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바다가

계절의 옷을 입으면

차가운 바다에

차가운 달은

괴테의 시처럼

미광이 비치고

그러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면을 이길 수는 없으나 라면보다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만둣국이다. 아파트 주위에는 중형마트가 하나씩 딸려 있고 그 안에는 대형마트만큼 다양한 식품을 판매한다. 거기서 일회용 곰탕과 만두를 구입해서 같이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끝이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파가 있다면 좀 썰어서 넣어주면 된다. 간단해서 맛이 별로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곰탕에도 만두에도 내 입맛에는 슴슴하나마 간이 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대로 퍼 먹는다.


삶은 닭이 있다면 죽죽 찢어서 같이 넣어주거나, 떡국떡이 있다면 넣고 후추를 뿌리거나 땡초를 넣어서 먹을 뿐이다. 양념장을 넣어서 먹지 않는다. 그래도 맛이 꽤 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 입맛에는 이 정도의 간이 딱 좋다. 예전에는 설렁탕을 먹으러 가서 소금 간을 전혀 하지 않고 먹었다. 사람들은 무슨 맛으로 먹냐고 했지만 밍밍하지만 고소한 맛이 좋았다. 스프맛이 좋은 라면은 라면의 맛대로 좋은 맛이지만 그저 하얀 국물의 고소한 맛이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걸레 빤 물 같은 평양냉면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맛에 길들여진 건 자취할 때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자주 해 먹었는데 간이 들어가서 맛이 나면 아이들이 다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이 될 만한 건 싹 없애고 오로지 슴슴하고 고소한 맛으로 국물을 낸 만둣국을 그대로 냠냠 먹고 있으면 아이들 중 반은 맛이 없다며 먹지 않았다. 지금은 인기가 1도 없어서 내 주위에 사람들이 없지만 대학교 때에는, 특히 복학을 하고 난 뒤에는 남자 후배 녀석들이 늘 따라다녔다. 자취할 때에는 방에서 혼자 편안하게 잠을 자본적이 없었다.


매일 찾아오거나 학교에서부터 자취방에까지 몇 놈은 꼭 따라왔다. 하지만 그러던 놈들도 몇 번 오다가는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술이 취하면 나는 비린내가 잔뜩 나는 꽁치통조림을 그대로 뜯어서 안주로 하거나 그걸 밥에 비벼서 먹거나 했다. 나는 비린내가 나는 음식도 꽤나 좋아했기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비린내에 질식할 것만 같았던 녀석들은 눈을 뜨자마자 방을 나갔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 닝닝한 국물에 밥도 없이 만두를 몇 개 빠트려서 먹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이고 바닷가라고 해서 모래와 나무만 있는 해변이 아니라 해변을 따라 카페와 식당이 죽 붙어 있는 바닷가이다. 그리고 외국인이 10명 당 한 명 꼴로 있을 정도로 외국인이 많아서 유월만 되면 해변에서 선텐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주로 개들을 데리고 다녔고 개들은 대부분 컸다. 품에 안고 다니는 강아지는 주로 한국인들이 많이 키우는 것 같고 외국인들은 대체로 큰 개들을 키웠다.


그리고 보통 두 마리 이상씩 키웠다. 한국의 집처럼 좁고 작은 집에서도 외국인들은 강아지가 아닌 개들을 가족처럼 품고 지내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면 어떻든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시키기 위해 회사 점심시간에 집으로 와서 개들을 산책시키고 씻기고 그러고도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회사에 오후 업무를 보러 나온다고 했다. 와, 하며 입이 벌어졌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인들이 많은 이유는 조선업 때문에 해외근로자들이 이곳에 많이 살게 되면서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기술자들이 상주했는데 보통 1, 2년씩 있어야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외국 친구네가 영국인 죠다. 기술자로 와서 혼자서 지내는 외국인도 있고 3년씩 있게 되면 가족을 몽땅 데리고 와서 지내는 외국인도 있어서 근 10년 정도는 외국인들이 해변에 가득가득했었다. 그랬던 외국인들이 조선업의 경기침체로 점점 빠져나가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해변에 한 집 건너 있던 퍼브도 슬슬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카페와 보통의 식당으로 다 바뀌었다.


