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조깅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야외 조깅의 장단점은 변수에 있다는 것이다. 바람, 먼지, 불빛, 냄새 같은 것이 매일 다르다. 그리고 조깅코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매일 다르다. 어? 뭐야? 왜 저렇게 달리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 ‘차인표’에서 앞뒤로 박수를 치며 다니는 아주머니 같은 폼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다.

매일 달리는 코스가 있는데 질릴 때가 있어서 일주일 중 평일은 늘 달리는 코스로 달리고 주말에는 반대로, 다른 쪽으로 달리기도 한다. 또 육 개월은 강북 쪽의 코스로 달리고 육 개월은 강남 쪽 코스로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도 저도 질리게 되면 코스에 공원을 집어넣어서 공원을 몇 바퀴 돈다. 공원 안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가파른 계단도 있어서 몇 바퀴 도는 동안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요 며칠은 평소에 달리는 코스를 벗어나 강변의 다른 코스로 달려 상류 쪽으로 올랐다. 그곳에는 7만 마리나 되는 까마귀들이 서식한다. 까마귀들 뿐 아니라 철새까지 오는 여름에 서식지 근처를 달리면 새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새 냄새라는 건 닭똥냄새 같은 냄새를 말한다. 여름에 닭장 근처에서 나는 냄새의 백만 배에 달하는 냄새가 그 근처를 달리면 풍긴다. 한 마디로 지옥의 냄새다.

겨울에는 백로 같은 다른 철새는 거의 없고 까마귀들만 서식하는데 저녁 6시에서 8시경에는 하늘을 점처럼 뒤덮은 까마귀 떼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달리다 보면 저 먼 하늘에서 구름이 막 움직이는 게 보인다. 구름인데 빠르게 움직인다. 마치 영화 속 검은 엑토플라즘처럼. 달려서 가까이 가면 노이즈 같은 잡음이 세세세세세 하며 들리다가 나중에는 까악 까악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들리는데 수만 마리가 하늘에서 비행을 하며 울어대는 소리가 몹시 기괴하다.

까마귀 떼는 비행하는 하늘의 구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느 지점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수천 마리가 비행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건 경이롭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떤 존재라도 그 개체가 상상 이상이 되면 굉장한 무서움을 자아낸다. 그건 생명체의 크기와 무관하다.

예전에 군대 후임 중에 영해 촌에 사는 놈이 있었는데 말년휴가 때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높은 고지대에 살고 있어서 논농사는 할 수 없고 밭농사만 가능한 지역이었다. 버스가 하루에 한 대 다녔다. 후임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나와 동기가 한 명 더 있어서 오토바이에 다 탈 수 없어서 동기를 태우고 요만큼 타고 가서 내리고, 또 돌아와서 나를 태우고 가서 저기까지 가고 해서 6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후임이 오토바이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는데 그 부위에 날파리들이 까맣게 달라붙었다. 무서울 법도 한데 피떡칠에 붙은 날파리들을 떼지도 않더라. 우여곡절 끝에 후임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는데 정말 시간이 후퇴한 강촌 중에 강촌이었다. 동막골 같았다. 개울을 넘어서 가는데 하늘이 좀 어두운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보니 잠자리 수천 마리가 개울 위에서 떠 있었는데 잠자리 날개가 움직이는 소리가 몹시 소름 돋았다. 잠자리 한 두 마리야 아무것도 아닌데 수백수천 마리가 공중에 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6시에 나왔다.

7만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조깅코스에서 혼자 봤다면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롯데월드를 잘 안 가듯이 상류에 위치한 까마귀와 철새 서식지가 있는 이곳에 여기 사는 사람들도 잘 오지 않는다. 달리는데 옆으로 고등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니 가면서 “야야, X바 까마귀 떼 실화냐”라고 놀라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갔다. 페달을 더 빨리 밟았다. 

