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나온다. 노 웨이 홈에서 1대, 2대, 3대가 다 같이 나올 것 같다. 이렇게 삼대 스파이디들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게 몇 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하지만 뉴 유니버스가 나왔을 때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파이더맨의 팬들은 알지 않았을까.


나는 마블의 대단한 팬은 아니지만 그들 중에서 스파이더맨을 가장 좋아한다. 거슬러 거슬러 어린 시절로 가서도 스파이더맨을 좋아해서 손에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쥐고 있었다. 그랬는데 커서도 이렇게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고 있다니. 인간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날씨와 사랑은 늘 변하는데 인간은 왜 안 변하는 거야.


스파이더맨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다. 토르나 아이언맨처럼 어디로 멀리 날아가지도 못한다. 바다 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도심지에서나 거미줄을 뿜어서 이동이 가능하다. 어찌 보면 도심에서 장거리를 가야 할 경우 전철을 타는 것보다 훨씬 늦을지도 모른다. 양팔을 이렇게 번갈아가며 거미줄을 쏘아서 장거리를 가려면 아무래도 전철보다 늦다. 또 날지 못하는 건 비슷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만큼 통솔력도 없고 둘이 붙으면 힘으로도 딸릴 것이다. 그런데 왜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으냐. 거미인간이니까.


거미인간으로 바뀐 피터는 그저 동네의 친절한 이웃이다. 자전거 도둑을 잡고, 강도들을 매달고, 편의점 같은 것들을 터는 애들을 혼내주고,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건져주는, 고작 그 정도의 일을 한다. 그래서 아주 좋다. 다른 슈퍼 히어로처럼 지구를 구하고, 미사일을 막고, 외계인과 맞짱 뜨고 하지 않는다. 잘 보면 스파이더맨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있다가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나타나서 위기에서 구해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슈퍼맨이 실제로 있다면 사실 두려움이다. 슈퍼맨이 화가 나거나 나에게 악한 감정을 먹으면 나는 그대로 골로 가지만 스파이더맨은 꼭 그렇지 않을 것만 같다. 비록 다른 어른 슈퍼히어로에 비해서 판단력이 떨어지고 느리지만 사람을 죽인다거나 외계인을 죽이지도 않는다.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또 슈트가 몸에 착 달라붙어 스파이더맨의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이 좋다. 멋지다.


영화 적으로는 20년 전에 나온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다. 그때 1편이 나왔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첫 상영을 봤다. 그러니까 자정을 좀 지난 시간에 예약을 해서 여자 친구와 함께 달려가서 봤는데 사람들이 첫 상영에 다 들어찼다. 스파이더맨이 움직일 때마다 촌스럽지만 우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소리도 터져 나오는 게 마치 어린 시절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그때 스파이더맨 첫 상영에 진심이었다. 빈자리가 없었다. 다 보고 나왔을 때 새벽 3시 가까이 되었는데 극장 앞이 마치 저녁 8시 같았다. 바글바글했던 극장 앞의 사람들. 그 사람들 손에 첫 상영 티켓이 들려있고 모두가 스파이더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기분은 영화를 본 후 극장에서 나왔을 때만 가능하다.


피규어도 1대, 2대, 3대가 다 다르다. 3대로 넘어오면서 피터가 16세에 맞춰져 있어서 근육의 표현이 과하지 않다. 1대 스파이디는 근육이 굉장하다. 영화로 토비 맥과이어가 했는데 이번 노 웨이 홈에 나올 가망성을 예고편에서 넌지시 흘렸다.


나는 피규어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 없어하지도 않는, 그냥저냥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무슨 말이냐? 고가의 피규어를 사 모으는 수준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피규어는 갖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정도다. 나는 피규어도 스테츄를 좋아한다. 스테츄가 뭐냐 하면 움직이지 않는, 구체관절이 아닌 딱 멈춰 있는 포징으로 나온 피규어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구체관절이면 입으로 슝, 푸악, 크아아, 하며 가지고 놀았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떤 포즈를 그대로 놓고 디피를 하는 게 좋다.

