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곰탕.


오늘은 중복.

이번 초복에는 또 얼마나 많은 닭이 한국인의 입으로 들어갔을까.

중복인 오늘 닭곰탕을 먹을 테지만 초복에도 닭곰탕을 먹었다.

아마, 분명 말복에도 닭곰탕을 먹을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작년 이전에도 그랬으니 올해도 말복까지 죽 그러지 싶다.


초복 날, 오후 다섯 시 경에 봐버린 라면 먹방 때문에 저녁에 집에 가면 라면을 끓여 먹으리라, 라면을 이렇게 끓여서 그 안에 잔뜩 삶아 놓은 삶은 계란도 넣으리라, 밥도 잔뜩 말아서 먹으리라. 매운 라면을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니 내 코끝에 땀까지 맺혔다. 오늘은 라면이다! 다짐을 하며 집으로 왔는데 닭곰탕을 먹었다.


종목이 바뀌었을 뿐 넣어 먹을 수 있는 밥도 말아먹고 김치도 죽죽 찢어서 같이 먹고 깍두기도 올려서 야무지게 먹었다. 하지만 계란을 먹지 않았다. 닭과 계란을 한꺼번에 먹는다는 게 뭔가가 뭔가여서, 아무튼 그렇다.


닭곰탕은 아주 쉬운 요리라서 자주 해 먹는다. 그저 닭 한 마리 구입해서 마늘을 잔뜩, 아주 잔뜩 넣고 끓이면 끝이다. 닭고기는 죽죽 찢어서 같이 넣어서 먹으면 된다. 식당에서 파는 닭곰탕은 노계를 사용한다고 한다. 질긴 맛이 좋아서 그 맛을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여름 방학에 외가에 놀러 가면 하루는 닭을 삶아서 먹게 된다. 토종닭을 외숙모가 잡아서 백숙을 해주었는데 먹다 보면 털도 씹혔다. 무엇보다 질겼다. 질겼다기보다 평소에 먹는 삼계탕 같지 않았다. 많이 씹어야 했다. 그래서 어릴 때 먹는 질긴 닭은 맛이 없어야 하지만 외가가 있는 불영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면 아주 맛있다.


기름에 빠진 닭은 어쩐지 (몸에 미안한) 죄책감이 드는데 물에 빠진 닭은 또 그렇지 않다. 죄책감 따위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밥도 말아먹고, 국수를 말아서 먹기도 한다. 하지만 칼로리가 아주 높은 음식이 삼계탕이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단어 고칼로리의 음식인 것이다. 삼계탕이 맛있어서 매일 한 끼를 삼계탕으로 식사를 하게 되면 아마도 몇 달 뒤에 양말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걸 생각하면 늘 따라오는 말이 왜 맛있는 건 다 살이 찌고 몸에 안 좋은가, 이다. 도대체 이 세상 맛있는 것은 다 몸을 버리는 음식이다. 짜장면을 많이 먹으면 피가 맑아지고 탕수육을 하루에 몇 개씩 꼬박 먹으면 성기능이 향상되고, 반면에 브로콜리 많이 먹으면 통풍이 오고 막 그래야 정상이 아닌가. 왜, 어째서 맛있는 음식은 죄다 몸에 안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을까.


오죽하면 인간은 고기를 피해 고기 맛이 나는 콩고기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할까. 그냥 고기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으면 안 될까. 굳이 스님들이 먹는 식단으로 된 요리를 찾아가서 먹고 콩고기로 고기 대신 몸을 채워야 할까. 하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궁리를 하게 되고 해답에 근접하게 되었다. 그러니 잘못됐다고만 할 수도 없다. 미국은 비만이 국가적 재난으로 여기고 관리를 한다고 하고, 한국도 이미 소아 비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휴양지로 잘 알려진 섬나라 ‘피지’의 사람들도 고기를 좋아한다. 삼겹살처럼 고기에 기름이 붙어 있는 걸 주식으로 먹는데 돼지비계 두툼한 부분을 삶아서 어릴 때부터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피지 사람들 대부분이 관리 대상이라고 한다. 문제는 생각하기를 싫어해서 생산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려 한다. 맛있는 돼지고기 비계가 사람들의 의식구조까지 바꿔 놓았다나 어쨌다나.


