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라오스에는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연이은 하루키 이야기.


하루키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보면 시벨리우스에 대해서 나온다.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의 자랑이라는 것도 이 글을 읽으면서 알았다. 무엇보다 시벨리우스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오래된 음악가인 줄 알았는데 시벨리우스는 1957년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집에 수도시설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작곡하는데 시끄럽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너무나 불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핀란드 국가가 그 집을 가족들에게서 구매한 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는 독립되기 전에 러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덩달아 시벨리우스 역시 인세를 못 받고 오케스트라를 작곡하고 싶었지만 빚 때문에 바이올린의 소품곡 정도만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재성이 국가가 놓인 이유 때문에 인정을 못 받은 케이스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하루키는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아마도‘ 가족들은 이제 집에 수도를 놓고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군, 아버지 정말 깐깐했잖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나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거의 다 본 편이다. 특히 ‘안녕하세요’와 ‘꽁치의 맛’은 꽤나 여러 번 봤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면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 그의 영화에 얼마나 신세를 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는 59년 영화인데 미장센과 대사, 호흡이 전혀 50년대 영화 같지 않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만 소거되었지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어색함이 없다. 특히 미장센은 놀랍다. 중산층의 가옥이 아주 현대식이며 통일된 균형감과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컬러풀한 서랍장, 녹색의 주전자, 세련된 등과 빨강과 노랑의 빨래, 지붕의 색채는 마치 칸딘스키의 그림 속 컬러를 보는 듯하다.


꽁치의 맛에서 청순하던 이와시타 시마는 이후 아와즈 누님으로 10년에 걸쳐 야쿠자의 아내로 나와서 또 한 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감독 윤단비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며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는 동안 옥주와 동주의 가족을 보는데 이상하게 나의 유년시절 깨끗한 여름밤 기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죽지 않으면 따라다닐 어린 시절의 지독한 선명한 여름밤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서 현재가 힘들지만 어떻게든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를 통해 시벨리우스, 오즈 야스지로, 남매의 여름밤을 관통하는 여름이었다. 이렇게 해변에서 하루키의 ‘라오스에는~‘는 읽으며 좋았는데 나중에 보니 책을 해변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아, 시벨리우스.

여기까지 참 좋았는데, 책을 저기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ㅠ


책 잃어 버리고 분노의 조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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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 중에 ‘비 피하기’라는 소설이 있다. 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오래되어서 그런지, 보다 보면 이렇게 교정의 오류도 보인다. 이 빠진 부분에는 어떤 단어가 들어가야 할까 하고 보면 ‘어쩐’이 빠져있다. 뭔가 재미있고 정겹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럴지도)은 일큐팔사의 아오마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아오마메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대략적인 내용은 하루키가 레코드를 사러 가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어떤 바에 들어가고, 곧 비를 피해서 한 무리의 남녀가 들어온다. 그 무리 중에 한 여자가 하루키를 알아보고 무리에서 나와 하루키 옆에 앉는다. 여자는 5년 전에 하루키가 첫 소설을 낸 후 인터뷰를 한 잡지사의 기자였다. 그 인터뷰가 하루키의 생애 첫 인터뷰였다.


여자는 그 잡지사를 나오게 되었고 이야기 수집가답게 하루키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잡지사는 망했는데 망하기 전 사원들의 퇴출이 있었다. 주인공 여자는 느닷없이 총무부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자신보다 높은 직책의 애인(유부남, 부인과 이혼을 생각이 없는)에게 말했지만 어영부영 넘어가는 꼴에 미래가 없다고 느낀 여자는 회사를 나오게 되고 애인과도 연락을 끊는다.


처음 여자는 얼마간 개인적으로 늘어난 자유한 시간에 만족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공허와 허무가 밀려오고 사람들도 바빠서 처음처럼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다. 천만 명이 넘게 사는 도시에서 여자는 고독해진다. 이런 내용의 영화도 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셰임’이다. 정확하게 하루의 루틴을 순환하며 탄탄대로를 걷지만 대도시에서의 극렬한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하루키 소설로 돌아와서, 여자는 바에서 술을 마시던 중 한 수의사가 접근하고 그 남자와 잠을 잔다. 여자는 느닷없이 7만 엔 을 부른다. 그 외의 모든 비용을 남자가 낸다. 이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여주인공이 이상한 생각을 할 수 없게 정성이 담긴 애무와 배려가 있는 섹스를 한다. 여자는 그 뒤로 4, 50대의 침대 위에서 배려가 있고 괜찮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돈을 받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루키에게 한다. 배려에 압도당하고 식사와 돈까지 지불이 되는 섹스에 대해서 여자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하루키는 여자에게 만약 자신과 그런 자리를 가지게 된다면 얼마를 부를 거냐고 묻고 여자는 대답한다. 과연 얼마라고 할까.


