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 그 서명 뒤에는 늘 뭔가 후원금을 요구하는 용지가 뒤따랐다 . 청소년 무료공부방 후원금 용지이거나 혹은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본부 후원금일 때도 있었다 . 그런 건 사소한 거지만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는 늘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다 .




2.

친구들이 잡아놓은 음식점 ‘웰빙버섯샤브샤브집’은 전에도 와본 곳이었다 .미리 예약해 논 특실은 공기청정기 덕분에 쾌적했다 .

“ 아유~ 이번 여름에는 외국에 너무 많이 갔다 와서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었어 . ”

치자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윤택했다 . 외국. 세영은 익숙치 못한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

“ 어디 갔다 왔는데 ? 나는 이 여름에 쪄죽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다녀왔다, 얘. ”

“ 웬 모르코에 ? 모나코는 아니고 ?”

“ 아니, 모로코야 . 카사블랑카 있잖아 .한 여름에 51 도 까지 오르잖니 . ”

“ 정말 ? ”

모로코에 다녀왔다는 이성숙은 중학교 교사다 . 여름, 겨울방학마다 어딘가 다녀오는 게 정해 논  일정이다 .

“ 나는 산삼 엄마라서 꼼짝도 못하는데......”

오명순은 체중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면서도 여전히 체중을 유지한 채 거북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

“산삼이 뭐야 ? ”

이성숙이 의아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

“ 고 삼이 산삼이잖니 ? ”

오명순은 그것도 모르냐는 어조로 대답하며 가볍게 웃었다 . 체중은 나가지만 잘 생기고 잘 나가는 남자랑 사는 뚱땡이.......세영은 한 껏 폄하한다 .




(아휴~ 내가 여기 잘 나온 건가 ?)

세영은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 그나마 정우가 입 다물고 있어서 자신도 참고 있지만 이 친구들 대화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디 갔을 때는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이른바 “재테크” 일환으로 동백지구에 아파트를 사 논 것도 없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 동백지구에 사 논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한두 채 더 사놀 걸 그랬다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치자를 보고 이성숙이 한 마디 했다 .

“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아파트 값이 안정이 안 되는 거야 . 작작 사라 . 좀 . ”

“ 얘는! 너야말로 페르세폴리스 당첨돼서 대박 났다며 ? ”

“ 뭐 ? 그건 네가 어떻게 알았니 ? ”

“ 한국 좁은 거 모르니 ? ”

“그건 투기가 아니고 노후 대책이야 . 교사 연금이 뭐 얼마나 되니 ?나야 남편도 없는데 늙으면 누구한테 의지 하겠니 ? ”

처녀로 나이 먹어서 그런지 성숙은 아직도 이십대 아가씨 같다 . 눈꼬리에 엷은 잔주름 흔적이 있지만 긴 머리에 자연스런 웨이브가 잘 어울린다 . 그렇지만 나이 들어서 숱이 줄어든 정수리를 감추느라 과도하게 부풀린 흔적이 역력하다 . 머리카락을 세우고 헤어스프레이로 깁스를 했겠지 . 나도 혼자 살 걸 그랬나 ? 세영은 하나마나한 상상을 해 본다 . 그냥 강릉에서 13 평 아파트에 살다가 저축이 늘어나면 20 평으로 옮길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남대천 방죽길이나 초당 숲 속을 산책하며 주문진에 가서 생선회도 먹고 가을에는 설악산 등반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일정한 급여만 있으면 엄마한테도 용돈 넉넉히 드리고 가끔 외국여행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모든 건 끝나고 당장 추석 지나고 또 아이들 등록금과 급식비 같은 사소한 생활비로 시달려야 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그냥 나온다 . 외국여행, 아파트..그런 서걱거리는 용어들.




“야, 야! 일행 중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골프 얘기를 하는 건 실례야 . ”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윤정우가 한 마디 했다 .

“ 누가 골프 얘길 했는데 ? ”

“ 비유야 . ”

“ 음...그런가 ? ”

한때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30 년 동안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돈” 때문에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그래서 같은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이나 마찬가지였다 . 아니, 차라리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사는 처지가 비슷하니까 공감대가 일정하다 . 그러나 고교 동창은 삼십 년 전에서 머무르지 않고 진화한 결과 왠지 떫다 .