그래도 구체관절이 좋을 때가 있다. 피터 파커가 자신의 무게에 눌려 고뇌하는 이런 장면을 연출을 할 수 있다. 스테츄는 그 한 장면의 모습만 그대로 볼 수밖에 없지만 구체관절은 눈도 작아지고 생각하는 모습이나 전화를 받는 깜찍한 표정이나 포즈도 연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뉴욕의 배경을 하나 합성하면 그럴싸한 장면이 연출이 된다.

어벤져스에서의 스파이더맨에서는 나노 슈트를 입는다. 역시 근육이 슈트에 다 가려졌다. 이렇게 피규어를 촬영해서 타이탄 행성에서의 스파이더맨으로 연출을 해본다.

사진을 좀 크게 해서 보면 (영화 상으로 타노스와 싸우면서) 스파이더맨의 슈트가 더러워진 것을 작업을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니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피규어의 또 다른 재미는 이런 것이다. 피규어를 가지고 영화 속 그 장면을 연출해보고,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다. 정말 신나게 빌딩 숲을 날아다니는 거미처럼 보이는 좋은 예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다. 샘 레이미의 영화들 중에서도 좋다.

이건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의 빌런이다. 리저드도 일렉트라도 빌런이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빌런이 되었다.

다시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다. 작은 스파이디의 스테츄. 스파이더맨의 중점적인 포즈를 아주 잘 잡아냈다.

요건 또 다른 포즈의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 위의 포징이 서서 거미줄을 쏘는 버전이라면 이 포징은 어딘가에서 떨어지면서 거미줄을 쏘는 포징이다.

스파이디들의 총출동. 베놈도 보이고.

베놈 2가 이번에 나온다. 거기에는 카니지도 나오는데 베놈보다 더 못 생기고 더 악랄하고 더 강한 놈이다. 내가 알기론 원래 카니지는 베놈의 새끼로 더 거대한 악이 되는데, 베놈은 자웅동체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노 웨이 홈에 등장하는 옥타비우스다. 예고편에 모습을 나타냈다. 예고편에 닥터 옥타비우스가 등장했을 때 정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했다. 옥타비우스의 알프리드 몰리나는 모습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알프리드는 예전 영화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에도 나온다. 더 이전에 스피시즈에도 나오는데 그때나 저때나 지금이나 모습이 비슷하다.

앞으로 스파이더맨의 영화가 지치지 않고 계속 나온다면 이 버전의 영화도 나올 것 같다. 실사든 애니메이션이든.

역시 샘 레이미의 작은 버전의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의 특유의 포즈다. 만약 실제로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특수 거미에게 물려 거미인간이 된다면, 팔이 몸에 비해 길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거미처럼 움직이는데 인간의 몸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빠르게 움직일 때만 팔이 길어지는.....

역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멋있다. 피규어가 그렇다는 것이다. 근육의 움직임이 돋보여서 좋다. 만약 이런 근육이라면 어쩌면 빠르게 움직이기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만 영화니까. 흥.

이 포징은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거미줄을 쏘는 버전이다. 아무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재방송을 하면 그냥 닥치고 본 거 또 보게 된다.

이런 스테츄도 좋다. 그렇게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잘 없는 버전의 스테츄 피규어.

이런 피규어는 헤드 어택 버전이다. 너무 디테일하게 잘 만들어졌는데 재미있는 모습이다. 아주 진지한데 재미있다. 정말 심각하게 잘 만들었지만 재미있는 버전이다.

멀티버스로 만난 현실 스파이더맨과 스파이더 그웬. 영화 뉴 유니버스에서 그웬의 목소리는 영화 범블비의 그녀가 했다. 영화에서는 수수하게 보이는데 sns에서의 사진을 보면 예전 린제이 로한의 분위기다. 참 쓸데없는 이야기들의 향연. 숏버스의 저 대사가 좋아서 한 번 써 봤음.