이 도시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도시의 인구 자체가 조금씩 빠져나가서 지금은 8년 전에 비해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수도 굉장히 줄었는데 그렇게 많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들은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봤다. 물론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체감상으로도 바닷가에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대형 멀티플렉스를 지었다. 대형 극장과 함께 상점을 입점받고 있는데 잘 모르는 입장에서 왜?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없고 비싸기만 한데 도대체 누가 입점을? 같은 말들을 많이 한다.


어떻던 외국인들이 해변에 개들을 많이 산책시키던 때의 일이다. 자주 가는 카페가 있고 자주 가는 카페의 나의 지정석 같은 자리가 있다. 외국인들이 바글거릴 때 바닷가의 모습도 많이 변했었다. 일단 퍼브들이 생겨났고, 음식점 역시 많은 외국 음식을 파는 곳들이 생겨났다. 이라크 음식점도 있었고, 핫도그만 파는 식당도 생겼고, 오전부터 아루 굴라를 넣은 샌드위치를 파는 곳도 있었다. 이런 곳의 좋은 점은 맥주 한 잔만 주문을 해도 그 누구도 눈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스몰비어 집에 들어가도 맥주 한 잔만 주문해서 먹기 눈치 보이지만 외국인들이 하는 식당에서는 그게 당연했다.


해가 뜨거워지면 외국인들은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몸매 이런 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대로 옷을 벗으면 수영복이 드러나며 아아 해가 좋아, 라며 벌러덩 누워서 온몸으로 해를 받았다. 덱체어를 들고 해변에 깔고 옆에는 얼음을 가득 채운 통에 맥주를 몇 병 넣어서 선탠을 하면서 홀짝인다. 덕분에 나도 그 사이에서 고등어처럼 뒹굴뒹굴하며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 그들은 키우는 개들을 많이 데리고 해변에 나온다. 개들도 주인과 함께 해변에 나오면 신난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장면은 한참을 보고 있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여름에는 조깅을 하다가 땀에 절은 옷을 벗어두고 잠시 살을 태우다가 이렇게 보면 윗도리가 바짝 말라있다. 그러면 다시 조깅을 하다가 선탠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맥주를 마시다가.... 이런 식의 생활이면 의식주 해결에 관한 생존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해변에서 조깅을 하다가 보니 저 멀리서 큰 개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아주 신나 보였다. 주인은 외국인으로 레트리버 종류로 개의 힘이 강하니 외국인이 딸려 갔다가 나왔다가 했다. 아무튼 주인 따라 바다에 나온 개는 신이 난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그들과 나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주인은 개의 줄을 놓쳤다. 개는 마냥 신이 나 있었는데 바다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개가 나에게 막 달려왔다. 어어, 하는 동안 개는 나의 가까이 와서 앞다리를 내 가슴으로 올리고 아주 반가운 척을 했다. 어찌나 신나게 내 앞에 와서 몸을 털었다. 엄청난 바닷물과 모래에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 큰 개가 내 몸에 붙어서 나의 얼굴을 막 핥았는데 아마도 그때 집에서 키우던 우리 집 개들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힘이 정말 어찌나 좋은지 개를 아무리 떼려고 해도 잘 되지도 않았다.


주인이 헉헉 거리며 달려와서 막 나에게 뭐라고 하던데 미안하다는 말 밖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주인은 독일인으로 쏘리만 영어로 하고 나머지 말은 계속 독일어로 했다. 내 몸 꼴은 젖은 모래로 엉망진창이었고 신나고 순수한 눈을 한 개는 혀를 내밀고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았고 주인은 양손은 휘저어가며 계속 뭐라고 했다. 괜찮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케이 암 파인, 밖에 없었다.

