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지만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비정규직인 의주는 자기 자신보다 고객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용남과 함께 독가스가 올라오는 옥상에 남게 되었는데 밀려오는, 뱃속에서부터 밀려오는 허탈함과 두려움과 공포가 한데 뒤섞여서 눈물부터 터져 나온다. 이제 20대인데 죽음의 공포 앞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라고 해도 무방할 자신이 내팽개쳐졌는데 거대한 절망 앞에 어찌 의연할 수 있을까.


절망 때문에 이렇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어디 이 뿐일까.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거나 하게 된다. 열심히 해보려는데 아무것도 안 되고, 해도 해도 넘어지기만 하고, 사람들은 나에게만 뭐라고 하고, 내 편일 것 같았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숫자와 물질로 나를 측정하려고만 하고.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되면 절망 앞에서 의주 같은 눈물이 터져 나온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둥지에서 떨어진 상처 입은 작은 참새를 보았다. 살려 주려고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작은 생명체가 손바닥 위에서 숨을 헐떡였다. 그때 동네의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야생 동물을 인간이 억지로 살려 주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보호를 받고 인간의 먹이를 받아먹고, 인간의 손이 타면 나중에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인간과 야생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참새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규율에 따르기로 했다. 그것이 인간과 야생이 함께 생존하는 길이다. 다음 날 학교로 가는데 참새를 놔준 곳에서 참새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눈물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말하는 법칙이나 만들어놓은 규율 때문에 참새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이 바보 같았다. 비록 규칙에 어긋나더라도 눈앞에 도와줘야 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렇게 하리라.



https://youtu.be/GNT27-22U0U



한, 새리, 창, 란, 이 네 명은 2001년 개봉한 영화 ‘눈물’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2021 버전을 보는 것 같은 세진, 주영, 재필, 신지가 나오는 ‘어른들은 몰라요’는 영화 박화영에서 세진이 그대로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박화영에서 박화영에게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박화영에서의 세진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방황하며 고통을 매일 겪는 네 명의 청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과 불행과 우울을 한 번에 보여주려 한다. 2001년 영화 ‘눈물’에서 열심히 노력한 청춘들이 2021년에는 밝고 희망차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그들은 여전히 시궁창에 빠져서 궁지에 몰리고 폭력을 일삼고 폭행을 당하며 무책임하게 자신들을 버린 부모의 역할을 서로 대신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이런 생활은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내몰린 아이들이 느끼는 슬픔은 보통의 내몰리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다르다. 그들의 슬픔은 하얗고 순백의 도자기 같아서 꽤나 아름답다. 불순물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서,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아주 위험하다.


내몰린 아이들의 몸을 찾는 어른은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 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모르는 곳에서 오늘도 그들의 슬픔을 채워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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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화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그 현실을 바꾸지 못할 바에는 그 현실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날씬한 사람만이 대접을 받는 사회를 욕하고 잘못됐다고 말하기보다, 그래 내가 날씬해져서 한 번 보여주지, 라며 날씬한 사람이 되어서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한 영화는 대 놓고 불편하고 한 영화는 이면의 너머의 불편한 진실이 가득하다. 영화가 말하는 건 현실이다.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을 보면 대부분 그 음식을 만드느라 젊은 시절 고생에 고생을 거듭해서 지금의 이 시점에 온 것이라는 장면이 많다. 고생 고생하며 지내야 했다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만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오래된 티브이를 보면 70년대에도 불경기라 힘들다고 했다. 그건 8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90년대에는 괜찮았냐고 하면 그때에도 인터뷰 영상을 보면 불경기라 힘들었다. 그럼 도대체 현실이 힘들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두 영화를 보면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비정규직, 부당대우,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가출, 임신, 낙태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건 시대와는 무관하게 유전자처럼 어떠한 집단이나 개체에 발현하여 계속 대물림된다. 피하려고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피할 수 없고,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두 영화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뉴스를 보면 현실은 더 거대한 지옥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인들이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러도 이런 유전자적 대물림 악몽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실이란 불편하고 영화는 그런 진실을 말해야 한다. 역사는 막연한 숫자로 진실을 나타내지만 영화는 구체적인 얼굴로 진실을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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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싸구려 커피를 마시다가 스벅 커피를 한 잔 마셨던 적이 있었다. 싸구려 커피라고 해도 샷 추가해서 먹기 때문에 진하고 아주 맛이 좋다. 내 입맛에는 딱이다. 이천 원이고,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전을 시작하는 상가들의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우산이 없으면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스벅에서 스몰 사이즈로 한 잔 마실 때가 있다. 스벅 커피는 특유의 맛이 있는데 그 맛에 먹는다는 사람도 있고, 그 맛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의 맛이라는 건 라면의 맛처럼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그 특유의 맛이 싫으면 다른 곳의 커피를 마시면 되고, 그 특유의 커피 맛은 싫지만 특유의 공간이 좋으면 다른 음료를 마시면 된다. 스벅의 제일 작은 사이즈는 손으로 집어 들면 요만하다.


