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 노래를 매주 배캠의 전주연의 빌보드 차트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팝 10을 소개하는 곳에는 말 그대로 해외 팝스타들의 노래만 있었다. 그런데 매주 주말에 라디오를 통해, 그것도 배캠의 빌보드 10위의 차트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방탄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소개를 하는 배철수의 목소리도 좀 더 경쾌하고 힘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이번 퍼미션 두 댄스는 정말 에드 시런의 분위기가 뒤에 깔리는 기분이다. 거기에 방탄이 완벽하게 노래와 춤을 추었다. 마치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곧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올 것만 같아서 사람들이 더 힘을 내는 것 같다. 방탄의 노래는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속의 가사와 노래가 말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팬들은 깊게 빠져든다.


김성호라는 가수가 있는데 김성호의 회상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는 너무 유명하니까 대부분 다 안다. 하지만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느닷없이 방탄 이야기를 하다가 김성호의 회상을 이야기하냐고 하겠지만 요즘은 방탄이들의 노래와 김성호의 노래들을 번갈아가며 듣고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 두 가수의 공통점 이리고 하면 (개인적인 생각에) 대단히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방탄이들의 노래도 시적이고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김성호의 노래들 역시 전부 감성적이다. 대단히 시 같아서 음을 붙이지 않으면 그대로 시다.


김성호의 회상은 제목이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다. 소개를 한다면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라고 소개를 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겨울에 조깅을 하다가 민트 라떼를 늘 사 먹을 때 김성호의 회상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이 노래가 가지는 시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을 듣고 있으면 그녀를 떠나보낸 아쉬운 마음이 그대로 들면서 후회로 점철된 오래전 나의 과오 같은 것으로 인해 그녀를 보낸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잊은 상흔이 다시 새겨지는 기분이다. 김성호의 회상은 김성호가 꼭 경험을 노래로 옮겨 놓은 것 같지만 이 노래는 김성호의 상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김성호의 노래들 제목을 보면 대부분 길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웃는 여잔 다 이뻐’ ‘김성호의 회상’처럼 그 당시의 제목과는 상반되게 길다. 그리고 노래들의 가사를 보면 역시나 시다. 하나하나 전부 예쁘고 애틋하고 감성이 풍부하다. 도대체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내는 김성호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김성호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아마 몇몇은 도대체 김성호라는, 이렇게 노래를 잘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생겨먹었지. 하며 나처럼 생각하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김성호는 자신의 노래도 만들어 불렀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나 서툴렀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의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 노래들이 바로


다섯 손가락의 풍선, 을 첫 시작으로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박준하의 바다를 사랑한 소년 등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만들었다. 김성호가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의 곡은 바로 고 박성신의 ‘한 번만 더’였다. 박성신은 노래 부르는 것을 타고났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의 곡이 아니라도 누구의 곡을 받았더라도 잘 불렀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박성신은 안타깝게 14년에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이렇게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진 김성호는 의외로? 밴드로 출발을 했다. 배철수처럼 전기기타와 드럼의 소리에 빠져 있던 학생과 청년 시절. 레드 재플린 같은 밴드를 보며 자란 김성호는 자신의 형이 써 놓은 시에 음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되었다.


김성호가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드디어 가수 신유와 소찬휘가 김성호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방송이 전주 엠비시를 타고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간 몰랐던 김성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신유와 소찬휘가 김성호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른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버린 김성호가 다시 한번 ‘김성호의 회상(1988)’을 부르는데(영상 10:08) 목소리가 예전의 목소리 그대로다. 감상을 해보면 딱딱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좋은 노래들로 하여금 힘을 얻고 신세를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래가 없는 세상을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빠른 노래를 들으며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이런 세상이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노래의 소중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김성호의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https://youtu.be/tbPTyK7KSow 

따뜻하고 예쁜 시 한 편을 듣는 기분

https://youtu.be/zKSEfnw8t5A

김성호가 작곡한 노래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김성호의 회상

웃는 여잔 다 이뻐

박영미 -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김지연 - 찬 바람이 불면

박성신 - 한 번만 더

황규영 - 나는 문제 없어

다섯손가락 - 풍선

오장박 - 내일이 찾아오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바다 2022-04-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다를 사랑한 소년‘은 진시몬 가수가 불렀고 박준하 가수가 ‘너를 처음 만난 그때‘ 불렀어요
 

좋은 냄새 중에는 시골 냄새가 있다. 시골 냄새라고 한다면 시골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고, 시골에는 할머니가 있다. 그래서 시골 냄새라고 하면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 냄새, 시골집에서 나던 냄새, 시골의 개울가에서 나는 냄새를 통틀어 시골 냄새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시골이라는 개념은 외가밖에 없다. 친가와는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되었고 대부분 돌아가셔서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스쳐도 서로 모를 정도다. 그에 비해 외가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이모의 장례식 때문에 다 같이 모이기도 했다. 내 기억 속의 시골 냄새는 불영 계곡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솥 냄새, 알이 작은 감자가 익어가는 냄새, 맑은 개울에서 나는 비린내,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강하게 났던 나무 냄새, 그리고 외할머니와 큰 이모의 체취가 묻어있는 외가의 냄새다.