해 질 녘 해변의 모습


흐린 날 퍼브에서


갈매기 밥? 주고 떠나는 마을 아주머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1-05-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암 파인˝ 뒤에 앤드 유? 가 붙었으면 완벽했을텐데...아쉽네요.

교관 2021-05-17 11:4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면 완벽했을까요 ㅎㅎㅎ
 


요즘은 닭가슴살도 맛있게 나온다.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기만 하면 된다. 퍽퍽함도 없다. 간장 양념이 가슴살 안쪽까지 골고루 스며들어 있어서 뜨거울 때 잘라서 먹으면 뭔가 요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닭가슴살은 대체로 닭 중에서 맛이 없는 부위로 모두가 꺼려하는데 또 그 퍽퍽한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이다. 그냥 퍽퍽한 맛으로, 물에 불은 종이를 씹는 것 같은 식감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게 나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맛있는 가슴살이 나오면 이것만으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한 끼 정도는 먹지 않는데 하루에 세 끼를 꼬박 다 챙겨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인간은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기를 바란다. 삼시 세 끼는 언제부터 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세끼 식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배가 덜 고프거나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을 먹게 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먹기 싫은데도 밥때가 되면 어머니가 불러 밥을 먹였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챙겨 먹는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코 앞에 토끼가 앉아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어떻든 때가 되면 챙겨 먹는다. 인간이 세상에 난 이래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그렇게 구조화되었다. 이런 시스템은 인간이 만드는데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인간이 속하게 되었다.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 내가 속한다. 반나절을 거의 움직임이 없이 컴퓨터 앞에만 있어야 하니까 먹는 족족 살로 가버리기 때문에 나는 두 끼 정도 먹는 게 그간의 나를 보면 맞다고 본다. 그래서 누군가 찾아와서 밥을 먹자며 나가자고 하면 난처하다. 게다가 나는 천천히 먹기 때문에 맞은편에 앉은 타인의 속도에 따라가질 못한다. 일하는 도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찾아온 사람은 식사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데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망치게 된다.


어떤 음식은 기묘하게도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된다. 그런 음식은 앉아서 먹을 때는 배부른지도 모른 채 냠냠하며 기분 좋게 먹는다. 그러다가 일어나면 배가 엄청 부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뇌도 기분이 좋아 단기간에 망각을 일으키는 서번트 물질을 퐁퐁 샘솟게 해서 배부름을 모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몸은 정직하나 뇌는 허구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에게는 절제라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금세 살이 찌고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특히 요즘처럼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남들이 먹는 것을 보고 만족하면 그만이지만 맛있게 먹는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서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편의점에는 매달 새로운 신상이 쏟아지고 유튜브에서는 매달 그 사실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어떤 제품이 나왔으며 새로 나온 제품의 맛을 리뷰한다. 조깅하고 오는 길에 야시장을 지나쳐와야 하는데 늘 맛있는 냄새를 폴폴 풍긴다. 오징어 굽는 냄새, 스테이크, 닭꼬치, 순대볶음, 떡볶이, 매운 어묵, 국물 호로록 거리는 소리. 조깅을 하면서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정도다.