그러니 삼계탕이 맛있다고 해서 많이 먹지는 말라는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열변을 토하냐면 3일 동안 아침 밤낮으로 닭을 세 마리를 삶아 먹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게 무서운 날이 되었다. 옛날처럼 호환마마가 무서운 날이 좋은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보면 그 당시 학교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고 여름에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했을 때 좀 사는 집에서는 시원한 보리차에 설탕을 넣어서 대접했다. 귀한 것이었다. 담임은 시원한 설탕물 한 잔에 큰 대접받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 때가 있었다.


아마 요즘 설탕을 잔뜩 넣은 물을 준다면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시대라든가 시기가 그렇게 흘러왔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말 그대로 맛이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이다. 허기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그만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게 된다. 노가다를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나면 허기가 강하게 오고 곡기가 당긴다. 그때 식사를 하면 숟가락을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우리는 더없이 나약해지고 먹으면서 점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세상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굳이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뫼’스러운 세상이다. 이 ‘뫼’를 뫼가 아니라 어쩐지 ‘뭬’라고 발음해야 할 것 같은 세상. 오늘은 중복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삼계탕 집 앞에 줄이 서 있을까.


이렇게 덥고 뭬 같은 세상에 어울리는 노래가 뭐가 있을까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UQn-7GCh2r0


토토의 아프리카를 라이브로 들어보자

노래 부르기 전 도입부의 그 연주는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이 더운 날 토토의 이 멋진 라이브를 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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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23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Toto의 아프리카! 딱 좋은 선곡이네요. 대한민국 닭 소비량으로는 세계 최상위라도, 조리법은 많지 않다는 게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치킨로드??] [치킨 인류??] 그런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교관 2021-07-24 12:43   좋아요 0 | URL
토토 앨범 정말 좋아요 ㅎㅎ. 엘피로도 있어서 고등학교 때 쥐뿔도 모르면서 토토 앨범을 엄청 들었거든요. 시원한 곳에서 치킨을 뜯으며 토토의 앨범을 ㅎㅎ
 

조깅을 하다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 같은 어머님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는 건 동네 간섭을 다 하는 스타일의 어머님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몹시 친근하다. 지나가면 다가와서 어디서 왔느냐, 어디서 묵느냐, 오늘 뭘 먹었느냐, 누구랑 왔느냐, 얼마 동안 있을 예정이냐,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친근하지만 꼭 그 친근함이 친절과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재미있고 친근하며 친절하고 순박한 이탈리아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탈리아 사람들 같은 어머님들을 조깅을 하다가 가끔 만나게 된다. 조깅을 하면 시작점에서 도착지점까지 계속 달리는 경우는 없다. 반환점까지는 죽 달려가서 거기서는 걷거나 천천히 달려서 도착지점까지 온다. 한 시간 달리고, 한 시간 걷는 정도다. 달려서 반환점까지 가서 올 때는 걸어서 오는데 어째서 시간이 비슷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조깅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런 말이 나온다.


계란으로 치면 타원형의 코스를 지정해 놓고 시작점에서 출발해서 타원형을 지나 반환점까지 달린다. 그리고 걸어서 올 때는 직선으로 걸어서 오면 계란의 시작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설명이 똥 같아서 그림으로 대체함.

또 어느 날은 컨디션의 문제나, 무기력 같은 것 때문에 조깅을 하다 중간중간 몸을 푸는 곳에서 근력 운동을 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하루에 플랭크 1분씩 한 달을 하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같은 영상이 많은데 나는 몇 달을 해도 큰 변화가 없다. 유튜브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운동 유튜버들은 하루에 십분만으로 몸이 이렇게 바뀐다고 하지만 지들은 몇 시간씩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운동을 한다. 그러니 1분씩 따라해도 변화가 없다. 확대된 의미로 조깅을 10년 넘게 거의 매일 하고 있지만 역시 큰 변화는 없다. 단지 하지 않으면 그냥 살이 찐다. 그 정도다. 아무래도 한 달 안에 뭔가를 변화하기에는 나의 몸뚱이는 엉망인 것이다.


