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보며 생각 없이 귤을 까먹고 있었다. 귤껍질을 보니 여섯 개 째였다. 어떤 사소한 동작은 체내에 무엇인가가 쌓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싸구려 와인을 병 째 한 모금 마셨다. 귤은 달고 와인은 쌉싸름했다. 바다는 부는 바람에 비해 아주 잔잔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바다의 색은 평소와 달리 청록색을 띠고 있었다. 바다는 많은 색을 지니고 있다.


"
바다는 오늘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존재해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 바다에 돌을 던져주기를 바란다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요.

바다는 저토록 무표정이지만 표정이 다양한 인간과 떨어지기 싫은 겁니다. 왜냐하면 바다도 사람의 얼굴처럼 여러 표정을 지니고 있거든요. 바다는 순수한 동기라든가 멍청한 행위 같은 게 없지요. 바다를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되지만 인간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때 바다에는 추억이라는 게 생겨나고 이야기라는 것이 생성되지요.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라고 해서 역시 멋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겁니다. 

                                                     
눈을 감고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겁니다. 물론 그건 사람들의 소리는 아니지요. 바다가 내는 하울링 같은 소리입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소리입니다. 바다가 내는 뒤섞인 소리에서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바다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앞으로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또 모르지요, 백 년 후에는 설명이 가능할지도. 하지만 그때에는 설명이 전혀 필요 없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이길 수 없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빗질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에요. 

                              "

나는 말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귤을 권했다. 사양하지 않고 귤을 받아서 내 마음이 편했다. 이 정도의 호의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근래에는 줄어들었다. 귤을 받는 그의 손톱은 길었으니 까맣고 때가 타 있었다. 나는 귤을 양 손으로 다섯 개를 건넸다. 두 병의 와인이 있었는데 한 병도 건넸다. 노인은 고맙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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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스나이더의 4시간짜리 ‘저스티스 리그’를 보며 영화에 대한 B급 리뷰를 TMI 해본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누구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영화를 알뜰히 챙겨 보는 시기는 아무래도 2, 30대다. 연애를 해야 하고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애의 재미있는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극장에 가는 것이 점점 멀어지고 영화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하루가 빠듯하게 돌아가는데 2시간 이상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어쩌다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젊은 층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인이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외면받는다. 그리하여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서는 초인과 초능력자들이 나오는 영화지만 뭐랄까 생각을 하면서 보거나 논리에 맞춰서 제작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자본이 드니까 그 외의 나라에서는 또 두 손을 들고 포기하렵니다, 하고 만다. 특히 일본 쪽으로 가면 현재 박스권 안에 들어있는 영화는 실사영화뿐이다. 온통 만화를 실사화시켜서 과한 액션과 대사로 이루어져 도저히 어른들이 볼 만한 영화가 못된다. 그럼에도 돈이 되기 때문에 영화계와 극장계를 꽉 잡고 있는 한 줄기의 제작사는 그렇게만 영화를 만든다. 돈이 되는 이유는 그런 영화를 바라는 수요가 아직 많다는 말이다.     


애초에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3일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꼭 보고 있다. 게 중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는 리뷰를 올리는데 전문 리뷰어처럼 디테일하게 리뷰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리뷰를 해서 올린다. 영화를 리뷰해서 올리는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다 보니까 길게 적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기 때문에 축약해서 올리다 보니 그저 간단하게 올리고 있다. 그런데 영화 리뷰를 올리다 보니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이 와서 댓글을 다는 경우가 있다.      



2018년에 나온 한국영화 ‘박화영’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재미있게 봤다는 말은 불편한데 깊이 있게 빠져서 봤다는 말이다. 영화는 온통 불편함 투성이었다. 영화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폭력 때문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이 도처에 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김영하의 ‘비상구’라는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자기들만의 언어를 내뱉고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작은방에서 솜뭉치처럼 말도 안 되게 생존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주위, 동네 어른들이 보고서도 모른척한다. 바로 침묵하는 것이다. 세상의 가장 잘못된 점은 ‘거짓말’과 ‘침묵’인데 거짓말은 그것대로 해야 할 때가 있지만 침묵은 범죄이기도 하다. 박화영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서 올렸더니 감독이 와서 댓글을 달았다.



