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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옥희가 옥희한 영화다. 몇 가지의 버전을 봤지만 전영선의 옥희가 가장 재미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누구나 한 번 보면 두세 번은 더 보지 싶다. 옥희는 요즘으로 치면 메신저다.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영화는 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사랑방 손님인 아저씨 김진규와 어머니인 최은희, 두 사람은 참 재미가 없다. 몹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인다. 전형적이고 배경에 묻어 있는 것 같은 주인공들인데 기묘하게도 옥희를 통해 두 사람은 아주 입체적이 된다.


옥희뿐 아니라 식모 아줌마인 도금봉, 그리고 계란 장수인 김희갑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고 복선에 사건에,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옥희 덕분에 영화는 반짝인다.


옥희는 아저씨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신나기만 하다. 끊임없이 엄마와 아저씨에게 서로의 이야기(속마음과는 다른 묘한)를 전달하며 종알종알 재미를 알아간다. 옥희는 아저씨의 사랑방에 자주 놀러 간다.


아저씨의 밥상 앞에서 “찬이 없어서”라고 하면 김진규가 흐흣하며 기막힌 웃음을 짓고 대화를 하다가 옥희가 좋아하는 삶은 달걀을 아저씨도 좋아한다고 하니 “어머나”라는 옥희표 추임새는 정겹기만 하다.


옥희는 몸이 불덩이가 되는 와중에도 아저씨 방에 놀러 가고 싶어 하고, 아저씨만 찾는다. 의사까지 찾아오고 옥희는 어떻게 될까.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말하지만 열린 결말이다. 61년도의 실 풍경이 그러했겠지만 당시의 영화나 문학 등 예술은 봉건 제도나 과부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영화 내내 쇼팽의 녹턴이 배경 음악으로 나온다. 아주 묘하게 어울린다. 6살 옥희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엄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순수하고 맑다. 외국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다면 한국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오래전 최은희가 메릴린 먼로의 옆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던 것처럼.

https://youtu.be/c_bWx5n0n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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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울의 지붕 밑'이다. 61년에 나온 '서울의 지붕 밑'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한의사 김학규의 한약방 맞은편에 최두열이라는 젊은 양의가 들어와 버린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신의 딸, 인두질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을 하는 현옥과 눈이 맞아서 열불 터진다.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데 이 놈의 딸이 자꾸 맞은편의 양의와 눈을 맞춘다. 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김학규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에 나가게 되지만 낙선하게 되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딸을 위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다.


허준호의 아버지인 허장강, 코믹의 대부 김희갑, 그 당시 영화를 보면 거의 다 나오는 김승호부터 도금봉, 황정순까지 싹 다 나온다. 구봉서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최은희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화한 것에도 출연을 했고 '해녀'나 다른 영화를 봐도 최은희 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지붕 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민이지만 그래도 꽤 중산층이고 그중에서도 '상'이다. 레어먼드 카버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처럼 중산층으로 그 자식들은 죽으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내내 유쾌하지만 아직 61년이라 전쟁의 여파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전시에 남편을 잃어버린 최은희도 그렇고, 한국의 생활 전반에 거의 최빈국에 가깝다.


첫 장면은 동네 주모(황정순)의 딸인 점례가 몸이 이상해서 한약방을 찾고 진맥을 짚어보는 김학규가 혼전임신,라고 하며 술집 주인은 주모라서 자신을 무시한다며 펄떡 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맥 보는 과정에서 딸의 윗도리를 벗게 하고 문방 너머에서는 김희갑과 허장강이 구멍을 뚫어 그 모습을 훔쳐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60년도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점례를 임신시킨 사람은 김학규의 백수 아들 현구(신영균)다.


그 당시에 젊은 양의 최두열(김진규)과 남편을 잃은 현옥(최은희)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봉건 제도를 무시했던 소설 '무정'의 영채와 선형처럼 부모 세대라는 엄청난 벽을 깨고 시랑을 쟁취한다. 70년대 티브이 속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시초가 '서울의 지붕 밑'이다.