논과 논 사이를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떠 있는 개구리밥, 그 밑에서 노니는 송사리들을 지나 개울물로 내려가면 물이 맑아 가재도 잡을 수 있었다. 개울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으려면 동네 슈퍼에서 낚시 줄과 바늘만 구입해서 긴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서 미끼를 끼워서 물에 던지면 된다. 미끼는 집적 잡아야 한다. 개울물에 잠긴 좀 큰 돌 같은 것을 들면 꾸물꾸물 장구아비처럼 생긴 벌레가 있는데 그걸 잡아서 바늘에 끼워서 낚시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그 벌레가 몹시 징그러워 손에 만지지가 무척 힘들지만 일단 한 번 바늘에 끼우게 되면 바위에 붙어 있는 그 벌레를 잡는 재미도 있다. 벌레를 검색을 해도 이름을 모르니까 찾을 수가 없네. 그래서 바늘에 끼워서 물에 던지면 고기들이 요래 오래 와서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되고 그냥 수영복을 입고 아예 물(이 맑아서 잘 보이니까)에 풍덩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된다. 그래서 미끼를 물면 잡아서 끌어올리면 된다. 그러면 피라미들을 낚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피라미들을 잡아서 개울가에서 매운탕을 직접 끓여 먹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게 놀다가 외가에 들어가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국수를 비벼 주기도 했고 시래기 무침을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기도 했다.


시래기 무침은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큰 이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시래기 무침을 전혀 먹지 못하다가 근래에 먹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서 밥에 비벼서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지쳐있었다는 걸 알았다. 시래기는 사 계절 중에 겨울에 어울린다. 시래기 된장국도 뜨근하게 먹으면 언 몸이 녹아내리고 시래기 국수도 겨울에 먹는 별미다. 어릴 때 살던 곳에서 엄마를 따라갔던 전통 시장에 연기를 폴폴 나는 작은 국숫집이 있는데 육개장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푹 삶아서 거기에 국수사리를 넣어서 후루룩 먹는다. 양도 많고 국물을 우려내는데 삼천 원이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시장을 여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시래기 국수를 호로록 먹는다. 고등학교 때는 사진 부여서 주로 전통시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딱히 전통 시장의 치열한 삶을 담아야 한다는 신념보다는 치열한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담아가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일요일 오전에 사진을 찍다가 허기가 지면 시래기 국숫집에 들어가서 시장 사람들 틈에 끼어 국수를 호로록 먹었다.


시래기는 그만큼 서민에 가까운 음식이다. 시래기 무침은 또 주로 여름에 많이 먹었다. 그 이유는 여름에 외가에 놀러 가서 개울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이렇게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었다. 어릴 때 시래기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먹다 보면 맛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 나에게 있어 시래기 무침 같은 음식은 추억과 기억으로 점철된 추상적인 음식 이외에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더 기분 좋은 건 많이 씹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음식은 소화 때문에 그만큼 씹기 싫어도 많이 씹어야 하는데 시래기 무침은 그렇게까지 많이, 우걱우걱 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좋다.


추억으로도 맛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래기 무침이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 먹기 싫은 시래기 무침. 이게 여름에 땀을 쭉 흘리고 난 후 샤워를 하고 나서 밥에 슥삭슥삭 비벼 먹는 맛은 왜 그리도 좋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몸은 늙어가도 머리는 낡아지지 말자. 그렇게 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날 밥상 위에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왔는데 다리가 하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글을 적어 보았다.


죽창이 오는가 싶더니

장갑을 낀 손으로 더듬더듬 거리는가 싶더니

문어는 제 살던 곳을 버리고 더 깊은 곳으로

바위 사이를 파고든다

꿈틀거리며 비집고 들어가 몸을 말고

뱃속의 새끼를 움켜쥔다

해수의 영향으로 차가워진 바다가

바위 사이를 스며든다

문어는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몸은 더 단단하게 말고 가만히 가만히

기민하게 새끼들을 부여잡는다

바다는 더 차갑게 변한 얼굴로 문어를 덮는다

꾹꾹 저며오는 지나간 파랑

문어는 뱃속의 새끼들을 생각한다

움직일 수 없는 문어는 자신의 다리 하나를 떼서 먹는다

바뀌는 세상은 문어를 받아들인다

찬 바다가 물러났을 때 문어는 파란 하늘을 본다

다리 하나 없는 채 밥상에 오른다



문어는 꽤나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는 것만큼 모성애도 강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돌문어가 아주 맛있다. 근데 사람들이 하도 건져내니까 얕은 바다에서 사는 문어는 점점 깊은 바닷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기묘 한 건 문어는 바다의 수온이 달라지면 몸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수온에 적응이 필요하다.