여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의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소개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다,라고 시작한다. 이 소설의 여자도 그렇고 아오마메 역시 그렇게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라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슴도 짝짝이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아오마메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라는 것은 얼굴의 예쁨이라는 것을 집어삼킨다. 어쩌면 몹시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하루키는 그렇게 쓰면 사람들이 일정하게 얼굴을 떠올릴 수 있기에 아마도 자꾸 미인은 아니지만, 또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이 단편소설의 여자 주인공도, 그리고 신작 속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의 말미에서도 이름을 잃어버렸던 잡지 기자였던 그 여자도, 그 외에 많은 소설 속의 여자들이 얼굴은 그렇게 미인은 아니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세련되고 날씬하고 옷은 기가 막히게 잘 입는다. 그래서 덴고는 언뜻 얼굴이 떠오르지만 아오마메의 얼굴에 접근을 하면 멀리 달아나버리곤 한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아오마메의 캐릭터를 탄생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설이라 여자 주인공이 실제 인물이라면 난처하겠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으니 또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이라 기분이 좋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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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은 다른 올림픽에 비해서 인기가 덜 하지만 경기는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올림픽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는 경기가 육상경기다. 제일 재미없을 것 같지만 육상경기에 관람객들도 가장 많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그 크고 넓은 육상 경기장의 벤치에 사람들이 빼곡했을 것이다. 나는 마라톤 중계를 보는 것이 야구 중계를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다.


경기는 어떤 경기든 실제로 보면 정말 재미있다. 물론 육상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지만 자주 볼 수는 없다. 내가 매일 저녁 강변을 조깅하는데 그 강에서 조정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죽 뻗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다. 그리고 강 상류로 가면 일반인들도 조정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앉아서 이렇게 보면 강이 보인다. 그리고 강으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세계 조정경기가 열렸었다. 그때 굉장했다. 구경하는 것 역시 재미있지만 온 나라의 외국인들이 이 도시로 몰려 들어서 조정경기를 일찍 끝낸 외국선수들이 다운타운으로 몰려나와서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이 도시를 몹시 좋아했다. 이렇게 큰 강이 도시의 중심지로 흐르고 바로 옆에 다운타운이 있어서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모두가 밤을 즐기는 것에 신나 했다.


다운타운은 전체 거리를 돔으로 덮어놔서 겨울에는 눈 축제를 하고 여름에는 물 축제를 한다. 주말이면 크고 작은 축제가 늘 열리고 자동차들은 힘들지만 도로를 시간을 정해놓고 막기도 했다. 처음에는 상가에서 싫어했지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물 축제를 하면 상가의 문을 닫고 옷을 가게 안으로 넣고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여름 동안은 매주 주말마다 다운타운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공연, 전시, 노래가 이어지고 밤이 되면 맥주를 곳곳에서 마실 수 있다. 초반에는 술을 자정까지 팔았지만 사람들은 술이 취해서 서로에게 벌레라고 욕을 했지만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9시까지밖에 맥주를 팔지 않았다.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술집을 찾아서 가면 되었다. 이런 문화가 십 년에 걸쳐 죽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지금은 모든 것이 멈췄고 강에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만 간간이 볼 수 있다. 조정경기를 구경하고 있으면 정말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올림픽에서 육상은 단연 나의 눈길을 끈다. 100미터도 400미터도 허들도 다 재미있다.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량이 대단해서 달릴 때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도 정말 멋지다. 마치 말들이 전력 질주하는 모습처럼 눈을 뗄 수 없다. 근육이 많으면 100미터에서 바람의 저항이 더 할 것 같지만 단거리에서는 올록볼록한 근육이 바람의 저항을 피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수들이 입장에서 몸을 푸는 모습부터 정말 멋지다. 그에 비해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은 근육량보다는 오래도록 달려야 하니 지구력 위주로 몸을 만든다. 근육량이 많아서 오랜 시간 뛰게 되면 몸이 무거우니 몸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긴 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나는 지금 이곳에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마라톤도 재미있지만 3000미터도 아주 재미있다.


어제는 남자 3000미터에 일본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선두였다. 그런데 1500미터부터는 뒤에 쳐진 선수들이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맨 앞의 케냐 선 수 두 명까지 제치고 선두에 오르는 장면은 정말 볼 만했다. 그리고 어제 800미터 준결승에서 미국의 이사야 주이트 선수가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뒤따르던 보츠나와의 니젤 아모스가 부딪히며 같이 쓰러진 것이다. 두 선수는 그만 망연자실해서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또 한 명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까.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데 실력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지다니.