그다음 한국 공포영화 ‘휴게소’를 보고 대충 리뷰를 올렸다. 공포 중에서 오컬트에 속한다. 영화는 극장 상영을 염두하지 않고 만들었다. 자본이 없어서 아예 상영관 상영을 생각지 않고 만들었는데 상업영화인 ‘속닥속닥’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 그 이유를 꼽자면 등장인물들의 열연이다. 자본이 없기 때문에 귀신과 악마와 괴물은 온통 연기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설득이 된다. 이 영화는 모호하지 않았다. 전달하려는 바가 확실했다. 온갖 악이 영화에 등장하지만 그 악보다 더 크고, 더 한 악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영화 속에 우리가 알만한 배우는 재희가 전부다. 나머지는 신인들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뼈가 부서져라 연기를 한다.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영화는 몰입을 끝까지 몰고 가려는 노력을 했다. 이 리뷰에 대해서 제작사가 댓글을 달았다. 제작사는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이 댓글로 드러났다.


그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서 리뷰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나는 배우 최병모의 연기를 좋아한다. 주로 극에서 극렬하거나 비열하거나, 또는 지질하거나 죽이고 싶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비서 같은 역할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쓸모없는 정치인, 관료, 인사과장, 정부 관계자로 늘 나온다. 아주 밉게, 아니 가장 흡사하게 연기를 한다. 보고 있으면 저런 인간이 인간사회에 정말 있단 말이야? 벌레 같은 놈, 같은 욕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가. 그래서 영화에 최병모가 나온다고 하면 주연이 아님에도 나는 대체로 그 영화를 보는 편이다. 최병모 배우에 대해서 적은 리뷰에는 최병모 배우가 직접 댓글을 달았다. 역시 재미있는 일이었다.


어떻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전문 리뷰어들의 영화 리뷰를 읽게 된다. 전문 리뷰어들은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영화 그 너머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 이건 좀 그런데? 하는 글도 있다. 이번 4시간짜리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이전의 저스티스 리그보다 훨씬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했다. 그만큼 재미있게 봤다. DC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잭 스나이더 컷의 저스티스 리그가 딱일 것이다.      

         

자살한 딸 때문에 하차했던 잭 스나이더가 이를 갈고 재편집을 해서인지, 욕을 입에 달고 봤던 17년도 버전보다 월등히 재미있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는 자막도 넣었다.       

        

새로운 편집 버전이 언제부터 재미있고 몰두되냐 하면 원더우먼이 나타나서 테러 집단을 해치울 때부터다. 그러니까 거의 초반부터다. 원더우먼이 총알세례를 막아내는 장면부터 17년도의 버전과는 딴판인 것이다. 그때부터 신난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게 된다. 그 뒤부터 아마존의 전투씬도 정말 멋지다. 재편집으로 탄생된 스테판 울프 역시 김상호를 닮은 얼굴로 다시 나타났는데 정말 모두를 씹어 먹을 듯한 빌런의 모습이었다.   

            

노래도 그렇지만 영화 역시 어레인지다.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촬영과 편집의 모든 것을 통솔하는 것이 감독이다. 감독이 괜찮았다면 아마 우리나라 영화 ‘귀곡성’ 역시 괜찮지 않았을까. 손나은의 연기로 밟혔지만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카메라에 적응되어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한 부담감과 무서움이 없는 아이돌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데 감독의 연기 지시가 제대로였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영화 전문 리뷰어들이 호평보다는 혹평을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말이 배트맨은 나머지 멤버들을 감시하려고만 한다는 글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배트맨은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트맨만 온전한 인간의 몸이고 나머지는 신 이거나 신의 후예이거나 사이보그나 에스퍼맨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에게 거부감을 더러 낸 게 슈퍼맨이 조드 장군과 싸우면서 도시를 초토화시킨 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달랑 그 슈퍼능력자 두 명 때문에 대 혼란이 왔다. 그러면서 슈퍼맨은 지구인들을 향해 나는 지구인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친구입니다.라고 했을 때 배트맨은 슈퍼맨에게 거부감을 극렬히 느끼게 된다.               


신이라면 인간처럼 감정의 동요가 없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같은 편이라는 걸 받아들이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진 신이라면 말이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의 감정은 제 멋대로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대부분 기분이 태도가 된다. 나와 마음이 통하지 않거나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기분이 그대로 태도로 나오게 된다. 신이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녔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지구의 무기로 슈퍼맨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으니 악당들은 슈퍼맨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힘으로 슈퍼맨의 동요를 끌어낸다.                