커피는 마시는 건 분명 의식적인 행동인데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린 것 같다. 요컨대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변기에 가서 앉는다던가, 바지에 오른발을 먼저 넣는다던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기지개를 켠다든가, 양말을 벗으면 양말 통으로 던진다던가. 날마다 무의식에서 행해지는 행동이 있다. 그 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처럼 느껴진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해서 크게 별다를 것 없는데 별다르다. 그러니까 성격은 급한데 느긋할 때는 느긋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싶은데 만나기 싫고, 조깅을 하고 싶은데 운동은 싫고, 짜증은 나는데 화는 내기 싫은, 좀 우습지만 그렇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 시간을 건너뛰어버린다고 해서 하루 일과에 지장이 전혀 있지 않지만 미미하게 따라다니며 조금씩 신경을 긁는 듯한 기묘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묘한 의식 같다. 마치 무언 중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커피를 마시는 호흡이나 요령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에는 무의식적인 의식의 행동으로 하는 의식이 스며있다.


여자들에게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남자들은 매일 면도를 하는 것이 무의식적인 의식의 행동일지도 모른다. 매일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들을 매일 한다고 해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루 정도 빠트리게 되면 묘하게도 표가 난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그 구멍이라는 게 보이거나 만져질 만큼 크지 않아서 처음에는 모르다가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조금씩 커져서 나중에는 메꿀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느끼는 이상한 점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안 그런데, 아아를 마시게 되면 배가 부르다. 그래서 아아를 마시고 난 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정말 배가 부르다니까.


커피 이야기 나온 김에 맨해튼 트랜스퍼의 알럽 커피, 로 시작하는 자바 자이브나 한 번 듣자. 맨해튼 트랜스퍼는 택시에서 손님과 기사로 만났나? 손님과 손님으로 만나서 뭐 하시는 분이에요? 저요? 음악 해요, 재즈. 그쪽은요? 이렇게 해서 멤버가 되어서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다.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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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9QJrjRRn5E 


대략 4년 전에 나온 영상인데 보셨습니까.


근래에 아버지 수목장에 다녀오기도 했고, 주로 제가 먹는 음식들은 아버지와 추억이 깃든 음식들이 많아서 아버지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말이죠.


영상 속의  영상 속의 아빠처럼 저희 아버지도 어린 시절의 저와 동생에게 거짓말을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이 우리를 무겁게 덮고 있었는데 주인집 가족과 여름밤에 같이 마당에서 돗자리 깔아 놓고 식사를 한 적이 많았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면으로보나 위축될 법 한데 전혀 그러지 않고 큰 산처럼 보이기만 했던 기억이 있어요.


항상 동생은 목마를 태웠고 주인집 가족과 자주 마당에서 여름밤에 식사를 했는데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를 땐 아버지는 큰 소리로 불렀어요.


어쩌면 정말 신이 나서 불렀다기보다 신나서 부른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또 더 신나고 즐거웠고, 그 모습이 좋아서 아버지는 더 크게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가 없는데, 가구공장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매일 밤늦게까지 나무를 깎고 갈고 하다 보니 먼지도 많이 마시고 무엇보다 피곤에 절어 있어요.


학창 시절에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셨는데 너무 피곤할 때는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그대로 잠이 든다고 합니다.