조깅코스의 길에 까마귀 똥이 말라붙어 있는 걸로 조심해야 할 것은 떨어지는 까마귀의 똥이다. 새똥은 냄새가 심하다. 사실 똥은 다 심한 똥냄새가 난다. 사람이든, 개든, 뭐든 똥은 다 냄새가 심하다. 새똥 냄새도 지독하다. 새똥 냄새는 떨어졌을 때보다 시간이 지났을 때 더 심하게 나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근거는 없다. 하지만 보통 보면 비둘기도, 까마귀도 떨어진 똥이 시간이 지나 냄새가 고약한 경우를 봤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새는 위장이 일직선이다. 인간이나 소처럼 구불구불하지 않다. 그래서 새는 사람처럼 똥을 싸기 위해 멈춰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새는 날아다니며 똥을 쌀 수 있게 진화했다.

그렇게 하려면 똥과 오줌이 나오는 배설구가 같아야 한다. 역시 그렇게 진화를 했다. 그리고 알이 나오는 구멍 역시 같다. 그래서 메추리 알에서 가끔 배설물이 말라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는 먼 거리를 날아야 하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나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중력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폴짝 뛰면 인간은 고작 1초도 못 떠 있는다. 새는 자신의 무게를 공중으로 부유시켜 활공을 해야 하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려다 보니 똥을 누기 위해 잠시 내려앉아 쉬었다가 다시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가 없다.

아무튼 까마귀 떼가 하늘 위에서 까악 까악 하며 날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머리 위에 똥이 떨어진 적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까마귀 똥을 맞기도 했다. 대부분 까마귀 떼에 압도당해서 떨어지는 똥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애당초 하지도 못한다. 까마귀 떼가 점처럼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마술처럼 하늘에 그림이 그려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말이지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은 이 밑에 혼자 있다면 겁이 나서 재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벗어나려면 전력질주를 해도 십 분 정도는 달려야 한다. 그러니 더 없는 공포다. 이 밑을 지나다니면서 늘 드는 생각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다가 몇 마리가 전선에 앉으면 우르르 다른 까마귀들이 전선에 내려앉는다. 까마귀를 실제로 보면 비둘기의 두세 배 정도 크기로 한 마리도 무겁다. 그런데 매일 저렇게 몇 백만 마리가 전선에 가득 앉으면 그 무게에 전선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질 수밖에 없다.

전선이 전봇대에서 전봇대로 이어지는 그런 전선이 아니다. 철탑에서 철탑으로 이어지는 두껍고 큰 전선이다. 물론 튼튼하겠지만 탁 끊어지는 순간 그 밑에 지나가는 사람의 몸통에 촤르륵 하며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몸이 분리될 것만 같다. 마치 영화 피라냐에서 철사줄에 몸이 반동가리나는 것처럼 말이다. 참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구경을 하면서 조깅을 하고 나면 두 시간 정도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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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OjPHdXwkWI



심슨 시리즈 중에 심슨 가족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장면이 있다. 바트가 게임으로 수입을 올리게 되자 심슨이 바트의 편을 들면서 한국으로 오게 되고 한국의 절에 가고 싶었던 리사 때문에 온 가족이 한국으로 온다.

한국의 장면은 아주 짧은데 그 짤막한 장면 속에 한국을 요목조목 집어넣었다. 화면을 보면 가장 높은 롯데월드가 보인다. 이 에피가 19년 3월에 방영되었기에 롯데월드가 등장한다.

만두, 오락실도 보이는데 재미있는 건 치맥이라는 글자다. 치맥은 한국에서 시작된 먹방 덕에 전 세계로 뻗어나간 말인데, 심슨에서 ‘치킨과 맥주‘보다는 ‘치맥’이라는 말을 집어넣어서 간판을 만들어 버렸다. 치맥은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치맥을 아주 좋아한다.

노래방이나 피시방도 보이지만 화면을 잘 보면 ‘찬호 박 파크’라고 박찬호 공원을 말할 정도로 미국에서 바라보는 박찬호의 위상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간판의 ‘CHUCK KIM CHEESE‘는 영어와 한글이 합쳐졌다. ‘김치즈’라는 신박한 말을 만들어낸 심슨 팀.

또 ‘밥’이라는 간판은 여기 한국보다는 미국에 있는 한국 식당의 모습 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역시 BTS가 빠지면 안 된다. ‘BTS ARMY 신병 모집센터’라는 간판이라니, 정말 센스와 유머가 돋보인다. 큭큭하며 이 짧은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냉면‘이라는 간판과 ‘코리안 비비큐’라는 간판도 보인다.