그런데 두 선수가 손을 맞잡고 일어나 서로를 부축했다. 아모스는 미국의 이사야를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선수는 나란히 들어왔다. 이건 정말 감동이었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거 별거 없고 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제의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그리고 주이트 때문에 넘어진 아모스는 심판의 구제를 받아서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높이뛰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우상혁이 달려와서 도움 닿기를 할 때에는 보는 이도 일시 정지가 된다.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세계 4위다. 게다가 한국 신기록도 달성했다. 육상 경기는 정말 흥미롭고 짜릿하다. 왜냐하면 마라톤을 제외하고 몇 초만에 결론이 나기 때문에 다른 경기에 비해 더 손에 땀을 쥔다. 우상혁의 신체에 대해서 알게 된 우리들은 그를 지금 이전보다 지금 이후 더 많이 응원한다. 이번 한국 선수들이 이전에 비해서 다른 모습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우울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깝지만 이 정도로 했으니 됐어! 같은 표정으로 헤맑다. 게다가 우상혁은 3위를 하면 바로 제대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관없이 경기를 끝냈을 때 거수경례를 한 다음 아주 밝게 웃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감동으로 다가왔다. 멋있고 거기에 잘 생겼다. 다음에는 일을 낼 것만 같다. 정말 지금 엠 지 세대는 이 스포츠라는 것을 즐긴다.

이번 올림픽의 변수가 많이 작용하지만 이제 한국 선수들의 수준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경기에 골고루 퍼졌다. 유럽이나 서강의 선수들과 맞을 정도로 대등해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수영이라든가, 육상, 여자 기계체조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대단한 일이며 이런 대단한 일들을 한국 선수들이 해내고 있다.


양궁에서 메달이 많이 나왔지만 어찌 보면 양궁에서는 메달이 더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양궁은 기업과 국가차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는데 양궁협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전폭적이다. 다른 종목은 이렇게 지원을 받지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구는 지난번 올림픽 때 김연경이 사비로 도시락을 사서 선수들에게 먹이고 담당 의사도 없이 경기에 임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번 한일전에도 정말 투혼을 발휘해서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감동에 강타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올림픽의 꽃은 개막식과 폐막식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그 점에 있어서 좀 아쉽다. 올림픽은 개막식과 폐막식을 보는 재미가 있다. 브라질 올림픽 때에도 등장하는 나라를 보면서 이름도 처음 듣는, 참 신비로운 나라들이 많다며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이 가장 좋았던 올림픽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폐막식은 오전 네신가? 암튼 새벽에 했는데 못 일어날까 봐 밤을 새우고 폐막식을 봤다.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 식이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영국의 대중가요로 개폐막식을 장식했기 때문이고 대부분 좋아하는 팝 가수들이었다.


‘더 후’부터 제시 제이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오아시스의 노엘이 원더월드를 불렀고, 지금은 죽고 없는 조지 마이클도 노래를 불렀다. 올림픽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스파이스 걸스를 뭉치게 했다. 스파이스 걸스는 역시 멋졌다. 영국의 신화 프레디 머큐리가 부활했을 때 경기장 안의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와 노래를 주고받았다. 대단했다. 하얀 사자 머리의 브라이언 메이의 솔로 기타 연주가 이어졌다. 공학박사이기도 한 브라이언 메이(그의 기타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편곡에 유리하도록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기타를 제작했다)가 작곡한 ‘위 윌 락 유’를 연주하며 무대를 걸어 나왔다.https://youtu.be/YzoyDILKlhY

제시 제이와 퀸의 합동 공연,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음


그리고 제시 제이가 노래를 불렀다. 제시 제이가 라이브를 그렇게나 잘하다니. 개막식에 하이라이트는 폴 메카트니가 나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헤이 주드를 불렀다. 그 당시 실시간으로 지구인 7억 명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온 경기장에 헤이 쥬드~ 가 울려 퍼졌다.

https://youtu.be/azZZZbSwLQg 

감동적 ㅠㅠ


개막식의 서막을 폴 메카트니가 장식했다면 폐막식의 대미는 존 레넌이었다. 죽은 존 레넌을 영상과 모형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존 레넌은 임예진이 아니라 이메진을 불렀다. 정말 극적으로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올림픽을 통해서 전 세계에 외쳤다. 우리가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은 바로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대중이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런던 올림픽은 보여줬다.