사랑스러운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들. 떼샷이다.

이건 톰 홀랜더의 3대 스파이더맨이다. 피터 찌리릿 포징이다. 나노 슈트 전에 입은 슈트의 모습이다. 이 버전의 슈트까지는 좋은데 나노 버전은 또 별로다.

이건 스파이더맨 카드다. 아직 뜯지 않았는데 뜯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로 했다.

스파이더맨 미니카다. 뒤로 죽 당겼다가 놓으면 알지?

이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버전인데, 맨 위에 나온 2대 스파이더맨이다.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구체관절 피규어다. 이건 선물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날아온 것인데 거기에는 우리나라처럼 마트에 가면 장난감 코너에 이런 게 널려 있다. 피규어는 전문 피규어 샵에서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암튼 물 건너오느라 고생했다. 이놈아.

스파이더맨 이외의 피규어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코난과 라나, 포비, 빨강머리 앤이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 크리스마스 악몽(제목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인데 감독이 팀 버튼이 아니다), 아톰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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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먹어치우는 것 중에 오이가 있다. 보통 오이를 한 네 박스에서 여섯 박스 정도를 여름 내내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박스는 라면 박스가 아니라 책 주문하면 오는 박스 정도의 크기를 말한다. 오이를 그 정도의 박스로 네 박스에서 여섯 박스 정도를 먹는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다행히도 오이를 좋아한다.


와그작 씹어 먹고 있으면 내 머리도 아작 깨물어 먹는 것 같아서 상쾌하다. 오이를 그냥 먹는 건 아니고 이렇게, 오이냉국이라고 불러야 할까, 오이물김치?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시원하게 해서 보통 한 번에 두 그릇 정도를 먹는다. 한 그릇은 그냥 먹고 한 그릇은 밥을 말아서 오물오물 먹는다.


단맛도 나면서 시큼한 맛도 나고, 시원한 토마토와 맵삭 한 고추가 코 등에 땀을 맺히게 한다. 그리고 역시 와그작 씹는 오이의 맛이 좋다. 오이냉국은 정말 건강식처럼 보여서 살이 안 찔 것 같지만 뭐든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게다가 나는 꼭 밥을 말아먹는다. 이게 정말 별미다.


당연하지만 밥은 식은 밥이어야 한다. 탱글탱글하게 밥알을 유지하며 맛있게 먹으려면 식은 밥이어야 한다. 작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밀면이나 냉면을 먹기 위해 식당에는 가지 않았는데, 밀면이나 냉면을 먹으러 가면 거기에도 나는 식은 밥을 말아먹는다. 냉면 전문가들이 내가 냉면 먹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있지만 나는 가위로 냉면을 잘게 쓴다.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게.


그리고 밥을 말아서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떠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소위 냉면 좀 먹는다는 사람들에게 한 소리, 두 소리, 여러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 먹어본 결과 냉면은 이렇게 잘게 썰어서 거기에 밥을 말아서 숟가락으로 같이 떠먹는 게 훨씬 맛있다.


재미있는 건 한 소리 하던 냉면 좀 먹는다는 주위 사람들도 한 번 먹어보자며 숟가락으로 떠먹어보고는 또 그렇게 해 먹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요사스러운 게, 국밥에는 또 밥보다는 국수를 말아서 먹는 게 맛있다. 국수 면발에 딸려 오는 돼지국밥의 국물이 밥보다는 훨씬 좋다.


매년 여름이면 나를 신나게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집 앞 바닷가 퍼브에 앉아 여름밤을 즐기며 칼스버그를 홀짝였지만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퍼브들도 거의 다 사라졌다. 오늘 이전의 여름밤에 맥주를 즐기며 홀짝였지만 오늘 이후에는 이제 맥주도 크게 맛있다고 느끼지 못해 거의 마시지 않을 것 같다. 꺼져가는 여름의 해변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건 여름의 신나는 일이었다.


