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a-tqIQc8RM


우리 모두 악플은 달지 말자

악플에 견디다 못해 정말

아이유가 사라지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악플을 단 사람들은 아이유가 사라지면 선플을 달고 다닐까

한 번 정도 쓰는 선플에 비해 악플은 구체적이고 지속적이다

아이유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그래서 그런 아이유를 보며 

흐린 하늘이 점점 맑아지듯

행복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누가 그러데 자기 주위보다

이 노래가 더 자신을 알아준다고


쓸모 없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이럴까

도대체 나 같은 인간은, 같은 자책하는 사람들

상처를 받았을 때는 제대로 상처를 받자

상처를 받았을 때 그냥저냥 넘어가게 되면 그 상처는 흉터가 되고

시간이 지나 곪아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모두가 외면한 나에게 손을 내민 건

다름 아닌 화면 속 이지안이었으니까


상처 받은 채 내민 손을 

상처 받은 손이 잡는 순간


그러면 이지안이 편안해지듯이

우리도 조금 편안해지겠지

그리고 아이유도 지금보다 더 행복하면

우리도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덜 불행한 날이 되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해 먹으면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래도 허기로 인해 놔에 산소농도가 조금 떨어져 생각하는 것에 몸이 작용 반작용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짜증을 내고, 누군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든 배고픔은 인간에게 호러블 한 것이다.


국밥을 좋아하지만 자주 사 먹지 않아서 국밥이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면 이상하게 짜증이 나며 뭔가가 허전하다고 느낀다. 국밥집에 가면 뜨거울 때 바로 먹을 수 있고 밑반찬들은 계속 들고 와서(뷔페식이라) 먹으면 되니까 식당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 국수사리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국밥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고 싶었다. 아주 간절했다. 국밥 맛도 알고 라면 맛도 아니까 국밥에 라면 사리를 넣어서 먹으면 너무 맛있겠다. 어서어서 그렇게 해 먹자.


그 생각 하나로 일을 마치자마자 국밥집에서 국밥을 포장을 했다. 국밥집에는 국수사리가 있으나 (당연하지만) 라면 사리는 없다. 국밥 포장을 위해 집에는 뚝배기를 미리 사놨다. 국밥을 데우고 라면도 끓어서 씻지도 않고 라면사리를 국밥에 넣었다. 야심 차게 한 젓가락 떠서 입으로 넣었는데, 그랬는데 전혀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맛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럴까. 국밥의 시원한 국물 맛도 희석되어 있고 라면사리는 그냥 따로 놀고 있었다. 잘 모르지만 기름에 튀긴 면사리는 국밥 국물에 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양념을 넣어서 먹으니 국밥의 맛도 가려지고 라면 맛도 사라졌다. 이야, 음식이라는 게 참 희한했다.

랄랄의 웃참을 보면 랄랄이 웃음을 있는 힘을 다해 참는 모습이 웃겨서 웃게 된다.  거기에서 본 사연인데, 직업 특성상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큰일이다. 오늘도 먹어야 하는데.라는 글 밑에 댓글이 달렸다. 님은 직업이 뭐세요? 저는 백수입니다.


라면은 라면 다운 게 라면답다 라는 것을 알았다. 라면을 돼지국밥에 넣어서 먹고 나서 알게 되었다. 퓨전이 대세고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그만의 맛과 멋은 확실하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면은 백수부터 직장인 그리고 학생, 직장인까지 누구나 좋아한다. 고속도로 여행 중에 휴게소에 들르면 다른 음식보다 라면에 공깃밥이 제일 맛있다. 7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한 휴게소는 바다가 다 보이는 곳에 앉아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 그곳에 앉아서 먹는 라면 맛이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집에서 먹는 라면 말고 밖에서도 라면을 많이 사 먹었을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분식집이나 라면을 파는 식당에서 라면을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몇 해 전까지는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 틈새라면이 있어서 계떡면을 왕왕 사 먹었다. 콩나물이 들어가서 시원하니 좋았다. 단무지도 맛있었고 밥을 말아먹으면 아무튼 든든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틈새라면이 승승장구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프렌차이점이 몇 군데 있었다. 케이에프씨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고, 버거킹도 나갔다. 몇 달 전에는 오래도록 있던 본죽도 나가고 말았다.