그리고 ‘동계 아시안 게임 자화자찬’라는 간판도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동계 아시안 게임은 1991년에 열렸고 동계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4년마다 열리지 않는데 그럼에도 저런 간판이 있는 걸 보면.

어떻든 리사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조계사가 나오고, 조계사의 작화도 디테일이 뛰어나게 그렸다. 극에서 심슨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온다.

이렇게 재미있는 심슨 가족을 탄생시킨 작가 마크 에드워드 윌모어도 코로나 19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근 1년 동안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개인적으로, 또 조직과 단체적으로.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극 중의 심슨처럼 우리도 어떤 변화를 가지되 서로를 생각하는 변함없는 모습은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해가 빨리 지나가기를 이토록 바랐던 적은 누구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부터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손가락 바닥으로 누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오기 전에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손가락을 접어 마디로 누르거나 휴대폰 모서리로 누르곤 했다. 그리고 닫히는 버튼을 눌러본 적은 없다. 저절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혀라,며 눌러본 적은 기억으로는 없다. 코로나가 터지고 지금 이 시간까지 약속은 거의 잡지 않고, 여름 이후로는 아예 다니는 동선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식당이나 카페나 술집에는 가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는 아파트와 일하는 곳의 두 곳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습관은 확실하게 굳어 버린 것 같다.


귀찮은 일은 일하는 동안 물을 홀짝홀짝 마시니까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비누로 손을 씻고 바람에 바짝 말린 다음 핸드크림을 바르는 일을 몇 번이고 해야 한다는 거다. 초반에는(초반이라 함은 지금과는 다르게 손님을 응대하는 곳의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면 예의가 없다고 하던 무렵) 비누칠을 해도 몇 번 문지르지 않고 그대로 물로 헹구고 들어왔는데, 소변을 보고 손을 씻고 말리고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주 귀찮았는데 코로나 덕분에 그렇게 바뀌었다. 더불어 건물의 미닫이 문의 손잡이를 꽉 잡고 돌리지 않거나, 손잡이에 손이 닿는 부분 중에서 아주 밑부분을 잡고 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으니까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마스크를 쓰는 건 일상이 되었는데 조깅을 할 때 아주 갑갑하다. 94%의 마스크를 꼭꼭 쓰고 조깅을 힘 있게 하는 것이 어쩌면 폐에 무리를 줄지 모른다. 조깅을 한다는 건 들숨과 날숨이 확실해야 하는데 94%의 마스크는 그런 숨쉬기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무리하면서 달리게 되면 폐에 무리가 갈지 모른다. 그래서 그 조절을 잘해야 한다. 어떻든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심지의 번화가를 지나서 온다. 술집이 아주 많은데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악착같이 술집에 모여들어 마스크를 벗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매일 지나치는데 뉴스의 기사와는 다르게 인기 있는 술집에는 늘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서서 술집을 구경을 하게 된다. 요 며칠간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0명이라서 술집에 다닥다닥 붙어서 코로나 이전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스크를 쓰며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확률보다, 이렇게나 마음 놓고 방역과는 무관하게 지내는 것이 코로나에 걸리는 확률이 더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치 일어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걸리는 사람은 걸려 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이번 명절에는 고향집 방문을 자제하고 마음만 전하라고 방역당국에서 당부하고 있다. 어제는 뉴스를 보는데 마지막에 잰디(이재은 아니운서-예전에 오전 라디오를 매일 듣다 보니 잰디가 익숙해졌다)가 고향으로 가지 못해서 섭섭해하지 말고 다음에 가자는 말을 남겼는데, 우리 집만 빼고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야호 같은 분위기로 고향집으로 갔다.


여기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히려 이번에는 좀 오지 말았으면 하고 있다. 일단 떨어져 있는 아들, 딸내미 가족들이 오면 손주들 몫까지 밥을 먹어야 하고 치우고, 아무튼 일이 많이 지니까 그대로 거기서 올해는 그냥 있어라고 한다. 인터넷 기사에 떠도는 이야기- 제발 시어머니 좀 신고해주세요, 라는 기사가 참말인가 싶다.


우리 집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버지도 없어서 조카네가 와도 5명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각자 집에서 보내는데 인스타그램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내가 아는 이들은 죄다 우르르 고향 앞으로 가!이다. 고향에서 오지 말라고 하니 사람들은 제주도로 발길을 돌렸다.