“ 어쨌든 간에 선생님들은 왜 안 오시니 ? ”

“ 오시겠지. 조구연 선생님이 우리 치과에 와서 치료를 받으셨잖니 ? 얼마 전에..그리고는 너희들 모으라 시는 거야 . 한 번 보고 싶다고 . ”

조구연 선생님은 고3 때 담임이었다 . 그리고 치자가 반장이어서 조구연선생님 모시고 가끔 식사를 하곤 했다 . 세영은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나가기가 싫어졌다 . 아니, 사실은 생활비 때문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부쩍 그랬던 것 같다 . 친구들 가운데 돈이 없어서 걱정스럽게 사는 애는 우/연/히/ 도 단 한 명도 없었다 . 심지어는 이혼녀 정우까지도 어느 순간부터는 돈 걱정에서 놓여난 듯 했다 . 정우는 어릴 적 꿈처럼 소설가로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논술강사로 그런대로 돈을 벌었다 . 이성숙은 결혼은 안했지만 차분히 저축도 하고 아파트도 샀다 팔았다 했는지 방학마다 외국여행을 다닐 정도는 됐다 . 오명순은 친정도 부자이지만 남편도 공인회계사다 . 충분히 재산을 모았는지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사간지 3 년이다 . 아이가 대원외고를 다니니까 그런대로 자식농사도 성공한 셈이다 . 자식농사 ? 과외를 한 번도 받지 못한 세영의 두 아이는 자신들의 말로 “ 반에서 깔아주고 ” 있다 . 고2 가 된 진형이가 한 말에 따르면 자기 성적으로는 수도권에서는 전문대학도 힘들다는 힘들다고 한다 .

“ 학교 공부 열심히 했는데 왜 전문대가 힘들어 ? ”

“ 엄마가 학교 다니던 쌍 칠년도랑은 달라 . 그때는 누구나 다 과외를 안 하니까 노력한 애가 성공하지만 7 차 교육과정은 안 그렇다구 . 강남에 사는 애는 마포에 사는 애보다 열 배는 더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아 . 그렇다면 수원에 사는 애는 어떻겠어 ? ”

“ 서울대는 무슨...수원대 가면 되잖아 .”

“ 수원대도 마찬가지야 . 수학 나형 볼 건데 수능 모의고사 50 점 받아가지고 무슨 4 년제가 가능 ? ”

“ 내신을 올리면 되잖아 . ”

“ 내신도 이미 글렀어 . 중학교 2 학년 때 이후로 내신도 70 점 넘는 게 하늘에 별 따기야. 수학 과외 1 년 만 받았음......”

그런데 수원에서 수학 과외비 알아보니 일주일에 100분 씩 2회 배우려면 40 만원 밑으로는 거의 힘든 상황이었다 . 40 만 원 .




“ 아이구! 여사님들 오셨네.”

모외국어고등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한 조구연은 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했다 . 아무리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은 머리는 억지스러웠다 . 원래 통통한 얼굴이었는데 살이 빠지니까 어쩐지 서글퍼보였다 . 아니, 요즘 세영의 눈에 서글퍼 보이지 않는 게 없었다 . 지나가는 할머니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투를 보아도 서글프고 종이상자 가득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낡은 옷 입은 오십 대 남자 어깨도 서글퍼보였다 . 이상하게도 어린 아가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인 좁다란 등을 보아도 크림색 에쿠우스를 타고 선글라스를 쓰고 잔뜩 기름진 표정을 짓고 신호 기다리며 창틀에 팔 괴고 선 중년여성을 보아도 다 서글펐다 . 세영은 다른 이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삶 저편에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검은 실체가 왜 그렇게 또렷이 느껴지는지 . 그리고 그 실체가 조만간 인간을 숨도 못 쉬게 덮쳐누르는 단말마 [斷末摩]를 실감할 정도였다 . 아니, 내게는 삶 자체가 단말마의 순간이니까...중얼거리곤 했다 .










