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포스터는 이미지를 따다 붙인 표시가 난다



밤이 되니 쌀쌀해졌다. 한여름처럼 옷을 입고 베란다 문을 다 열어 놓으면 바다에서(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서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변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며칠 전까지 애처롭게 들리던 매미소리가 싹 사라졌다. 가을인 것이다. 아직 낮의 온도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어서 약간은 더운 감이 있지만 뜨거운 커피가 어제 이전보다 맛있어졌다. 가을이 되면 추석이 있고, 돌아오는 주말도 추석 연휴다. 예전에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성룡의 계절이었다.


대목을 노리고 며칠 지속되는 추석 연휴에 맞춰서 성룡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거나 티브이 특집 방송으로 나왔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빈이 티브이에 나오듯이. 하지만 추석마다 티브이에 나오는 성룡이 진부하다고 해서 어느 추석 명절을 기점으로 성룡이 사라졌다. 성탄절에 캐빈이 사라진 것처럼.


근래에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진을 치고 있기에 성룡과 추석은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추석에 성룡이 편성이 되어도 시청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추석명절에는 성룡이고 크리스마스에는 캐빈이다. 추억의 끈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에 성룡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오락실에 갔으면 보글 보글이라도 한 판 하고 나와야지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면 이상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 분위기는 사람을 과거의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한동안 추억 속에 머무르게 한다. 그건 일상의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일종의 휴지기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 마당이 딸려 있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공터가 있었다. 추석이 오면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항상 청바지를 새것으로 사주었다. 길어서 접어 입어야 했다.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요즘은 바지를 접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명절에도 어딘가로 가지 않고 그저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친구들은 대부분 큰집이나 다른 지역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몇 시간씩 고속도로의 고충을 이야기할 때 부러워했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명절에 어디에도 가지 않는 행복이 크다는 걸 알았고 친구들도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명절 기간에 맞추어 극장에는 새로운 영화들이 선을 보였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명절이 다가오기 전, 그 주의 주말이 가장 설레고 찬란한 시간이다. 극장에는 홍콩영화가 꼭 걸렸다. 학창 시절에 다음 주중에는 추석이 있고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영화를 꼭 보러 갔다. 아직 명절이 오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동안에 극장에 영화를 보는 그 기분, 그 알 수 없는 행복함. 특히 홍콩 영화광과 함께 홍콩 영화를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이불도 얇은 여름 홑이불에서 조금 두꺼운 이불로 바뀌었다.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와 잠이 들 때 이불 면에 발이 닿는 그 감촉이 너무 좋았다. 창문 너머 마당의 화단에서 풀벌레와 귀뚤이 소리가 들렸다. 요즘으로 치면 그건 백색소음이다. 귀뚤이 소리를 들으며 감촉이 좋은 이불에 발을 비비며 잠이 든다. 꽤 근사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억 속 주말은 늘 조용했다.


지금처럼 매일이 시끄럽고 사고가 나는 대 환장 파티가 있는 추석 연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모든 사건사고와 정보가 매일, 매 시간, 매 분 휴대전화로 확인이 가능하니까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것도 볼 수 있어서 예전보다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예전이라고 왜 고부갈등이 없고, 부부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친한 사람들이 배신을 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렇지만 추석이 다가오는 그 전 주중은 조용하면서 북적거렸다. 음식점에도, 시장도, 마트에도 사람들은 북적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흘러갔다. 꼭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 나오는 고요한 골목길 풍경과 비슷했다. 사람들의 걱정이라고는 그 조용함에 묻혀 평온한 주중과 주말, 그리고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추석이 오기 일주일 전, 이때가 제일 기분이 좋은 주일인 것이다. 마당에 나가면 공기부터 달랐고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열고 공터를 지나면 아이들의 어깨 위에 이미 ‘기분 좋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어릴 때라 그런지 어른들의 어깨에도 그 기분 좋음이라는 것이 내려앉은 모습이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학창 시절에 추석이 오기 전 주말 토요일에는 학교가 끝나면 극장에서 홍콩 영화를 봤다. 성룡뿐 아니라 홍금보, 원표, 유덕화, 이연걸, 주성치, 장국영, 주윤발, 매염방, 양자경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보러 다녔다. 예스마담 시리즈 중에 어떤 버전은 서울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만큼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때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없지만 성룡 영화라고 하자. 추석 연휴에 성룡 영화가 극장에서는 새로 나온 영화가 하고, 티브이에서는 성룡의 지난 영화를 했다. 멋진 일이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없으니 성룡이 티브이에 나오면 기를 쓰고 봤다.