위에서 말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알면서도 이번 명절이 지나면 또 확진자가 우르르 나올 것 같다. 확진자 백퍼센터가 나는 걸리지 않겠지, 같은 마음이었다가 걸리게 된다. 산발적이며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퍼진다. 종교단체 발발도 있지만 소규모 발발이 한 몫한다. 동선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방역과 상관없이 무관하게 지내는 사람은 걸리지 않고 꽤 신경 쓰고 철저히 준수하는데도 걸리게 되면 후자는 억울할 것이다. 우리는 편안한 집을 원하면서도 악착같이 집을 떠나려 한다.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집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지만 하루만 집에 있으면 답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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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2-14 12:10   좋아요 0 | URL
조깅할때는 거리두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얼굴을 다 가리고 숨이 턱턱 막혀가면서 전력질주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ㅎㅎ.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아이폰3GS를 꺼내보았다. 11년 정도 되었으니(보통 오래된 기기를 말할 때 나온 년도에서 말한다. 아이폰3GS가 나온지는 11년이 되었지만 몇 년 사용하다가 아이폰4s로 바꿨으니 정확하게 11년 됐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이렇게 일일이 따지고 들면 까다로운 놈,라고 할까 봐 그냥 11년 된,으로 표기) 켜지기나 할까 싶었는데 웬걸, 켜지는 건 물론이고 사진첩이나 카메라, 인터넷 같은 것도 구동이 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이 글도 아이폰3gs로 적고 있는데 메모장에 타이핑하는 반응이 아이폰6s보다 낫다.



아이폰3GS는 가볍다. 나는 화면이 큰 폰을 들고 다니지 않음에도 아이폰3GS는 엄청 가볍다. 한 손에 쏙 들어온다. 뭐니 뭐니 해도 지난 기기에 대한, 레트로에 기인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레트로, 레트로 하는데 레트로라는 의미는 복고주의다. '레트로'라는 말에 적응이 될 만하면 '뉴트로', '빈트로', '힙트로' 같은 새로운 언어가 쏟아진다. 헬린이나 달린이처럼 조금만 적응했다 싶으면 이 세계는 그런 나를 무시하듯 새로운 언어를 마구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공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왜 복고를 좋아할까. 외국의 소설가(이름을 까먹었다)의 한 구절에 따르면 우리가 고향을 좋아하고 이 땅을 무한애정 하는 이유는 유년의 기억이 그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년의 기억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서 걸어가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아픈 기억보다 따뜻한 추억이 일상을 보내는 동안 손상받은 마음을 단단하게 안아준다. 그리하여 기꺼이 그 세계 속에 발을 담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난 시간에 사용했던 기기가 열풍을 타게 된다. 지나간 과거의 기기로 무엇을 뭐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걸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동안 추억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꺼낼 수 있다. 


근래에(몇 년 전부터)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은 80년대나 90년대가 주가 된다. 또 8, 90년대 유행했던 영화가 다시 재방되어 인기를 새롭게 얻는다. 요컨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가 그렇다. 1, 2, 3편 모두 보는 동안 영화가 천재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미래는 2015년도인데 이미 5년 전의 시대가 되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왜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의 시대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까,라고 한다. 최근의 원더우먼이 그랬고, 범블비 역시 배경이 80년대이며,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을 범블비가 줄곧 틀어댄다. 넷플의 최고의 작품이었던 '기묘한 이야기' - 스트레인저 띵스, 의 배경도 80년대다. 영화나 드라마나 추천을 잘하지 않지만 이건 정말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왕좌의 게임과 함께 더불어 보고 나면 세계관이 넓어진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90년대의 것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시대를 학생으로 보냈던 세대가 지금 현재 프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8,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든 지휘를 하거나 창작을 총괄하는 수장이기에 현재 활발하게 8, 90년대가 배경이 되는, 위에서 말하는 레트로의 영화, 드라마, 음악이 나온다.


지금의 시대를 학생으로 보낸 사람들이 그 위치에 도달했을 때에는 아마도 전 세계를 뒤덮은 감염병에 대해서 파고들어 영화, 음악, 드라마가 지금보다 훨씬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질 것이다. 그날이 오면 지금의 시대에 대해서, 감염병과 감염병을 둘러싼 '어떤' 것에 대해서 제대로 난도질해주길 바란다.


