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구름이야ㅋㅋㅋ


역대급이라는 말이 싫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기예보 뉴스에는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떴다. 역대급 더위, 역대급 홍수, 역대급을 안 갖다 붙이면 이젠 기사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이다. 그놈의 역대급이라는 말이 없으면 이젠 아무것도 내보낼 수 없는 모양이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뒤 매년 여름이 되면 역대급 가뭄이라는 기사가 내가 사는 도시에도 늘 떴다. 나는 매일 강변을 조깅하는데 역대급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가뭄이면 강이 말라서 강바닥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나. 그러나 태화강이 바닥을 보인 적은 한 번도 못 봤다. 가뭄이 심했을 때에도 태화강은 늘 적정 수위로 잘 흘러갔다.


도대체 그놈의 역대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나. 작년에 역대급 센 놈이 왔으면 올해는 역대급보다 더 한 표현을 써야지. 티브이 예능에서도 이건 역대급이야, 같은 말을 한다. 듣기가 아주 싫다.


예전에 ‘니마이’라는 말이 유튜브 속 개그맨들에게 유행처럼 떠돌았다. 말 끝마다 니마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이런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유행시키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니마이’라는 말을 썼다. 물론 안 쓰는 개그맨들도 많았다. 그때 니마이를 입에 달고 유튜브를 하는 개그맨(개그우먼 포함)들은 너네들은 어떤 일정한 수준은 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공중파 출연이나 유튜브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그 생각처럼 되었다. 그런 ‘니마이’ 같은 유행어를 입에 달고 지내는 개그맨, 개그우먼들보다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또 듣기 싫은 말이 해리티지다. 문화유산을 말하는 단언데 언젠가부터 시계에 붙기 시작하면서 티브이 광고에서도 해리티지 타령이다. 롤렉스에 해리티지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더니 이 해리티지라는 단어가 좋은지 여기저기서 갖다 쓰고 있다.


해리티지라는 단어를 입에서 사용하는 사람 역시 이 단어를 이때에 이 발음으로 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여서 참 별로다.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사용되어야 해리티지라는 말도 듣기가 좋을 텐데 난무의 범위에 들어서게 되면 정말 듣기 싫은 단어가 된다.


롤렉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가진 거 개뿔도 없으면 롤렉스에는 왜 그렇게 미쳐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시계 하나가 너를 결정짓는 것도 아닌데, 여유가 되고 롤렉스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생활 때문에 끙끙거리면서 롤렉스를 차고 다니는 것은 도대체 뭐야.


45년 차 시계장인이 롤렉스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https://youtu.be/qTkIHsSrhOQ?si=H0_-cH1KjsHVn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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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봤을 때 나만 그런지 몰라도 안야 테일러 조이의 목소리가 9년 전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였던 샤를리즈 테론의 목소리 같아서 좀 놀랐다.

그때 영화의 뒷 이야기를 하자면 톰 하디 이 새끼가 항상 지각이라고 한다. 지각도 몇 시간 정도 늦는 게 아니라 8시간씩 막 그렇게 늦게 와서도 나한테 시비 걸지 마 찌발 같은 태도였다고. 그래서 샤를리즈 테론과 사이가 참 별로였다네. 영화 촬영 할 때만 빼고는 같이 있지도 않았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밀러가 피를 갈아서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와 정말 재미있었다. 보면서 인간의 뇌에서 나올 수 있는 서번트는 다 나온 것 같았다. 아드레날린, 도파민, 아세틸콜린 같은 물질이 쥘쥘 흘렀다.

그에 비해 이번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만큼 뇌에서 분비물이 수돗물처럼 나오지는 않는다. 이 생 날 것의 추격전이 분노의 도로를 꽉 채웠던 만큼 퓨리오사에서는 덜 해서 그런지 분노의 도로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번 퓨리오사는 퓨리오사의 캐릭터에 초점이 많이 가 있어서 그런지 몸이 들썩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밀러는 나처럼 이렇게 영화를 찍으면 환장하게 될 걸,라고 여실히 보여주었다.

액션씬만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또 언제 매드맥스 후속 편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임모탄 버전은 안 나오나. 임모탄이 개 양아치 같은 리더인 줄 알았는데 인간미가 흐르는 그런 캐릭터잖아.

매드맥스 하면 1편인가, 80년대 세상이 망하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빌런을 전부 박살 내는 멜 깁슨의 액션이 정말 좋았다. 초초초 저예산으로 카체이싱 액션신을 이렇게 담아냈다니.