추석 연휴 전에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집에 와서 시원한 감촉의 이불을 덮고 누워서 성룡의 영화를 보면서 잠드는 멋진 기분. 밥을 먹으며 매운 음식에 괜스레 오버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웃으며 에에, 뭐가 그렇게 맵냐며, 별거 아는 것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 잠시의 행복함으로 충전을 하고 또 명절이 끝나고 긴긴 일상을 버틴다. 행복은 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은근히 찾아온다. 반면 불행은 무지막지하게 선명히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던 시기였다.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 친구와 있으면 늘 재미있었다.


추석이 오기 전 주말에 극장에 간다. 극장의 분위기는 좋다. 막상 추석 당일보다 그 전 며칠이 더 기분이 좋은 것처럼 영화 시작 전에 들어가서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무엇보다 좋았다. 오락기도 몇 대 있고 바둑이나 장기를 둘 수도 있고 대기실 앞에는 대형 벽걸이 티브이가 있어서 지난 영화가 계속 나왔다. 매점에서 부라보콘을 집어서 대기실에 앉아서 먹으며 대형 티브이에서 하는 지난 영화를 보는 시간은 행복했다.


역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어색함이 주는 친근함


분명 두근두근하는 성룡 영화를 곧 보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기대와 함께 진정 극장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서 좋다. 2층의 극장 대기실은 작은 창문이 있어서 시내의 풍경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뿐이지만 머리통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와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나와 내 친구는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아니다. 아, 친구는 그래도 수학을 잘했다. 수학만 잘했다. 수학만 잘하고 나머지는 못하기도 힘든데 친구는 수학만 잘했다. 매일 붙어 다니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뭐 그런 친구였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갔다.


드디어 성룡의 영화가 시작한다. 극장의 두꺼운 붉은 문이 열리고 우리는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요즘처럼 지정석이 없다. 그저 빨리 들어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끝이다. 문 앞에 대기 타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쪼르르 달려가서 자리에 앉는데 우리는 그렇게 좋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뭐랄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좋은 자리가 어떤지 모를 때였고 맨 앞줄이 안 좋다는 정도는 알았다. 잘못해서 맨 앞 줄에 앉았다가 고개를 꺾어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앉지도 않았다. 약간은 뒷자리나 아니면 아예 맨 뒷자리, 중간에서 약간 옆으로 치우친 자리 정도에 앉았다. 이런 극장이 불과 12년 전 까지도 있었다. 멀티플렉스가 세상의 곳곳에 도래하고 세상을 잡아먹을 때에도 우리는 오래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상영관보다는 극장이 어울렸던 오래된 극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극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햄버거와 킨사이다 캔을 따서 먹으면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성룡의 수많은 영화 중에 어떤 영화였을까. 무슨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용형호제 2로 하자. 성룡의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유쾌하고 재키 찬이라는 이름처럼 재기 발랄하며 영화 속의 주인공 이름도 재키다. 요즘에 영화를 본다면 같이 나오는 조연들에 대해서도 눈이 돌아갔을 텐데 당시에는 그저 성룡의 아크로바틱 한 몸놀림과 발차기와 수준 높은 액션에 그저 영혼을 몽땅 강탈당해버렸다. 입으로 슈욱 같은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극장을 나오면 주중에 명절이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며 신났다. 그리고 그 기분을 하루 동안 죽 끌고 갔다.


주중의 명절을 기다리면서도 빨리 오지 않았음 하는 마음. 그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에 일 년에 한 번 오는 추석 명절은 정말 기다리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추석을 보내기 위해 어딘가로 가지 않았다. 가족만이 조촐하게 보내는 추석 치고는 또 어머니는 음식 장만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추석 전날에 집 안팎으로 가득 퍼지는 전 굽는 냄새. 그건 순전히 어머니 혼자서 추석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 그렇게 음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 음식을 할 때에는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구워 놓은 전을 홀라당 집어 먹는 맛이 좋았다. 친구들은 전부 큰집이나 타 지역에 추석을 보내러 갔다. 그래서 추석 명절 당일이 되면 외로웠다. 새로 산 청바지를 자랑하고, 그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 2021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요즘 추석 명절도. 외롭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예전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가족들이 있고 명절은 가족들과 보내지만 추석의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이 달라졌다. 그 달리전 것에는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것이 끼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추석의 기분이라는 건 별게 아니다. 외롭지 않은 것, 가족이 모여 있으니까 행복 충만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촉감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요하게 명절은 흘러간다. 하지만 살짝 벌리고 보면 너무 시끄럽고, 서로 열을 내고, 당장 내 생각과 다르면 입으로 독침을 뱉어낸다. 우리 집 앞은 바다가 있어서 명절 연휴 중에 조카와 나가서 컵라면을 하나씩 먹곤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 쓰고, 벗었다가 다시 썼다가, 거리두기와 함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일단 피하게 되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지 않을 것 같다.