몸을 푸는 곳에는 벤치가 있고 그곳에서 트라이셉 딥을 여러 파트를 하고 있으면 자주 나오는 어머니들이 옆으로 쓱 와서 내가 하는 운동을 따라 한다. 어머님들의 나이는 보통 70 대거나 60대 후반이고 그냥 따라 하지 않고 입으로 아구구구, 나 오래된 자동차의 시동을 걸 때 나는 소리 튀이이이이히 같은 소리를 낸다. 그러다가 한 개를 못 하면 아하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는다.


웃음은 이미 나에게 할 말이 있으니 대화를 바란다, 같은 신호다. 어김없이 어디까지 달려서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옆의 다른 어머님이 양정(지역명으로, 근력 운동을 하는 이곳에서 자동차로도 거의 30분은 넘게 가야 하는 곳)에서 여게 까지 뛰어 왔능교?라고 다짜고짜 말한다. 또 대답을 하려고 하면 그 옆의 또 다른 어머님이 아따 먼 거린데 대단할시더.라고 말한다. 어머님들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해버린다.


그 뒤로도 나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지만 그건 대화라기보다 이탈리아인들처럼 그저 말이 하고 싶으니 너는 그냥 들어봐, 같은 뉘앙스로 말을 한다. 처음 질문을 한 어머님이 3명의 어머님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고 대장으로 보였다. 자신의 아들에게는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 하나를 꼭 먹인다며, 그걸 먹이고 나면 오메가 3을 매일 두 알씩 먹이는데 나에게 어떤 비타민을 챙겨 먹는지 계란 프라이는 몇 개 먹는지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어김없이 옆에서 서열 2위의 어머님이 서열 1위의 어머님에게 “형님, 있잖능교, 오메가 3은 저녁에, 밤에 자기 전에 묵는 게 좋심더”라고 말한다. 와이고 맞나, 내는 몰랐는데 같은 말들이 오고 가고 또 어머님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아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그리고 동시에 표정을 일그러트려가며 근력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래서 나는 계란 프라이는 두 개 먹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말을 받아서 또 어머님들 세 분이서 그래 맞데이 두 개는 묵어 줘야지,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이 어머니들은 내가 벤치에서 몸을 푸는 동안 세 명이 일렬로 앉아서 양발의 발가락을 톡톡 부딪힌다. 세 명이 동시에 그 리듬으로 하는 모습이 꼭 일렬로 서서 구애를 하는 붉은 머리 마나킨을 보는 것 같다. 어머님들은 나에게 말을 시키고 일단 대답이 나오기 전에 정해진 답을 어머니들끼리 말하고 와하하하하며 한 바탕 웃고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막 흘러간다. 그러던 중에 또 다른 어머님이 다가왔다. 그랬더니 서열 1위의 어머니가 코로나 때문에 지금 (나를 포함해서) 4명 이상 모이면 안 되니까 너는 저기 멀리 떨어져 앉거라.라고 한다. 그러면 맨 나중에 온 어머님이 알겠심더.라고 하며 저 멀리 동 떨어져 앉는다.


그 모습에 나는 그만 일어나서 그곳을 떠나 다시 달리러 가려했다. 나에게 이제 달리능교?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고 내가 어디까지 간다고 하니 어머니 세 명이서 그 도착지점에 대해서 또 이야기를 한다. 거기까지 멀다, 도착하면 어두워지겠네, 조깅 끝나면 맛있는 걸로 밥 묵으라,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어머님들은 수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저 자신과 상관은 없는, 나쁜 사람으로 어떻게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에 다니는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님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하지 못하고, 묻기 힘든 공인인증서 같은 것을 물으러 은행에 오고 그걸 해결해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런 어머님들을 나무랄 수 없는 게 어차피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위도 나의 이야기를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들이 쓱 다가와서 질문을 하면 적극적으로 대답을 한다. 어머님들 덕분에 나도 이렇게 글감이 하나 생긴 것이다.


어머님들을 거쳐 조깅하다 만난 풍경들이다.