라면을 끓일 때 계란을 풀어서 끓여 먹는데 라면에서 짠맛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계란을 풀어 먹으면 뭔가 라면이 라면 같지 않는 맛이 났다. 그러니까 좀 밍밍한 것이다. 라면을 저 위의 사연처럼 매일 먹을 게 아니니 라면 정도는 예전처럼 그대로 짠맛이 좀 나는 게 들판에서 막 자란 토마토 같은 느낌인데 지금의 라면은 화단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토마토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계란을 라면과 같이 먹고 싶을 때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넣어서 먹는다.


라면에 짠맛이 줄어드니 물 조절을 조금만 실패하면 라면 맛이 없다. 그래서 매일 먹는 라면이 아니기에 라면을 먹을 때는 조미료를 좀 넣어서 끓여 먹는다. 그리고 센 불에 면과 스프를 동시에 넣고 끓여서 먹는다. 그러면 라면의 짭조름한 맛이 더 확 올라오면서 맛이 좋다. 외국에 수출하는 라면에는 옛날 그대로의 라면이 수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수용보다는 해외에서 사 먹는 한국 라면이 더 맛있다고 한다.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맛도 그렇고.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딴생각을 하다가 물을 약간만 더 부어도 라면은 싱거운 맛이 나는 것만 같다. 어떻든 평소에 짠맛을 즐기지 않고 오히려 국밥을 먹으러 가서도 새우젓은 넣지 않는다. 설렁탕도 소금 간을 하지 않고 설렁탕이나 곰탕의 그 밍밍하고 고소한 맛으로 먹는데 라면은 짠맛이 나야 맛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라면의 짠맛을 내는 MSG를 탓해서 라면 공장에서는 MSG를 빼버리고 대체 양념으로 스프를 만들었다. 어떻든 스프의 강한 짠맛이 훌러덩 빠진 것이다. 라면의 종류가 많아서 모든 라면은 모르겠지만 신라면과 삼양라면을 주로 먹는데 첨가물을 넣지 않고 라면만 온전하게 끓여 먹으면 옛날만큼 맛은 없다. 삼양라면은 어릴 때 왕왕 먹었고, 근래에(1년 전까지만 해도)도 주기적으로 끓여 먹었는데 여러 가지(김치 국물이나 고춧가루나 식초나 조미료나)를 넣어서 먹었다.

그러니까 마치 전장에서 이기긴 했지만 전투 후유증으로 전투원들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장군의 힘없는 모습 같다. 하지만 도망갔던 예전의 라면 맛을 찾아올 수 있으니 좀 귀찮아도 그렇게 해서 끓여 먹으면 또 입에 맞는 맛있는 라면을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리곰탕면을 끓여 먹을 때 맛있게 맛있게 먹는 법을 알았다. 마트에 파는 일회용 곰탕국물로 라면을 끓여서 먹으니까 좀 더 맛있다. 거기에 후추를 쏠쏠 뿌리고 고추를 썰어 넣어서 같이 끓여 먹으면 맛있는 사리곰탕면이 된다.


한 번은 이렇게 밥과 두부를 같이 넣어서 끓였다. 끓이기 전에 봉지를 뜯지 않은 채 면을 잘게 부순다. 그리고 곰탕국물을 끓이고 거기에 사리곰탕면과 밥을 같이 넣어서 끓여서 먹으면 된다. 두부를 매일 먹는데 두부는 식은 채로 먹는 것도 고소한 맛이 많이 나면서 맛있지만 뜨겁게 먹으면 더 맛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뜨겁게 먹지 마라, 차갑게 먹지 마라, 같은 말이 많은데 가끔은 괜찮은 것 같다. 역시 두부는 뜨겁게 먹으니까, 후후 불어 아아 소리를 내며 먹으면 더 맛있다. 땡초 때문에 칼칼한 맛이 있으니 꽤나 맛있는 라면이 된다.

라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라춘쇠라고 들어 봤는지. 라춘쇠 덕분에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라면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 삼양라면을 보면 ‘2005. 10.3까지다’라는 반말로 라면 봉지 겉면에 당당하게 유통기한 날짜가 인쇄되어 있고 그 밑에 라춘쇠라는 글자도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이름인지 잘 몰랐다. 라춘쇠는 이름이다. 라춘쇠 이전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걸 사람들은 몰랐다. 그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후 모든 스낵이나 과자의 봉지 겉면에도 유통기한이 쓰이게 되었다.


라면은 모두가 잘 알겠지만 삼양의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 만들어 냈다. 전쟁 후 꿀꿀이죽을 사람들이 먹었는데 그걸 먹다 보면 그 안에 씹던 껌도 나오고 비닐 쪼가리도 나오고 사과 껍질도 나오고 엉망이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그 모습에 마음 아팠던 전중윤 회장이 삼양라면을 만들어 낸다.