명절이면 바닷가에서 컵라면 먹는 우리만의 행사를 코로나 이후 할 수 없게 되었다


성룡도 나이가 들어 한국의 명절에 성룡의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는 일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감염병 시대라서 극장 자체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티브이를 틀면 채널이 백 개가 넘고 영화는 매일 수십 편씩 나온다. 선택의 장애를 겪는 일이 허다해졌다. 그렇다 해도 명절이면 더빙판의 성룡 영화가 공중파를 통해 밤 10시에 했으면 좋겠다. 발에 닿는 기분 좋은 이불을 감촉을 느끼며 성룡의 영화를 보며 밤을 까먹으며 보고 싶다.


아마 무슨 전시회에서 학창 시절의 나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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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3살 정도의 아이와 함께 엄마가 마카롱을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우리 요 아이로 먹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이 시간이 지나도록 내내 머리에 계속 남아있다.


우리가 사물을 의인화한지는 꽤 되었지 싶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아끼는 차를 이 차는,라고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또는 ‘얘는’라고 한다. 비싼 카메라도 보통 의인화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딱딱한 자동차지만 의인화를 시키면 친근감이 들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차도 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이 차’를 ‘이 녀석’으로 바꾸어 부른다. 친구처럼 느껴지며 의인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카메라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먹는 음식도 의인화를 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먹거리를 파는 방송을 봐도 종종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먹방이 대세인 유튜브에서는 음식을 의인화시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다 좋아하는 고로 상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고로 상도 음식 앞에서 그 묘한 목소리로 ‘이 녀석이’라고 한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듣기 싫은 말이 있고 또 괜찮은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음식을 의인화로 말하는 건 괜찮게 들린다. 거부감이 전혀 없다. 마치 원래 그런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 요 아이로 먹자”라는 말은 어떻게 들어도 이상하다. 단순히 말만 들으면 식인종 같은 뉘앙스다.


“요 아이는 좀 맛없을 거 같은데. XX(자기 아이 이름)은 이 아이는 못 먹을 거 같은데”라는 말을, 의인화로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렇게 말을 한다면 정말 귀를 틀어막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정말 만약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한다면 그때 가서는 모두가 음식을 다 의인화하고 있으니 이젠 그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팟캐스트에 신대철이 나와서 했던 말 중에, 굉장히 좋은 곡은 유행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 같은 음악도 자주 방송에 나오다 보면 그건 그것대로 유행이 된다고 했다. 아무리 쓰레기 음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듣다 보면 그 노래는 대중의 귀를 사로잡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건, 다니면서 보면 음식을 얘, 요 아이, 이 녀석으로 불리는 음식은 대체로 조각 케이크, 마카롱,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음식들이다. 그런데 일반 식당, 그러니까 한식이나 분식을 파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김치찌개나 갈비탕을 그렇게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또 딸려 나오는 반찬들,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를 보며 얘는, 요 아이는, 이 녀석이라고 하지 않는다.


별거 아니지만 웃기다면 웃긴 재미있는 현상이고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상추나, 깻잎이나 어묵볶음 같은 음식은 어릴 때부터 먹어와서 학습이 되어서 그럴까. 아이 때부터 엄마에게 음식을 ‘요 아이’로 배우면 커서는 당연하지만 그렇게 부르게 된다. 그게 올바른지 그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보면 그곳, 그 지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백종원은 음식을 소개하면서 음식을 의인화하지 않았다. 백종원의 다른 음식 프로그램을 보지는 못했지만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는 음식을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사람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고 있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이전 방송에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음식을 의인화시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 전문가들의 이런 올바른 현상도 어쩌면 무너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음식을 의인화한다고 해서 그게 이상하지 않게 들릴 것이다. 기준이 없고 선을 정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얘는, 이 녀석은 그간 경험이나 학습 때문인지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음식을 ‘요 아이는’라고 하는 건 어쩐지 참 이상하다.