여기를 말하자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이다. 강도 두 줄기의 강과 바다가 만난다. 그래서 물고기가 많아서 낚시터를 시에서 만들어 주었다. 낚시터 이외에서 낚시를 하면 벌금을 문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지만 낚시를 하는 아버님들이 막걸리와 먹을 것들을 먹고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시에서 제대로 관리를 해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계도 위원을 두어 야광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지만 대부분 일을 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와 사람. 이쪽으로 오는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서 오는 비행기라 비교적 가깝게 비행기의 비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보다 더 재미있는 건 강물 속에서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물고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연주를 하듯 여러 마리의 물고기가 이맘때는 물 위로 튀어 오른다. 여러 마리의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이 어떤 연주와 어울리냐 하면 드뷔시의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같다. 아닌지 맞는지 한 번 들어보자. 조성진 버전의 골리웍이다.

https://youtu.be/p5Rhv1E3tEM

사진으로는 그렇게 덥게 보이지 않지만 더위 때문인지 저 녀석 불러도 그저 저 포즈로 멍 때리고 있었음. 야!라고 아무리 불러도 ‘나는 멍 때리련다. 그러니 너는 짖어라’라는 개무시.

하늘이 갈라진 날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죽 달리는 기분은 죽인다. 방해물이 없기 때문에 고개를 약간 들고 하늘을 보며 달리는 그 멋진 기분을 요즘은 느낄 수 있다.

하늘이 입체각으로 구름을 그려 놓은 날이었다. 손을 뻗으면 가까이 있는 구름은 닿을 것만 같다. 구름이 마치 자기 복제를 해서 하늘에 떠 가는 것처럼 보인다.

위의 입체각 구름 사진을 찍는 후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사진이다. 이글거리던 여름의 해가 힘이 빠져 빛의 투명함이 조금 줄어든다. 서쪽 능선으로 사라지기 직전이다. 구름이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 같다. 이렇게 이탈리아 사람 같은 어머님들을 거쳐 여기까지 달리고 나면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루를 내 방식대로 기록을 한다. 그렇게 하면 기분으로는 하루가 온전한 나의 것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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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7-23 12:45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
 

앞서 공벌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공벌레에 관한 이야기다. 왜 공벌레는 2, 정도가 되겠다. 하루키의 에세이에도 개미와 도마뱀과 곤충에 관한 에피소드를 잡지에 싣고 후에 나온 잡지에 또 후속으로 개미와 도마뱀과 송충이에 관해서 2편 격으로 잡지에 실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나도 공벌레에 관해서 한 번 더 적게 되었다.

지난번 공벌레에 관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정리해 놓은 게 한 일주일 정도 전이었는데(그때 연일 비가 왔고 비가 그치고 공벌레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아파트 현관에 공벌레가 화단에 엄청나게 기어 나와서 살충제를 뿌린다는 거였다. 그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벌레가 작정을 하고 땅 속에서 전부 땅 위로 올라오는구나. 공벌레라는 건 사실 인간이 살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벌레가 화단에서 나와서 도로를 다니던, 인기척 때문에 몸을 말아서 공처럼 가만히 있던 인간은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바쁘고 빨리빨리 해야 하고, 빨리 되는 곳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지렁이만큼 천천히 움직이는 이 작은 공벌레에 관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공벌레가 화단에서 단체로 기어 나오게 되었다. 그러면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번 단편 소설 ‘런던 팝’에서도 올린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 잠자리도 한 두 마리 일 때는 인간이 잠자리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자리는 잠자리니까. 잠자리일 뿐이니까. 사마귀도 아니고 말벌도 아니니까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잠자리 수백 마리가 머리 위에서 떠 있으면 그건 대단한 공포다. 특히 붕 하는 잠자리의 날갯짓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들리면 두렵다. 잠자리들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아도 인간은 그만 무서움에 다리의 힘이 풀린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으면 인간은 겁을 먹게 된다. 공벌레가 화단 밑의 땅속이 오염이 되어서 아아 못 살겠군, 하며 전부 땅 위로 올라와서 꾸물꾸물 거리면 인간들은 또 겁을 먹고 살충제를 발포한다. 그러니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주의하라고 했다.


예전부터 영화계는 크리처 물이나 괴수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근래에 그래픽이 훨씬 좋아진 후에는 어쩐지 괴수물이 줄어든 것 같지만 오래전, 6, 70년 대에는 특촬물로 괴수물이 많이 나왔다. 공벌레가 오염된 토양을 먹고 점점 덩치가 커지는 것이다. 점점 부풀어 올라 하루 잠을 자고 났더니 공벌레가 저만큼 커진 것이다. 몸을 말고 지나가면 남대문도, 63 빌딩도 전부 다 박살이 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도망 다니고 아비규환이다. 공벌레는 굴러 굴러 모든 것을 납작하게 만든다.