당시에는 라면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의식 속 국수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삶아 먹는, 절차가 있는 면식이었는데 라면은 끓는 물에 넣고 그냥 스프만 넣고 같이 끓이면 된다고 해서 대부분이 믿지 않았다.


그때 삼양 공장에 박정희와 박근혜도 와서 시찰을 하고 시식도 했다. 김종필도 일본에 여러 번 가봤지만 삼양라면의 맛은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밤 전중윤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한 박정희는 술을 마시는 어른들도 먹을 수 있게 고춧가루를 좀 넣으면 안 되겠냐고 해서 전중윤은 개발에 들어간다. 그리고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한 라면도 개발을 하기 시작하여 삼양 라면은 붐을 타게 된다.


그리고 (또) 그때 65년에 롯데 공업에서 라면을 만들려고 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 신춘호였다. 하지만 신격호는 삼양은 이기지 못한다 절대 하지 마라, 라며 단호하게 끊었지만 신춘호는 롯데 공업의 첫 라면 왈순마를 내놓는다. 당시 라면 모델은 강부자. 롯데 공업은 후에 농심 라면을 내놓고 농심으로 바뀌면서 강부자 역시 꾸준하게 모델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롯데 공업의 왈순마는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롯데 과자에서 나오는 별사탕이나 과자를 라면에 막 넣어줬다. 그러다 보니 왈순마가 서서히 알려졌다. 또 후에 삼양은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법원 판결이 나면서 무너지고 농심이 우뚝 서게 된다. 더 후에 우지는 식용이 가능하니 인체에 무해다는 판결이 났지만 이미 삼양은 큰 타격을 받은 후였다.


75년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롯데 공업의 소고기 라면이 나오면서 농심은 이제 명실상부한 라면으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계기가 되는데,,,,,,, 근데 라면 이야기는 왜 해도 해도 끝이 없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때가 되면 하는 잡설이다. 영화나 티브이에 관련된 잡설이다. 늘 그렇듯이.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글이다.

이제 그만 나와도 좋을 시리즈(라고 말하면 팬들은 욕을 하겠지만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마블을 보려면 영화, 드라마까지 전부 섭렵해야 한다. 나도 마블의 팬이라 제시카 존스 시즌 3편을 다 보고, 데어데블도 시즌 3까지, 루크 케이지 시리즈도, 아이언 피스트 시즌 2까지, 그리고 가장 화끈하고 재미있었던 퍼니셔 시즌 2까지 다 봤다) 마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나온다. 예고편이 공개가 되었는데 보면 대사만 영어고 그냥 중국 영화다. 위에 나열한 마블의 드라마 세계관에도 중국의 무술과 음식과 문화는 계속 나온다. 샹치 예고편을 보면 전부 중국 배우들이 나온다.

https://youtu.be/Pj7CadRf82k

샹치의 아버지로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 양조위가 나온다. 이렇게 제작한 이유는 다 알겠지만 마블에서 가장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시장이 중국시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본 편을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예고편만 보면 이전의 마블 영화만큼(아이언 맨이나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 액션이 시원시원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블에서 중국인들을 위해서 샹치를 만들었지만 정작 중국에서 미국의 마블 영화는 상영할 수 없게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사이가 좋지 않고, 마블이라는 아들은 미국이라는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중국이라는 옆집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중국 옆집은 그 가족 이야기는 듣기 싫네 다시 가져가게. 같은 느낌?이다. 노래는 예술이지만 음반은 산업이라 자본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데 영화는 그 이해관계가 더 크고 넓고 깊다.