“오늘도 버섯샤브샤브 어때 ? ”

조구연은 번번이 이 집으로 부르는 게 미안해서 그런지 먼저 의중을 떠보는 거였다 .사실은 이 집이 조구연 처제가 하는 집이란 걸 누구나 다 알았다 . 뭐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

“ 좋아요 . 선생님! 버섯이 몸에 좋잖아요 . ”

“ 그래 . 이게 그렇게 좋대 . 항암작용을 한다잖아 . ”

세영은 재빨리 금기 식품 목록에 버섯을 적어 넣는다 . 버섯, 잊지 말자 .

“여! 정세영 여사! 잘 있었나 ? 다이어트를 해서 아주 여고생처럼 보이네. ”

세영은 느닷없는 찬사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서 무르춤하고 있는데 오명순이 비명을 지른다 .

“ 몰라요, 체중 얘기 하지 마세요. 호호호!”

처녀 때는 그런대로 날렵했던 오명순이 아이 하나 낳을 때마다 10 킬로씩 늘었다고 한탄인지 자랑인지 하던 게 생각났다 . 오명순은 아이가 네 명이었다 . 네 명. 두 명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헐떡거리는데 오명순은 네 아이에게 다 사교육 혜택을 입게 하는 걸로 유명했다 . 일명 족집게 과외라나 . 언젠가 그래도 오지랖 넓은 박치자가 오명순에게 세영을 소개시키며 막내 영어를 가르치라고 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러나 오명순이 , 가정 전공한 애가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냐고 퇴박을 놓았다는 소식도 따라왔다 . 조용히 .

“그래. 정세영 여사는 돈 번 거야 . 요즘 살 1 킬로 빼는데 214 만원 씩 든다잖아 . ”

무엇을 근거로 하는 얘기인지는 몰라도 나는 돈 벌었군. 가만히 앉아서 . 세영은 그냥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 그나마 이정목 선생이 나온대서 한 번 보고 싶은 심정도 있어서 나온 건데 그냥 일어서고 싶기도 했다 . 봐서 뭐하나 ? 어린 시절, 왜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던가 자신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 늘 조용하고 박정희 독재를 에둘러서 비꼬는 ,조금은 시니컬한 말투가 좋았던가 . 아니면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던 세영을 불러다 놓고 이건 왜 틀렸냐 ? 이거 잘 봐라, 이렇게 푸는 거야 하면서 세심하게 마음 써주는 그 다정함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까 ? 세영은 수학 시간이 되면 당번이 아니라도 교무실에서 1 학년 8 반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대걸레로 닦았다 . 그리고 앞문에서 교탁까지 더 성실하게 닦았으며 칠판과 교탁 정리를 하고 깨끗하게 닦은 물 컵에 물 한 잔을 따라놓고 종이 뚜껑까지 덮었다 . 이정목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기분 좋게 강의하시도록 최대한 배려를 했다 . 아이들이 너 이정목 선생님 좋아하지 ? 물으면 응, 나, 이정목 선생님 좋아해, 하고 당연하다는 듯 답변했다 .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 좋아하는구나. 하고 인정했다 . 총각선생도 아니었고 뛰어난 미남자도 아니어서 아이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 그런데 이정목은 고 2가 되자 먼데 학교로 전근을 가버리고 그걸로 그만이었다 .




3 .

그런데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한 노년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

“ 여! 안녕들 하신가 ? ”

목소리도 늙는다 .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세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자신이 예견했던 불행이 눈앞에 파노라마사진처럼 연달아 펼쳐질 때 느끼던 당혹스러움 같은 것 . 그 사진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강도가 더해져서 나중에는 고도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장치조차 없을 때. 친구들이 더러는 앉아서 더러는 벌떡 일어나서 이정목을 반갑게 맞는다 . 세영은 어정쩡하게 두 무릎을 바닥에 붙인 채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 아, 괜히 나왔다 . 이대로 조용히 방바닥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 나는 아직도 삶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어리석은 희망은 언제나 자신을 배반하고 삶의 냉혹한 실체를 보여주곤 했는데 .