https://youtu.be/IgPRI6-8Efw 

대미를 장식한 존 레넌의 이메진. 눈물 줄줄

줄넘기를 잘한다면 앞으로 올림픽 종목에 줄넘기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줄넘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요즘 초딩들 사이에서는 한 발 줄넘기가 유행인데 이 역시 잘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올림픽에 3인 농구와 스케이트보드가 종목으로 채택이 됐고 다음 올림픽에는 브레이크 댄스가 종목으로 채택이 된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만 빨리 종식되기만 바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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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매의 호박잎 쌈


여름이 되면, 이렇게 이글이글 거리는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런 음식은 순전히 추억에 기인한다. 그래서 귀찮아도 해 먹게 된다. 막상 먹으면 맛있지만 추억의 맛인지 어떤지 가물가물하게 된다.


외가에서 내 외할매의 품에 안겨 할머니가 쌈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었던 음식들이 있다. 외할매는 손주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나를 자주 안고 있었던 건 어린 시절에 형편이 좋지 않아서 세 살 때부터 네 살 정도까지 집에서 떨어져 외가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밥 먹기 싫어서 울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엄마 없는 놈이라고 놀림받아서 울고, 그런 내가 딱했던지 외할매는 울고 들어온 나를 안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흘리는 나를 닦아 주고 배고프니까 밥을 먹여 주었다.


어릴 때라 기억이 거의 없지만 사진을 보면 외가에서 빼빼 마른 어린놈의 꼬꼬마인 내가 늘 울고 있거나 울고 난 다음 퉁퉁 부어 있거나, 그런 사진들이 있어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술처럼 기억이 형성된다. 그때는 어린이였지만 여름에 땀을 흘리고 들어오면 외할매가 손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닦아 줄 때 나던 그 냄새가 좋았다. 할머니의 냄새가 손수건에서 났다. 물에 적셔 희미해진 할머니의 냄새가 내 얼굴에 조금씩 와서 붙었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서럽다가도 할머니의 품에서 잠이 들고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가곤 했다. 외가는 불영계곡 중간 즈음에 있어서 어린놈의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은 없었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들 거기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외할매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스크림은 꼬박꼬박 사주었다.


외가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 마을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놀다가 흙으로 샤워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할머니는 나를 씻기고 선풍기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호박잎을 삶아서 감자를 넣고 뜸을 들여 밥을 지었다. 밥을 조금 호박잎에 올리고 된장을 찍어서 후후 불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맛이라는 게 맛 자체는 기억날리는 없지만 그렇게 먹었다는 추억 때문에 이런 여름에 호박잎과 양배추를 삶아서 밥을 싸 먹으면 외할매의 모습이 가물가물거리지만 밀려온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은 중학생 때까지다. 나에게는 친할아버지도, 친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래서 외할매 밖에 나에겐 오롯한 할머니였다. 손주들이 많았어도 대부분 서울에서 외삼촌이나 이모들과 같이 지냈지만 나는 집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툭하면 외가에서 지냈다. 그때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 외할매였다.


중학생 때 외할매의 손을 잡고 서울에 잇는 이모집과 외삼촌 집에 갔을 때였다. 외할매는 전철을 타면 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를 잃어버릴까 봐 손목을 꽉 잡았다. 아아 아프다고 해도 외할매는 그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나를 놓칠까 봐 꽉 잡았다. 겨울의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외할매와 나는 육개장을 먹으러 들어갔다. 나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할머니는 육개장을 주문했다. 나는 매운 걸 못 먹었는데 외할머니의 육개장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밥그릇에 나 좀 떠 달라고 했는데 밥그릇에 요만큼 떠더니 할머니는 큰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줬다. 


할머니는 그때 무슨 약을 잘못 먹었던지 혀가 말라서 갈라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친척들 집에서 할머니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떼를 써서 외할매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외할매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외가에 가면 외가의 냄새보다는 외할매의 냄새가 있다.


호박잎 쌈, 양배추쌈, 오이를 그대로 듬성듬성 썰어 넣어서 만든 오이냉국은 내 외할매의 음식이다.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헤어졌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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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8-07 12:36   좋아요 0 | URL
여름만 되면 호박잎으로 쌈싸먹고 싶고, 그렇게 먹고 있으면 외할머니 생각나네요 :)
 

매년 여름이면 조깅 후에 이 엘리베이터에서 이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대충 어디가 변했는지 확인을 해본다. 나는 헬스장에는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다. 물론 헬스클럽에서 제대로, 운동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대형 헬스클럽이 있고 거기 트레이너들과도 잘 알고 지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만 보면 와서 운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 역시 매일 하는 조깅 대신 위층으로 올라가 헬스클럽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려가며 운동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조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돌 다 같이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매일매일 낼 수는 없다. 어떻든 올해 지금까지는 2월의 하루와 4월의 며칠을 제외하고, 그러니까 올 상반기에는 6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매일 조금씩 조깅을 했다.