얼마 전에 일본 드라마 ‘방황하는 칼날’을 봤다. 아마 근래에 들어 최초로 코로나에 대해서 드러나게 만든 드라마가 아닌가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코로나를 언급하고 드라마 속 티브이 속 뉴스에서 코로나로 인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이 이야기는 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영화가 되었다. 나도 소싯적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빠져서 엄청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첫 소설부터 시작해서 백야행은 읽고, 드라마를 보고, 우리나라 영화 버전을 보고 했다. 백야행은 당시에 읽으면서 와 정말 빠져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소설(잘 기억은 안 나지만)은 마지막 앞뒤장 페이지가 붙어 있다. 그래서 죽 읽으면서 범인이 A라고 생각하며 뒷장을 뜯으면 범인은 A이고, 범인이 B라고 생각하며 죽 읽다가 페이지를 뜯으면 범인은 B가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가가 형사와 유가와 라는 물리학자를 탄생시켜 이들이 다른 소설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추리 소설이니까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어지지는 않는다. 하루키나 오쿠다 히데오 같은 소설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지는데 추리소설은 범인을 다 아니까 그게 쉽지 않다. 그 사실을 히가시노 게이고도 알았는지 언젠가부터는 사회문제나 과거로 왔다 갔다 하는 타임리프 형식의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같은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칼날이라는 이 소설이 드라마가 되었는데 한 여중생이 남자아이들에게 납치가 되어 강간당하다가 살해되어서 강물에 던져진다. 그리고 그대로 죽고 만다. 1화에 딸의 아버지가 남자아이들 중 한 명을 잡아서 칼로 다리를 찌르니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웃으며 당신의 딸,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한다. 그 장면은 미치도록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마치 하찮은 뭔가를 밟았다는 듯, 이제 지나갔으니 그만 하라는 것처럼 피를 흘리며 곧 죽을 것을 알지만 이 말을 꼭 해야겠던지 심각하게 훼손되어 죽은 딸의 아버지, 주인공에게 실실 웃으며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나머지 강간 살인범 아이들을 잡으러 다닌다. 이 아이들은 잡혀도 우리나라 촉법소년 법 같은 것으로 일본에서도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형을 받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 아이들은 여자 아이를 유린하며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사들은 방황을 한다. 도대체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진짜 범인이 정말 진짜 범인인지 우물 밑바닥처럼 애매하기만 하다. 강간하여 죽인 소년들을 잡아야 하지만 그 소년들을 직접 잡아서 죽이려는 딸의 아비저를 잡으려는 형사들과 그중 한 형사의 딜레마도 잘 나타난다.


잠시 벗어난 얘기로 배트맨의 아내였던 제니퍼 가너(이 두 사람은 오래전 마블의 영화 데어데블에서 데어데블과 일렉트라로 만났다)가 밴 애플릭과 헤어지고 나서 아이 엠 마더에서 마약 조직에게 눈앞에서 딸과 남편을 잃고 센 언니가 되어 직접 해결에 나선다. 거기서 미약하게 형을 내리는 판사들까지 직접 심판을 한다. 지금도 법이라는 게 대중의 눈높이를 전혀 따라오지 못한다. 어린아이를 때리고 똥을 먹이고 굶겨 죽여도 우리가 생각하는 형량을 판사는 선고하지 않는다.


일본 방황하는 칼날 이야기를 하는 김에 일본 방송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https://youtu.be/PUYAkrJAZBw

호카손 유튜브 영상

일본에는 마츠코 디럭스라는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 있다. 보면 누군지 아는 사람이다. 엄청난 거구에 엄청난 우익으로 여장남자로 유명하다. 마츠코 디럭스는 일본에서도 수입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수필도 쓰고 예능도 하고 방송도 진행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는 방송인인데 이 사람의 특징이 한국의 케이팝을 엄청 싫어한다는 것이다. 몇 해 전에 한 방송에서 케이팝의 찬성과 반대가 붙었다. 반대쪽에 붙은 마츠코 디럭스는 맞은편에 앉은 케이팝 옹호(그 방송을 보면 오래전 우리나라 개그맨인데 그 사람이 아닌가 싶다)하는 곳에 케이팝은 미국을 그저 따라 했고 그게 다다. 그게 뭐냐. 같은 발언을 하면서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억 박 지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굳건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마츠코 디럭스가 최근에는 왜 일본에는 블랙핑크 같은 그룹이 없냐며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들이 높은 곳,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바라보며 연예인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블랙핑크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데 일본에는 전부 오타쿠들의 돈만 바라보고 아이돌이 되는 것 같다는 엄청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방송에 박진영을 영상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저 영상을 보면 박진영에게 반해버린(여러 가지 면으로) 마츠코 디럭스를 볼 수 있다. 엄청나게 굳건한 벽 같은, 연예계에 있어서 우익이던 마츠코 디럭스도 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번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심은경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카하시 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했다. 그 뒤로 심은경과 타카하시 쥬리는 일본과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타카하시 쥬리가 소속된 로켓펀치는 새로운 노래를 발표해서 이 코로나 시기에 홍보 중이고 심은경도 일본의 7인의 비서에서 주연으로 출연을 했다. 나나오를 비롯해서 키무라 후미노, 히로세 아리스 등과 함께.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타국의 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과감함과 거기서 보란 듯이 주연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심은경의 뚝심은 일반인인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은경은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 주연상을 탔을 때 소감으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고 있다.