그 녀석에게는 어린 딸이 있는데 이번 어린이 날에 몇 달 동안 만든 목재 자동차에 딸을 태우고 곰인형 탈을 쓰고 끌어주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멋있기도 하면서 짠해 보이는 게 내 아버지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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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가 시장에 갔다 올게, 몇 시까지 올 테니까 동생 잘 보고 있어.라고 하고 시장에 갔던 적이 있었다. 나도 초등학교 저 학년이었고 동생은 더 어렸다. 점심시간까지 온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계속 시간이 흘렀다. 동생은 방에서 재미있게 인형을 들고 놀고 있었고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이라는 게 어디에서 오는 건지 딱히 잘 모를 걱정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말 안 들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느니, 엄마가 놔두고 시장 가서 안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 했다. 주로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엄마나 아버지가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다. 한 번 밖에 놀러 가면 날이 저물어서야 들어오는 나에게 그런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였던지 엄마가 벌써 와야 했지만 오지 않아서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생은 오빠, 배고파.라고 계속 말했다. 엄마는 아직 오지 않고 배고픈 동생 때문에 하릴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밥을 챙겨줘야겠지만 뭘 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반찬통을 보니 김이 있었고 간장종지에 양념 간장을 붓고, 밥솥에서 밥을 퍼서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서 동생을 먹였다. 마른 김이라 입천장에 달라붙는데 동생은 또 그게 재미있어서 까르르 거리며 맛있다고 했다. 동생이 마른김에 싼 밥을 맛있게 먹을수록 나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훨씬 지나 한 시간이 넘어갔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엄마는 말 안 듣는 내가 미워서 버리고 간 것일까. 다리 밑에서 주워 온 내가 아닌 진짜 아들을 찾으러 간 것일까. 그런 생각에 불안이 깊어지니 울고 싶어 졌다. 곧장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동생이 옆에서 인형을 들고 김에 싼 밥을 다 먹고 또 달라고 했다. 눈물을 꾹 참고 마른 김에 밥을 말아서 간장에 찍어서 동생 밥상 앞에 몇 개를 놓았다. 동생은 하나를 집어 먹고 인형을 가지고 놀고, 또 하나를 집어 먹고 인형과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김이 목에 걸렸는지 동생이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나는 물을 떠서 동생을 먹였다. 마른 김에 밥을 먹을 때에는 늘 엄마가 된장국을 끓여줬는데 고작 김과 밥과 간장뿐인 밥상에서 동생이 맛있다고 먹고 있으니 불안을 누르고 서러움이 올라왔다. 아버지 회사에 전화를 해볼까, 엄마가 시장 가서 오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울면서 말하면 좀 나아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집을 둘러보니까 꼭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을 가장하고 있는 어떤 공연장 같은 세트처럼 느껴졌다. 잘못 와 있다.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다. 우리가 있을 곳에는 고작 마른 김에 밥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오빠, 더 만들어줘.라는 동생의 소리에 눈물이 콱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는 배고팠구나, 라며 만두를 굽고 국을 만들어 동생을 먹였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라는 건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그 자리가 비록 찌질하고 누추하고 마른 김에 밥 밖에 없을지라도. 사실 그 뒤로 마른 김이 밥상에 올라오면 잘 먹지 않았다. 조미김보다 맛도 없었다. 무엇보다 목을 콱 막히게 하거나 입천장에 달라붙는 기분이 동생을 챙겨 먹이기 전과 후로 나누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온 겨울의 어느 날 아버지가 마른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 나에게 먹였다. 씹고 있으면 아버지가 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서 또 먹였다. 아아 참 맛있었다. 그 기억은 따뜻함으로 내내 남아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영화 ‘괴물’에서 마지막 장면에 강두 역의 송강호가 죽은 현서 대신 아들로 들인 세주를 깨워서 밥을 먹일 때 김에 밥을 돌돌 말아서 먹는데 어릴 때 기억이 확 밀려왔다. 영화 속 그 장면의 계절도 겨울이었다. 매점 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으면 아버지가 깨우고,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바로 먹던 마른 김, 뜨거운 밥, 간장, 된장국. 지금 이렇게 먹어도 그때의 맛은 날리 없어서 일부러 입천장에 마른 김을 붙여보고 한 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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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그 사람은 ‘나‘다. 화가 나지 않니? 화를 왜 안 내는 거냐? 같은 말을 지금까지 줄곧 들으며 지내왔는데 화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단지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놓쳤거나, 화를 내고 나서 화를 내느라 쏟아부은 에너지가 커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싫거나, 화를 내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화를 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 제삼자와 어떤 문제로 부딪혔을 때는 지금까지 그런대로 큰 문제없이 잘 넘어온 것 같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화가 나는 일은 주로 직장에서 일어난다. 맡겨놓은 일처리를 하지 못했거나, 상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그대로 하루를 넘겨버렸거나, 계약 건이 날아갔거나, 하는 일에는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기에 직원들에게 화를 낸다. 그러면 화는 밑으로 밑으로, 부하직원에게로 내려간다.