당연하게도 배트맨은 그걸 알기에 저스티스 리그의 나머지 멤버들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인간형 히어로이지 않을까. 아쿠아맨이 화가 났다고 해보자. 바닷가 도시는 초토화다. 원더우먼이 열 챘다고 해보자. 이번 재편집 원더우먼은 그야말로 슈퍼맨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소유자다. 게다가 원더우먼은 5천 살이다. 초인들이 인간들처럼 날뛰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배트맨은 이 더상 손을 쓸 수 없다.        

       

원더우먼을 보면서 늘 드는 생각은 원더우먼의 어머니는 보이는 그 정도의 나이로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원더우먼은 원래 어린이인데 성장해서 지금의 나이가로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건 어떻게 정하는 걸까. 나는 어린이로 계속 몇 세기로 살아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배트맨은 인간이니까 늙어갈 것인데 원더우먼은 계속 그 나이로 살아간다. 원더우먼이 있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 재편집에서는 배트맨이 에즈라 밀러를 찾아갔을 때 블핑이 들의 노래는 사라졌다. 그게 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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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의 날은 정말 얄밉고 얄궂고 기이하다. 조깅을 하다 보면 어느 특정 거리에는 벌써 벚꽃이 팡팡 열려 있어서 아아 진정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며칠 동안 아주 쌀쌀하고 추운 바람이 매몰차게 불고 밤과 오전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서 벌써 두꺼운 외투를 벗어버린 사람들의 등을 한껏 구부리게 만들었다. 저녁에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오들오들 떨며 다녔다.


봄은 이렇게 앓아가며 고통스럽게 온다. 요란을 떨며 소란을 피우며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찾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사람들은 봄이라는 계절에 무감각해져 금방 왔다가 가버리는 봄에 대해서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딱딱한 땅을 뚫고 어린 새싹이 올라오려니 얼마나 치열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렇게 찬바람에 떨며 맞이하는 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봄을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용기를 내서 겨울의 딱딱하고 추운 땅을 뚫고 올라와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나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러다가 곧 봄눈이 나무에서 쏟아져 내릴 것이다. 그런 날에는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봄은 사람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계절의 시작인 봄에 깊은 결락을 느끼게 된다. 태동의 불안함과 기대가 작디작은 한 인간의 상상을 훨씬 넘어 버리기에 감당할 수 없는 기분에 매몰되기도 한다. 기이하지만 오로지 봄에만 그런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봄이 노예가 되기를 기꺼이 허락한다.


기시감보다 더 한 이 깊은 결락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의 봄은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미 따뜻해진 사람들과 아직 추운 사람들이 지금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오전에 맞이하는 공기는 제대로 산뜻해서 일기예보는 늘 어긋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매일 들리는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오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직 점포나 가게들이 장사 시작 전이라 모두가 분주할 법도 한데 감염병 시국이라 그런지 그 이전의 오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티브이 속 뉴스에서는 늘 사건사고가 연달아 꼬리를 물고 터지지만 봄은, 벚꽃은 그것과는 무관하게 '이제,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라며 무심하게 올라와 꽃을 피운다.


휴대폰 매장을 지나가면 늘 엇비슷한 가요가 흘러나온다. 거의 매일 들리는 노래는 스탠딩 에그의 노래다. 이제 봄의 길목에 접어들었으니 장범준의 노래도 계속 나온다. 생각해보면 오래전에는 길거리에 레코드샵이 있어서 레코드샵이 문을 열면 늘 그 앞의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요즘에는 휴대폰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늘 크게 노래가 나온다. 그래서 휴대폰 파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거리를 지나가면 온갖 다른 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와서 한국 노래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기묘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사이에서도 봄은 여기저기 들어와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봄의 나날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며칠은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하늘에 가스층이 걷혀 꽤나 맑고 푸른 하늘의 모습을   있다조깅코스 벤치에 누워서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파랑으로 물들어 그림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기분이 든다 아저씨처럼 붓으로 툭툭 쳐서 구름을 표현하고 붓의 반대 끝으로 하얀 달을  찍어서 표현해본다.


아직 하늘과 강은 차디찬 겨울과 같지만 무심하게 용기를 내어 꽃을 피워 색채를 돋보인다. 용기를 내는 건 언제나 어렵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반드시 내야 한다. 반드시 내야 할 때 나와야 하는 용기를 봄이면 꽃들이 가장 먼저 보여준다.


