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트 똥 같다


민초단 초코파이


이 기괴하고 기묘한 컬러를 지닌 오묘한 맛이 나는 민초단을 어느 날 문득 먹게 되었다. 일상에서 특별한 일은 어느 날 문득 이뤄진다. 말똥말똥 만화 같은 눈으로 앞에서 먹기를 바라고 있어서 따자마자 세 개를 먹었다. 박하 초코파이가 입 안으로 들어온 날.


예전 연애시대를 보면 은호의 내레이션 중에, 우리의 삶(일상)은 장난감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쉽게 망가진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우리는 망가진 일상을 이어 붙인다. 계획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보통 잘 없다. 어느 날 문득 한 번 해볼까, 하고 한 번 생각이 들면 그대로 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그런 ‘어느 날 문득’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일행이 호들갑을 떨며 민초단을 들고 왔다. 내 약해빠진 일상이 와그작 망가졌다. 온몸이 민트로 꽃을 피울 것만 같다. 왕뚜껑 국물이 왜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 걸까. 일행은 오리온에서 깜짝 이벤트로 어쩌고 하면서 두 박스나 들고 왔다. 나는 보는 앞에서 세 개를 먹었다. 이틀 정도 지난 지금 아직도 한 박스가 냉장고에 있다.


어느 날 민트가 외계인처럼 생활 속으로 야금야금 파고들더니 사람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지난번에도 민트 라테를 마시면서 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했다. 민초단은 말 그대로 민트와 초콜릿을 섞어 만든 초코파이다.


첫 한 입을 깨물면 비누를 씹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비누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가 싶더니 이내 비누 맛은 사라지고 민트와 초콜릿이 뇌를 주무른다. 이렇게 말을 하면 맛이 이상할 것처럼 보이지만 꽤나 먹을 만하다. 나는 [어쨌든] 한 번에 세 개나 먹었다. 크기가 작기도 하고 마카롱 맛과 비슷하다. 일단 한 박스를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민초단 초코파이를 눈을 감고 먹으면 ‘먼 북소리’에 나오는 하루키 섬[먼 북소리를 읽으면 알겠지만 하루키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섬이 있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루키 섬으로 가는 내용이 나온다]에서 양치질을 하고 뱉을 수 없어서 그대로 입에 크림을 넣어서 같이 먹는 기분. 그 순간 하루키 섬의 바다는 가루를 뒤집어쓴 듯한 하얀 바위에 민트색 파도가 밀려와서 소리도 없이 민초단으로 파스텔톤으로 부서진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라며, 어떻게든 하루키와 엮어 보려는 나의 노력이 가상하다. 오히려 민초단인 일행이 호들갑을 뜬 것에 비해 잘 먹지 못했다. 아마 파리바게트의 민트 초코 마카롱 아이스크림의 맛을 따라오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민트 축제다. 이 뜨거운 붉은 여름에 민트 색이 온 세계에 팡팡 열려 있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파스텔컬러로 머릿속에 있는 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텐데 아쉽다. 민트가 도넛에도, 초코송이에도, 아이스크림에도, 다이제에도 가득가득이다. 봉지를 따면 민트 향이 솔솔. 천연향료로 멘톨(박하)이 개미 눈곱만큼 들어가 있다. 민트 민트가 세상에 안개꽃처럼 만개하여 민초단들이... 나는 미쳐가는 걸까. 민트 초코파이가 그냥 초코파이보단 덜 달다. 그저 내 입에는 그렇다.