“이게 다 누구야 ? ”

이정목은 이 모임에 처음인 모양이었다 . 치자는 경우에 따라서 부르는 사람들이 달랐다 . 함께 해외여행을 갈 때는 세영을 젖혀놓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 아파트 재건축 딱지를 살 때도 세영을 젖혀 놓는 건 당연했다 . 부부동반 모임을 할 때는 세영과 정우가 빠져야 했다 . 고가의 오페라 관람을 할 때도 세영은 빠졌다 . 그러고 보니 세영이 이 모임에 나온 건 꽤 오래 전이었다 . 뭐, 오라고 해도 잘 안나왔지만 .

아마도 고교 때 선생님들을 부를 때도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 아마도 그 기준은 얘네들이 정하는 거겠지 .어쨌든 세영은 가능하다면 이 두어 시간이 무난하게 흘러가주기만을 바랐다 .




“ 흠! 여사님들은 다 경기가 좋은가 그대로구먼. ”

조구연이 다시 한 번 듣기 좋은 말을 했다 . 인사 삼아 . 아무리 제자라도 나이가 드니까 말을 놓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잘 나가는 사모님들이라 말 놓기가 껄끄러웠던 것일까 ?

“아유~ 선생님은 자꾸 여사님이 뭐예요 ? 이름 부르세요 . ”

치자가 호칭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

“ 뭐, 아무려면 어떤가 ? 다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에 . ”

이정목이 점잖게 정리를 했다 .

“ 정말이요 . 저희들이 벌써 낼 모레 쉰이잖아요 . 77 년도에 졸업했는데. ”

“ 벌써 그러냐 ? 참 오래 전 일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삼십 대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 ”

그 말만은 진심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스쳤다 . 사실 세영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마흔 아홉이란 사실을 잊곤 했다 . 그러나 뭐 마흔 아홉이면 어떻고 쉰이면 어떻단 말인가 ?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 나이 먹어가고 늙으면 죽는 거다 .

“세영이는 왜 조용히 있니 ? 넌 어디에 사니 ? ”

기억 속 그 소녀가 아니어서 그럴까 ?이정목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세영을 바라보았다 .

“ 아, 예. 수원 살아요 . ”

“ 수원에 왜 ? ”

“ 시댁이 수원이어 서요 . ”

정말 대답하기 싫은 신원 조회 같은 게 시작된 셈이다 .

“그렇구나 . 부군은 뭐하시고 ?”

“예. 전에는 사업했는데 지금은 다른 거 준비 중이에요 . ”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친구들 눈길이 신경 쓰여서 세영은 몹시 불편했다 . 사업은 웬 ?하는 악의를 읽을까봐 그랬다 . 그런데 세영 자신이 눈길을 안 마주쳤기 때문에 누가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러나 이정목은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 세영의 말이 빈말이란 것을 . 오래된 낡은 옷, 돈 들이지 않은 머리 모양. 그나마 생머리라서 좀 감춰지는가 . 번쩍거리지 않는 귓바퀴와 손가락과 목덜미. 이것을 장식 없는 정결성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세영은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꾹 참는다 . 불안해졌다 . 예전에 조구연도 그런 걸 물었다 . 그때 세영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 아유~ 그런 것 묻지 마세요 . 요새 세영이 처지가 안 좋아요 하는 , 사려 깊게 한답시고 한 치자 말을 그만 듣고 말았다 . 그래서 상처 입었던 오래된 기억 때문이었다 . 역시 사려 깊지 못한 조구연은 “ 가난은 죄가 아니야. 세영아! ” 하는 격려사를 해서 세영은 더욱 가슴이 졸아드는 경험을 했다 . 누가 죄라고 했길래 사람들은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건지 .




버섯샤브샤브가 끓었다 . 조구연은 고기가 특별히 더 좋은 거라고 강조했다 . 미국산 쇠고기 절대로 먹지 말라고 충고도 했다 . 그러면 나는 미국산 쇠고기만 먹어야겠다, 세영은 다시 다짐한다 .

