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빈속에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아서 가끔씩 아침도 점심도 그른 채 허기가 질 때 싸구려 술을 위장에 들이붓는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퍼지는 알코올의 향과 타들어가는 것 같은 내장의 뒤틀림의 느낌을 좋아하는 그 사람.

담론이니 이론 같은 틀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용기는 난폭한 루머의 파편을 흩뿌리기도 하고 악마의 리얼리즘을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고 그 사람은 흐린 눈으로 말했다.

먼지가 가득한 황폐한 곳에서 그 사람은 치열하다. 기억의 언덕을 지나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그 사람은 절망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손톱 끝까지 술이 퍼지는 굉장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대로 술이 깨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 사람은 말했었다.

나는 절망적인 나를 위해

나의 절망을 알게 해 준

나보다 더 절망의 당신을 위해

치열하게 나를 황폐하게 만든다.

언젠가 그 사람이 술이 되어 잠들어 있는 테이블 위에 써 놓은 글귀였다. 술은 추억을 반추하고 기억은 반목해서 좋다던 그 사람.

주먹만 한 위장이 술로 채워져 큰 세계가 된다. 온몸이 타들어갈 듯한 이 죽음의 기분 좋음이 좋아서 술잔에 슬픔과 좌절을 담아 그 사람은 빈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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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화가 마를렌 뒤마(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 봤다. 그녀의 그림에는 세상에 대한 냉소와 슬픔 그리고 차별에 대한 아픔 같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가 마우스로 따라 그림 그림에는 그런 표현이 안 되었지만. 마를렌 뒤마의 여러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리다 보면 사는 건 대체로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방황하는 한 마리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면 어느새 처음의 오늘, 어느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환절기는 내게서 빠득빠득 세포를 앗아가려 하고, 봄과 여름 같은 날의 중간에서 계절을 마주하니 깊은 한숨과 소름 돋듯 선명한 지난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철 지난 가요가 듣고 싶어 오래된 카페에 들어갔다. 


웃음으로 아픔을 가린 여자와 작정하고 얼굴을 드러내 과거 따윈 없다고 노골적인 표정을 짓는 여자가 중앙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생각만큼 안 된 과거의 남자와 생각처럼 안 되는 현재의 남자와 생각 외의 미래의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보니 상처 같아 보여서 한 번에 마실 수 없어 그대로 두었더니 그 속의 하늘에 뜬 별이 하나 빠진다. 


이 커피를 마시면 별을 마시는 건가, 별은 하늘이 낸 상처의 흔적이다. 나는 하늘의 상처를 마신다. 


어김없이 이달의 마지막 주가 왔다는 건 이달의 첫 주가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한 줄기의 빛이 가시광선으로는 같으나 관념 광선으로는 많이 달리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별빛이 떨어지는 곳에 가지 마라. 

별빛에 다치면 무지개밖에 약이 없으니 약을 바르고 나면 몸이 보남파초노주빨이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처로 가득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보면, 나를 부르던 삼월이 기억나고 그 기억은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들고, 내 의식의 강 위에 배를 띄워 상처를 담아 보낸다. 


새끼손가락을 들고 그럴싸하게 하늘의 상처를 마시고 나니 

폐허 속에서 나는 상처의 맛, 

피지 못하고 꺾여 버린 상처의 맛, 

소리 없는 우는 상처의 맛이 났다. 


메마른 계절에도 그대는 내 속에서 그대로 살아있으므로 악착같이 살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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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월 27일) MBC 라디오에 특집으로 90년대 심야프로 ‘밤의 디스크 쇼‘의 진행자 이종환이 게스트로 출연한 김민기와 사담을 나누는 방송을 해주었다. 이종환의 시작멘트와 시그널 음악은 전 국민의 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었던 때가 있었다.


이종환은 좀 독불장군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방송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음주로 방송을 하는 건 금지되지만 이종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있었던지 술을 마시고 디제이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횡설수설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방송이라는 게 펑크가 나면 아주 큰일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nzaIaicEqtI?si=8r_glmgwiGpMCb9e


이종환 하면 판피린 물약 같은 판콜에이와도 뗄 수 없다. 항상 손을 뻗는 곳에 한 박스씩 구비를 해두고 한 병씩 꺼내 마셨다고 한다. 판콜에이는 달달하면서 뒷 맛이 주는 기묘함 때문에 한 번 중독이 되면 계속 찾아 마시게 된다. 바카스와 다르지만 비슷한, 그래서 한 병을 마시면 초기 감기를 잡고 좋지만 두 병 이상은 무리가 올 수 있다. 이종환은 디제이 맨트가  하나 끝나면 매니저 누구야,라고 불러서 판콜에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자주 마셨다고 한다.