김진규는 김승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후 모든 영화의 주연을 차지했다. 내가 본 김진규의 마지막 영화가 '삼포 가는 길'이었다. 황석영의 소설이 영화가 되었는데 젊은 백일섭의 "지랄로"라는 대사가 착착 달라붙고 백화로 나온 문숙이 너무나 예뻤던 영화였다. 마지막 헤어질 때 정류장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픈 계란이 아닌가 싶다.


서울의 지붕 밑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주 선명한 꿈. 하지만 선명한 꿈도 결국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신영균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꿈처럼 사라졌으니까.


https://youtu.be/XxMG1IhCL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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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영화에 관해서는 모친과 이야기를 하면 잘 통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전영선이 어떻게 캐스팅이 되었는지부터, 아버지는 누구이며 같은 이야기를 줄줄 한다. 어머니는 오래전 못 말리는 영화 소녀로 촌구석에서 동생(작은 이모)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극장이 있는 시내까지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로버트 레드포드, 비비안 리, 그레이스 켈리 같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하는 날이면 원주 시청에서 일을 하는 외삼촌을 졸라 영화 티켓을 구입해서 첫 상영할 때 들어가서 끝나면 보고 또 보고, 하루 종일 영화를 관람했다. 아름다운 배우들의 연기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고 했다. 마치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처럼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본 이후에는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런 오래된 영화들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지난 세대와 영화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건 뭐랄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봤던 영화를 자식이 커서 다시 보고 그 영화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한국 고전영화를 꽤나 좋아한다. 그래서 ‘자유부인’이나 ‘서울의 휴일’처럼 50년대 영화부터 ‘오발탄’, ‘아빠의 청춘’, ‘언니는 말괄량이’, ‘서울의 지붕 밑’처럼 60년대의 영화도 많이 봤다. 우리나라는 60년대가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엄청난 영화가 지치지 않고 우는 옆집의 100일 된 사내아이처럼 끊임없이 극장가에 걸려 사람들의 여가를 채웠다. 하지만 대부분 수도 서울의 극장에만 걸려서 지방과 서울의 사람들은 문화 형성의 차이가 아주 심했다. 60년대에는 엄앵란과 신성일이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때부터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김승호, 김진규 세대 다음으로 신성일과 엄앵란이었다. 


전영록의 부모인 황해와 백설희도 배우이며, 쌍칼로 유명한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박준규는 어린 시절에 집이 2층짜리에 마당도 넓은 저택에서 살아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다),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 등 그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봐도 꽤나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여배우들로는 한은진, 최은희, 도금봉 등 여배우들은 거의 1세대 내지는 1.5세대인데 나이가 다 비슷해서 누군가는 시어머니, 누구는 식모, 누구는 딸이나 며느리로 나온다. 서울 지붕 밑을 봐도 비슷한 배역으로 나온다. 


일본으로 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산 자의 기록’, ‘7인의 사무라이’이 나오는 배우들이 다 비슷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를 권장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3시간 정도 되고 흑백시대의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7인의 사무라이는 몇 해 전에 이병헌이 나오는 ‘매그니피센트 7’로 리메이크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영화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서양의 영화(로마의 휴일이나 가스등 같은 영화)나 일본 영화를(맨발의 청춘) 따라 만든 영화들이 있고, 우리나라 문학 소설을 영화로 만든 문예영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가 있고 ‘김약국의 딸들’ ‘오발탄’ 등 아주 많다. 그리고 참 재미있다. 왜냐하면 소설이 무척 재미있게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고전 영화를 보려면 EBS에서나 하면 보거나 지역의 작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 같은 곳에서 상영을 하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도시에는 한 군데가 있었는데 상업영화보다 두 배 정도 비쌌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로 많은 한국 고전 영화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만 크다면 정말 극장에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 60년대를 지나면 서서히 컬러가 입힌 영화들이 나온다. 얄개시대부터 병태가 나오는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으로 이어진다. 또 정윤희, 금보라, 김창숙 같은 배우들의 스무 살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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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2-09 11: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ㅎㅎ 외국도 그런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죽은 커크 더글라스의 아들도 마이클 더글라스이고 그의 부인은 캐서린 제타존스에 아마도 그들의 아들, 딸들도 전부 이쪽으로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럽게 ㅎㅎ. 골디 혼도 그녀의 남편은 커트 러셀 ㅎㅎ 그들의 딸은 케이트 허드슨, 아들은 올리버 허드슨, 전부 영화배우들인게
 