해가 길어져 조깅을 하러 나오면 해넘이를 매일 볼 수 있다. 해 주위는 온통 오메가 빛으로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기 싫어서 짜증을 내는 것 같다. 하지만 해는 변하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달에게 하루를 부탁한다. 그 순간 해는 순식간에 서산 너머로 잠이 들고 세상은 달이 빼꼼 내려다본다.


해가 붉게 물들며 서산으로 넘어갈 때는 황홀하다. 황홀하다는 표현 외에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이적의 노래처럼 두 다리가 다 녹아 없어진대도 저곳에 뛰어들어 산산이 사라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해가 하늘에서 서산으로 떨어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잠깐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안녕'을 고한다.


강변을 따라 죽 조깅을 하고 도로로 올라와 돌아오다 보면 이렇게 성미 급한 벚꽃은 이미 팡팡 열려 있다. 그러면 고개를 꺾어서 한참 쳐다본다. 이렇게 두발로 딱 서서 한 곳을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옆에서 따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곤 곧 흥미가 떨어진 고양이처럼 가버린다. 그래도 한참 서서 벚꽃을 본다. 도대체 이 성미 급한 벚꽃은 어째서 이렇게나 벌써 피어서 사람을 아프게 할까.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봄의 기적을 말한다. 벌어진 틈으로 미약한 숨을 쉬며 노래는 다시 찾은 봄의 기적을 믿는다고 말한다. 마음은 겨우내 찬 공기가 머물렀던 그곳에 앉아서 나올 생각을 않는데 봄의 기적은 투박하게 마음을 또 어루만진다. 마음은 천천히 녹으며 봄을 공들여 느낀다. 생명이 태동하는 봄인데 봄이 되면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감정에 휘말린다. 노래는 말한다. 긴 잠에서 깨어 새가 노래하듯 다시 난 살아갈 수 있다고, 눈물이 날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라고. 그리고 다시 찾은 봄의 기적을 믿는다고. 봄이 되면 슬픔도 아스라이 겨울의 차가운 그늘에 두고 오면 될 텐데 새로 솟아나는 새싹과 함께 슬픔도 같이 온다. 그래서 어쩌면 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봄은 가을보다 확실하게 잔인하다. 티에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어째서 그런 시구를 적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니 얼마나 잔인한 계절인가. 그 중심에 4월이 있으니 티에스 엘리엇의 눈에는 몹시도 잔인했기에 오히려 겨울이 따뜻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온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가니 미칠 지경이다. 변해가는 계절에 시장통의 길고양이도 아직 준비가 안됐는지 그저 어떤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안녕, 인간? 우리 같이 봄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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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와카코와 사케'의 한 챕터에서 와카코는 회식 담당을 맡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부서와 타 부서원들을 모두 책임지고 회식자리와 회식 메뉴를 결정해야 한다. 이게 보기보다 참 까다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입맛이 제각각이라 10명 중에 9명이 맛있는 음식도 한 명이 싫다고 할 수 있다. 싫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연장자이거나 대장이면 9명이 그 맛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회식을 할 때 회식 담당이 맛없는 곳을 고르는 것만큼 기운 빠지는 일도 없다. 나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회사의 회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순 없지만 군대 있을 때 상병 몇 호봉이 되면 내무반의 회식을 담당하는 시기가 온다. 그래서 소대 회식이 있는 날이면 책임져야 하는데 맛이 없어서 병장들에게 찍히면 회식 담당에서 늦게 벗어나게 된다. 회식 담당을 하는 동안 그것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은 참 힘들어한다. 고욕인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병장들 모두의 입맛을 채울 수는 없다. 단지 군대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이라 그저 잘 먹는 것을 감안한다면 회사의 회식보다는 좀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회식이 실패가 되었다 해서 어딘가로 끌려가서 한 소리를 들으며 엎드려뻗쳐하지는 않을 테니 또 낫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나는 겨울에 회식 담당을 맡았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꽤 빨리 벗어났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붙이고 만들고 하는 것을 곧잘 해서 고참들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걸 수발드느라 남들 다 낮잠을 잘 때 나는 잠들지 못했기에 또 낫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인생이란 참 그런 것이다. 내가 회식 담당이었을 때는 피엑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피엑스에는 컵라면을 많이 먹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대형 전기 찜통기가 있다. 그 찜통기의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동시에 찜통기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그 말은 찜통기를 잘 활용하면 회식에 다른 내무반보다 유리해질 수 있다. 누군가 생일자가 있거나 회식을 해야 하는 날이면 운전병을 통해 생닭 세 마리를 구해오게 했다. 닭다리에 실을 묶어 닭을 찜통기 안에 넣어두면 푹 삶긴다.