또, 다른 계절보다 더 먼 거리를 더 오래, 신나게 달린다. 여름만이 가지는 생명력이 있다. 그걸 느끼고 보며 한두 시간 땀을 흘리며 달린다. 여름이 늘 지속되기를 바라며 시월까지 여름이어라 기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신나는 일은 소설을 읽는 것이다. 나는 다른 계절보다 여름에 소설을 많이 본다. 바닷가에서 홀라당 벗고 앉아 피부에서 태양의 냄새가 나도록 뜨거운 햇빛을 잔뜩 받으며 소설을 읽는 게 무엇보다 신난다. 사실 책을 읽거나 조깅을 하는 건 시간이 날 때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어떻든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저녁에 오이냉국을 먹는다. 이 행복한 맛에 아주 신난다. 여름에는 이런 소소하고 작은 기쁨을 맛보는 것에 아주 만족한다. 그 끝을 오이냉국이 책임지고 있다. 이 시원한 맛, 정말 몇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다. 먹고 나면 배가 빵빵해지지만 신난다.

 

신나는 일이 별로 없어서일까. 나는 고작 이런 일로 신난다. 여름에 잔뜩 먹었으니 이 맛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잊을만할 때 다시 여름에 잔뜩 먹는다. 아마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는 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행복함을 충만하게 채운 다음 일상으로 복귀해서 그 행복함은 조금씩 깎여간다. 그리고 다 깎였을 때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다시 공연장을 찾아가서 행복함을 충전한다. 우리 인생은 이런 식으로 순환하는지도 모른다. 내년 여름에는 오이값이 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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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만들어 먹으면 오래전 도시락을 싸 다녔을 때가 떠오른다. 도시락을 싸오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이미 동이 난다. 김치 빼고 반찬 통을 여는 순간 수많은 젓가락을 취권으로 다 방어해야 한다. 하지만 밑으로 위로, 옆으로 고수의 젓가락들이 와장창 들어왔다. 그래서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은 대환장파티였다. 도시락 반찬이란 게 김치를 비롯해 다 엇비슷 비슷한 반찬들이다. 대부분 거기서 거긴데 감자와 어묵을 양념에 볶아 오면 순삭이었다. 우당탕탕 한 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도시락 반찬은 바닥에 깔린 양념만 남았다.


도시락이라는 건 아주 묘해서 무슨 반찬을 넣든 맛있었다. 도시락은 도시락만의 맛이 있었다. 반찬통을 열면 꾹꾹 갇혀 있다가 퍼지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먹는 도시락은 그만이 가지는 맛이 확실하게 있었다.


감자와 어묵은 뜨거울 때 먹으면 맛있지만 도시락은 뜨겁게 먹을 수 없었다. 그저 식어빠진 감자 어묵볶음이지만 맛있었다. 뜨거운 감자만큼 맛이 있었겠냐마는 아마도 도시락 반찬이라는 건 친구들을 끌어 모으는 어떤 장력이 있었다. 그 힘 때문에 다 같이 도시락 반찬에 우르르 몰려 집어 먹는 맛이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도 이제 더 이상은 도시락 반찬에 여러 젓가락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도시락 자체가 없어졌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독한 놈은 자신의 반찬을 뺏기기 싫어서 침을 막 뱉었다. 하지만 더 독한 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젓가락질을 했다. 이제는 그럴 수도,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집에서 감자와 어묵을 넣고 지글지글 볶았다. 간장이 조려지는 냄새가 좋다. 도시락 먹을 때만큼 맛은 안 나지만 뜨겁게 먹을 수 있어서 또 맛있다. 반찬통에 담아서 도시락 싸들고 집 앞 바닷가라도 나가자고 해야 할까 보다.