또 한쪽에서는 연구목적으로 성범죄자들의 성기에 곰팡이 포자를 심어놨는데 공벌레가 몸속으로 기어 들어가 곰팡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사람도 같이 갉아먹는다. 공벌레는 사람의 뼈를 제외하고 말랑말랑한 부분부터 갉아먹으며 점점 부피가 커져간다. 곰팡이 포자는 그만 하늘의 한 곳에서 분포되어서 사람들에게 전부 옮겨 가서 붙어버리고 공벌레들은 곰팡이 포자의 냄새를 맡고 사람들의 몸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점점 갉아먹으며 몸집이 커진다.


그래서 오염으로 커진 공벌레와 곰팡이 포자를 먹고 커진 공벌레가 인간을 사이에 두고 결투를 한다. 그 사이에서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 놓은 문명이 파괴가 된다. 사람의 성향이나 신체의 세포에 따라서 공벌레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부풀어 오르고,,, 까지 상상하다 보면 밑도 끝도 없어진다.


합성을 한 5분 만에 하느라 저 모양이지만 배경은 60년대에 나온 크리처 영화 ‘대괴수 용가리’의 장면이다. 일본의 고지라 팀에서 용가리의 특수촬영을 도맡아서 했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의 20대 초반의 이순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이런 특촬물의 영화가 왕성하게 만들어졌다.


요즘은, 공벌레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수천 마리의 공벌레가 거대 괴수가 되는 영화보다는 밥그릇에 밥 대신 들어 있어서 그걸 먹는 장면이 있는 영화가 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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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잘 때 에어컨을 켜고 자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여름에도 잠을 잘 때에는 에어컨을 켜고 잠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다. 보통 6월이 되면 바닷가도 여름의 옷을 입는다. (참고로, 처음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저의 집 앞은 바닷가입니다) 그럼 그때부터 거의 매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바닷가에 나가 홀라당 벗고 오전에 잠시 책을 읽으며 살을 태운다. 그러다 보면 무더위에 몸이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조금씩 이글거리는 해에 몸을 내주고 살갗을 태운다. 살이 그러데이션으로 검게 물들어 갈수록 땡볕에 있어도 못 견딜 지경은 아니다. 아 덥군, 하는 정도지, 아아 미치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살갗이 진열장의 나무색과 흡사해지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다지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 카페에 앉아 있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실내온도가 26도 밑이면 좀 추운 것이다. 요즘도 내가 일하는 곳의 실내 온도는 26, 27도 정도에 늘 맞춰져 있다. 거기에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꽤 시원하다.


생각해보면 해외 휴양지의 현지인들은 그렇게 더위를 타지 않는다. 에어컨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 정도로 폭염이나 무더위에 몸이 적응을 한 것이다. 요 며칠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허덕이며 죽으려고 하는데 바닷가도 가까우니 가서 썬텐이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음은 매일 하는 조깅이다. 폭염이면 운동을 하지 마라, 심한 조깅은 큰일이 난다, 같은 뉴스가 있지만 매년 여름이면 늘 폭염이었고 늘 더웠다. 더운 날일수록 밖으로 나가 달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의 오후 3시에 조깅을 하러 나가면 나처럼 미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전부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움직이며 저기서 여기를 지나 저기로 신나게 달려간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복장을 잘 갖춰 입고 열심히,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다부진 표정으로(사실 마스크와 고글 같은 것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페달을 밟는다.


요즘 같은 날 조깅을 하면 엄청난 땀이 흐른다. 무릎에서도 땀이 비어져 나오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땀이다. 일 년 중에 이렇게 엄청난 땀을 흘릴 수 있는 날도 여름뿐이니 여름을 즐기면 된다. 그렇게 지정해 놓은 코스까지 달려가면 땀이 온몸을 급습하는데 그때부터 되돌아올 때 걸어오다 보면 덥덥한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시원하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덥덥한 바람에 불쾌지수가 오를지 몰라도 조깅을 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여름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만 맞다가 야외로 나가면 부는 바람이 당연히 덥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조깅을 하면서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잔뜩 주어 땀을 죽 빼고 맞이하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러니 집으로 들어와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앉아 있으면 아파트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할 수밖에 없다. 집은 10층이라 바닷가의 바람이 여름에도 늘 분다.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시원하다. 그냥 이대로 잠들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고 잠들지 않는다.