게스트로 나온 김민기는 송창식의 어느 곡이 탄생된 이야기부터 평소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민기는 어느 날 나는 이제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야, 라며 학전을 만들어 후배들 양성에 힘썼다. 특히 어린이들의 동요, 동화책, 연극에 힘을 쏟았다. 김민기는 원래 시인이다. 그래서 김민기의 가사는 발끝까지 퍼져있는 세포에 자극을 준다.

https://youtu.be/3DMQc76GfzQ


시라는 문학은 여러 문학 중에 가장 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김민기 후배인데, 김민기와 조용필, 당대 스타 두 사람이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래방에서 세 명에서 소주 스무 병을 마시고, 조용필이 아침이슬을 부르며, 김민기가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너 내가 조용필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알았지? 아니야. 지하 형(시인 김지하)이 서대문 구치소에 있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고 했어. 나도 그래)와, 조용필은 김민기를 존경한다고. 이 이야기는 중앙일보에 특별기고로 자세하게 실려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6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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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느껴지는 통증,

기분 좋은 고통이다.

이런 고통은 사고를 당하거나

타격에 의한 고통이 아니라,

몸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세포를 놀라게 해서 드는 통증이라

들면 들수록

살아있다는 기분이 든다.

매일 한 시간,

이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건

기적 같은 일.

매일 기적 같은 통증을

느끼며 지내는 건 일탈 같은 것.



오늘 저녁 조깅을 하는데 20도라 땀이 뻘뻘 났다.

애틋하고 어여쁘고 슬픈 이야기나 적으며 지내고 싶은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란 잔당들의 엄청난 사건들이 쏟아져서

보고 있으면 이 나라가 그럼에도 이렇게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

아마도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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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작 짜리로 비교적 짧은 시리즈인데 아주 재미있다. 한 번 보면 일단 끝까지 내 달려야 하는 이야기다. 제목처럼 딸이 사라졌고 딸을 찾는 내용인데 비밀이 여기저기서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어? 뭐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5부작이라 답답함 없이 이어진다.

한 부부가 9살 딸을 학교에 보내는 첫날, 딸은 사귄 친구의 집에서 잔다고 하고, 딸의 친구의 집에 가니 너무 잘 사는 집이다. 딸과 친구는 그 집에서 뛰어놀고, 엄마는 딸의 친구 엄마에게 딸이 잠들 때 꼭 쥐고 자야 하는 인형을 건네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승무원인 엄마는 다음 날 딸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남편과 알아보니 그 집은 그저 호텔 같은 펜션이고 가족도 거짓이고, 학교에도 가명으로 등록했고, 그 여자가 딸을 납치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돈을 요구했다면 부자의 자식을 납치했을 텐데 주인공 부부는 중산층에 대출을 끼고 살고 있다. 도대체 왜? 부부는 미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이야기다. 치정, 불륜, 공동체, 친모 같은 비밀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나온다.

기자로 나오는 배우는 어떻게 이런 배우를 섭외했을까 싶을 정도다. 인도풍 흑인으로 발음도 독특하고, 몸매도 꽝에 바지도 가슴밑까지 끌어올려 입는다. 그래서 항상 발목이 드러나는데 여자다. 신참이고 기자라는 직업에 적극적이다. 그래서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인도풍 흑인 젊은 여기자의 활약도 보는 맛이다.

그리고 한때 배두나의 연인이었던 짐 스타게스도 나온다. 약간 지질한 변호사 남편으로 나온다. 승무원 아내가 비행하는 동안 외간여자와 영상통화로 그 짓을 하고 나중에 형사들 앞에서 낱낱이 들키고 만다.

추리극의 대가 할렌 코번 풍 같지만 원작 소설가는 노르웨이 작가라고 한다. 시리즈를 보면 이야기를 쓰려면 이렇게 적어야 해,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로 읽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도대체 딸을 납치해 간 여자는 무엇 때문에 딸을 납치했을까. 딸의 엄마는 정말 딸의 엄마가 맞을까. 하나하나씩 드러나는 재미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결말에 가서는 신파로 좀 그랬던 ‘내 딸이 사라졌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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