그래서 어제는 요 아이로 먹었습니다. 요 아이는 입 안에서 탁 터지는 맛이 있거든요. 또 케첩 녀석과 너무나 잘 어울려서, 요 아이들을 왕창 먹었습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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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힘들다가 들어와서 위로를 받는 음식 중에는 뜨끈하게 한 냄비 가득한 찌개가 있다. 나에게 그런 위로의 찌개는 꽁치찌개였다. 찌개는 도심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해 먹기 힘들다. 한국사람이니까 어릴 때 집에서 먹던 찌개가 먹고 싶고, 찌개는 해 먹기 힘들고, 영차영차 노력해서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어쩌면 기운이라는 것이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가버려 막상 한 냄비 해 놓은 찌개를 그저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듯 멍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꽁치찌개는 다르다. 꽁치찌개는 나의 자취생활의 동반자와 같았다. 싱크대 선반에 라면은 없어도 꽁치통조림이 일렬로 차렷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꽁치통조림 그 자체로 모든 맛이 이미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에 끓는 물에 김치와 함께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끝이다. 힘들지 않은데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마법을 볼 수 있는 찌개가 꽁치찌개다. 꽁치는 먹고 싶고, 구이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꽁치통조림으로 찌개를 먹고 나면 어느 정도 해갈이 된다.


나는 꽁치보다 꽁치통조림을 좋아했다. 꽁치통조림은 자취할 때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한 식량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 같은 모습으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와서 꽁치통조림을 따서 보글보글 김치를 넣고 끓여서 후후 불어 먹었다. 그러면 조금은 기운이 나고 위로가 되었다. 마치 세상이 폭삭 무너져 아포칼립스가 도래했을 때 내가 사는 집의 주방에는 꽁치통조림만은 가득 들어 있어서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자취할 때는 아이들이 놀러 와서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때 꽁치통조림을 내놓으면 아이들이 전부 싫어했다. 나는 꽁치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먹는 게 맛있는데 아이들은 비린내 때문에 우욱 했다. 그 비린맛이 좋아서 꽁치통조림을 그렇게도 먹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비린맛을 찾지 않지만 있으면 곧잘 먹는다. 예전에는 국밥도 꼬릿 한 냄새와 맛이 나는 시장통 국밥집을 찾아가서 먹곤 했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린이 입맛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특히 민초가 맛있단 말이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케첩을 뿌리고, 치즈를 빵과 과자 사이에 넣어서 먹고, 민초를 오물오물 먹곤 한다. 과자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인체의 신비다.


그런데 이렇게 꽁치로 찌개를 끓여 먹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먹나. 우리나라에도 통조림이 많지만 다른 나라에도 통조림 음식이 많을 텐데 영화 같은 데서 꽁치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끔 꽁치김치찌개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만만 가도 취두부가 통조림부터 길거리, 편의점에서 대중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꽁치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꽁치통조림은 개인적으로 정말 최상의 음식이다. 카레에 넣어도, 물과 김치를 끓이면서 넣어도, 그냥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맛도 좋다. 통조림 속의 꽁치는 또 된장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된장을 넣고 김치 넣고 통조림을 따서 한통 넣은 다음 팔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냄새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한 한창훈 소설가의 에세이가 있는데, 일상이 허기질 때 꽁치통조림을 따라, 그리고 꽁치를 라면에 넣어라고 하고 싶다. 라면수프가 끓어오르는 냄새와 꽁치가 뜨겁게 익어가는 냄새가 좋다. 라면이 그렇듯이 부글부글 끓는 사운드 역시 좋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이 만나서 좋은 맛을 낸다. 꽁치 찌개는 나의 소울푸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 위로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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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 - 젊음의 코드, 록


임진모의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에 한 권의 책이다. 제목만 봐도 눈에 딱 들어온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제목이 록을 좋아하는 사람을 잡아끈다.