찜통기 안은 어지간한 것이면 모든 것이 다 푹 삶긴다. 물이 팔팔 끓어야 컵라면도 맛있기 때문에 점오 전에 닭을 빠트려 놓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점오가 끝나고 실을 들어 올리면 닭이 아주 잘 삶겨있다. 그럼 뜨거운 물은 육수가 되어 있다. 소대원들의 컵라면에 닭 삶은 물을 붓고, 삶긴 닭 세 마리의 살을 죽죽 찢어 골고루 컵라면 안에 넣어서 먹게 했다.


닭 뱃속 안에 찹쌀과 쌀을 넣어 두면 죽처럼 된다. 고참들의 컵라면에는 또 이 닭죽을 같이 넣는다. 고작 컵라면뿐인데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추억은 아마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물론 회식 후에 찜통기를 청소해야 하는 굉장한 번거로움이 있다. 육수는 다른 내무반에서도 컵라면에 받아 가려고 줄을 선다. 재미있는 추억이다.


와카코와 사케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는 챕터가 있다. 와카코가 회식을 담당해서 돼지 꼬치구이 집을 회식 집으로 잡았는데 먹어보기 전에는 부서 사람들이 응? 하는 분위기였지만 먹고 난 후에는 전부 행복해한다. 맛있는 음식을 하루 중에 먹을 수 있다면, 설사 인생에 있어서 그것뿐이라도 덜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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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할 때 당연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달리게 된다. (그런데 여름에는 옷이 얇아서 음악 듣는 기기가 무거워 음악은 듣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그때는 볼륨을 좀 더 높여서 음악을 듣는다. 조깅을 할 때에는 아무래도 자전거도, 앞에서 오는 사람도, 거리에 나오면 자동차도, 그 모든 소리를 무시하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달릴 수만은 없다. 그래서 잠시 앉아서 쉴 때에는 볼륨을 높여 음악을 좀 듣는다. 이어폰을 끼고 음향이 빵빵하게 나오면 아아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깊게 빠져든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서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쌀쌀맞은 날에는 달리면서 흘린 땀이 식을 때 자칫 감기가 걸릴 수 있기에 아직 두꺼운 옷을 입고 있고 그 속에 아이팟 클래식을 넣어 놓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고 있다. 그러면 타인에게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혹 이어폰 줄이 거추장스러운데 왜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또 누군가는-애플의 맹신자- 아직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뭔가 좀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보통 원펀맨의 사이타마 같은 눈이 되어 딴짓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거나 하품을 해버린다. 아함.

 

내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이유는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줄곧 듣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도킹 시스템의 스피커(이건 참 가지고 싶지만)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그건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동을 하면서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유선 이어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들어가 있어서 기기가 보이지 않고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입을 대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로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듣고 있으니 아이팟 클래식은 꽤나 발전한 음장 기기인 샘이다. 이 음장 기기, 아이팟 클래식도 한 십 년 정도 됐나? 아무튼 그동안 160기가나 되는 기기 속에 차곡차곡 음악이 쌓여 있어서 도대체 어떤 음악들이 들어있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다. 3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데 아직도 이렇게 작은 기기에 이렇게나 많은 음악이 들어가다니, 와 대단하군, 하는 생각을 한다. 팝과 가요의 비율이 7대 3 정도로 들어있다. 시끄럽고 해비 한 메틀 곡들도 많고 재즈곡도 꽤 많이 들어있다. 나는 재즈는 잘 모르지만 듣다 보면 좋은 곡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간혹 아주 스탠더드 하고 끈적한 재즈곡들이 흐를 때가 있는데 이런 곡이 조깅할 때 나오면 힘들어진다. 달리는 패턴이 있는데 그만 엘라 피츠 제럴드나 빌리 헐리데이의 노래나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 같은 곡이 흘러나오면 제동이 걸리고 만다. 음악은 너무 좋으나 아주 느리게 나오는 곡이라 이런 음악은 어딘가 창밖을 보는 곳에 앉아서 위스키를 탄 커피를 홀짝이며 들어야지 슉슉거리며 달리면서 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조깅을 하다가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이 나오면 다른 곡으로 바꾸던지 해야 하는데 어떻던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야 하니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더라도 흐름은 끊기고 만다. 만약 반환점 정도를 돌 때 이런 재즈곡이 나온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벤치에 앉아 잠시 노래를 크게 듣는다. 바람을 맞으며 등에 흐른 땀을 축축하게 느끼며 듣는 재즈곡이 꽤 훌륭하게 느껴진다.