퓨리오사는 인간미를 버려야 했다. 인간미를 발휘하다는 엄마처럼, 잭처럼 될 수 있다. 퓨리오사의 전사로의 성장통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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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사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하야오는 전쟁에 대한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바람이 분다,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비판을 가득 담고 있다.

아직 어린 히미가 미래의 마히토를 만나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잖아”라고 말한다. 비록 히미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히토를 낳겠다는 심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이렇게 태어났다.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는 존재가 없다. 할머니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오늘 나온 통조림을 보며 기뻐하고 음식에 열의를 보인다.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의 순환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지구본은 돌아가고 우리는 그 지구본을 열심히 돌려야 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전부 열려 있다. 보는 이들이 보는 대로 생각하면 그게 장면 장면이 말하는 의미이자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게 뭐지? 난해하고 이상한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정확하게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이상하기만 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 불행하다가도 한 번 행복함에 우리는 그때 웃기도 한다.

히미처럼, 실수하더라도 그리하여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마히토를 다시 낳겠다는 것처럼 그 실수가 실패는 아니기에 우리는 두 발로 바닥을 딱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야오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원작 소설을 가져온 이유는 전쟁 속에서도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생명은 계속 이어져야 하며 죽음이라는 건 삶의 대극이 아니라 한 부분이라는 걸 히미와 마히토를 빌어 절실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야오가 팔순이라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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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인공지능의 영화로 나오는 사람이 총 4, 5명이 다다. 그래서 다른 인공지능 영화보다 볼거리는 없다. 인공지능, 쳇GPT 만든 인공지능 소녀로 미성년 성범죄자를 잡는 내용인데 썩 볼거리는 없는데 가장 현실과 흡사하다.

김태웅 의장이 말하는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이 영화를 보면 현실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실의 챗디피티처럼 자기 학습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걸 잘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영화적 허용으로 끝이 나지만 김태웅 의장의 요즘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나름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인공지능의 수준이 지금 애플이나 구글, 앤비디아 같은 회사에 비해 떨어지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와 무관하지만 우리나라는 신뢰비용이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은 나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끈 덕분에 거기에 충당하는 비용이 들지 않아서 그 비용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간혹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카페에서 자신도 모르게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갔다가 와서는 아! 내가 한국사람이 다 되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거나, 노트북 심지어는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화장실에 가도 그 누구도 노트북을 가져가거나 휴대전화를 훔쳐 가지 않는다. 신뢰 덕분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이 택배라고 한다. 아파트 복도에 택배가 문 앞에 널브러져 있어도 그 누구도 그 택배를 들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시티브이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런던의 6. 6%, 베이징의 몇 퍼센트더라? 아무튼 세계 1, 2, 3위의 도시에 비해 터무니없이 카메라가 적다. 즉 신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적게 든다. 만약 신뢰가 바탕이 없다면 경찰을 부르고 카페는 한 동안 장사에 지장이 있고 매니저가 나오고 사람들이 커피를 대기하는 등,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 신뢰비용이 하루, 한 달, 일 년 정도 쌓이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기차를 탈 때 예전처럼 일일이 수검하여 펀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으로 치면 하루에 몇 만 명, 돈으로는 얼마, 시간으로는 엄청난 시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사기의 나라, 사기꾼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신뢰로 이어져 있는데 어째서 사기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을까. 사기를 치는 건 신뢰로 묶여 있는 일반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지닌 사람, 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끼리의 리그 속에서 똘똘 뭉쳐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해 먹을 대로 해 먹어도 수감되지 않거나 들어가도 곧바로 나온다. 그래서 사기가 판을 치는 것이다. 미국의 사기를 다루는 학자(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한국을 엘리트 사기 카르텔의 나라라고 했다. 아주 예전부터 늘 이런 카르텔이 있어 왔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투명해진 요즘 그들의 행각이 드러나니까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뭘 어쩌지 못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지려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 검사와 정치인을 보면 된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고 요만큼의 투자로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욕망이 꿈틀거리게 된다. 이것이 후광효과다. 사기는 사람들의 불온한 마음에 붙어서 점점 커진다. 그래서 사기가 사라질 수 없다는 현실이 허망하기만 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독재자들의 권력에 혀를 내두르다가 그들을 처단하는 혁명을 이루었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다. 피노체트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만든 영화 ‘공작’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독재자들은 권력을 휘둘렀다. 거기서 죽어나는 것은 일반 서민들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는 망발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독재자들을 혁명으로 끌어내렸는데, 그런데 혁망가들에서, 일반 사람들에서 수장이 된 사람이 독재자들보다 더 악랄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사기를 치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기꾼이 점점 많아지고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다. 수원에서는 지속적으로 전세사기(뭐 다르게 불리는 말이 있던데)가 나오고 있는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수원에는 평균 4천 건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은 만 팔천 건의 사건이 밀려있다. 그러니까 사건을 돌봐야 할,,, 아무튼 그렇다. 자세하게 쓰려고 해도 나도 무섭다.