나는 껌을 매일 씹기 때문에 껌을 자주 구입한다. 주로 후라보노 껌을 구입하는데 어쩌다가 다른 껌이 씹고 싶을 때가 있다. 후라보노 껌은 9개들이 800원이다. 정확한 제품명은 '후라보노 쿨민트'다. 식품유형은 추잉껌, 품목보고번호도 있다. 품목보고번호가 무엇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가공식품에 붙는 번호이며 제조공장에서 나올 때 붙는다고 한다. 이 정도로만 알자. 업소명 소재지는 아무튼 청주에 있다.


껌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백설탕이 들어간다. 설탕의 맛은 처음 씹었을 때 한 번 나고는 그 후부터는 껌의 물컹한 물성만을 느끼며 씹게 된다. 그리고 껌베이스라는 게 들어간다. 모르니까 일단 찾아보자. 껌베이스를 찾아보니 껌의 바탕이 되는 물질이라고 한다. 껌에 씹힘의 성질을 주는 불용성 물질이다.라고 되어있다. 불용성이라는 말은 ‘어떤 화합물이 특정한 용매에 대해 매우 작은 용해도 밖에 나타내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공부를 못해서 일일이 찾아봐야 알 수 있다.


포도당이 들어가고 합성 향로와 천연 향로가 들어간다. 포도당은 단당류로 피곤하다고 해서 링거로 포도당을 맞기도 한다. 합성 향로는 쉽게 말해서 기름 같은 것에서 합성한 향로를 말하는 것 같다. 기름이라고 한다면, 정유, 석유, 콜타르, 유지 같은 것들을 출발 원료로 하여 화학적으로 합성한 향료다. 왜 이런 걸 집어넣나 하고 잠시 생각을 해본다. 옆에 천연향료(맨틀)만 넣으면 될 텐데,라고 하지만 그러면 또 가격이 껑충 오르려나. 맨틀을 글자 그대로 검색을 하니 지각과 핵 사이 구간으로......라고 나온다. 넘어가는 걸로.


후라보노답게 녹차 추출농축액이 들어간다. 들어가는 첨가물 중에서 제일 있어 보인다. 그리고 글리세린이 들어간다. 글리세린은 정말 여러 가공식품에 다 들어가는 것 같은데, 글리세린은 원래 관장, 윤활, 보습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란다. 글리세린의 단일제는 관장약과 윤활제로 사용되고, 복합제는 크림이나 점안액, 주사제 등에.... 이것도 여기까지 하고 넘어가자.


식물성 유지는 식물에서 채취하는 유지다. 기름 같은 것이다. 야자유, 팜유 같은 것이다. 치자청색소는 천연 색소라고 한다. 치자 추출액을 이용하여 얻는 것이라 한다. 모든 천연색소 중 안정성이 가장 우수하다,라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천연색소라고 해서 뭐든 믿고 다 안정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홍화황색소도 들어가는데, 역시 천연 색소로 홍화, 라는 꽃, 잇꽃의 관상화를 물로 추출하여 얻는다고 한다. 다른 황색소에 비해서 역시 안정성이 우수하다고 한다. 이 홍화황색소가 치자청색소와 배합되어 녹색 색소로 사용된다고 하니 이 둘이 후라보노 껌의 색을 결정짓는 모양이다. 뭐 어쨌든 신기하다.


감미료로 수크랄로스가 들어가는데 설탕에 비해 600배의 단맛을 가진 무열량 감미료라고 한다. 수크랄로스는 껌, 건과류, 발효유류, 영양보충용 식품에 다 들어간다. 고로 건과류라고 해서 많이 먹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물성 유지로 경화유가 들어가는데 고형의 인조 지방이다. 비누나 양초에도 사용된다. 고형의 인조 지방이라고 하니 마치 '알리타'나 '고스트 쉘'에나 나올 법한 말이 아닌가 싶다. 