“ 그런데 미국 가보면 미국 사람들도 상류 계층은 고기 보다는 야채 위주로 먹으려고 하는 풍조가 있어요 . 쇠고기를 먹어도 스테이크용 안심살로만 먹으려 하고요 . 가난한 사람들이 햄버거 싸니까 손쉽게 실컷 먹고 운동할 시간 없어서 살찌는 거죠 . ”

“ 아! 그렇겠지 . 참! 너희 애들은 다 미국에 있지 ? ”

“ 예. 얼마 전에 다녀왔어요 . 아무래도 집을 하나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장차 미국에서 자리 잡을 지도 모르고요 . ”

세영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치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 집 사는 게 마치 동네 가게에서 사이다 한 병 사는 것처럼 손쉽게 말하는 치자. 치자 얼굴은 세상이 만만해서 친화력을 가진 사람들 특유의 황금빛이 은은했다 . 특히 이마가 그랬다 .

“ 아무래도 그렇겠구나 . 미국도 집값 비싸지 ? ”

“ 그럼요 . 웬만하면 백만 달러에요 . 걔네는 아파트 아니고 주택이니까 좋기는 하죠 .”

“ 거기도 부동산 버블이 우려된다고 하던데 ? ”

절대로 지기 싫은 오명순이 거들었다 .햄버거 먹고 살찐 가난한 미국 사람들 멘트에 상처 받은 기색이었다 . 하지만 티내지 않는 게 교양 .

“그렇다고 못 살 거야 없지 . 어디든지 부동산이야 오르막내리막이 있지만 뭐 큰 손해 본 사람은 없더라구 . ”

“ 좋은 건 혼자만 알지 말고 같이 나누지 . ”

이정목이 늙은 목소리로 껴들었다 .

“ 예. 알았어요 . 선생님! ”

치자는 명쾌하고 사교적으로 대답했다 .

“ 너희 아버님은 잘 지내시지 ?”

“ 그럼요 . ”

“ 참 유능한 장학사이셨지. 박철 장학사 하면 사람들이 다 벌벌 떨었지 . ”

장학사가 그렇게 권위 넘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었던가 ? 치자 어머니도 약사를 거쳐 전두환 시절 국회의원을 지내서 그런가 . 무남독녀 치자가 시집갈 때 뭐를 얼마만큼 해갔다더라 하는 것은 동창들 사이에서 다 아는 얘기였다 . 그래서 치과의사랑 결혼했다더라는 소문은 좀 악의가 섞여있었다 . 걔는 지방대 나왔잖니......소곤소곤......




“ 백세주라도 한 잔 하지 . ”

“ 차를 가져 와서요 . ”

“ 낮인데 어때 ? 아니면 대리 부르면 되지 . ”

친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술을 한 잔씩 받았다 . 정우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정우야말로 이혼녀 소리 듣고 아이도 조용히 키우며 아파트 투기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자리에 왜 나오는지 몰랐다 . 그런데 그런 정우를 가만 놔두지 않는 사려 깊은 은사님들 .

“ 정우는 어떻게 지내 ? 좋은 일은 없고 ? ”

이정목도 아마 정우가 이혼했단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치자가 미리 전화해서 코멘트를 했는지도 모른다 .

“ 좋은 일 별로 없어요 . 그냥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이에요 . ”

정우에겐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인가 ? 나랑은 정 반대구나 .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좋은 일 좀 만들어봐 . ”

“ 그거야 제가 아니고 성숙이가 할 일 아닌가요 ? 저는 이미 오래 전에 결혼 생활의 단맛 쓴 맛 다 본 처지이지만 성숙이야 처녀니까 정말 경험이 필요하죠 . ”

“ 그거야 그렇지 . 하지만 이성숙 선생은 눈이 높아서 . ”

이미 조구연은 성숙에게 몇 번 중매를 했지만 좀처럼 성사가 되지 않았던 터라 다 아는 눈치였다 .