가끔 이렇게 앉아서 음악을 듣는데 마음의 한 부분을 건드리는 음악이 나올 때가 있다. 요컨대 조니 미첼의 노래라던가, 조용필의 노래라든가. 조니 미첼은 지구 상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목소리로 뽑아내는 노래는 내 마음에 내려앉아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뭉크의 그림처럼 뒤틀어 버린다. 하늘은 음울한 색과 암울한 냄새로 가득 차고 바람은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것만 같다. 나는 왜 표도 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매일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 걸까. 같은 생각에 사로 잡히고 만다. 그런 와중에 조니 미첼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졸졸 흐른다. 참 기이한 일이다. 조용필의 노래는 가사가 연약한 마음의 부분을 건드린다. 노래에도 표정이 있고 깊이가 있고 넓이가 보인다. 노래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뭉클하기까지 한다. 


https://youtu.be/tKQSlH-LLTQ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2000 lives


https://youtu.be/Mnp-m5ts-GM 바람의 노래 조용필(데뷔 30주년 콘서트)


하지만 마냥 앉아서 음악만 들을 수 없으니 일어나서 몸을 좀 풀고 다시 달려서 종착지로 간다. 이렇게 매일 달리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을 하루 만에 짧게 살아보는 느낌이다. 빠르게 달리고플 때는 파워레인저 만한 노래도 없다. 잘 나가는 해비 매틀 밴드는 파워레인저를 거의 다 불렀다. 미스터 빅, 메탈리카 등 폭발하면서 터지듯 연주와 노래가 이어진다. 그에 맞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폐 역시 터질 듯 펌프질을 한다. 한 번 들어볼까 얼마나 신나고 멋진 곡인지.


https://youtu.be/SH0t-adrTcA 극장판 오프닝 Mr.Big - Go Go Power Ranger


https://youtu.be/JC33Ak17ZAo Metallica - Go go Power Rangers (Official Video)


여러 휴대용 음장 기기가 있지만 아이팟 클래식 만한 게 없다. 나는 또 아이팟 클래식이 좋아서 이 기기에 관한 짤막한 소설을 써 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31


아이팟 클래식은 HDD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잉 하는 소음이 발생하고 침수와 충격에 약하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잘 돌아가고 있으며 한 번 충전하면 휴대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이팟 클래식과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또 무선 이어폰이 대중화된 이 시기에 유선 이어폰을 바라보는 몇몇의 시선을 보면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 경쟁이 손을 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이 없는 관계는 발전할 수 없으니 유치원,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동생이나 언니, 누나와도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경쟁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회에 돌입한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경쟁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과가 똑같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구조 자체가 공평하게 결과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은 실은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우리는 어쩌다가 시스템에 종속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면 매일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몇몇은 그 좌절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경쟁이 들어와 버리게 된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만 뒤떨어지지 않을까, 스마트와치의 사용빈도가 빈약함에도 나만 차고 있지 않으면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스마트와치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왕이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또 고가의 스마트워치를 구입하여 착용하게 된다.

스마트 워치 문구가 이렇다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실린 스마트 워치의 문구는 이렇다. '조선시대 살아?'라는 문구가 아마도 조금씩 우리의 살을 파고 들어와 아프게 한다. 그리고 조금씩 파고든 경쟁심리는 시간이 지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오늘이라지만 모두가 오늘은 처음이기에 오늘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또 회사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알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힘겨워한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큼 일상을 평범하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운전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조깅을 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매일 다르고, 디제이의 텐션도 매일 격차가 있다. 운전을 하면서 보는 자동차나 날씨 역시 매일 다르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글을 피드에 올리면 어제 올린 글에서 오늘 조금 발전했다. 조깅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지겹기만 한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확실하게 변화가 있다.

 

며칠 전에는 조깅화의 바닥에 구멍이 났다. 그만큼 뛰었던 모양이다. 그래 봐야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 수준이지만 매일 뛰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똑같은 조깅화를 하나 더 구입했다. 새 조깅화를 신고 달리는 기분만큼 또 좋은 기분은 없다. 유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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