그나저나 삼 시 세끼가 정해진 건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농사를 짓는 시기부터가 아닐까. 농사를 처음 지었을 때 곡기만으로 밥을 먹기가 힘들어서 장을 담그고 밥에 된장을 찍어 먹기 시작한 것이 간이 있는 음식의 시초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세 끼를 챙겨 먹으려는 건 아니다. 독일도, 미국도, 일본도 모두가 원칙적으로는 하루 세 끼다. 나라 간의 교류가 없던 시대에도 인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 끼를 챙겨 먹었다. 그때는 아마도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도 허기가 졌을 것이다. 서민들은 주로 농사일을 지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노동을 많이 해야 하니 먹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끼니를 꼬박 챙겨 먹기가 버거워졌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인간의 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음식의 다양화로 인해 인체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어서 조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 세 끼만 먹으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자기도 모르는 새 음료와 간식을 또 먹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먹지 않거나 간단하게 먹는 사람들이 늘었다. 현재에는 하루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심지어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던 아버지들도 이제는 그렇게 먹지 않고, 그렇게 먹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만약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가정식단부라는 부서를 만들어 각 가정의 식단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지 않는 집에는 1차 벌금, 2차 벌금, 3차 징역으로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만들어 국민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집에는 보조금이 들어갔으며 보조금을 받고 세 끼를 챙겨 먹지 않으면 모든 보조금이 끊기고 받은 보조금의 세 배에 달하는 돈을 범칙금으로 내야 한다. 세 끼를 챙겨 먹지 못하는 빈곤층을 겨냥해서 만든 법이었다. 법을 만들고 처음 4개월 동안은 세 끼를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간섭하지 않던 정부는 법으로 정해놓으니 세 끼를 라면으로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라면의 소비는 더 올라가고 가계의 기본구조가 망가지는 가정이 점점 불어 나면서 사람들은 세 끼 법은 잘못되었다고 시위를 하게 되고 정부는 더욱 고압적으로 시민을 고립시키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재미있겠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치우고, 어떻든 현실을 뚫고 맛있는 닭가슴살이 들어왔다. 원래의 가슴살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이렇게 맛있어져 버리면 또 찾아서 먹게 될지도 모른다. 간편하고 먹기 쉽고 맛도 좋고 깔끔하다. 밥과 함께, 술안주로도 좋다. 이렇게 먹다 보면 그냥 찌개에 배부르게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면 애초의 퍽퍽한 닭가슴살을 찾는다. 닭가슴살의 변화는 가슴살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으로까지 왔다.


삼겹살을 보면 삼겹살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된장 삼겹살이 나와서 건강과 직결된다는 광고를 했었고, 항아리 삼겹살, 와인 삼겹살이니 금가루 삼겹살이니 많은 변화를 거친 삼겹살이 나왔지만 지금은 다 없어지고 그저 본연의 삼겹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연의 맛이 맛있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먹던 삼겹살에는 추억이라는 맛이 하나 더 입혀졌기 때문에 여전히 맛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닭 가슴살도 그렇게 될까. 하지만 사람들은 퍽퍽한 가슴살은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길고양이들과의 인연이 있다. 고양이들과는 도저히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길고양이 틈에 끼여 길고양이화 되어서 길인간?이 되기도 한다. 한 번 인연이 닿은 길고양이를 찾으려 한 달을 그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리기도 했다.


어제, 집에서 고양이를 12년 동안 키운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 키우는 개에 대해서(물론 나는 키웠던 개들이었고, 그 사람은 현재 두 마리 키우고 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 만났지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아직 키우는 개들을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낸 적이 없고 나는 여러 번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냈기에 마지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인간으로 치면 거의 백 살이 넘는데 병원에서는 아직 건강하다고 했단다. 내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이 전부 유기견이었던 것처럼 그 사람도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웠는데 오래도록 키우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퍼그도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남편도 적극적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공감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마냥 천방지축 아이 같은 개에 비해 물수제비처럼 느긋한 면모를 온몸에 한 껏 지니고 있는 고양이는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한 동물이라면 동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길 강아지? 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강아지는 혼자서 터덜터덜 길거리를 막 다니는 경우는 없다. 이제 길거리에서 개똥 밟았다!라는 말은 사라질 것 같다.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럼에도 길고양이들은 주인 없이 여기저기 많이도 있다. 내가 다니는 길목에만도 길고양이들이 많은데 모습이 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길고양이들은 덩치가 작고 어릴수록 안타깝게 보이지만 전혀 딱하게 보이지 않는 길고양이도 많다. 저건 도대체 뭐지? 하는 길고양이들도 있다. 개보다도 크고 자동차가 와도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길고양이도 있다. 개보다도 크다니까. 왈왈 짖는 개가 아닌 워워 짖는 개만큼 큰 길고양이들의 표정도 몹시 귀찮아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만화 속에 나오는 고양이의 얼굴에서 벗어났다. 그런 못난이 얼굴의 길고양이를 보는 재미는 확실하게 있다.