타카하시 쥬리가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할수록, 심은경이 일본에서 미친 연기를 펼칠수록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계속 있다. 악플을 달려면 시간을 내서 로그인을 해야 하고 일일이 조목조목 타이핑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달리고 마는 선플에 비해 악플은 지속적이다. 무엇보다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다. 이 말은 행복과 불행의 차이와도 같다. 짧고 모호하고 비슷한 행복에 비해 아주 구체적이고 몹시 체계적이며 길이도 긴 불행의 모습과 흡사하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이 몹시 구체적이다.


영화와 노래는 일반인이 접하는 문화의 가장 근접한 거리에 있는 예술이다. 예술에는 당연하지만 경계가 없다. 나이를 초월하고 나라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다. 거기에 일본이니 한국이니 너네 나라니 우리 나라니 같은 악플은 자기 삶을 곰팡이 피게 하는 짓일 뿐이다.



영화나 방송은 인간생활에서 떠날 수 없다. 반대로 인간은 영상과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집에 티브이도 없고 영화도 보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유튜브로 영상을 시청한다. 그리고 여러 정보나 날씨도 폰이라는 화면을 통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더불어 영화나 방송을 떠나서 생활하는 것도 하루 이틀 정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먹거리가 손 앞에 있는데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심정은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닐 때 우리는 깊은 빡침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아주 잠깐 코마 상태가 되어서 나도 모르는 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모든 것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겪는다. 오로지 인간이기에 느끼는 이 빡침의 세계.


조깅을 하다가 멀찍이서 보니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다. 평화로운 유월의 저녁.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몰려오기 전이라 저녁이 되면 아주 좋은 온도다. 격하게 움직이면 덥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좋을 시기와 시간이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우리는 허락받았고 사람들은 허락받은 그 시간을 즐긴다.


강변이라 보통 평일의 이 시간에 운동을 하러 사람들이 나온다. 가족단위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매일 지나치는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과 나는 서로 알지만 알지 못한다. 아는 사이가 아니기에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지만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오기 때문에 매일 스쳐 지나간다. 멀리서 보면 그 사람의 폼이 보이고 점점 다가오는 그 사람의 몸동작을 나는 한 번 쓱 훑는다. 물론 반대편의 그 사람도 그렇게 한다. 그러면서 무언의 연대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서로 운동복을 벗고 다른 곳에서 마주친다면 어? 하며 아는 척을 해도 생판 모르는 이보다는 인사하기가 수월 할 것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땀도 좀 식힐 겸 나는 둑 위에서 아저씨의 낚시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저씨는 다른 낚시하러 나온 아저씨들에 비해 복장이나 장비가 아마추어같이 보였다. 어쩌면 고수일지도 모른다. 고수들이 그저 대나무 낚싯대 하나를 달랑 들고 평소 복장 그대로 와서 휙휙 낚아 올린다. 아저씨의 바로 앞,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나 잡아봐라 하는 양 물 위로 지구의 법칙을 무시하고 마구 튀어 올랐다. 저 정도 거리면 뜰채만 있어도 휙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낚시를 잘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바로 앞에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튀어 오르면 찌를 보고 들어 올리는 낚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역시 낚시를 모르는 나의 생각일 뿐이다. 아저씨는 원투 낚싯대였다. 그러니까 찌 같은 건 없고 미끼를 꼽아서 저 멀리 슝 날려 보내서 물고기가 물면 딸랑이가 딸랑딸랑하면 들어 올리는 낚시를 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바로 앞에서 펄떡펄떡 뛰고 다른 낚시꾼들은 바로바로 잡아서 올리는데 반해 아저씨는 저 멀리 맞은편의 풀숲 앞의 강에 던져 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물고기들은 계속 물 밖으로 튀어 올라서 약 올렸다. 사진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클릭을 하면 그래도 좀 더 크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저씨가 던진 낚싯대가 바닥에 계속 걸렸다. 아저씨는 초보였다. 그래서 바닥에 걸린 낚싯대가 빠지지 않자 직선으로 당기지 않고 휘어지게 잡아당겼다. 그러다가 탁 하며 줄이 끊어졌다. 아저씨는 그런 반복을 몇 번 하더니 결국 빡침이 왔다.