어떻든 나는 그런 레트로 기기인 아이폰3GS를 반나절 사용해 보았다.  그리고 새벽에 잠이 깨서는 한 시간 정도 메모를 했는데 배터리가 생각보다 빨리 소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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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깼다. 이대로 잠시 누워서 음악을 좀 들었다. 5시 12분. 내 것 같지 않은 시간. 벌써 날이 밝아오는 걸 보니 이제 밤의 길이도 조금씩 줄어든다. 그에 맞게 피부도 변해간다. 아직 어둠은 짙은데 창으로 어둠이 밀려가는 것이 보인다. 지금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일 때문에 타지방으로 가서 오전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기분과 흡사할 것이다. 여행이 아니라서 좋은 곳에서 일박을 하지 않고 타지방- 서울이라고 치자, 남산타워가 보이지만 어딘가 변두리 같은 인상이 풍기는 골목의 모텔이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제대로 잠을 설쳤다. 그 전날 짐을 풀고 잠시 나가서 문을 연 바비큐집에서 바비큐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서 누워 티브이를 트니 피곤한 몸과 몽롱한 정신으로, 그대로 밤을 지새웠다. 


잠이 오는데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묘한 밤을 보낸다. 낯선 곳이 주는 기묘함과 익숙지 않은 익숙함이 점점 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5시가 좀 넘어 날이 조금씩 밝아온다. 일어나서 씻고 나갈 채비를 한다. 눈을 뜨면 늘 변기에 앉아 배설을 했지만 낯선 곳에서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예민한 성격과 예민한 몸인 것이다. 밖으로 나오면 날이 밝아 있지만 아직 해는 떠 있지 않다. 으스름한 푸른빛이 감도는 새벽의 시간. 누구도 보이지 않고 첫차의 버스가 지나가고 이른 출근을 하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새벽의 공기가 맑다. 공기 속에서도 낯선 냄새가 난다. 


그 냄새에 이끌려 새벽 장사를 하는 육개장 집을 찾아 들어간다. 사람들이 꽤 있다. 메뉴는 딱 두 개. 육개장과 갈비탕. 오늘 일을 보려면 아침은 먹어둬야 한다. 육개장을 주문하면 3분 만에 나온다. 코를 찌르는 육개장의 냄새 때문에 허기가 제대로 깨어난다. 후추를 좀 뿌리고 밥을 말아 한 숟가락 뜬다. 미원의 맛이 강하지만 그래서 좋다. 뜨거운 음식은 오히려 빨리 먹게 된다. 새벽의 시간 육개장을 먹는 사람들은 매일 이 시간에 이 벌건 음식을 후루룩 먹는 것일까. 다 먹고 밖으로 나오면 데워진 얼굴에 시원한 낯선 바람이 와서 닿는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직 해는 떠 있지 않다. 낯선 곳을 두리번거리며 좀 걷는다. 모르는 곳의 새벽 거리를 거니는 재미가 있다.


분명 매일 잠을 자는 익숙한 집이지만 낯선 잠을 잘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을 설치고 잔 듯 만 듯 새벽에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베개를 좀 잘 못 베고 잤다거나, 전기장판의 온도가 좀 높아졌다거나 하면 예민한 몸은 낯선 곳으로 받아들이는지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듣게 한다.


새벽의 어스름한 시간은 대학교 모델링을 하며 밤을 지새울 때를 소환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마지막 야간 근무를 서면서 맞이한 여명을 떠올리게도 한다. 군대에서 야간 근무는 2시간씩 하는데 4시부터 6시까지의 마지막 근무는 오히려 낫다. 고참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고 본격적인 아침을 맞이하기 전 시간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야간 근무가 제일 좋은 시간은 20시부터 22시까지다. 9시에 저녁 점오가 있어서 무시무시한 점오 시간을 피할 수 있다. 막사 밖에서 막사 안의 점오 시간의 긴장된 순간을 보는 것 또한 묘미다. 큰 소리도 들리고 긴장된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근무가 끝나고 들어가서 씻고 그대로 누워 아침까지 잠들면 된다. 