길고양이들은 어제나 경계를 하고 있다. 주로 인간에게 늘 경계태세를 취한다. 인간은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야생 동물들에게 위협적이고 배척해야 하는 존재로 보이는 것일까. 그래서 줌이 없는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는 고양이들을 담으려면 고양이들 가까이 가야 한다. 당연하지만 고양이들에게 다가가면 고양이들은 도망가버리고 만다. 재빠르다. 재고 자시고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가오면 후다닥 도망가버린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고양이 세 마리가 나를 보는 장면을 담는 건 기적에 가깝다.

어떤 길고양이는 인간이 잘 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지나가면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마치 보호색으로 몸을 가린 후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인간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인간은 왜 저렇게 걸어 다니는 걸까냥. 도대체 인간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불안하게 자꾸 움직이는 것일까냥. 인간이란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건 얼굴뿐이다냥. 얼굴만 드러내 놓고 다니니까 인간에 대해서 알 수 있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냥. 인간은 고양이보다 왜 못 생겼을까냥.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몰래 본다. 그런 길고양이도 있다.

가장 최근에 찍은 길고양이 사진이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로 오는 경우가 있다. 아마 메트로폴리탄인 이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달동네일지도 모른다. 한 달 정도 전부터 보상을 받은 동네 사람들이 떠나가고 철거가 이루어졌다. 이 동네를 기점으로 주위는 전부 새로운 건물에 새로운 마트에 편의점이 가득하지만 이 동네만은 오래 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야외 화장실이 있는 집들. 하루 이틀 사이에 집들이 깡그리 무너졌다.


거길 지나오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마도 고양이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누워서 자던 편안한 곳도 사라졌고 음식을 챙겨주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길고양이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인 것이다. 지나가는데 나를 보면서도 계속 운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도 설움이 깃들여 있다.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전혀 내 쪽으로 올 생각이 없다. 사진을 자세하게 보면 고양이가 두 마리다. 아마도 부부 고양이로 앞으로 태어날 새끼 고양이도 걱정이 되고 현재 먹고사는 걸 고민하는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나 인간이나 먹고사는 건 누구에게나 다 어려운 고민이다. 다음 날 다시 가 보니 동네는 좀 더 부서져있고 고양이는 저 자리에는 없었다.

가끔 고양이를 괴롭히는 뉴스를 본다. 괴롭힌다는 말은 실제로 괴롭히는 것에 비해 와 닿지 않는 말이다. 꼭 응원합니다! 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다. 응원한다는데 어떤 식으로 응원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좀비가 나오는 어떤 영화나 뱀파이어 영화에서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보다 인간이 더 ‘악’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좀비와 뱀파이어는 인간밖에 먹을 게 없으니까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먹지도 않으면서 이유 없이 괴롭히고 괴롭히다 죽이기도 한다. 인간은 인간을 장난으로 죽인다. 하지만 육식동물이나 좀비는 생존하기 위해 사람을 먹는다.


그런 인간이 고양이를 이유 없이 괴롭힌다. 고양이는 영문도 모른 채 정수리에 못이 박혀 죽기도 한다. 한없이 나약한 길고양이들은 악랄하고 무서운 인간 세계에 이렇게 섞여 살아가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1-05-1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기른 고양이가 어느덧 7년이 넘었네요.
중국에서 기르기 시작한 녀석인데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있어요.
중국에 있을 때에는 중국말로 말을 걸었었는데, 2개 국어가 가능한 고양이가 아닐까 싶네요.ㅎㅎ

교관 2021-05-13 11:53   좋아요 0 | URL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