어때요? 여러분은 민초단입니까? 반민초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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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30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화책 표지인줄 알았어요. 설마 저런 색상의 초코파이가?^^‘‘‘‘‘ 민초가 대세니 스벅도 민초 밀어주고 온통 민초 세상이네요^^;;;;

교관 2021-07-31 12:5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박하로 만든 빵 같아요 ㅋㅋ 민초 다음에는 어떤 유행이 올까요 ㅎㅎ
 

이 사진에는 제비가 찍혔다


요즘의 저녁에 조깅을 하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제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비의 비행은 정말 경이롭다. 어떻게 저리도 빨리 날까. 하늘 위를 천천히 구경하듯 날아다니는 왜가리에 비해 정말 빠르다. 그래서 제비는 꼭 제트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깅을 하다가 제비가 보이면 폰을 꺼내서 열심히 담아 보지만 이미 제비는 저만치 날아 가버리고 만다. 조깅을 하지 않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있다면 아마도 제비를 좀 더 정확하게 담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강변의 끝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강의 끝물과 바다의 시작이라 이곳에 사는 물고기도 다양하다. 다양한 물고기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지만 시에서 정해놓은 낚시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낚시를 하면 되는데 대부분 아저씨들은 낚시를 하면서 소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맥주도 마신다. 그러다 보면 늘 그 주위가 더러워진다. 아무튼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제비들은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제비는 물 위에서 마치 물수제비처럼 휘리리릭 날아가는 건 정말 예술이다. 제비를 찍으려고 보니까 강 저편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이곳을 매일 지나가는데도 이곳에 저렇게 많은 아파트들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 한동안 제비들의 비행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오고 난 직후에는 이렇게 하늘이 열린다. 그러면 구름의 다양한 모습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매일 다르다. 매일 같아 보이는 바다와 달리 하늘은 매일 다르다. 같은 구름이 나올 법도 한데 절대 같은 구름은 없다. 지구가 생긴 이래에 지금까지 그랬으니 구름도 대단하다. 이런 구름을 새털구름이라고 할까, 비가 물러가고 바로 하늘이 열리면 이렇게 파란 배경에 하얀 붓의 터치가 그림을 그린다.



밥 아저씨가 그리는 것보다 더 쉽다. 붓으로 그저 톡톡 터치를 하면 그릴 수 있다. 톡톡. 그리고 저 하늘에 제비가 날아다닌다. 조깅을 하다가 벤치에 누워서 찍었는데 이런 하늘을 보고 있으면 유년기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에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땀을 흘려가며 놀다가 누워서 하늘을 본 기억이 강하다.


이 사진에도 제비가 찍혔다


여름의 하늘은 원래 대기층에 가스가 많이 껴서 부 얘 야하지만 요즘의 저녁 하늘은 너무나 맑아서 자주 쳐다보게 되고 사진으로 담게 된다. 여기 강에서 이런 다리가 꽤나 많아서 다리 밑으로 지나치면서 다리의 구조를 볼 수 있다. 다리의 구조를 좀 심도 있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십여 년 전에 했던 영화 ‘괴물’에서 한강의 다리를 보고 난 후였다.


이 날은 너무 더워서 벤치에서 팔 굽혀 펴기를 했는데 마스크를 뚫고 땀이 떨어졌다. 그런데 땀을 꼭 많이 흘린다고 해서 운동의 효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보면 그런 것 같고, 또 과학적으로도 그렇다고 한다. 요즘 같은 여름에 조깅을 하면 땀이 아무튼 엄청나게 흐른다. 그런데 그게 짜지 않다. 수분 쪽에 더 가깝다. 땀을 쏟아내고 난 다음에는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한다. 단백질 섭취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단백질은 사실 시시때때로 섭취를 하기 때문에 운동 후에 굳이 단백질을 찾아서 섭취를 할 필요가 없다.


땀을 쏟고 난 다음에는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하는데 거기에 맞게 다당류나 단당류, 과당 같은 것들도 자신의 몸에 맞게 섭취를 해야 한다. 조깅을 하고 난 직후 땀과 함께 사라져 버린 수분을 보충하기에는 미네랄이 좀 들어있는 스포츠음료를 통해서 채워줘야 한다.


폭염을 견디는 몸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에게 맞는 운동을 매일 하면 된다. 매일 밥을 먹기 때문에 운동을 밥처럼 생각하면 된다. 가장 좋은 운동은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몸을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살을 빼기 위한 사람에게도, 어떤 부위를 근육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도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돈과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운동법이 가장 확실하다. 게다가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면 먹는 음식도 조절이 가능하니 계절의 변화에 맞는 몸으로 바꾸는데 아주 좋다.