다음은 조깅 후에 마시는 물이다. 대부분 더우면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를 마시지만 나는 시원한 물을 보온이 되지 않는 텀블러에 미리 채워두고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그 물을 마신다. 그 물은 내가 조깅하는 동안 미지근해져 있다. 시원한 물이 갈증을 해갈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조깅을 해서 땀을 이만큼 흘리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캬 하는 소리가 나오며 좋을 것 같지만 그건 순전히 그저 미화된 광고 영상의 영향이다.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자주 홀짝이면서 물을 체내에 채워준다. 그러면 물이 몸에 잘 퍼져 들어간다.

과학적으로 또 의학적으로 잘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그저 기도 부분에 자극만 줄 뿐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갈증을 부축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잘 모르니 설명하기가 힘듦(웃음). 그리고 내가 나를 봤을 때 태생적으로 추위는 견디질 못하는데 더위는 그냥저냥 참고 잘 견디는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늘 더웠고 늘 폭염이었고 늘 불쾌지수 같은 말이 따라붙었고 매미소리가 들렸다. 올해 여름이 지난여름들보다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작년과 올해는 이 더운 여름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덥다고, 폭염이라고 유난 떨 것 없다. 그건 전부 미디어나 언론에서 늘 하는 말이다. 랑종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최강 공포 영화라며 유난 떨며 불 켜고 상영하는 극장까지 생기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게 무서운 건지 그저 잔인하고 징그러운 건지 알 수 있다.


유튜브의 옛날 티브이 영상을 보면 90년대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 생각으로 에어컨이 없이 이런 무더위에 어떻게 생활을 할까 싶지만 영상을 보면 더위에 허덕이면서도 다 견뎌낸다. 그렇게 여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낸다. 댓글들 중에 이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저렇게 더워 보여도 마스크 안 쓰고 있는 게 너무 부럽다’. 지금은 덥고 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 언젠가 분명 오늘도 재미있게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방탄이들의 퍼미션 투 댄스를 보면 희망은 절망 끝에 있고 곧 모두가 마스크를 벗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말을 한다. 게다가 감동적이기까지 한 노래의 힘을 보여준다.


여름에 날이 시원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더우니까 여름이고 우리는 이런 여름이 오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사 문제가 있다 손 치더라도 답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한반도는 장마기간이라 진정한 폭염은 다음 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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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벌레는 왜 비가 온 직후에는 많이 기어 나올까. 왜 공벌레는 화단이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 굴러다니지 않고 꼭 아파트 시멘트 바닥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위험하게 굴러다니는 걸까.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공벌레가 비가 온 직후에는 꼭 길 위에 나타나서 꾸물꾸물 다닌다. 공벌레가 다니는 걸 보는 건 꽤 재미있다. 꾸물꾸물 기어가다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인간이 본다는 걸 아는지 갑자기 몸을 공처럼 말아버린다. 그런 모습은 꽤나 흥미롭다.


왜 공벌레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기어 다니지 않고 이렇게나 위험천만한 곳으로 기어 나와서 기어가는 것일까. 태양이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듯이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공벌레들을 그렇게 이끄는 것일까. 조금 멀리서 보면 사람들에게 밟힐 것 같은데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인기척이 느껴져 몸을 공처럼 말지만 인간이 밟으면 그대로 납작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공벌레는 그 사실을 모른다. 마치 타조 같은 새가 몸을 숨기기 위해 땅바닥의 구멍이 머리만 숨기는 것과 비슷하다. 공벌레는 머리와 일곱 개의 마디로 된 가슴, 다섯 개로 이루어진 배로 나뉜다. 참 신기하다. 더 신기한 건 더듬이가 두 쌍이 있다고 한다. 한 쌍의 더듬이는 퇴화하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공벌레는 낮에는 낙엽이나 돌 밑과 같은 습한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비가 온 직후에는 늘 이렇게 쨍한 날, 오전에 이렇게도 돌아다는 걸까. 왜. 왜. 공벌레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로 곰팡이나 부식질을 먹는다. 또 화단이나 흙 속의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영양분이 잘 돌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생긴 게 징그럽게 생겨서 그렇지 인간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건 인간이다.