사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살림만 하는 가정주부나 집안일을 하는 남자라도 매일 음식을 해 먹는 건 만만찮은 일이다. 8월 24일 자 신문기사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0806


이제 집에서 음식을 하는 건, 음식을 해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는 집에서 밥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 부모세대가 사라지면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건 어쩌면 행사가 있거나 추억의 음식이 생각이 났을 때 해 먹는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이 빠르게 배달이 된다. 해 먹는 수준만큼 맛을 내며, 뜨거울 때 배달이 된다. 기사에서 처럼 요리가 아니라 조리해서 먹을 맛있는 음식도 마트에 가면 속속 나온다. 음식 유튜버들은 편의점이나 마트에 매달 새로 나오는 음식에 대해서 리뷰를 해준다.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며 들어온다. 요즘 편의점 어플을 깔면 냉장고 기능이 있어서 1 플러스 1이나, 2 플러스 1을 하는 식품을 구입했을 을 경우 전부 다 들고 나올 필요 없이 하나만 들고 나오고 나머지 2개는 편의점에 넣어두고 어플의 냉장고 기능을 사용하면 같은 계열의 어떤 편의점에서든 나머지 식품을 꺼내서 먹을 수 있다. 정보라는 게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


이제 도시락은 학교에서 싹 사라졌다. 도시락을 아침마다 쌀 수가 없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도시락의 맛있는 반찬에는 여러 젓가락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위생에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급식을 하면 두 가지의 문제가 싹 해결된다. 이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빈도도 낮아졌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더 나아가 집에 음식 할 때 나는 냄새가 배기는 것도 싫어졌다. 음식쓰레기가 나오는 것 역시 싫어졌다.


그러면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엄마의 집밥 콘셉트의 식당은 성행할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사람들은 집밥에 대한 추억이 강하고 추억의 맛을 찾아서 본능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미국 영화를 보면 집밥, 엄마가 해주는 음식, 같은 대사는 없다. 그런 분위기는 없다. 오래전 영화를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사랑이 떨어지거나 뒤쳐지지는 않는다.


에이 그게 뭐야? 밥은 집에서 갓 지은 밥에 찌개 끓여서 김치 척척 걸쳐 먹어야지.라고 말하는 AZ가 있지만 그 음식을 따로 하는 사람이 있고, 먹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음식을 얻어먹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도시락과 집밥은 늘 그리운 음식이다. 추억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하지만 집밥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엄마의 모든 밥이 몸에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도시락 반찬으로 그만이었던 감자어묵볶음을 한 국자 퍼서 맛있게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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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오마이스가 짧고 굵게 지나갔다. 새벽 두 시쯤에 아파트 창문을 강하게 때리는 비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겁이 나는 소리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작년에 온 태풍보다는 괜찮았다. 왜냐하면 작년에는 베란다의 창문틀에 젖은 신문지를 전부 끼웠는데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태풍이 오기 전에 계속 비가 왔다. 7월까지 내내 폭염이다가 8월이 되니 느닷없이 날이 계속 흐리고 연일 비가 오는 날의 반복이었다. 태풍이 오기 전에도 비 때문에 대지가 축축해있었기 때문에 소형 태풍이라지만-두, 세 시간 태풍이 왔지만 피해를 본 곳은 공멸 수준이다. 피해가 난 곳은 5년 전에 차바가 왔을 때에도 모두 침수가 되었다.

태풍이 온 후에 강물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흐르는 흙탕물이다. 물이 조깅코스까지 찰랑찰랑할 정도로 올라왔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강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어디로 몸을 피할까. 강물 속에서도 우르르 콰쾅하며 휘몰아치는 엄청난 소용돌이의 물소리 때문에 물고기들도 긴장을 할 텐데 다 어디에서 이 소용돌이 같은 물결을 피할까. 더불어 태풍이 오면 새들과 곤충들은 어디로 태풍을 피하는지 궁금하다. 보통의 맑은 날 강변에 나오면 메뚜기들과 민물게와 각종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비가 쏴아 쏟아지면, 태풍이 몰아치면 그들은 어디에서 몸을 숨길까.