들어가는 재료의 사용처를 알고 나니 껌을 씹는 것을 한 번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만 같다. 온통 기름과 색소로만 되어 있다. 로알드 달도 껌에 대해서 썩 좋지 않게 소설을 썼다. 알고 계신지. 바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잘 나온다. 하루 종일 껌을 씹는 바이올렛이 윌리 왕카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껌을 씹어대다가 몸이 불어나서 블루베리 껌으로 변하기도 했다.


껌 하면은 오래전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던 광고. 쥬시후레시, 후레시민트, 스피아민트, 오오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던 광고 송이 맴맴 돈다. 껌이라는 게 그저 스쳐 지날 수 있는 일종의 기호식품인데 그 시장이 아주 넓고 크다. 생각해보면 껌은 위에서 말한 전혀 입에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재료들로 여차 저차 해서 입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 모든 나라에서 껌을 제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껌을 잘 만들면 아마도 저 멀리 어떤 나라에 열심히 수출을 할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없는 나라의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껌을 씹고 있다. 야구선수들 역시 껌을 씹는다. 


후라보노에서 200원을 더 주면 저렇게 껌종이에 그림과 글이 그려진 껌을 구할 수 있다. 이백 원이 더 비싼 대신 껌의 맛이나 양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저 그림과 글을 보면 좀 작위적이다. 인위적인 글과 그림 말고 건강에 관련된 그림과 글에는 ‘똥을 잘 싸고 잘 누자’라든가, 식사 한 번 먹자는 글과 그림에는 ‘지금 당장 지에스25에서 만나서 신라면 컵라면이나 먹지’ 같은 글과 그림으로 농심도 광고하고 편의점도 같이 광고를 하는 재미를 주면 어떨까. '껌은 언제 씹을 때 좋을까? 바로 지금" 같은 문구면 참 재미있을 텐데,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럴 일은 택시를 타면 라디오 헤드의 노래가 나올 확률만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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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2-0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껌종이에 외국 시 위주로 적혀있던 에뜨랑제 라는 껌도 있었죠.

교관 2021-02-08 12:32   좋아요 0 | URL
에뜨랑제, 잘 몰라서 검색해서 이미지를 돌려봤는데 속옷만 잔뜩 나와서 밑으로 계속 내리다보니 ㅎㅎ. 시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1-02-10 02:1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ㅎㅎ 껌종이 있으면 한번 올려드리고 싶네요.
 


https://youtu.be/tHgzM5RM-JY

예고편


영화를 보다 보면 그만 영화의 인물에 이입이 되어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는 눈물이 대책 없이 흐르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그러려고 영화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수인을 보면서, 주수인의 성장을 보면서 밑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우물 밑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영화 '소리도 없이'가 보색 대비의 재미였다면, '야구소녀'는 주수인의 컬러에 매료되는 재미에 빠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수인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주수인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수인 파이팅, 야! 파이팅!!! 하게 된다. 마치 마법처럼,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겉으로는 야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는 주수인의, 주수인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주수인은 99년 대통령 배 4강전에서 덕수정보산업고와 배성고의 시합에서 나온 '안향미' 선수를 기반으로 탄생된 캐릭터이다. 안향미는 구속이 130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 속 주수인의 130 구속을 보면, 실제 구속이 136이었던-미국 야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한국으로 와서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 소속 내야수를 맡고 있는 재미교포 '제인 어' 선수와,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보면 일본 출신으로 미국으로 진출한 너클 프린세스라고 불린 '요시다 에리' 선수를 오마주한 것 같다.

주수인은 그냥 제멋대로 탄생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구단에서 남녀의 벽을 깨고 선수생활을 했던 실존인물을 말하고 있다. 안향미 선수는 우리나라 1호 여성 투수였다.

주수인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이제 힘들어서 못하니 포기하렵니다,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너는 못 할 것이니 포기하라고 한다. 욕과 괴롭힘과 힐난조의 시선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에 노력에 노력을 할 뿐이다. 주수인은 좌절이 와도 그것이 좌절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발악을 계속할 수 있다. 그 발악 속에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가슴에 탁 와서 부딪히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 그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코를 훌쩍거릴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초딩때부터 같이 야구를 한 정호가 코치에게, 수인이는 감독에게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어서 나가떨어지겠지 하며 훈련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대사를 한다.