“ 어머머! 선생님! 저 눈 안 높아요 . 하지만 사람들이 여교사는 돈이 많을 거라고 오해하고 평생 벌 수 있는 직장이라 좋다고 하면 그만 정이 싹 떨어져요 . ”

“ 사실이잖아 . ”

평생 벌 수 있는 직장 . 그게 좋은 건가 . 사실 세영도 결혼할 때 시댁 식구들이 그 조건을 맘에 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런데 남편은 당장 학교 그만둬라, 자기가 다 호강시켜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 그런데도 세영이가 학교에 더 다녔던 건 돈을 벌어서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 평생 목돈이란 걸 만져본 적이 없는 도박꾼의 아내였던 어머니, 그리고 그 자식들......하지만 돈을 벌어서 친정에 갖다 주기 전에 시어머니는 통장 자체를 맡기기를 원했다 . 세영은 뭐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지만 사업하는 남자는 으레 다 그런건지 알았다 . 그리고 그렇게 푼돈을 갖다주면 목돈이 들어오는 걸로 알았다 . 하지만 좀처럼 목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 세영이 받는 월급은 거의 시댁 생활비로 들어갔다 . 어쩌자고 시집갔다가 돌아온 시누이와 그 자식들 생활비도 세영의 노동으로 충당해야 하는 건지 그것도 잘 몰랐다 . 사랑한다고, 너만을 사랑한다고 너무나 간절하게 호소하는 남편의 진심을 믿고 싶었다 . 그런데 사랑도 돈 때문에 쪼들리기 시작하니까 진의를 의심하게 되었다 .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랑에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 그 깨달음과 함께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우울증을 앓고 나니까 세영은 직장도 집도 없이 두 아이와 변두리 전세방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 그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 남편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가 . 알고 싶지 않아서 찾지도 않았다 . 더 이상한 건 남편이 이혼을 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 왜 그럴까 ? 정말 사랑하는가 ? 아니면 나 몰래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건가 ?

“이성숙이와 윤정우가 원하는 신랑감이 어떤 사람들인데 ?”

조구연이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우선 제가 사랑할만한 사람이요 . ”

성숙은 까르륵 웃었다 .철저히 숨기는 건지 예쁜 얼굴인데 염문을 부린 일이 별로 없었다 . 아니, 들어본 일도 없었다 . 정말 사랑을 원하는가 .

“ 저는 다 필요없어요 . 제 딸이 다 커서 자립할 때까지 애나 잘 키우는 게 인생의 목표에요 . ”

“ 정말 ? ”

오명순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 그렇잖음 ? 남자를 어디 가서 만나며 나 같은 자발적 비정규직을 좋아할 아둔한 남자가 있겠냐 ? ”

“ 그래도 연애도 못하고 청춘을 보내는 건 너무 안타깝잖아 . ”

“ 청춘은 무슨...쉰이 낼 모렌데. 더구나 나같은 사교육 자영업자는 남자 만날 건수도 없어 . 첫째 학부모는 다 어머니들 뿐이고 너네 남편같이 잘 생긴 남자 꼬셔볼래도 만날 창구가 있어야 말이지 . 그래서 그냥 감우성이나 좋아하면서 참고 있어 . ”

오명순은 자기 남편이 도마에 오르자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몰라서 긴장하는 표정이 되었다 .

“오명순 여사 남편이 그렇게 잘 생겼나 ? ”

이정목이 웃으며 물었다 .

“ 잘 생기면 뭐해요? 명순이 남편은 명순이 밖에 모른다는데요 .”

치자가 잘 아는 모양이었다 .

“ 그건 박치자 여사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 남자는 그런 동물이 아니에요 . 남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보면 꺾고 싶어 해요 .세상에 자기 아내만 좋아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어 . 내가 단언하건대 그건 교묘하게 안 들키거나 아니면 기회가 없거나 그런 거지 . ”

이정목이 자르듯 말했다 .

“ 어머! 선생님도 그러세요 ? ”

“그럼, 나도 어디서 귀여운 과부나 하나 꼬셔가지고 밤낚시나 다니면 좋겠다, 그런 생각 하는데......”

“ 근데 왜 못하세요 ? ”

“ 못 하는 건지 아닌지 누가 아나 ?”

이정목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 그 순간은 삼십 년 된 은사와 제자 사이가 아니라 함께 나이 먹어가는 중년 노년의 남녀처럼 보였다 . 완전한 공감대. 그런데 세영은 자꾸 오줌이 마려웠다 . 불안감이 더 심해졌다 .

“ 참! 박치자 여사! ”

다시 진지하게 이정목이 불렀다 .