하지만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에 돈이 들고 시간을 내야 한다. 그 시간이라는 게 거기까지 가는 시간을 말한다. 개인 트레이닝을 받지 않고 헬스장에서 운동해도 당연히 좋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일부는 또 운동하기 싫어서 결국 헬스장에 회비만 부어 주는 꼴이 나기도 한다.


조깅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강변이라 벤치 곳곳에는 어머님들이 앉아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그런 일상을 눈으로 담으며 조깅을 마치면 해가 달에게 하루를 반납한다. 우리는 또 하루의 소멸을 맞이한다. 하늘을 보면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세상의 절벽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여름에 더우니까 사람들은 짜증이 난다. 하지만 여름에 춥다면 두려움에 무서울 것이다. 21년 7월의 마지막 주가 간다.


달리다가 이 뷰가 좋아서 한 컷


언뜻 보면 외국의 풍경 좋은 곳 같음


이 새깜둥이가 잠시 벤치에서 쉬었다


풍경이 그야말로 풍경 한 날


날이 정말 좋다. 폭염의 날씬데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폰 화면으로 보면 마치 붓으로 쓱 그어 놓은 듯


금빛 하늘


골목의 저녁. 인공광원과 자연광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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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시작하면 펼쳐서 읽는 소설이 있다. 그걸 주차장까지 아주 천천히 걸어가면서 읽는다. 그러면 대략 두 페이지 정도 매일 읽을 수 있다. 걸음은 아주 느리게 걷는다. 영화의 한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돌리는 것처럼 걷는다.


여름이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천천히 걷고 있으니 바닥에 내려온 햇빛이 복사열이 되어 올라왔다. 그때 옆으로 여고생 두 명이 나를 앞질렀다. 그녀들도 걸음이 아주 느리다. 그 걸음걸이에는 더위와 함께 공부에 대한 무게 때문에 느린 것이다. 두 명의 여고생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보낸 탓에 팔뚝과 다리가 하얗다. 한 명은 가방이 무거운지 앞으로 맸다.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들의 걸음걸이는 나보다는 빠르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느리다.


하얀 티셔츠에 체육복 반바지가 그녀들의 패션이다. 멋보다는 공부하는데 초점이 맞는 스타일이다. 나를 앞질러 나보다 조금 빠르게 걸어가는 그녀들이 하는 대화는 수학에 관한 것이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맞겠지만 그래도 여고생 두 명이서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그 녀석이나 그 오빠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공부와 무더위가 그녀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무겁게 짓누르는 게 보였다. 등이 약간 굽고 걸음걸이에서 의욕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여고생 특유의 밝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약간은 높은 톤과 그 시기만의 말투에서 나타났다. 그녀들은 학교로 가는 길로 가고 나는 주차장으로 가면서 그녀들과는 헤어지게 됐다.


나는 나대로 주차장으로 가는데 노인정 앞의 그늘이 진 평상에는 오전부터 더위를 피해 아버님들이 나와 있다. 나는 아침마다 이곳을 지나간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그러면 앉아서 무료한 아버님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걸 알 수 있다. 아버님들은 어머님들과 다르게 인원이 많으면 말 수가 오히려 더 적다. 그러다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목소리가 큰 아버님이 나타나서 그 자리를 평정한다. 그러면 곁가지로 소심한 아버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아버님들이 하나의 주제로 열띤 대화를 한다.


아버님들이 '소. 심.'하고 매일 오전에 이곳에 우르르 나오는 이유는 집에 앉아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티브이를 보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퇴직하고 난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아버님들은 소심해지고 아침을 먹자마자 집에서 나와 이곳에 모인다. 그렇게 소심한 아버님들이 모여있기에 담배를 피우거나 서로 분위기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걸걸한 목소리를 지닌 한사랑 산악회의 김영남 회장 같은 아버님이 오면 그제야 아파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발전된 땅의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를 거쳐 정치 이야기에서 모두가 정점을 찍는다.