이는 실제로 안향미 선수가 유니폼을 벗을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덕수정보산업고 하득갑 감독은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재수 없다’는 이유로 야구부 전용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고, 안향미 선수만 따돌리고 연습경기나 시합을 나가고, 심지어는 선수들에게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합숙생활이 힘들다고 적어내라고 조장하기도 했다. 부당한 처사에 격분한 안향미 선수 아버지가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부당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고 최숙현 선수가 있었던 트라이애슬론을 보면 된다. 엄청난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감독은 원래 페미니스트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여자라서 받는 몹쓸 대우에 대해서.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독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주수인에게 동화가 되었다. 야구란, 특히 프로 입단이라는 건 여자건 남자건 모두에게 엄청나게 힘든 벽이라는 걸. 그래서 주수인이 점점 해내는 것을 보고 여자가 아닌 주수인의 성장을 그리게 되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은 주수인의 꿈을 가로막는 큰 벽이 된다. 가난한 부모는 주수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엄마는 모질게만 대한다. 아무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아버지는 주수인의 편에서 어떻게든 뭔가를 해주려는 모습에서는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엘리엇의 발레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던 그 아버지가 쓱 지나간다. 


주수인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주수인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영화다. 주수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도 좋을 영화 '야구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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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면 그건 타인의 웃음소리다. 나에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웃음소리. 음산하면서 마치 나를 향해 깔보는 말들을 흘려보내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히히히히, 킥킥 킥킥, 크크크크 같은 웃음소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근처에서 계속 들린다면 아마도 누구라도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꼭 나에게 하는 지랄 맞은 말 같아서.


우리는 그런 웃음을 티브이 뉴스를 통해 보기도 한다. 가해자가 법정으로 가기 위해 몸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서 가고 있음에도 피해자들을 향해 짓는 웃음이 그렇다. '2AM: The Smiling Man'이라는 4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타인의 기괴하고 기묘한 웃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공포를 주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_u6Tt3PqIfQ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

종수가 애타게 말을 하지만 벤은 큭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운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웃음. 킥킥 킥킥 거리며 웃는 소리는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 마치 벌레처럼.



종수는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수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아버지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 터지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고 말이다. 종수는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걸 알고 있다.


가진 게 없어도 재미를 위해서 여행을 가고 팬터마임을 배우는 해미는 재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벤과 어울리지만 종수는 낄 수 없다. 공항에서 곱창집으로 가면서 벤은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우수한 DNA를 이어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종수가 가지지 못한 엄마와 웃음을 난타한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분노조절로 구치소에 간 것처럼 자신도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해미 이전의 해미들이 벤의 서랍 속에서 사라져 갔다는 것을. 유전자는 내면의 호러인 것을.


사람들은 버닝이 미스터리하고 애매해서 어렵다지만 실은 버닝은 시처럼 구체적이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장면과 대사가 구체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다 나타난다. 단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구체성을 사람들이 찾지 못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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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04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닝> 강렬했던 영화! 마지막 문단 너무 소름돋네요👍

교관 2021-02-05 12:28   좋아요 2 | URL
영화 정말 좋았어요.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여서도 그런지 영화가 꼭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메타포로 꽈악 짜여진 듯 했습니다. (엄지표시)
 