22시부터 24시까지의 근무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점오가 끝나고 고참들에게 한 따까리 받을 시간에 근무 준비를 하기 때문에 열외다.  근무가 끝나고 들어오면 전부 잠들어 있기에 배가 고프면 대기실이나 세탁실에서 초코파이나 빵과 우유를 먹기에도 편하다. 요즘도 가끔 새벽에 들어와서 군복도 벗지 않고 세탁실에 앉아 빵을 먹는 꿈을 꾼다. 도대체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군대의 꿈은 질리지도 않고 꿈에 나타날까. 꿈이라서 호러스럽게 흘러간다. 


빵을 다 먹고 군복을 벗으려 하면 몸에 군복이 피부처럼 붙어 버려서 벗겨지지가 않는다. 꿈은 왜 늘 이럴까. 고작 스무 살 남짓 남자들이 하는 군생활인데도 비리가 많다. 마음에 들거나 고참에게 잘 보이는 놈은 어떻게든 야간근무의 시간 조절이 가능하다. 더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군대라도 새벽을 맞이하면 나쁘지 않다. 저 멀리서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하는 하루는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색채를 보는 건 나에게 있어서 가지지 못한 컬러를 채우는 일. 우리는 하루에서 새벽을 빼먹고 살아가지만 새벽이 없다면 그 멋진 저녁도 없을 것이다. 새벽은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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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3GS가 감성의 물건으로 치부되어서 그런지 이 폰으로 으스름한 새벽에 메모를 하니 글 내용도 그렇게 바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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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이 마트와 다른 점은 5일장이 열리며 불경기에도 항상 북적인다. 그리고 마트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돼지국밥이 큰 무쇠 솥에서 펄펄 끓고 있다가 손님이 오면 토렴 해서 한 그릇 내준다. 상인들과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한 그릇 말아주는 국밥을 후루룩 먹고 간다. 진한 돼지국밥의 냄새가 가득 퍼져 허기진 배를 잡아당긴다. 마트와는 확실히 다른 전통시장 만의 컬러가 있다.


5일장을 찾으면 일단 촘촘하게 들어선 시장 상인들의 열기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인해 평소에 한산하던 시장도 5일장만큼은 꽁꽁 숨어있던 사람들을 시장으로 나오게 만든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사람인 동시에 가장 필요한 존재도 사람이라, 5일장에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진 사람도 북적이는 5일 장을 찾는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장애인의 통에 기꺼이 고사리 손에 들려 있는 몇 푼을 넣는다.


시장표 쿠키를 파는 곳에는 주인 마음대로 이만큼 퍼주는데 말만 조금 섞으면 더 퍼준다. 저기 사브레처럼 생긴 계란 듬뿍 쿠키는 입에서 살살 녹여 먹는 맛이 있다. 이만큼 사다가 크리스마스에 접시 위에 올려놓고 파티를 즐기고픈 마음까지 든다. 맥주와 함께 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전통시장에는 떡집이 있다. 할매? 이건 뭔데요? 술떡. 이거는요? 인절미. 여러 번 질문해서 잡을 들었어도 지나고 나면 다 잊어버리게 된다. 떡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통시장에만 나오면 이 떡 저 떡 다 먹어 보고 싶다. 떡은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칼스버그의 안주로 딱이다. 모든 것이 다 있는 편의점에도 떡만큼은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돼지껍데기를 파는데 엄청 매워 보이지만 실은 매운맛이 없다. 돼지껍데기는 다른 부위에 비해 맛은 썩 좋지 않지만 돼지껍데기만의 맛이 있다. 돼지껍데기는 저대로 먹는 게 좋다. 집에서 데워 먹거나 조리를 하게 되면 껍데기가 흐믈렁 해져서 씹는 맛이 덜 한 것 같다. 돼지껍데기를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맥주와 함께 먹으면 된다.


전복, 멍게, 개불도 보인다. 개불은 횟집에서는 먹어 봤지만 집으로 가져와서 먹어본 적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트에도 개불이 있을 텐데 왕왕 마트에 갔을 때 멍게만 줄곧 사다 먹었다. 멍게나 전복은 집에서도 잘 먹지만 개불은 횟집에서만 먹어본 것 같다. 개불을 아주 맛있게 먹었을 때가 대포항에 갔을 때인데, 역시 맛이라는 건 추억이 크게 관여한다. 개불은 어쩐지 우리나라 사람만 먹는 것 같다. 어느 나라 영화에서도 개불을 먹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분명 먹을 텐데. 개불은 식감이 졸깃졸깃하니 역시 맥주와 함께라면 아주 맛있다.