그 사이를 책을 읽으며 사막 거북이처럼 천천히 지나가면 아버님들이 죄다 쳐다본다. 노인정 앞에 매일 나오는 아버님들의 뒷모습은 바닷가에 늘 나오는 노인들의 뒷모습과는 또 다르다.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뒷모습에는 일종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는데 노인정 앞의 아버님들의 뒷모습에는 내리쬐는 볕을 피하는 것밖에 지금 할 게 없다는 듯 더위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소심한 아버님들이 모여서도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도 걸걸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한 명의 아버님이 딱 나타나서 허리춤에 양 팔을 올리고 분위기를 끌어내면 아버님들은 또 신나게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경제학자이자 도덕 철학가인 애덤 스미스의 책을 보면 대략(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구절이 있는데 인간은 대체로 이타적이라 누군가의 기쁜 소식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우리 인간은 질투가 많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고, 또 우리는 늘 그런 것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이타적인 마음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좋은 점을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 설령 그것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 나의 생활을 더 나아지게 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좋은 점을 보면 칭찬을 한다.


아버님들이 앉아 있는 곳을 아침마다 지나가야 한다. 나의 습관 때문에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은 늘 책을 읽으며 간다. 그러다 보면 아버님들은 일제히 나를 본다. 그리고 한 아버님이 한 마디를 한다. 걸어가면서도 공부하네, 참 보기 좋네.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 옆의 아버님도 한 마디 거든다.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듣는 칭찬이 나는 나쁠 리가 없다. 그러면 고개를 들어 목례를 살짝 하고 지나간다. 그럼 한 동안은, 걸걸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갈 아버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버님들은 서먹하지 않게 소싯적 공부를 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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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한 자갈치


편의점 탐방 중 자갈치가 눈에 딱 들어오기에 그대로 집었다. 자갈치를 도대체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거야. 야심 차게 뜯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며 ‘인간은 왜 전전두엽이 도파민으로 넘치는가’라는 인문과학책을 읽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읽고 있던 ‘태엽 감는 새’를 읽을 요량이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 중에 조깅 후 뜨거워진 몸을 찬물로 잘 식혀준 다음 선풍기 바람 솔솔 맞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것이다. 거기에 자갈치를 곁들여 먹는다. 맥주를 한 잔 벌컥벌컥 마신 다음 자갈치를 와작 씹어 먹는데 아, 이런. 이럴 수가. 이런 제길.


도대체 사람들이 자갈치에 얼마나 악플을 달고 욕을 했기에 자갈치가 이렇게 싱거워졌다니. 자갈치 정도 매일 밥처럼 먹는 것도 아닌데. 매일 몇 끼 챙겨 먹어야 하는 밥이야 건강이니 어쩌니 하며 유난 떨어도 되지만 한 달에 한 두 봉지 정도 먹는 자갈치야 옛날 그 맛 그대로도 괜찮잖아.


그러니 수출하는 라면과 새우깡이 더 맛있다고 유튜브 영상이나 SNS에 올라오기도 한다. 나는 국도 거의 먹지 않고 설렁탕을 먹으러 가도 소금을 넣지 않고 그 밍밍하고 고소한 맛이 좋아 그대로 먹는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소금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싱겁게 먹는다. 하지만 라면이나 과자 정도는 짭조름한 맛으로 먹는 게 좋은데 과자와 라면도 변심을 했다.


짭조름한 소금기를 자갈치에서 뺐다고 해서 아파야 할 사람이 아프지 않거나 병에 걸릴 사람이 병에 안 걸리는 것일까. 제 아무리 청소년을 법으로 금연을 시키고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해도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늘 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자는 양도 줄어들고 가격도 올라서 자주 사 먹을 수도 없는데 맛까지 변심을 하면 어떡하나.