동치미는 냉면처럼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다. 별미다. 이상하지만 동치미는 겨울에 찾게 된다. 다른 계절에는 전혀 찾지 않게 되다가 겨울만 되면 보고 싶은 사람처럼 찾는다. 겨울이 되면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를 찾아서 듣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동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팥죽이다. 단팥죽이 아니라 그냥 팥죽. 역전시장에 가면 팥죽 거리가 있다. 죽 붙어있는 팥죽 파는 가게는 온전한 가게라는 형태보다 그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고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팥죽을 퍼 담아서 내어 주는 형식이다. 전통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팥죽은 거기에 앉아서 먹으면 맛있지만 동치미가 딸려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포장을 해서 집에서 이렇게 동치미와 함께 먹는다. 이 정도의 동치미를 통에 담으면 한 번에 다 먹어 치운다. 동치미는 온전히 어른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당이 있던 어린 시절에는 화단 한 편에 독을 묻고 거기에 동치미를 담갔다. 그리고 겨울에 그것을 꺼내서 먹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동치미를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다. 또 그때는 무가 큼지막해서 젓가락으로 꼽아서 먹거나 해야 했는데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동치미에 맛을 들인 건 대학교 때 자주 가는 닭갈비 집이 있었다. 거기 이모는 늘 닭갈비를 주문하면 동치미를 내주었는데 닭갈비보다 더 맛있었다. 시원하고 새콤하면서 와삭하고 씹는 무는 너무나 맛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다 보니 주인 이모와 친하게 되었다. 동치미를 여러 번 달라고 해도 싫은 내색 한 번 내지 않았다. 나는 닭갈비보다 동치미가 좋아서 동치미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러면 주인 이모는 나를 위해 동치미를 한 그릇 더 떠주고 밥도 더 주었다. 닭갈비 집은 한 건물의 9층에 자리했는데 9층이 닭갈비 타운이었다. 그 안에는 닭갈비 집이 10집이 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니 그 집만 늘 북적북적거렸다. 테이블이 고작 4개밖에 안되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많으니 조금씩 소문이 퍼져 그 집이 장사가 제일 잘 되었다. 그 덕분에 그 닭갈비만 돈을 왕창 벌어서 입지 좋은 곳으로 옮겨서 크게 닭갈비 집을 열었다. 아마도 동치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콤한 닭갈비의 맛을 살며시 눌러 주는 건 동치미다.


동치미는 단체 생활하는 곳에서는 잘 먹을 수 없다. 군대 같은 곳에서는 동치미를 먹을 수 없다. 오로지 집에서 조금씩 담근 동치미를 겨울에 맛보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야만 맛에 눈을 뜨는 음식 중에 하나다. 동치미는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김치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동치미의 다른 맛을 맛보는 것 역시 좋다.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런지 죽 전문점에서 딸려 나오는 조금은 달달한 동치미의 맛도 좋다. 그래서 왕왕 가는 죽 전문점에서는 죽을 구입할 때 동치미 국물만 따로 몇천 원어치씩 사 먹기도 했다. 


겨울의 동치미의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겨울의 팥죽이다.  둘 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이 좋은데 겨울에 둘 다 먹으니 아주 맛있는 것이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동치미를 떠먹는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꿀꺽 넘어간다. 그리고 무를 씹으면 동치미 국물을 가득 물고 있어서 무를 씹는 맛이 좋다. 팥죽을 입 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 먹고 동치미를 한 국자 떠먹는다. 아흐. 정말 어르신들이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갈 때 나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치미는 쌉싸름한 와인과 같이 먹어도 맛있다. 동치미의 가장 별미는 국수 소면을 삶아서 동치미에 넣어서 후루룩 먹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가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고 했는데 동치미에 국수 소면을 말아서 먹는 동안은 행복하다. 동치미는 내 외할머니를 늘 소환시킨다. 주글주글한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내 외할머니. 


내 외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외할머니와 중학생이었던 내가 한 번은 둘이서 식당에 갔다. 나는 갈비탕을 시키고 외할머니는 냉면인가, 동치미국수인가를 시켰다. 나는 그게 너무 맛있게 보여서 조금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밥그릇에 국수를 담았다. 국물도 조금 부었다. 그리고 담은 밥그릇을 자기 앞으로 당기고 큰 냉면그릇은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동치미를 와삭와삭 씹고 있으면 외할머니도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 동치미는 그런 메타포를 지니고 있다. 


나는 한 동안 겨울에는 동치미를 조금 큰 텀블러에 담아서 들고 다녔다. 모두가 텀블러에 커피를 잠아서 마셨는데 나는 시원한 동치미를 담아서 마셨다. 그러다가 무도 먹고 싶어서 큰 보온병으로 바꾼 다음 동치미를 이만큼 담아서 하루 종일 홀짝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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