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을 보내왔습니다,라고 쓰면서 마지막 장면을 수놓으며 끝이 난다. 인간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게 된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진 영화 인간실격.

니나가와 미카의 히로인 사와지리 에리카부터 미아자와 리에, 그리고 수영을 닮은 듯한 니카이도 후미가 다자이 오사무의 살아생전 만난 여인들을 표현한다. 니나가와 미카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사진작가로, 사진으로 시작해서 광고, 영화감독까지 데뷔한 사람으로 앞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술, 담배, 결핵, 여자로 짧은 삶을 보낸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인간쓰레기에 가깝다. 그렇기에, 너를 생각하면 괴롭다, 괴로운데 무섭지는 않다, 같은 허무와 죽음에 가까운 결락의 글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아름다우니 있어도 다른 것을 가진다는 것.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다.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다.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해도 잘 모르지만 연애라면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워서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라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 품는데 무엇이 잘 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객혈하는 가운데에도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찾고 여자를 품는다. 유명한 일화인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가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 라며 응수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2010년의 인간실격 영화는 소설을 영화로 옮겼었다. 그래서 요조가 주인공이다.


https://youtu.be/g2ltDpf7m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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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바닷가를 어슬렁어슬렁거렸다. 바다는 참 묘하다.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같은 바다가 없고 변덕도 심하고,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모습을 바꿔버리거나 심술을 부리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울어버리고 예상치 못하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바닷바람은 차지만 햇살이 따뜻한 것이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애매한 계절의 시점이다. 기시감이 들고 그럴 때면 허니와 클로버를 시작하는 타케모토의 내레이션이 떠오른다. ‘25년 된 집, 벽이 얇아 소리가 다 새고, 입주자는 전원 학생,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향. 작년 미대에 합격해 도쿄에 왔는데 학교 주위에는 밭 천지라 깜짝 놀라고 지은 밥이 맛이 없어서 깜짝 놀라고 공중목욕탕 입장료가 비싸서 놀라고 많은 숙제에 놀랐지만 지금은 모두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타케모토의 말처럼 지금 이 애매한 계절도 곧 일상이 된다.


애매한 시점을 지나고 나서 나는 자유와 모험이 있는 일탈보다는 반복과 단조로움이 단단하게 있는 일상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일상에 집 근처의 바닷가도 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바다 근처를 배회하며 바다를 지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바다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 따위 하지 않았는데 그거 참 기묘하다. 그래도 매일 오전에 30분 정도는 바다를 늘 보고 있으니 바다도 나의 그런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를 배회하며 사진을 찍다가 지치면 앉아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 중 ‘단테를 읽고’를 죽 들었다. 백건우 버전이다. 요즘 아내 때문에 말이 많지만 나는 백건우 버전의 리스트가 좋다. 다행히 아이패드로 들으면 야외에서 마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착각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행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지금까지 일행은 나의 조금은 이상할지 모르는 행동이나 말도 대체로 좋아해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의 말과 행동에 현실감은 비교적 소거되어 있다. 그래서 때때로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늘 불안하다. 

 

'단테를 읽고'를 백건우와 조성진, 두 버전으로 번갈아가며 계속 들었다. 조성진이 젊어 힘 있게 연주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벗어났다. 조성진은 유약하지만 부드러웠다. 마치 나비가 호수의 수면 위에서 살짝 발을 담그듯 '단테를 읽고'를 끌고 나간다. 꼭 38시간 불면으로 보낸 후 샤워를 하고 창을 투과한 빛을 받으며 극세사 이불로 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눈을 감으면 내 손이 단편이 되어 허공을 휘젓는다. 허공에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편린이 조각이 되어 먼지처럼 날아다닌다. 꼭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에 비해 백건우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강렬하고 힘 있게 '단테를 읽고'를 치고 나간다. 격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란 다란 다란 다란 다라 라라라라(이래서 뭔 설명이) 하며 끌어올리는 부분은 정말 좌심방에 펌프질을 강하게 한다. 숨이 차오른다. 험난한 산속의 지형을 위협스러운 존재를 피해 달리는 것처럼 나는 숨이 타오른다. 크레바스를 넘고 해협을 맨몸으로 건넌다. 그건 마치 인생의 축소이기도 하다. 다라 라라라라라 가 줄어들어 갈 때 길고 넓은 평온한 강이 나타난다. 그제야 나는 숨을 천천히 쉬고 먼 곳의 자연을 눈으로 본다. 숨이 잦아든다. 연주 하나를 듣는데 이런 상태로 내 몰고 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건우의 리스트 '리베스트라움'을 듣는다. 꿈속을 거니는 기분. 바다가 곡에 맞게 춤을 추고 춤에 맞는 선율을 백건우는 연주한다. 일행은 이런 나의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은 것 같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고독의 정점으로 오르기 위해 등을 구부리고 외롭게 피아노와 싸우거나 또는 친하게 지내야 했을 것이다. 외톨이로 피아노와 지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주들. 바다를 보며 그런 연주를 듣는다는 것 역시 어떤 면으로 행운이다.