이제 남아있는 바늘이 몇 개 없는 것 같았다. 저렇게 서서 낚시 줄을 다시 다는 작업이 낚시하는 동안의 계속한 일이었다. 구경하는 나는 큭큭하며 재미있었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빡침이 올까. 물고기가 바로 코앞에서 잡아가라고 풀짝 거리는데 낚싯대는 바닥에 빠져서 나오지 않고 힘을 줘서 잡아당기면 줄이 끊어지고, 불행은 왜 늘 동시에 몰려오는 것일까. 아저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 빡침의 소리를 질렀다. 엄마를 따라 나온 강아지가 놀라서 아저씨 뒤에서 앙앙 짖었다. 그러자 엄마가 두부(그냥 내가 지은 이름) 그러지 마, 빨리 가자.라고 하니 휙 엄마를 따라 아저씨를 지나쳤다.


아저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빡침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했다. 으휴 이 놈의 낚싯대, 던지기만 하면 바닥에 꽂히기나 하고, 마음 같아서는 콱 분질러 버리고 싶은 분노가 이만큼 올라올지도 모른다. 생활하면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반응이 없는 물건에 화를 내는 것이다. 분지르고 망가트려봐야 분명 나의 손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아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참아도 열 받고 박살 내도 열 받는다. 나는 아저씨의 그런 모습을 보며 토닥토닥해주고 싶었다. 아마 이 빡침의 시간만큼은 낚시를 권해준 친구를 원망하지 않을까. 빡침의 세계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늘 우리 곁에 있다. 그 세계를 조용하게 건너는 것도, 풍덩 빠지는 것도 본인의 일이라 참 어렵다. 그럼에도 어떻든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산타 모짜렐라!

줄리아를 줄리웨라 부를 때 줄리아가 혼잣말로 산타 모짜렐라 라고 할 때 웃기다. 산타 모짜렐라는 영화 말미에 산토 고르곤졸라로 바뀌고 그때에는 아마도 감동을 영화 속에 나오는 파스타만큼 먹게 된다. 줄리아의 얼굴은 페넬로페 크루저의 애기애기한 어린이 얼굴 같다.

영화는 처음부터 귀여움의 연속이다. 루카 옆에서 주세페 물고기의 입 오물오물거림은 정말 개 귀엽다. 루카는 줄리아를 통해 점점 세상을 알아간다. 줄리아가 태양계의 책을 선물로 주면서 “우주가 이젠 네 것이로다”라고 할 때 루카는 감동한다. 아니 감동을 넘어 놀란다. 그렇게 루카는 우주를 가슴에 지니게 되었으니.

영화를 보면 이탈리안의 습성도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둘이 쌩 내려갈 때 장기 두는 아저씨를 스친다. 그때 장기판을 돌려 버리는데 이런 모습은 하루키의 먼 북소리에 자잘하고 세세하며 재미있게 잘도 써 놨는데 딱 그런 모습이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물에 닿아 괴물이라는 것이 들통난다. 굿바이 줄리아. 줄리아를 떠나며 루카는 알베르토를 찾아간다. 강한척하는 알베르토는 누군가 내미는 손을 간절하게 잡고 싶었던 아직 아이였던 것이다.

다시 경기에 나간다는 루카의 말에 알베르토는 “미친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미쳐가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경기 마지막 비를 맞아서 괴물로 변한 알베르토, 그때 알베르토가 그물에 잡히게 되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루카도 비를 맞아 괴물이 된다. 그리고 알베르토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알베르토가 잡았을 때 눈물이 난다.

루카의 인싸 할머니가 말한다. 끝까지 안 받아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 그렇진 않을 거야. 루카는 이미 좋은 사람 찾는 법을 아는 것 같아.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두가 나를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나를 좋아하는 한 사람, 그리고 내 편인 한 사람만 있으면 이 험하고 험한 세상에서 해볼 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카를 보면서 느낀 건 픽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걸 못하고 커버려서 그냥 우리 하고 싶은 걸 다 하자! 그래! 하며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루카는 보면서 정말 기분 좋았고 애틋했다.

우와 나보다 훨씬 멋지게 사네. 난 아무 데도 못 가는데. 꿈만 꿀 뿐.라고 루카가 초반에 알베르토에게 말한다.  

그 꿈을 꾸는 것이 첫 시작인 것이다. 시작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조금씩 성장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다. 기분 좋은 영화, 감동 먹은 영화. 루카 였다. 산토 고르곤졸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