라면에서 MSG가 빠지고 자갈치에서 짭조름한 맛이 빠지게 된 계기가 아마도 십여 년 전 먹거리 엑스파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나 브런치가 없어서 주로 트위터를 했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나와 트위트 맞팔이 되어 있는 유명인이 몇 있었는데 가수 김종서, 당시 두산 박용만 회장, 당시 피디수첩 피디였는데 이름이 기억 않남, 일본 아브 배우 마리아 오자와 등 몇 있었다. 그들은 보통 자신을 팔로워 하는 일반인들은 많지만 그들이 팔로워 하는 수는 적은데 왜 나를 팔로워 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 


그때에도 열심히 트위터에 140자 이내로 글을 올렸었다. 먹거리 엑스파일이 유행이었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맹신 수준이었다. 조금이라도 “제가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는 말에 반기를 들면 악플과 공격이 들어왔다. 그때 MSG를 조금만 사용하면 그 식당은 아주 나쁘고, 먹는 것으로 몹쓸 짓을 하는 양 비쳤다. 너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몰래카메라로 온통 편집 질로(나는 편집을 주로 하는 일을 하기에 잘 안다) 사람들을 티브이 화면 앞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트위터에 그 점을 꼬집으며 글을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정말 맹신이었다. 나는 그래서 만약 MSG가 문제라면 MSG를 만드는 공장을 취재해야지 왜 그걸 사용하는 식당을 망하게 하는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반문했다. 그렇지 않은가. 미원 만드는 공정은 다 개방이 되어 있고 예약을 하면 견학도 가능한 것으로 안다. 방송국 놈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방송을 타게 되면 폭주는 하지만 멈추지를 못한다. 미원, 즉 조미료는 홈페이지에 모든 과정을 오픈해놨고 한 번이라도 들어가서 보고 나서 말을 하면 괜찮았을 텐데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각인한다. 그때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라면에도, 자갈치에도 조미료가 사라지고 대체 양념이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조미료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떡볶이는 붉은색이다. 기본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떡볶이는 매운 음식이다.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거기에 조미료를 넣으면 맛이 중화가 된다. 조미료는 감칠맛을 내는데 그 감칠맛이라는 맛이 밍밍한 맛, 닝닝한 맛을 말한다. 그래서 고춧가루가 들어간 떡볶이에 밍밍한 조미료가 들어가면 중화가 되어 달큼한 맛이 나는 것이다. 천연 조미료가 다시마인데 다시마를 많이 넣어서 국물을 우려내 보면 그 맛을 알 것이다. 조미료가 몸에 나쁘려면 많이 섭취를 해야 한다. 많이, 아주 많이 먹어야 한다. 그건 술을 많이 마시는 것과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보다 몸에 덜 해롭다. 무엇보다 어떤 과학잡지에도 조미료가 몸에 나쁘다는 보고가 없다고 한다.


다시 자갈치로 돌아와서, 편의점 탐방이 취미 중 하난데 늘 새로운 과자들이 가득가득하다. 마트에 가도 과자는 이미 수십 종이다.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졌다. 종류는 어마어마하고 맛도 다양하지만 보통 우리는, 인간은, 과자는 늘 먹던 걸 집어 오는 것 같다. 새로운 과자가 나오면 한 번 먹어보기는 하겠지만 과자 자체를 한 달에 한 두 봉지 정도 먹기에 자주 먹던 걸 먹게 된다.


어릴 때는 계란과자도 자주 먹었고 사브레도 자주 먹었고 죠리퐁도 자주 먹었지만 대학교를 가고 군대를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점점 멀리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떠난 여인을 떠올리듯 문득 자갈치가 먹고 싶어 한 봉지 사 먹었는데 이렇게 변심한 맛이면 좀 슬플 것이다.


자갈치는 현재 우리 모습의 단상이 아닌가 한다. 하고는 싶지만 타인의 눈치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서 절충안을 내밀어 수평을 맞추어서 하기는 하지만 내심 마음을 꽉 채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 자갈치는 있으니 어떻게든 한 번씩 먹게 된다. 그 정도라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줘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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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슬픈 음식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라면은 슬프기만 하다.