굉장히 무더웠던 2018년도인가 그때는 이틀 빼고는 다 달렸다. 비가 오면 어떡하냐는 말을 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걷거나 다리 밑까지 가서 거기서 몸을 풀고 오면 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위 때문에 절대 나가지 말라는 날도 조깅 코스에 나가면 의외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뭐 어떡하냐? 이게 문젠데? 이럴 때는 못 달릴 것 같은데?라고 걱정과 핑계가 먼저인 사람들은 달려보지 않은 사람들이며, 조깅을 해도 고작 일 년 정도, 일주일에 이삼일, 한 시간도 정도 시간을 내서 달린 사람들이다.


내 주위에도 2년 운동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길게 운동을 한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나는 2년 동안이나 운동을 해봐서 아는데, 같은 말을 한다. 2년 운동을 했다고 치자. 2년 동안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하고 5일을 했다고 치자. 운동을 하러 가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한다고 하는데, 5일 정도 운동을 하러 가서 옷 갈아입고 거울보고 휴대전화 들고 확인하면서 운동과 운동 사이의 시간이 10초 이상일 텐데, 그렇다면 2시간 꼬박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고 한다면, 일주일에 다섯 시간 운동을 한 샘이다. 한 달이면 서른 시간도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2년 동안 도대체 길게 운동을 했다는 건 몇 시간을 했다는 말일까.


후배가 서른몇 해 동안 살아오면서 2년 운동을 한 것은 정말 미미한 움직임일 뿐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2년 동안 이라든가, 길게, 운동을 했다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2년 동안 운동을 하고 난 뒤 운동을 하지 않고 그저 금붕어처럼 생활한지도 오래되어버리니까 살도 더 찌고 컨디션도 늘 별로인 것이다. 일주일에 고작 이삼일 시간을 내서 두 시간씩 운동을 해서 많이 했다고 느끼지 말고 하루에 십오 분씩이라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깅을 하면 좋은 점은 이렇게 무더운 폭염의 날에도 그렇게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 그건 늘 에어컨 속에서만 생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깅을 하려면 어떻든 밖으로 나가야 하고 밖에는 당연하지만 에어컨이 없다.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땀을 흘리고 땀이 식다 보면 자연의 바람이 시원하다.


그리고 조깅을 오랜 기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코스가 몇몇 생기게 된다. 오르막길을 코스에 넣을 때가 있고, 계단을 넣을 때가 있고, 동네 공원 운동하는 곳에서 근력 운동을 좀 하기도 한다. 보통 조깅을 하다가 그곳에 들러 이삼십 분 정도 몸을 푸는데 그것 역시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어깨 같은 곳에 근육이 붙어 버렸다.


헬스클럽에서 하는 것만큼 보기 좋지는 않지만 어떻든 매일 조금씩 하게 되면 몸은 그에 반응을 한다. 십 년 전에 비하면 그때는 몸이 좀 더 슬림했고 근육량이 많았는데 지금은 허리둘레도, 배도 그때보다는 좀 나왔다. 어차피 홀딱 벗고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옷을 입으면 그럴싸하게 보이면 그만이다. 십 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어깨와 팔뚝인 것 같다.


조금씩, 매일 십 분씩이라도 아무 생각 말고 그저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몸은 분명히 반응을 한다. 어떻든 작년에 비해서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작년에는 재작년과 비슷하게 유지를 했고 올해는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유지를 했다. 분명 언젠가는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그전까지는 실컷 달리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지는 않는다. 그저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고 중간중간 힘들면 걷거나 쉬면서 주위의 풍경을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간직한다.


여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강변을 달리다 보면 강변 주위에 풀숲이 낮동안 뜨거운 태양 열을 받아서 나는 냄새가 있다. 여름에만, 폭염이 지속되는 날에만 맡을 수 있는 풀숲의 후끈한 냄새가 좋다. 여름의 별미는 아무래도 하늘이 타들어가는 붉은 노을이다. 붉은 노을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곳을 코스에 집어넣은 후 해가 사라지기 직전 그곳까지 어떻든 달려가서 이 모습을 본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는 것 같은 노을이다. 푸름과 붉음이 공존하고, 철거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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