공벌레를 보느라 30분가량 땡볕에 앉아 있었더니 땀이 줄줄 흘렀다. 일어나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하수구 쓰레기가 가득한 곳에 꽃이 피었다.

꽃은 깊은 하수구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팔을 뻗어 뻗어 하수구 뚜껑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꽃에 나비가 일었다. 딱 한 송이 핀 꽃 위에 나비가 앉아서 꽃에게 약속을 하고 있었다. 꽃씨를 좋은 곳에 뿌려 줄게. 자연은 정말 살아있는 선생님 같은 존재다. 발로 툭 차면 없어져 버릴 잡초와 나비가 이렇게도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척박한 땅에도 희망은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 1917에서도 그런 장면이 계속 나온다. 인간의 욕심으로 모든 곳이 파괴되고 폭탄으로 터진 곳에도 꽃은 핀다. 감동적인 장면이 언뜻언뜻 스쳤다.

낚시를 해서 고기를 낚으려는 건 세월을 낚으려는 것이다. 마치 세계가 정지해 버린 곳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사색에 잠긴다. 우리가 언제 한 번 깊이 있게 사색에 잠긴 적이 있었던가. 바다 멍에 이어 강 멍도 좋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멍 때리기에는 불 멍이다. 새해를 맞이할 때 여기 바닷가에는 모닥불을 피워서 해를 기다린다. 그때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을 보는 건 무척이나 빠져든다. 불 멍에는 대책 없이 흡수된다.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에 그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강 멍도 좋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 역시 좋다. 그들의 등에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마 중에 조깅을 했다. 잠시 소강상태인데 낚시꾼들과 강과 하늘과 비행기. 공항에 여기서 꽤 가까이 있어서 비행기를 조금 큰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비행기가 날면 소리가 크다. 항공기뿐 아니라 경비행기들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소리가 크다. 하지만 전투기 소리에 비할바는 못 된다. 전투기는 거의 점 만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 위를 날아 가는데 그 소리는 천지를 울린다. 전투기 두 대가 지나가면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다. 정말 전쟁이 나서 전투기가 분당 간격으로 날아다닌다면 그건 정말 공포일 것이다. 엄청난 소리의 공포가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소리가 사람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소설을 적고 싶다.

아직 어린 고양인데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가 휙휙 다니는 도로의 저기에 꼭 새초롬하게 졸고 있다. 부르면 개무시하듯 눈을 가늘게 한 번 떠 준다. 그리고 다시 꾸벅꾸벅 존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휙휙 지나가기 때문에 위험한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는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유튜브에 길고양이에 대한 안 좋은 영상과 기사가 많다. 도가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그게 신념이 되면 무섭다. 신념이라는 좋은 말이 오로지 신념밖에 없는 사람이면 그건 좀비와 다를 바 없다.

34도의 여름날인데 가을의 밭에 온 기분이 드는 곳이다. 강변의 상류에는 이렇게 꽃밭이 있고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여름에 핀 코스모스는 마치 장난감 같다. 5세 조카가 크레파스를 들고 여기저기 알록달록하게 칠해 놓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요즘 나비가 많이 보이는데 코스모스에 나비가 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조깅을 하면서 그저 설핏설핏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코스모스에 나비가 앉는 모습을 사진으로 한 번 담고 싶다.


글을 적으면서 보니 손톱이 또 자랐다. 손톱이 너무 빨리 자란다. 손톱을 깎은 지 고작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손톱은 생각보다 길게 자라나 있었다. 손톱은 손가락마다 다 다르게 자란다. 가장 빨리 많이 자라는 손톱은 검지 손톱이다. 새끼손톱(문득 든 생각이지만 새끼가 손톱 앞에 붙으면 귀여운데 손톱 뒤에 붙으면 욕이 된다. 손톱 새끼. 병아리나 강아지도 그렇다. 새끼 병아리, 새끼 강아지는 괜찮은데 병아리 새끼. 강아지 새끼는 욕이다)은 새끼손톱이라 그런지 제일 늦게 자란다. 손톱이 빨리 자라는 게 시간과 흡사하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빠르다는 것이다. 손톱을 일단 깎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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