이렇게 흙탕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가까이에서 들으면 대단하다. 보통은 강물이 흐르는지도 알 수 없다. 호수처럼 물이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풍이 오고 난 후에는 강물이 쏴아아아 하며 흐른다. 소리가 크다. 소리로 겁을 집어 먹는다. 시각적인 두려움만큼 청각적인 공포도 크다.


태풍 때문에 강물이 조깅코스까지 뒤덮고 난 후에는 모든 풀들이 쓰러져있다. 왜가리 한 마리가 마치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 버려 망연자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신기한 건 태풍이 바로 지나가면 강변은 진흙과 냄새와 쓰레기와 대환장파티인데 태풍이 물러가자마자 낚시꾼들은 바로바로 나와서 낚싯대를 강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옆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가득가득 담겨 있다. 여기 강은 바다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 민물에 사는 붕어보다는 숭어나 전어 같은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그래서 손질해서 먹기 까다로운 붕어보다 먹기가 수월해서 그런지 낚시꾼들이 매일매일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한다.

그리고 또 열심히 달린다. 비가 내리고 있어도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여름인데 한여름이 아닌 이런 날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 아주 굽 굽 해서 땀이 엄청나게 난다. 양말이 땀에 젖을 정도로 난다. 그래서 꿉꿉한 날에는 오히려 땀을 옴팡지게 흘려주는 게 상쾌하다.


이 하천의 길로 가야 하지만 역시 여기도 물이 올라와서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이 길로 가는 이유는 이 하천에는 오리들이 아주 많이 산다. 오리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과 오리가족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이 장면은 풀숲 오른쪽은 강이고 풀숲이 끝나는 바닥은 조깅 코스로 자전거가 많이 다닌다. 그리고 왼쪽 편, 풀숲의 반대편은 주택가다. 그런데 풀숲에서 빠져나온 민물게 한 마리가 자전거가 싱싱 달리는데 도로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화로 오지 말라고 했더니 한 번 날을 세워 해 보겠다며 나에게 덤비는 민물게 녀석을 찍은 사진이다. 얌마, 이쪽으로 가면 저 자전거 바퀴에 깔려 박살 난다고.

너 인간 녀석 내가 상대해 주마! 어흥냐홍!

또 달려간다. 열심히 달릴 것 까지는 없지만 어차피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니까 거기까지는 달려서 가야 한다. 조깅을 하다 보면 돌아와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게 좋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일전에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을 봤는데 잘 나가는 일본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이 전부 한국인으로 나온다. 60년대 오사카 판자촌에서 곱창집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연극으로 꽤나 유명한데 영화가 되었다. 일본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재일교포로 한국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대사를 한다. 그들은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이 서툴고 일본인은 아니지만 일본말을 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는 세대다. 그들은 돌아갈 곳에 없다. 아무튼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태풍에, 비를 맞아서 그런지 힘이 없는 듯 보이는 비둘기.

그간 닭둘기라고 멸시했는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역시 넌 평화의 상징. 아무 때나 똥만 싸지 말자.

인공광과 자연광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누가 더 예쁘고 아름답고 가 없다. 둘은 인간을 위해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춰준다. 밝음과 맑음을 준다.

이틀이 지났음에도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강가에는 역시 낚시꾼들이 있다. 예전에는 보통 낚시꾼이 낚싯대 한 두 개를 들고 나왔는데 근래에는(코로나 이후로는) 대여섯 개씩 낚싯대를 들고 와서 낚시를 한다.

비가 오고 흐린 와중에도 무지개가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은주야 보남파초노주빨 무지개 노래를 부르자.

이 녀석은 이틀이 지났음에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다. 태풍에 짝을 잃은 걸까.

이쪽 하늘과 저쪽 하늘의 분위기가 달랐다, 나를 경계로 흐린 하늘과 좀 더 흐린 하늘이 같은 하늘에 있었다.

태풍이 와서 무섭고 죽을 것 같지만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든 다시 원 상태로 되돌아가려 한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기계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망가진 것들은 사람들이 뭉쳐 영차영차 되돌려 놓는다.