그때 알을 품고 있으면 알에게 영양분을 줘야 하는데 문어는 수온의 변화 때문에 움직이지 못해 알에게 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 문어는 지 새끼들이 배고파하지 않기 위해 자기 다리를 뜯어먹으며 새끼들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그래서 가끔 다리가 하나 없는 문어가 밥상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문어는 꿈이 있다. 비틀스의 링고 스타도 문어의 정원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다. 문어의 꿈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안예은의 문어의 꿈을 들어보면 문어는 꿈속에서 무엇이든 된다. 문어는 잠이 들고 나서 비로소 여행을 한다. 초록색 문어가 되기도 하고 빨간색 문어가 되기도 하고 줄무늬 문어가 되기도 한다. 오색찬란한 문어일 때는 밤하늘을 마음껏 날아간다.


문어가 꿈을 꾸는 건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너무 춥고 너무 어두워서 때로는 무서워서 감당이 되지 않는다. 깊은 바닷속은 우울하다. 그래서 문어는 매일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문어는 외롭지 않으니까. 문어는 하찮지 않은데, 문어는 자신이 하찮다고 느낀다. 하지만 문어야 그럴 필요가 없어. 이 세상에 하찮은 건 하나도 없어.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꾼다.


https://youtu.be/8-mMGu-Spm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끔 서정시가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참 별거 아닌데 거기서 내 마음속 아주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무엇인가 때문에 저릿저릿하게 된다. 1900년대에 태어나 시인으로 살다가 1970년대에 죽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가 그렇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의 이 시에서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융해되어 사라지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점점 이상해지더니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슬프면서 아름답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당시 무엇 때문에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무게에 짓눌려있다가 시를 읽고 울컥했을지도 모른다.


김광섭 시인은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그때 이 시를 썼다. 아마 코마 상태에서 그리운 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지나 유심초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유심초의 노래를 들어보면 운율 때문에 가사가 약간 바뀐 부분이 있다. 아주 신나게 흘러가지만 이미 연약한 부분이 타격을 받은 내 마음은 신나는 리듬에도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김광섭 시인의 친구였던 김환기 화백도 이 시를 읽고 그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 제목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이다. 점점 그리워지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김환기 화백은 점을 그렸다. 간절함이 가득해지면 점은 짙음을 더해가고 깊어진다. 김환기 화백도 몸이 너무 아팠다. 결국 몸이 너무 아파서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김환기는 수술을 받는다. 1974년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회복 중에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 불명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허무하게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은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세우고 2004년에 죽음 후 남편이 묻힌 곳 옆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시인 이상(김해경)의 아내였다.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김광섭의 ‘저녁에’를 보고 있으면 그 깊은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예술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뭔가를 느끼게 된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오래전 김광섭 시인과 김환기 화백이 본 그 수많은 별들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이 세계는 이렇게 순환하여 우리를 이어준다. 이렇게나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별이 되어 다시 만나 꽃들 피운다.


https://youtu.be/EBQzMrr3fBw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기력


보통 무기력하면 입맛이 없다는데 나는 무기력이 와서 등에 착 달라붙어도 밥맛은 좋기만 하다. 입맛이라는 게 떨어지지가 않는다. 무기력을 느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말 그대로 무기력이다. 기력이 없다. 의욕도 없고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 우물 밑바닥으로 꺼지고 싶다. 당연히 밥맛도 떨어져야 하는데 모든 것이 무기력의 조건에 다 들어가도 밥맛 만은 좋다. 무기력이 찾아오면 얼씨구 하며 맛있는 걸 찾아 먹는다.


예전에도 친구들과 삼겹살을 와구와구 먹으면서 나 무기력이야,라고 하면 친구들이 응, 그래. 한 마디 대꾸해주고 끝이다. 나에게는 옛날부터 무기력과 입맛의 부등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경우 무기력은 계절을 따라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나 초여름에서 본격적인 폭염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쯤에 온다. 하루나 이틀 정도 굉장하다. 무기력에 사로 잡히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못한다. 봄에 느닷없이 닥치는 무기력에서도 비빔밥으로 해결했다.