이렇게 되면 신뢰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삶의 터전이나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종교에 귀의하여 그 이후의 문제가 또 터지는 연쇄가 일어난다. 무한굴레의 늪. 인공지능아 너의 좋은 능력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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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봐 주는 이가 없어서 한없이 강해지는 한 여자의 이야기. 은희와 영수는 요양소에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수는 서울에서 바를 경영하며 호랑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약국에 약을 사러 가서도 약사에게 치근덕거리는 영수. 영수는 그런 방탕한 생활에 젖어 살다가 심각한 간경변에 걸린다. 바도 망하고 애인과도 사이가 멀어진다. 영수는 심각해지는 병에 몸을 방치하다가 요양소에 갈 요량으로 엄마에게는 유학을 간다고 한다.

영수는 그렇게 삶을 포기했지만 요양소에서 8년이나 지낸 스탭 같은 여자 은희를 만나면서 조금씩 희망을 얻는다. 처음 요양소에서 영수는 적응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소개를 하는데 모두가 시니컬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난 신부전이야, 난 간경변이야. 넌 뭔데? 라는 식이다. 그 속에서 영수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런 영수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 은희였다.

은희는 폐 질환을 앓고 있는 심각한 환자지만 그녀는 언제나 밝다. 은희는 오랫동안 병과 동거를 하고 있어서 삶이 너무나 담담하다. 조금만 뛰어도 죽을 수 있는 은희지만 밝게 웃는 그녀에게 영수도 마음을 연다. 은희는 천천히 움직였고 걷는 것도 느렸다. 은희 씨는 정말 아무것도 아파 보이지 않아요. 라고 영수가 말하니 은희는, 그건 누가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제 좀 티를 낼까요. 라고 한다.

두 사람은 아픈 몸으로 연애를 하기 시작한다. 연애를 시작한 은희는 행복에 겨워, 근데요,,, 남녀가 깜깜한 극장에서 영화 보게 되면요,,, 손도 잡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건 영화에서나 그러나 봐요? 사랑스럽게 보이는 은희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은희가 영수에게 같이 살자고 고백을 한다. 영수 씨, 우리 같이 살래요? 같이 살래요? 결혼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나 몸도 아프고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영수 씨 몸 낫 도록 도와줄게요.

결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살다가 싫어지면 헤어지자고, 요양원을 나와 시골에서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은 행복하기만하다. 영수의 간수치가 좋아진다. 그의 병에 진척이 보임으로 두 사람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미래가 보이는 남자와 현재만 살아가는 여자.

헤어진 애인인 수연이 찾아와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영수는 수연이가 알고 있는 자신이 은희가 알고 있는 자신보다 더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영수와 은희의 세계는 수연이가 주고 간 핸드폰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영수는 서울로 가고 은희에게 연락을 끊은 채 며칠을 보낸다. 전화를 아무리 해도 영수는 받지 않는다. 너무 무서운 은희는 영수에게 계속 전화를 한다. 영수는 어쩔 수 없이 은희의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은희는 말한다. 나 너무 무섭고 보고 싶고 화가 나.

서울에서 돌아온 영수에게 은희는 한 마디 한다. 못 생겨졌어. 그만큼 은희에게 영수는 낯선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후 영수는 은희의 폐에 찬 물을 빼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끝내 술을 마시고 은희에게, 넌 천천히 먹는 게 지겹지도 않니? 난 지겨운데. 너 그냥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니? 니가 좀 떠나줘 나 그런 얘기 못하는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이후 영화는 어떻게 될까. 자신보다 옅은 병을 가진 남자를 사랑하며 위태한 여자. 현재가 중요한 여자와 내일이 중요한 남자의 사랑. 그런 은희에게 밀땅 같은 걸 할 여유가 없다. 절대 뛰어서는 안 되는 병을 지녔지만 새벽에 언덕을 달리는 은희에게 한 없이 몰입되었던 영화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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