여기 5일장에는 다른 전통시장과는 달리 피라냐를 판다. 피라냐는 튀겨 먹으면 아주 맛있다. 비타민이 그렇게 풍부하다고 한다. 튀기면 아미노산도 작살나게 나오기 때문에 굳이 양념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많이 난다. 피라냐는 다른 생선에 비해서 좀 비싸다. 그래서 피라냐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라고 하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 붉은 생선은 열기라는 생선으로 구우면 노릇하게 굽힌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 구워서 칼스버스와 함께 먹는 것이다.


잡동사니를 파는 곳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별의 별것이 다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자외선 차단제 위에 솔을 팔고 있는데 저 솔은 말괄량이 삐삐가 신발에 솔을 달고 빌라빌라콜라를 청소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말괄량이 삐삐는 맥주를 마시며 보면 아주 재미있다.


이런 전통시장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사진도 코로나 이전의 사진들이다. 며칠 전에도 같은 5일장을 조깅을 하면서 왔지만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면서 납작 만두와 시장표 닭튀김을 사들고 왔다. 평소에는 없다가 5일장에만 나타나는 파전 파는 코너가 있는데 돌아다니다가 거기에 앉아서 아저씨들 틈에 끼여 한 장 주문하여 막걸리와(나는 맥주를 먹고 싶지만 맥주는 팔지 않는다) 함께 먹는 맛이 있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지금은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쥐포는 마요와 땡초를 섞어서 찍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다.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살찐다. 시장표 닭튀김도 프랜차이즈 치킨만큼 맛있는데 소금에 후추를 뿌려서 찍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다. 한 마리 다 먹고 나면 살찐다. 납작 만두는 기름을 두르고 구워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참 맛있다. 자꾸 뜯게 된다. 그러니까 살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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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1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활기가 넘치네요...술떡 자주 보기 어려운 떡인데.^^

교관 2021-02-11 12:30   좋아요 0 | URL
코로나 전의 분위기가 정말 활기가 넘치네요 ㅎㅎ. 요즘은 전통시장 안이 썰렁하데요. 먹거리가 빠지니까 ㅎㅎ ㅠㅜ
 

코로나가 오기 전 어느 봄날, 축구와 농구 경기를 쫓아다니며 보는데 우리는 참 이상한 경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는 골대가 굉장히 큰데 점수가 쉽게 나지 않는다. 농구골대는 아주 작은데 점수가 많이 난다.


우리 인간의 몸에 달린 손과 발의 차이가 이런 경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발이 손처럼 진화를 하여 같아진다면 어떤 경기가 나올까. 그렇게 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생활은 또 어떻게 변할까. 진화가 된 발은 손처럼 더 이상 신발 속에 들어가 있기를 거부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던 예전 어느 날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정적인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구구는 고양이다 1’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한 장면이 있었다. 우미네코가 되고픈 꼬마 아이는 손과 발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마도 꼬마 녀석은 바다고양이가 되어 인간에게서 자유로워져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구구는 고양이다, 에는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가 잔뜩 나오고 그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가득 나온다. 코지마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쩐지 고양이를 닮았고, 이 세상 어디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마음껏 세상을 즐겨도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생활이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구구는 코지마에게 두 번째의 고양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사랑받는다. 첫 번째에게 성실하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며 두 번째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붓는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이란 실패한 사랑을 만회하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서는 앞서 못한 사랑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불혹을 넘겨 더 나이가 들어 불륜에서 가장 타오르는 무서운 사랑을 하는 것일까.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는 앞발과 뒷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우리고 손과 발이 두 번째가 되면 더 사랑을 받을까. 손이 중요할까 발이 더 중요할까. 닭이 먼저일까 알아 먼저일까. 하지만 우리는 손과 발의 중요성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다.


봄날의 날처럼 부옇고 코가 간질거리는 날이다. 고양이 털 속에 숨어 들어가 고양이를 괴롭히며 졸음에 겨워 하루를 비비는 벼룩이 되고픈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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