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색은 붉은색이나 뻘건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다. 새 빨간색이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새 빨간색이 나는 것도 드물다. 빨강으로 옷을 입은 딸기는 여러 과일 중 제일 예쁘고 가장 맛있다.

그런데 딸기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딸기는 장미과에 속하는 과일이라 과채소라고 불린다. 정확하게는 식물계다. 외형은 과일이지만 열매채소다. 별거 아니지만 신기하다. 신기한 일은 자주, 가까이에 있다.

딸기에서 약간 벗어난 얘기지만 1년생 잡초, 1년 동안만 자라는 잡초가 있는데 그게 ‘벼’다. 고로 쌀은 잡초에서 나온다. 신기한 일들이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니까.

딸기는 하우스 재배가 가능해서 이제 아무 때나 먹어도 맛있다. 딸기는 빵이나 케이크에도 어울린다. 열매채소이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사과가 빵이나 케이크에 어울리지 않은 건 아니다. 같은 채소지만 토마토는 케이크와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은 소쿠리에 가득 담아서 어디든 팔고 있다. 누군가 소쿠리는 일본말인데 왜 쓰냐고 하는데? 소쿠리는 한국말이다.

딸기 하면 삐삐밴드다.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딸기가 좋아]하며 초현실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요즘 이윤정을 찾아보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공연을 하면서 저 세상 텐션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나이 먹고 인간이 됐으면 어쩌나 했는데 아직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나이 먹었다고 철든다면 이 세상은 멸망이다. 신기한 것들은 항상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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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의 영광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엄청난 걸작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에 미치지는 못하는, 그렇지만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두 시간을 잡아먹은 이야기다.

광기와 살인이 결합을 했던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 이 영화의 오가타 켄은 현실과 도피 그리고 허무를 나타낸다.

바람피웠다고 집을 나가라는 아내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앞에서 도끼로 잔인하게 죽이고 방을 닦는 모습이나,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죽여 버리고 방에 소독약을 뿌리는 사카네의 뒷모습은 잔인함과 동시에 불행도 함께 보인다.

이야기는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사카네를 잡아서 형무소에 넣지만 탈옥 후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며 도망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와의 만남, 그것으로 인한 두려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점점 악마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사카네는 쫓는 집요한 형사 마카베와 마츠이. 그리고 사카네와 엮이는 불행한 여성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인간의 본성이란 알 수가 없다. 심리적으로 방해받게 되면 인간의 본성이란 어떻게,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살해에 대한 원죄로 인해 일상이 망가진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85년 작품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50년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과학 수사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란 지금과 다르게 여겨졌다.

하지만 죄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복수는 나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오가타 켄의 심리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빠져드는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잔인한 탈옥수를 추적하는 이야기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관계를 이어주는 심리의 깊이와 변화가 돋보인다. 영화에는 크게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바람을 피우다가 사카네 아내에게 걸린 아주 젊은 시절의 아사노 아츠코가 나온다.

50년대의 얼굴이라 할 수 없을(어쩐지 운동과 식단으로 잘 가꾸어진) 정도의 미모로 나오는데, 101번째 프러포즈에서 히로인으로 유명하다. 그러다가 고독한 미식가에서 엄청 북적거리는 식당의 아주 시끄러운 여주인으로 나와서 고로에게 술은 왜 마시지 않냐? 같은 질문을 퍼붓는데, 하하하 재미있었다.

그리고 후반의 사카네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긴 젊은 과부로 나오는 이시하라 마리코가 나온다. 이시라아 마리코는 수수하면서도 도시적인 미모로 인기가 많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죽 했다.

그러다가 안전지대 출신의 타마키 코지와 결혼한다고 해서 떠들썩했는데 이 두 사람은 80년대에 불륜으로 발각이 되었다가 30년 정도가 흘러 다시 만나 뭐 결혼이니 하는 소리가 있었다.

이시하라 마리코의 정신세계가 좀 남 달랐는데 2006년에 폭로집을 출간하는데 거기에 자신과 잠자리를 가졌던 14명의 연예인을 실명으로 공개하고 막 그랬다.

그런데 더 기이한 건 17년인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훔치다가 걸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유는 배고파서. 그녀의 얼굴은 그간 알고 있던 그 예쁜 얼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참 사람의 인생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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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는 정말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영화다. 원대하고 거대한 줄기는 그대 론데 거기서 뻗어 나오는 가지는 각각의 색깔을 지니고 있고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가 하다가도 느닷없이 원래의 줄기에 흡수되어 버린다.

키리에의 노래는 너무나 신비롭다. 그건 키리에의 음색에 있다. 누구도 닿을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키리에만의 음색. 그 음색에 빠지게 되면 어떤 이도 쉽게 나올 수 없다. 키리에의 노래는 드러내놓고 슬픔을 노래한다. 키리에가 노래를 부르며 위로 올라가는 길은 수월하다.

누구나 키리에의 옆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말도 못 할 정도로 목소리를 잃은 키리에가 노래만은 부를 수 있는 건, 그리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는 건 과거 키리에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슬프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 속에서 순수 만을 꺼내서 만든 것 같은 이와이 슌지의 집대성 같은 이 영화는 마치 하루키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이전의 소설과 주인공들이 자주 떠오른다. 목소리를 잃어버려 말은 못 하지만 노래는 할 수 있는 키리에의 처절한 음색을 들으면 그 예전의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의 차라가 생각난다.

언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키리에는 라스트 레터가 떠오른다. 라스트 레터의 일본 버전에는 히로세 스즈가 나오는데, 키리에의 조력자로도 히로세 스즈가 나온다. 다른 영화 속에서의 히로세 스즈가 아닌 연기를 보여준다.