저 멀리 구름이 꼭 마그리트의 구름 같다. 우리는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서 오밀조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의 아픈 일들을 내일이면 다 잊고 다시 춤을 춘다. 오늘도 달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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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담가 놓은 술이라며 썩지 않았는지 먹어보라고 했다. 술은 한 15년은 되었다. 닫아 놓은 뚜껑도 잘 따지지 않았다. 겨우 딴 술을 마셔보니 보통 집구석에 오랫동안 처박아놓은 술의 그 맛이다. 탁 쏘는 맛이 있지만 버섯으로 담가 놓은 술이라 술과 버섯이 섞인 기묘하고 마시면 얼굴이 찌푸려지는 맛이었다.


술은 그저 슈퍼에서 바로 구입한 술이 맛있다. 소주도, 막걸리도, 맥주도, 위스키도 바로 구입해서 마시는 술이 맛있지 이렇게 오랫동안 묵힌 술은 그 알 수 없는 기묘한 맛 때문인지 맛도 없다.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술을 만들어서 집구석에 꼭꼭 숨겨 두었을까. 내가 어릴 때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거기 주인집 형과 매일 재미있게 놀았다. 자전거 타고 놀고, 공을 차고, 특히 나는 장난감을 좋아해서 장난감 하나만 손에 쥐어 주면 군말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잘 놀았다. 매일이 대환장 파티였다. 그 주인집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너무나 친해서 친구 먹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같이 계중을 하고 있다. 인연이란 알 수 없는 곳에서 꽃을 피운다.


그때 주인집 아저씨가 오랫동안 담가놓은 술을 뜯은 적이 있었다. 그게 자두주였는데 유리로 된 큰 항아리 같은 곳에 담가놔서 양이 많았다. 아저씨는 그 안에 있는 자두를 전부 꺼내왔는데 주인집 형과 그 자두를 홀짝홀짝 집어 먹었다. 달달하니 즙이 죽 나오는 게 너무 맛있었다. 그때 형과 몇 개 집어 먹고 난 후에 기억이 없다.


마치 우물 속에 들어가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틀 뒤에 나온 것 같았다. 기억 속 자두주를 담근 자두는 맛있는데 어른이 되어 마시는 버섯주는 참 맛없다. 요즘도 집에 술을 담그는 사람들이 있다. 놀러 가보면 작년에 뭐를 넣었네, 재작년에 담가 놓은 술이네, 라면서 한 잔 줄까.라고 하는데 나는 늘 싫다. 맛이 일단 없다. 게다가 혀로 느껴지는 술맛이 다 독하다. 집에서 돼지고기를 삶으면 소주나 맥주가 어울리지 담가놓은 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당이 있던 그 오래전 집이 생각난다. 옥상이 있어서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걷곤 했다. 빨래는 옥상의 빨랫줄에 걸려 하루 동안 묻은 시름을 털어낸다. 고민과 고뇌가 새까맣게 껴 있으면 엄마는 빨래를 해서 옥상에 늘어놓았다. 바람이 불러와 빨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 주면 빨래는 좋아서 빨랫줄에서 춤을 추었다. 빨래는 같은 모습이 없다. 꼭 인간들 같았다. 축축했던 빨래는 옥상에서 아름답게 말라갔다. 비가 오면 빨래집게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바람이 불면 빨래집게들이 파르르 빨랫줄에서 떨었다. 물방울이 빨래집게 끝에 맺혀 있을 때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슬로 테이크처럼 지금 지나간다. 따스하면서도 늙어가는 햇살이 아련하다.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술을 담가놨다. 담가놓은 술은 누군가와 함께 마시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그랬다. 누군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집에 오면 약간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이건 말이야, 라며 담가 놓은 술을 뜯었다. 귀한 술을 받아먹는다며 우리에겐 용돈을 쥐어 주던 아버지 친구들. 과거에 머문 시간은 늘 아름답다.  


아버지가 담가 놓은 술은 참 맛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법 때문인지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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