겨울의 바다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게 봄이다. 완전한 봄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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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zJiw-tiY9Q

러브레터 (Love Letter) OST - Winter Story


러브레터는 볼 때마다 포인트가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다시 볼 때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보면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알지 못했던 이츠키와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에 좀 더 깊게 발을 담근다.


히로코가 눈 밭에서 잘 지내냐고 감정이 오를 대로 올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아마도 히로코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그 한 장면에 깊게 몰입되어 그대로 함몰될지도 모른다.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림이 되어 다시 이츠키의 손으로 돌아오고, 히로코와 이츠키는 그렇게도 몰랐던, 잊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간다.

 

이와이 슌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서 어쩌면 이츠키와 히로코를 후에 하나와 아리스(엘리스)로, 4월 이야기로 다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또 흘러서 휴대폰이 도래한 이 시대에 ‘라스트 레터’로 태어나 아직 편지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다. 언니의 지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중학교 동창회에서 동생의 외모가 언니와 똑 닮아서 언니로 착각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이츠키와 히로코의 외모가 같은 모습을 이와이 월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답습한다. 그렇게 동생은 언니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다가 편지 속에서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 이야기를 이와이 슌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본 특유의 영화라고 하는데 일본 특유가 아니라 이와이 슌지가 가지는 고유한 색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말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침에 눈 뜨면 잘 잤냐고 물어보고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평범한 인사일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정도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     

나카야마 미호는 러브레터에 등장하기 전에 아이돌로 먼저 데뷔를 했다. 나카야마 미호의 영화 중에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큰 굴곡이 없는데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된다. 영화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훨씬 이전에 소설로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는 아주 기묘하다고 생각하는데(개인적으로),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영화고,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는 치즈 히토나리의 아내이다. 현재는 이혼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은 현실적인데 읽고 있으면 담담하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독은 인천 상륙작전을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회상 부분은 화양연화의 미장센을 보는 듯하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화양연화보다 좀 더 허구의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주인공들이다. 빼빼 마른 몸이지만 너무나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인 나카야마 미호의 이미지와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몸과 얼굴을 가진 니시지마 히데토시(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의 이미지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이 문장이 영화를 관통한다. 주인공 유타카는 약혼녀를 놔두고 타국에서 관능적인 토우코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유타카와 토우카는 마치 첫사랑처럼 타오른다. 재가 될 것처럼 만나는 매 순간을 태워버린다.      

         

인간은 매일 먹은 밥보다 가끔 먹는 라면이 더 맛있고 집보다는 경치 좋은 곳의 펜션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라면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고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하고 불편해서 일상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넌 더 이상 젖지 않고 난 더 이상 서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꿈같던 일탈도 끝내게 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남아서 세월을 괴롭힌다. 두 사람은 불장난을 끝내고 헤어진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후 재회를 한다.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을 위해 카메라는 주인공들 얼굴 가까이 크게 줌인해 들어간다. 너무나 예쁘고 정말 멋진 얼굴과 몸매로 첫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처럼 태국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화양연화처럼 배경음악 역시 좋다. 나카시마 미카의 노래가 아주 은은한 향초처럼 좋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꼭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를 기울이면'의 아마지와 세이지가 현실로 뛰쳐나와서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별 인사 '안녕'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받았어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륵 녹아 버리는 얼음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난 반드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   

            

안녕, 언젠가. 사요나라, 이츠카,였다.   