“ 예 ? ”

“ 내 딸이 지금 국립교향악단 바이올리니스트야 . 이탈리아도 갔다 왔지. 애들 레슨도 좀 하고 ....그러니까 부군에게 말해서 후배 좀 있으면 소개시켜줘 . 얼굴은 뭐 그저 그렇지만 성형수술을 해서 봐줄만 해. ”

“그래요 ? 선생님! 하지만 요새 젊은 치과의사들 너무 돈만 밝혀요 . 열쇠 세 개 , 그런 거 옛말이 아니에요 . ”

“ 세 개까지는 모르지만......”

“ 아니, 선생님! ”

갑자기 정우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에 기묘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잘 키워서 예술가로 대성했는데 왜 열쇠를 끼어서 시집을 보내요 ?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고 . ”

너무 당돌한 발언이어서 모두들 갑자기 당황스러워했다 .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자 오명순이 차분하게 말했다 .

“ 그래도 정우야! 그런 게 아니야 . 결혼은 개인끼리 하는 게 아니고 집안과 집안이 결합하는 거니까 조화로우면 좋지 않니 ? 사실 개인끼리 하는 것도 요새는 서로 직업 따지고 연봉 따지고 그래서 삼성맨하고 여교사가 귀족 커플이라고 하잖아 . 걔네들이 뭐 서로 다 좋아해서 결혼하는 거겠니 ? ”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하지만 몸에 좋은 버섯샤브샤브 먹으면서 돈 얹어서 남녀 결혼시킨다는 얘기 들으니까 정신에는 안 좋구나 . 너희들 가만히 얘기하는 거 듣고 있으니 나처럼 남편 없고 돈 없는 여자는 이 자리에 오면 안 될 것 같구나 . ”

“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하니 ? 너도 우리나라 잘못된 교육제도 덕에 돈 버는 괴외강사잖아.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 너는 돈많은 집 애들 가르쳐서 벌어먹으면서 왜 돈 가진 사람들을 그렇게 비꼬는 건데 ? 그렇게 잘났으면 너도 당당하게 돈 벌지 그러냐 ?”

“ 내가 당당하지 못할 게 뭔데 ?나는 그래도 애들 가르쳐서 보수 받는 지식 노동자야 . 너희들 얼굴을 백설공주 계모 거울에 비춰보라 . 남편 번 돈으로 부동산 투기하고 그 지대 차액만큼 이윤 얻어서 다시 임대업하고 그 돈으로 새끼 외국유학 보내고 그 새끼들 다시 이 사회 10 % 차지해서 다시 그렇게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그동안 돈 만원이라도 후원금 내줘서 참고 나왔지만 정말 점입가경이다 . 선생님! 죄송합니다 . 잘난 척하는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 ”




4 .

정우가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지르던 기세와는 달리 차분하게 문을 열고 나갔다 . 세영은 점점 더 오줌이 마려웠지만 꾹 참고 있었다 . 그러다 정우가 나가버리자 더 참을 수 없어서 , “ 얘! 정우야! ” 하면서 잡는 척하다가 함께 일어나서 그 방을 나왔다 .

정우는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있었다 .

“ 정우야! 어디 가니 ? 좀 참지 그랬니 ? 은사님들도 오셨는데 .”

“ 은사는 개뿔...다 역겨운 속물 보수 반동들 . 타라 . 우리 니콜 홀로프세너 감독이 만든 ‘돈많은 친구들 ’ 보러 갈래 ? 시네큐브에서 하던데. ”

“ 그래. 근데 쟤네들이 언제 영화에 출연도 했니 ? ”

“ 모르지. 모르니까 가서 한 번 보고 얘기하자. 안전벨트 매라. 아이 씨팔! 후원금도 못 받고 성질만 냈네. ”

정우가 클러치를 살짝 밟자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

“ 근데 차 새로 뽑았네 ? 이게 뭐야 ? ”

“ 응. 소렌토야 . 남자나 한 번 꼬셔서 카섹스 해볼라고 할부로 뽑았다 . 하하 ”

참! 오줌을 안 누고 나왔네. 그렇지만 세영은 아까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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