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다 좋아하지? 무진은 안개로 가득한 도시잖아. 김승옥은 그 안개를 여귀가 뿜어놓은 입김 같다고 했거든.


여귀는 제삿밥을 먹지 못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떠도는 귀신이야. 그러니 그 귀신이 내뱉은 입김에는 슬프고 서늘한 한이 서려 있는 거지.


무진기행의 안개 이후 아직까지 한국문학에서 안개를 이토록 표현해 낸 문장이 없어.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제목이 [안개]로 나왔거든. 무진기행은 지금까지 3번인가 4번인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윤정희가 두 번 인숙으로 나와.


67년 영화인가 첫 안개에서 각본은 김승옥이 쓰고, 문예감독 김수용이 만들었는데, 와 정말 재미있어. 윤정희의 10대 시절을 볼 수 있고 소설과 같은데 너무 재미있게 만들었어.


이때 일화가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한테 붙어서 제발 쉽게 시나리오 써달라고 했지.


무진기행이 나오면서 모국어의 폭발이었지, 이전까지 일본문학이나 서양문학의 문장을 갖다 쓰는 정도였는데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후 야호였어.


지금 대 작가 김훈, 김훈의 아부지 김광주도 울 나라 1세대 소설가인데 중국 문학을 소개하고 그랬는데, 하루는 김훈에게 막걸리 받아 오라고 하고 후배 작가들을 전부 집어 모은 거야.


김광주가 너네 김승옥이라는 괴물이 나타났는데 그 녀석 소설 읽어봤지?라고 하니 전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다고 한 거야.


이제 우리 어쩌냐, 우리 밥그릇은 이제 끝이야. 같은 이야기를 막걸리를 받아 온 꼬꼬마 김훈이 문 밖에서 들었던 거지.


김승옥은 선배 소설가들에게 불려 가서 인기가 많았데 그러다가 518 사태에 충격 먹고 알지? 절필을 선언했는데. 문공부 장관까지 지낸 국어학자 이어령이 절필하면 안 된다며 호텔에 던져 놓고 쓰고 있던 장편을 계속 쓰게 했거든.


그게 [서울의 달빛]이었는데 그걸 쓰다가 그대로 도망가버렸지. 그래서 1장, 2장 계속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못하고 [0장 서울의 달빛]으로 나왔는데 무진기행만큼 재미있어.


김승옥 단편 소설들이 전부 재미있지. 신문사에 만화를 팔아먹는 만화가 이야기도 읽다 보면 서늘하고, 무진기행 단편집은 60년대 소설인데 21세기에 읽으면 21세기의 소설 같아. 너무 신기하고 기묘하지.


응사, 응답하라 1994 작가도 무진기행을 좋아한 것 같아. 대학생이 된 해태가 술자리에서 여수와 순천이 맞붙잖아. 그때 막 우리 도시에는 비행장도 있고, 백화점도 있고 뭐 그러다가 순천이 여수에게 밀리잖아. 해태가 고심하더니 아! 우리 순천에는 무진기행! 무진기행이 있는디! 하거든.


https://youtu.be/AT48VFwHLA0?si=ZFYgmAo4W63pkBJY <= 김승옥 뉴스기사


무진은 안개 - 김승옥의 설명


안개는 마치 여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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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먹고 싶은데 고기를 굽고 삶고 하는 행위를 너무나 귀찮아하는 내게 가장 좋은 음식은 편육이다. 편육은 식은 게 맛있기 때문에(실은 뜨거운 편육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굳이 뜨거울 때 먹어야지 하는 조바심이 없다. 한 달에 편육을 한 세 번 정도 사 먹는 것 같다.


요즘은 편육을 찾는 사람이 꽤 있어서 그런지 슈퍼에 가면 편육이 항상 있고 종류도 제법 된다. 돼지고기 머리 누른 편육이 있고, 매콤한 편육도 있다. 닭발 편육도 있는데 돼지고기 편육보다 좀 비싸다. 편육의 폭 역시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거 같다. 세상은 정말 빠르고 크게 변하는 것들은 멈추지 않고 변한다.


편육은 족발과 다르고 수육과도 다르다. 족발과 수육은 깻잎이나 상추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편육은 그냥 편육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학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편육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잔치나 장례식 장에서 늘 등장했다. 일단 식어도 먹을 수 있는 편육이 다른 고기를 대체하지 않았나 싶다. 잔치를 하거나 장례식 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를 챙기려면 항상 뜨거운 음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 정도가 있으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족발은 나오지 않는다. 수육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상추나 깻잎은 장례식장에 나오지 않는다. 상추가 나온다고 한들 장례식장에서 쌈 싸 먹고 있을 수는 없다. 장례식장에서 건배를 권하는 마뜩잖은 인간도 있다. 장례식장은 엄숙하되 떠들썩해야 한다. 양가감정을 동시에 지니는 태도를 보이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그렇기에 예의라는 걸 갖춰야 한다. 그 예의 속에는 법으로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눈치껏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편육은 맛도 좋지만 나처럼 귀찮은 인간에게 딱 맞는 음식이다. 나는 편육 외에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새우젓이나 된장도 뭣도 필요가 없다. 편육은 그렇다. 집에서 가끔 삶아서 수육을 해 먹는데 너무 간이 안 되어 있어서 그건 장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구입한 편육 대부분은 그냥 먹기에 딱 좋은 간이다.