           

https://youtu.be/bpFz8ksR2vU

나카시마 미카 - 안녕, 언젠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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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3-1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겡끼데스까~~~~~

참 좋아했던 일본 영화군요.

교관 2021-03-19 11:37   좋아요 0 | URL
페러디가 있었어요 ㅎㅎ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의식의 흐름대로 바리스타 룰스 민트 라임 라테를 하나씩 마신다. 나는 어쩌면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민트가 들어간 맛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아침 로컬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이천 원, 이건 이천오백 원이다. 오백 원이 더 비싼 만큼 맛이라는 것이 훨씬 난다. 맛있다는 것보다 단 맛과 민트 맛이 난다. 그저 커피 맛만 나는 오전의 커피보다 못하다 괜찮다의 문제보다 이 맛에 조금씩 길들여져가고 있다. 땀을 흘리고 마셔서 그런지 더 흡족하다. 그냥 라테 정도는 집에서나 어디서나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민트 라테는 글쎄, 카페에서 취급하는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커피에 타 마시면 아주 맛이 좋은데 그런 맛의 음료 버전이라고 할까.


얼마 전에 빵을 먹었는데(라고 하면 매일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빵을 하나씩 사 먹는데, 그것과는 다른 빵을 먹었다), 내가 손을 뻗어서 먹던 빵과는 다른 빵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한 입 먹는 순간 오오 이건 뭐야, 하는 감탄이 나왔다. 달아서 죽을 것 같은데 치즈의 짠맛이 치고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맛의 균형을 잡아주더니 또 한 입을 불렀다. 그런 맛을 빵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빵을 매일 먹다가는 정말 살이 금방 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민트 라테를 먹고 있으면 왜 그런지 라면에 넣어서 먹어봐야지 하는 별난 생각에 자꾸 근접하게 된다. 민트맛라면,라고 하면 분명 대부분이 발로 차 버릴 것 같겠지만 단짠단짠의 맛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처음의 이상한 느낌의 맛만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라는 나의 생각을 끊고 다시 일어나서 마지막 코스로 조깅을 한다.

 

근래의 내가 있는 도시의 날씨는 아주 기묘해서 초봄의 혹독한 냉기가 흐르는 날의 연속이다. 자칫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 조깅을 하면서 흘린 땀이 그대로 축축해져 버리면 감기에 그대로 걸리기 쉬운 날이다. 요즘은 감기가 걸리면 주위에 민폐를 예전보다 크게 끼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민트 라테를 하나 마시고 일어나는 구간(이라고 해야 할까. 전문 러너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달리는 길목)은 1.5킬로 정도 되는 오르막길이다. 끝과 끝의 수평을 봤을 때 1층과 2층의 높이 정도 되는데 그 정도로 죽 오르막길이다. 그래서 40분 정도 달리고 난 후에 이 마지막 오르막길을 달리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등을 후려갈기는 고통이 밀려오는데 민트 라테를 마시는 곳까지 일단 달리고 나면 기분은 상쾌하다. 통쾌한 고통이 주는 기분 좋음은 민트 라테를 마시며 죽 이어진다. 편의점 야외 테라스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민트 라테를 쪽쪽 빨면서 멍하게 있다 보면 의식의 흐름이 민트맛라면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빠른 시일 내에 민트맛라면을 먹어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라면에 새우깡도 넣어서 먹어보고, 초콜릿도 넣어서 먹어봤는데 꽤나 맛이 좋았기 때문에 아마도 먹지 않을까. 만약 해 먹게 된다면 여기에 당당하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민트 라테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으니 이어폰으로 '김성호의 회상'이 나온다. 김성호의 회상은 제목이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다. 그러니까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이다. 이 노래는 생각해보면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서 아직도 여기저기의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 어쩌면 터보의 회상보다 이 김성호의 회상이 더 많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제목을 그냥 회상으로 짓지 않고 김성호의 회상으로 지어서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노래 제목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처음이라 실수로 이렇게 지었는데 그게 그냥 하나의 제목이 되어 굳건하게 박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처음부터 영차영차 착착 잘 해내고 다 이겨내는 사람이라면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윤여정이 그랬는데, 나도 이 나이가 처음이라 실수가 많다고. 그래서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그것도 못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건 없다. 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끓는 물처럼 지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청소년들을 보면 또 이해하지 못한다. 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거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것도 몰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라고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은 시작한다. 바람이 없다고 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해류라든가, 그런 것들이 막 이상해지고 마땅해져야 할 썰물, 밀물 이런 것들도 엉망이 되고 그에 따라 바닷 생물이 마구 죽어 나가고 뭐 그렇게 될까. 의식의 흐름대로 막 쓰다 보면 이렇게 조깅에서 민트 라테를 지나 지구 멸망까지 오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란 때로는, 가끔 재미있는 생각의 바닷속을 거닐게 한다. 그래도 민트맛라면은 좀 그런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맛이 정말 궁금하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궁금하니까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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좐 아저씨나 죠의 가족들에게 김치를 새로 하면 한 두 포기(왜 배추나 김치는 이런 단위를 쓸까, 한 장, 두 장도 아니고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그러고 생각해보니 한 개, 두 개나 한 장, 두 장도 계속 발음하니 뭐가 더 어울리고 덜 어울리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한 명, 두 명이 아닌 게 어딘가) 정도를 갖다 주는데 외국인들은 김치를 접시에 담으면 신기하게도 김치만 먹는다.