사실 봄에 오는 무기력은 무기력이라기보다 무력감이다. 무기력과 무력감은 엇비슷한데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무기력은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라고 나와 있고, 무력감은 '스스로 힘이 없음을 알았을 때 드는 허탈하고 맥 빠진 듯한 느낌'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무기력과 무력감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봄에 찾아오는 무기력은 무력감에 가깝다. 말 그대로 허탈하고 맥 빠진 듯한 그런 기운이 벚꽃과 함께 온 몸으로 쏟아진다.


그에 비해 여름에서 본격적은 여름으로 가는 이 길목의 하루 이틀 정도 오는 건 무기력이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녔다면 열두 번도 더 잘렸을 것이다. 댕강댕강 잘렸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기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짱 박혀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무기력하게 있어봐야 부장님의 찢어진 눈에서 쏘는 레이저를 받거나, 비빔국수를 먹고 믹스커피를 마신 후 한 모금의 흡연을 한 그 무시무시한 입으로 나에게 욕을 왕창 날렸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화장실에 숨어서 무기력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짱 박히는 게 더 잘릴 이유네.


근래에도 하루 이틀 정도 무기력에 시달렸다. 조깅을 할 때 무기력은 큰 걸림돌이다. 보통 달리는 것처럼 달리면 금방 숨이 차고 몸이 농성을 한다. 다리도 무거워서 전혀 평소처럼 달리지 못한다. 그럴 때 욕심을 내고 평소처럼 달리면 심장에 무리가 갈지도 모른다. 엄청난 과부하가 느껴지는데 그럴 땐 걷는 수밖에 없다. 보통 무기력은 계절을 탈 때 동반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을을 타고, 그때 무기력을 느끼기도 한다는데 나는 봄이거나 여름에서 좀 더 여름으로 넘어가는 기묘한 시기에 계절을 타고 무기력을 느낀다.


무기력을 좀 더 다독이기 위해 며칠 가자미 구이를 먹었다. 너무 입맛 돈다. 미칠 지경이다. 생선구이의 묘미는 잘 구워진 등을 젓가락으로 죽 떠서 입 안 가득 먹는 것이다. 그리고 맥주나 와인을 곁들어서 홀짝인다. 정말 꿀맛이다. 가자미 구이는 언제나 맛있지만 무기력할 때 먹으면 좋은 치유제가 된다. 보통은 가만히 있으면 무기력증은 지나간다. 무기력이 심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내가 매년, 매 시기에 느끼는 무기력은 일종의 희구 같은 것이다. 살아있다고 보내는 신호.


그래서 무기력이 오면 무기력을 떨쳐 버리려 하기보다 내가 살아 있으니 이런 신호가 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혼자서 축하를 하는 것이다.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이런 기묘한 감정이 때가 되면 찾아와 주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보통 브런치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치부나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뱉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나도 결심을 하고, 입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물고 예전에는 브런치에 그런 글을 몇 번 적었다. 이렇게 매일 글을 적게 된 데는 불안 때문이고 그 불안이 나를 텍스트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시신경이 조금 망가졌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망가진 시신경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점점 망가져간다. 확대되고 왜곡될 뿐이지 축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 잠들기 직전까지 매일, 시야가 보이지 않게 되는 불안에 산다. 시야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시야가 소멸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은 마음을 둘 곳을 없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이의 느닷없는 죽음(이게 나의 불안을 더 키웠다) 그리고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고 하던 녀석의 갑작스러운 자살시도는 나를 굉장한 충격에 빠트렸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처럼 태어난 김에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생활규칙을 정하고 그 반복을 매일 이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매일 요만큼 분량의 소설을 적는 것과 조깅이 있다.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매일 준다. 불안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내 자아가 나의 고민이며 늘 나의 자아와 싸우게 된다. 자아는 불안을 키우고 그 불안은 연쇄를 일으킨다. 중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안과 늘 타협을 하고 고민을 한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알 수 없는 미래의 크고 작은 불안에 대한 생각은 매일 보는 생리작용과 같다.


그런 의미로 무기력이 오면 환영하지는 않지만 빨리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살아있지 않다면 이 무기력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기력이 떨어지지 않는 한 가자미 구이를 실컷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은 추억에 기인한다. 그 추억 때문에 그 음식이 맛있다. 살아있는 동안 크고 작은 불안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료처럼 여기고 평생 토닥이며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리고 맛있는 걸 먹자. 하루키는 좋은데 소확행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매일 맛있는 걸 밥상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다.


한 곳에서 15년을 있었더니 그때 왔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와서, 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같은 말 하는데 이 자리에서 변화하되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도록 내 개인적으로는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1-07-15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린 상태여서 그런지 가자미보다 너무 날렵한 유선형의 다른 생선처럼 보이네요.ㅎ

교관 2021-07-15 12:57   좋아요 0 | URL
맛있어요 ㅎㅎ. 맛있으면 됐죠 :) 더운데 시원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