편육을 대할 때는 마치 떨어져 있던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 편육을 매일 먹지 않기 때문에 편육을 먹을 때는 오랜만에 만나는 애인처럼 반가워하면서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한다. 급하게 덤비지 말아야 한다.


편육 이 알 수 없고 묘하게 빠져드는 당면의 무가학적 무늬도 아름답지만 입 안에서 난잡한 맛이 없다. 족발이나 수육에 비해 난잡할 것 같은데 세게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 장이나 새우젓도 필요 없이 그저 편육만을 씹고 있으면 그 맛에 매료된다.


씹는 맛이 족발이나 수육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내게 편육 정도는 가격이 올라가지 말았음 한다. 김치를 받았다. 편육을 김치에 올려 맛있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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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인기였고 인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학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일대기가 더 흥미롭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의 일생이 홀든 녀석보다 재미있고, 인간실격의 요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 훨씬 흥미로웠다.


인간의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이게 되는데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였을지도 모른다. 내 것이 있지만 더 아름다운 것을 가져야 한다,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을 갈취하는 거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거야.


몸이 끝없이 추락하여 객혈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실격의 탄생에 결정적 도움을 준 여인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자살을 한다. 도미에는 주위의 어떤 날카로운 시선에도 그를 놓칠 수 없어서 오사무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 그 일기가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와서 오사무에게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오! 라며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했었다. 그때 오사무는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라며 응수했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에 대한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에 관한 일화다. 두 사람은 실은 참 어울리지 않는데 구인회 소속으로 잘 어울렸다.


이상 시인은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면모를, 그에 반해 김유정 소설가는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녔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1936년 가을에 이상이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던 김유정을 찾아갔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는데, 아주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이 물었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나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이상 시인)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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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들이 가득한 한국에 온 이상주의자 이리스. 이리스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이리스가 만나는 한국인들은 현실에 맞는 생각과 말을 하지만 이리스는 그 모든 것을 감정으로 표현해보라 한다.

현실주의자들이 가득한 한국이지만 곳곳에 윤동주 시가 있고 그 시는 아름다우며 이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은 어째서 젊은 나이에 죽을까 안타까워한다.

이리스는 젊은 한국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데 불어를 가르치고 받은 돈으로 남자 친구에게 월세를 내는데 보태라고 준다. 그 돈 역시 감정을 불어넣어 이상적으로 만든다. 이리스와 남자 친구는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아무렇지 않다.

그때 남자의 어머니가 불쑥 집으로 오고 현실과 이상이 마주하게 된다.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말하고 이상주의자 역시 현실을 말하지만 대립이 생기고 그 대립의 틈은 벌어지기만 할 뿐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와인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리스. 피리를 불지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부는 이리스. 이리스는 한국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 걸까.

요즘도 홍상수 영화에 대사는 각본이 없는 걸까. 현실에서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과 상황을 대사로 대화를 한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긴장감이 드는 대사로 잘도 표현했다.

홍상수의 젊은 뮤즈가 김민희였는데 이제 김승윤으로 넘어가는 추세 속에 있는 것 같다. 기주봉이 시인으로 나왔던 우리의 하루에서도, 물안에서도 김승윤이 주연으로 나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도 단역으로 나오는데 그 영화는 홍상수 사단에서 오래도록 조감독을 하다가 홍상수에게 까이고 독립해서 지원받아서 이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 안에서도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조윤희 역시 언젠가부터 홍상수 사단으로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고 있다. 권해효의 부인이기도 해서 권해효와 둘이서 같이 홍상수 영화에 동반출연하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주인공 이리스 역의 이자벨 위페르는 벌써 두 번이나 홍상수 영화에 출연이다. 마담 사이코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주더니 홍상수 영화에서 뭔가 한국 아줌마의 느낌이 폴폴 난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연기를 처연하게 하는데 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 삶은 너무나 빡빡하고 힘들지만 이리스 같은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sns, 인스타그램, 스레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리스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낯설지 않게 보는데 그녀를 보는 우리는 낯설게 본다. 뭐 그렇다고요.

예고편도 욘나 홍상수답다. 그 옛날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을 봤을 때의 느낌이었던 ‘여행자의 필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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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왜 한꺼번에 오는 걸까. 시련이라는 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아. 실연처럼 들리기도 해. 우리의 삶이라는 게 새벽의 수영장의 물처럼 고요하지만 한 번 흔들리면 다시 고요해지기가 힘든 것 같아.


한 번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동시에 고장이 났어. 고작 키보드와 마우스 일 뿐인데 하루가 망가지는 거야. 그 ‘고작’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 같아. 지난번에 카카오 톡이 몇 시간 안 됐을 뿐인데 우리 삶이 어땠어?


시련이 한꺼번에 온 것 중에 타격이 가장 컸던 때는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생활을 할 때였지.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몽둥이로 여기저기 두드려 맞은 것 같았어.


그저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만 바랄 뿐이었는데 2년이나 지속되었지. 그때 실연도 같이 왔어. 시련과 실연은 그렇게 나에게 매질을 하더라.


시련이 가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는 거 같아.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무척이나 짧지. 평화라는 허울 주위에는 시련의 시간이 에워싸고 있어. 김소연 시인도 평화는 태풍의 눈과 같다고 했지.


평화 주위는 온갖 시련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평화의 그 짧은 달콤함은 금방 녹아 없어지고 말아. 시련을 많이 겪어야 한다지만 나는 시련이 싫어. 그렇다고 평화만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평화가 길어지면 나태가 되니까. 영속될 수 없지. 그냥 그렇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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