우리는 김치는 밥상의 옵서버라 최소 밥과 함께 김치를 먹거나 라면 내지는 국이나 찌개에 김치를 함께 먹지 김치만 먹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외국인들은 꼭 김치를 앞에 두고 김치만 야금야금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그리고 맥주를 들이켠다. 거참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먹게 되면 그렇게 먹고 싶어서 그렇게 먹게 된다.


양념이 많이 발린 배춧잎 부분을 비교적 양념이 덜 묻은 아삭한 배추 속에 넣어 같이 먹는다. 김치만 오물오물 씹어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몇 번 먹다 보면 (김치를 새로 하게 되면) 죽 그렇게 먹게 된다. 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배추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아삭함과 김치가 지니고 있는 양념 버무림의 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 김치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식당 김치는 데코레이션 수준이다. 그런데 김치를 새로 해서 이렇게 놓으면 맥주와 함께 천천히 씹어 먹다 보면 외국인들처럼 반 포기를, 접시 위에 올라온 김치를 거의 다 먹에 된다. 그리고 제대로 김치의 맛에 빠진다. 며칠 전에는 새로 한 김치와 함께 와인을 곁들였다. 김치는 정말 여러 술에 다 어울린다. 




또 이렇게 밥에 올려서 먹게 되면 역시 맛있다. 김치란 정말 내 주위에 있는 소설책처럼 당연하게도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또 안 보이면 보고 싶어 지는 뭐 그런 음식인 것이다. 이렇게 밥과 함께 먹게 되면 영화 똥개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똥개가 김치를 담그고 있는데 대문으로 두 명이 찾아온다.


똥개: 뭐고?

대뜩이: 니가 똥개가 난 대뜩이다. 니가 선배들이 개 잡아 뭇따꼬 선배들을 개패듯이 패뿟는거 맞나?

똥개: 뭐어?

뚱띠: 니가 하도 잘 친다캐서 실력의 자궁을 겨뤄보러 왔따. 

똥개: 나는 싸움 안 한다. 

대뜩이: 니는 그래 개판치고도 아버지가 짜바리라가 징역 안 갔다메. 

똥개: 뭐라고?

뚱띠: 니 엠제이케이라고 아나?

똥개: 그기 뭔데?

뚱띠: 니 맨크로 학교 댕기다가 짤린 아들끼리 맹그른 순수청년봉사단체다. 니가 지면 무조건 가입해야 되고 이기믄 안해도 된다. 우짤끼꼬. 

똥개: 느그,,, 점심 무긋나. 

뚱띠: (바로) 아직 안 뭇따. 와?

똥개: 그라믄 김치에다 밥 좀 묵고 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으야 할 꺼 아이가. 

[땀 뻘뻘 흘리며 김치먹방]

똥개: 원래 이름이 대뜩이가. 

대뜩: 아니 대득이다 한대득. 그래도 그냥 대뜩이가 편하다. 

똥개: 엠제이케이? 거 뭔 뜻인데. 

대뜩: 으응 잉그리 약자다. 밀양 주니어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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