상우와 은수의 첫 날밤의 팡파르는 라면과 함께 시작된다.

소주와 몹시 어울리는 라면은 슬프다.

화분의 꽃이 더디게 피듯 상우의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가지만 은수의 시간은 라면처럼 금세 끓어오른다.

후루룩 입으로 빨려 올라오는 라면은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이는 냄비의 허무를 나타낸다.

“라면이나 끓여" 은수의 말에 이제 고작 라면이나 끓이는 놈이 된 상우.

누군가와 마주하고 먹으면 더 없는 행복한 라면이지만 혼자 먹으면 더 맛있기에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끓이는 라면은 슬프다.

결국,

상우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라면은 그 렇 게 슬프다.

라면이 끓어오르면 비로소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일수록 자극은 극에 달한다.

라면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젓가락으로 자꾸 휘젓게 된다.

몸부림을 바라는 라면은 외로워서 슬픈 음식이다.

라면의 많아진 종류만큼 슬픔도 전부 제각각이다.

오늘도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며 슬픔을 젓가락질한다.

https://youtu.be/JJTTr17zaMM


영화 속에서는 라면이 그렇게도 슬프게 나온다.

선생 김봉두에서 불쌍한 녀석 소석은 라면이 그렇게 좋다.

김봉두가 김치 없는 라면이 맛없어서 먹지 않을 때 소석은 그 맛없다는 라면을 맛있게 허겁지겁 먹는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면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인다.

황비홍 1편을 지금 보면 이연걸 대역의 티가 너무 나는 것과 비슷하다.

소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 김봉두에게 바칠 삼을 캐다가 들어와서 부뚜막에서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다.

라면은 소석의 삶을 파고든 곰팡이와 같다.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https://youtu.be/yKDQz_v1VDQ


천하의 나쁜 노무 새끼 필제는 화를 내도 웃기고, 짜증을 내면 더 웃기고, 웃기면 대책 없이 웃겼다.

세상 무서울 것 없고 껄렁해 보이는 그 역시도 그럴수록 더 슬프다.

그런 필제가 좋아하는 건 왕뚜껑 라면.

필제는 기가 찬 동네에 왔지만 기똥 찬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 중심이 슬픈 라면이 있었다.

라면은 필제의 슬픔을 같이 했다.

하지만 필제에게 라면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끝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화면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https://youtu.be/1FuzcwV3AN4




라면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다 밥상 다리가 힘이 없어 기울면서 라면이 전부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저 멍하게.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씻고 옷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로변까지 나가서 다시 416 버스를 타야 한다. 늘 그 버스를 그 시각에 타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양보라든가 친정을 찾다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을 상상하기도 두렵다. 버스 문에 매달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올라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스 속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와 비 비린내로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버린다. 보이는 건 사람들의 등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뿐이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하기를 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아야 하고 앞사람의 머리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걸 참아가며 서울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7년째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며, 힘없이 서 있던 나를 안아주며 나의 길을 두려움 없이 상경했지만 현실은 나의 발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현재에 오직 희망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이 세계에서 홀로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가기만 하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하워드와 앤이 된 느낌이다.


마음의 심한 공백이 생기면 마왕의 노래를 들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에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마왕이 말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휘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며 늘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마왕도 가 버리고 남은 것이 없다.


이젠 지친다.

라면이 쏟아졌다.

밥상 위에서 흐르는 라면 국물이 바닥으로 퍼지는 꼴이

마치 머리가 터져 뇌하수체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https://youtu.be/CyT4Kjint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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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2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교관님 페이퍼에 오면 자주, 음식 사진, 먹을 거리 이야기가 올라와서 좋은데 이 글 유독 좋습니다!!

전 영화는 안 봤지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요 대사 상황 안에서 들으면 더 뇌리에 박히겠어요

교관 2021-07-27 12:28   좋아요 0 | URL
허진호 감독의 예전 영화들을 좋아해서 봄날은 간다는 몇 번 봤어요 ㅎㅎ. 이영애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예쁘고, 유지태는 뭐야? 할 정도로 젊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