잇코로 나오는 히로세 스즈는 엄마와 정돈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데 그 모습은 하나와 엘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엘리스의 철없는 엄마와 청소가 전혀 되지 않았던 집이 생각난다. 잇코의 엄마로 공교롭지만 이전에 올린 토미에의 주인공 나카무라 미우가 나온다.

이와이 슌지는 야스배우들을 많이 영화에 출연시켰다.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의 친구로 나오는 가수 겸 배우인 코코가 성인배우로 영화에 나오고 그녀의 장례식에도 실제 성인배우들이 등장해서 정극연기를 펼쳤다. 나나미로 나왔던 쿠로키 하루도 이 영화에 나와서 키리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역시 립반윙클의 신부가 떠오른다.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 손을 내밀지 못한 것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는 것은 아닐까. 1인 2역을 하는 키리에는 오겡끼데스카의 러브레터가 떠오른다. 차갑고 냉정하기만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키리에가 점점 목소리를 찾아서 노래를 부른다. 감동적이다.

키리에 역의 가수 아이나 디 엔드의 목소리가 워낙 독보적이라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노래를 어설프게 부르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해낸다. 초반에 버스킹에서 아이묭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몇 년 전, 같은 설명은 없다. 그저 좀 다른 색감과 분위기로 그걸 알 수 있다. 이와이 슌지만의 연출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쁨을 제대로 느낀다면 슬픔을 깊게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 너무 행복해한다면 질투하지 말고 저렇게 큰 행복을 느끼기 전에 슬픔을 가득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이 힘들고 짜증 나는 세상 조금은 다르게 보일 테니까.

립반윙클의 신부도, 이 영화도 감독판 세 시간짜리가 좋다. 한 시간 이상 잘려나간 극장판은 별로다. 아이유와 비비의 중간즘 닮은 얼굴을 한 아이나 디 앤드의 노래를 들으면 요즘 청춘들에게 위로의 1순위는 음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를 그리워하고, 언니가 되고 싶었던 길 위의 푸른 꽃 루카, 키리에의 노래 같은 이야기 ‘키리에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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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잡하고 허접하고 생 때 쓰는 것 같은, 압도적 괴랄한 공포영화 토미에를 끝까지 보다 보니 생각 외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토미에가 나름대로 볼 만한 건 이토 준지의 원작의 토미에가 머릿속에 맴맴 돌기 때문에 보게 된다.

원작의 토미에를 실사화했을 때 과연 누가 예쁘고 예쁜 미소녀 토미에를 하느냐였다. 그라비아 모델이었던 나카무라 미우가 토미에를 맡았다.

토미에는 어디에나 있다. 토미에는 어깨 위에도 있고, 도시락 안의 반찬으로도 있고, 거울 속에도, 지네의 얼굴에도, 화분에도, 쓰레기통에도, 어디에도 토미에가 있다. 토미에는 만나는 모든 이들이 토미에를 죽이고 싶어 한다.

그게 바로 토미에가 바라는 바다. 인간의 내면은 실은 죽음을 갈구한다. 그리고 토막을 내버린다. 토미에는 죽어도 그냥 죽어버리길 바라지 않는다. 토막이 나서 머리는 쓰레기통으로 가기를 바란다.

보통의 공포영화에서는 귀신에게 죽음을 당하는데 토미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게 만들며 쾌락과 흥분 그리고 만족한다. 토미에는 여기저기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토미에가 토막이 나면 아메바처럼 자가 생산하여 여러 토미에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서 사람들을 홀린다.

토미에가 마음에 드는 건 이 영화에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1도 없어서다. 전부 어딘가 텅 비어버린 정신으로 연기를 하는데 이건 필시 토미에가 바라는 바다. 토미에가 요즘 영화처럼 그래픽이 너무 좋고, 연기를 잘하고 고퀄이었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깨 위 토미에 괴물은 꼭 권성동을 닮은 물고기 같은데 특촬이라 묘하다. 머리가 잘려 나가고, 사람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도 웃으며 볼 수 있을 정도다. 부활하는 토미에, 머리카락 먹이는 토미에, 파멸하는 토미에, 터지는 토미에가 보는 이들의 안구를 주무른다.

마지막에 가서는 쓸데없이 음악이 좋고 끝날 것 같았는데, 마지막까지 토미에는 토미에 한다. 근래에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본영화 몇 편 보기를 하고 있어서 열심히 보고 있다. 토미에의 주인공 나카무라 미우는 이후 배우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야스배우로 승승장구해서 세상의 남정네들을 흐뭇하게 해주고 있다.

유튜브에 야스 소개하는 채널에서는 유월의 신작에서도 나카무라 미우의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 토미에가 2011년작이니까 근래에 다시 한번 나온다면 누가 토미에를 할까. 다 보고 나니 유튜브에 풀버전이 있다.

토미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미국에서도 실사화한다는 소식이 벌써 3년 전에 나돌았는데 누가 토미에를 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1999년 토미에: 어나더 페이스 영화도 있다. 토미에는 연극으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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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어린 날

찰흙으로 케이크를 만들며 놀았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아이가 하는 행동과

아이의 생각은 시와 같다.

달을 보며 달이 우리를 따라와,

숨바꼭질을 하려나 봐.

아이의 입에서 시가 줄줄 나온다.

시와 아이는 순수해서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건 시간이다.

순수한 건 전부 너무 깨끗하다.

그래서 무섭다.

시간은 무섭다.

순수한 것들은 가끔 무섭다.

시도 아이도 가끔 무섭다.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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