개인적으로는 회사생활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에 화가 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이만큼 지나가 버려서 주로 화가 나는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마찰 때문인데 그때에도 나는 보통 화가 확 났을 때 그 화를 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건지 잘 몰라서 그 타이밍을 넘기고 만다. 그러고 나면 애초의 전투적이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순전히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며, 내가 겪었던 이야기며, 어제의 일이다. 그래서 비교적 기억은 제대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지하 주차장이 4층까지 있다. 지하 주차장 바닥의 공사 문제로 토요일 정오까지 폐쇄하니까 정오에 오픈을 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오는 사람은 건물 앞이 강변이라 강변주차장을 이용하라고 했다. 강변의 공영주차장은 카드만 사용이 가능해서 카드가 없는 나는 느긋하게 출근하리라 마음을 먹고 정오가 넘어서 도착을 했다.


그런데 주차장은 아직 폐쇄되어 있고 입구에 정오까지 공사가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 오후 2시, 즉 14시에 오픈을 한다는 것이다. 통보라든가 연락을 받지 못한 나는 주차장 입구에 공간이 있다. 공사가 끝나고 철문이 올라가면 바로 주차장에 들어가면 되니까 그 입구에 주차를 하고 나는 건물로 들어와서 일을 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어서 연락이 와서 나는 차를 주차장에 넣었다. 여기까지가 어제 있었던 일이다.


그러고 난 후 2시간 정도 있다가 번영회 회장이 나에게 와서 폰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 입구에 차를 주차를 해 놓는 바람에 아직 바닥에 칠해 놓은 페인트가 덜 말라서 벗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강변에 주차를 하지 않고 그 입구에 주차를 해놔서 이런 일을 만드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주차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리인 아저씨만 회장 자신에게 혼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관리인 아저씨가 시말서(경위서)를 써야 할 판이라고 했다.


회장은 내가 잘못을 했으니 너의 잘못으로 인해 죄 없는 사람이 시말서를 쓰게 생겼고, 바닥의 페인트가 좀 벗겨진 것으로 인해 다시 폐쇄를 하게 되면 너(나를 말한다)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회장의 말을 아무리 들어도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정오까지라고 해서 정오까지 왔는데 아직 공사 중이다. 그리고 그 앞에 오후 2시까지 연장이 되었다고 써 놨는데 나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집에서 나오는 도중에 그렇게 바뀌었는데 그렇다면 나에게 연락을 해 주던지 해야지, 게다가 나는 강변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없다. 카드로만 계산이 가능한 무인 주차장에 카드가 없는 나는 들어가지 못한다. 회장이 나를 향해 나무랄 때 나는 이렇게 나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회장이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회장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입점해있는 세입자들이 주차를 하기 전에 문자나 메시지로 연락을 주지 않았다는 점. 만약 입구에도 주차를 하지 못 한다면 관리인이게 그렇게 지시를 내리게 하고 관리인이 그 지침을 어겼다면 그건 회장과 관리인의 잘못이 맞지 나 때문에 시말서를 썼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기서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이다. 회장은 자꾸 나 때문에 관리인이 시말서를 쓰고, 나 때문에 다시 폐쇄를 하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가스 라이팅이 아닌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너 때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당하고 있다. 그러니 너에게 잘못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회장에게 위에서 말한 내 입장을 말했을 때 회장도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며 갔다. 회장이 화를 내고 나도 같이 화를 내면 나는 회장에게 이기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그런 회장의 모습을 자주 봐왔다. 회장은 경찰들과도 싸워서 이기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화를 낼 때는 들어주고 나의 입장을 말하면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스 라이팅처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일이, 너 때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참 화가 난다. 멍청해서 폰을 들고 바로 녹음 버튼을 누르지도 못했다. 그런 일로 찾아오리라고는 몰랐기 때문이다. 또 모른다. 하루 이틀이 지나서 계속 화가 난 회장이 다시 찾아와서 뭐라 뭐라 할지도. 직장인이든 자영업이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들어가면 참 복잡하고 짜증 나는 일들이 잔뜩 있다. 그게 인간의 삶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인간의 삶이 힘든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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