우리가 젊음을 언제까지다,라고 지정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하고, 또 여러 방송 같은 곳에서 젊음이란 몇 살까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제목을 보면 얼추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것은 록은 젊음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건 록을 듣고 있다면 그. 자리, 그 시기, 그 나이가 젊음이라는 말이다. 임진모 형님도 젊음을 죽 끌고 갈 수 있는 이유가 록을 좋아하고 듣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이라는 것은 단지 나이나 외모 같은 표층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건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주로 소설을 읽고 또 책을 거의 새것처럼 읽는 편이다.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는 스타일이 아닌데 임진모 형님의 이 책은 줄을 죽죽 그어가며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대략 2005년도쯤인데, 아무튼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스파이더맨, 에릭 사티, 하루키, 존 레넌, 커트 코베인, 에밀리 디킨슨, 릴케, 헤세, 카프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전부 외톨이라는 것. 이들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외톨이로 외롭게 작업을 했다. 스파이더맨은 좀 다른 의미지만. 외톨이라는 건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타고나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미쳐서 환장하는 록을 발산하는 록 그룹 역시 외톨이처럼 음악을 만들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헤세는 고독한 사람에게서 문화가 탄생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독자적인 삶이나 독자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일생 동안 군중의 일원으로 살고 행동한다는 것, 이런 사실을 그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개별자로서의 개성과 삶을 소명으로 여기고 감당할 능력이 있는 소수에 속하며, 군중과 달리 섬세한 감각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더 자세하게, 더 예민하게, 더 풍부하게 뉘앙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군중과는 다른,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더 풍부하게 많은 것을 느끼는 외톨이들이 문화의 제1선에서 창작과 창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임진모 형님도 있다. 이 책은 록의 시작부터 지금의 헤비 한 메틀까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록 마니아들은 홀딱 빠져서 읽게 된다.


록의 정신, 록 스피릿은 바로 ‘저항’이다. 그래서 사화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부모세대에 반항을 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대체로 록을 접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 중 반 이상은 록이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천사보다는 악마 쪽에 더 기운다. 보수보다는 진보에 가깝고 지키려는 쪽보다 부수고 변화를 꾀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항상 변화의 바람 앞에는 록이 시대를 같이 해왔다.


이 책에는 록의 본거지인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한국 록의 시작점과 한국 록의 정신 그리고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와 양희은부터 지금까지(라고 해봤자 15년 전이다)의 한국 록에 대한 계보와 이해 그리고 록의 사상 같은 것들이 임진모의 손가락 끝에서 탄생되었다.


책과는 별개로 ‘물 좀 주소’의 한대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격인 물리학자, 그것도 핵물리학자인데 실종이 되었다. 아직도 이유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조부는 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실종이 되고 한대수가 16살이 되던 무렵에 미국 FBI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고 한다. 한대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면 검색해서 찾아보면 된다. 한대수의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원데이'를 한 번 들어보자. 89년 곡인데 2015년에 뮤직비디오로 다시 태어났다.


한대수 형님도 록을 하고 있으니 젊은것이다. 한대수 형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대수 형님의 예전, 모든 노래들을 들으면 그렇다.


록이 가장 전성했던 시기는 60년대와 7, 80년대였다.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산업혁명이 나라 이곳저곳에서 일어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스스럼없이 당겼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반항, 저항 그리고 발광은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시작점은 미국의 주다스 프리스트, 영국의 롤링스톤즈 같은 록의 전설이 된 그룹들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사람들을 몰고 다녔고 음악으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총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가사에 시를 입히고 철학을 노래한 포크록의 보브 딜런, 조안 바에즈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한때 뜨겁게 열애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록이 상륙을 한다.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혁명이 빨리 일어난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그들과 함께 미제 문화가 들어온다. 그중 하나가 음악인데 신중현과 엽전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렀던 패티 김을 선두로 해서 위에서 말한 포크 록의 한대수 등이 저항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어머니 영향으로 나도 패티김의 노래를 줄곧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패티김의 공연을 세 번 봤다. 언제 한 번 썰을 풀어 보겠다.


책의 중반부터 헤비메탈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끝까지 간다. 이후로는 헤비메탈에 대한 임진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 '아웃 월드'의 캘리 카펜터가 있는데 뭐랄까, 우리는 흔히 고음 하면 쉬즈 곤을 생각하지만 캘리 카펜터의 목소리는 그것을 넘어버린, 미칠듯한 고음으로 뇌를 터지게 만드는, 초고음 외계 물질 테러 같은 목소리를 내뿜는다. 캘리 카펜터는 인간 형상을 한 외계인이라는.


일본으로 가면 극악의 샤우팅을 하는 그룹이 있다. 에니메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바로 마징가제트를 록 버전으로 부른 악마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다. 극렬하고 과격한, 아니 이걸 넘어서는 극악무도의 샤우팅을 한다. 무자비한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의 페인팅은 그룹 키스를 보는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지옥이 몸에 있다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듯 노래를 부른다. 마징가제트를 이렇게 과격하게 부르는 건, 마징가가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에반게리온이나 게놈처럼 하나의 크리쳐 같은 개념으로 마성이 분출하는 마신이다. 그러니까 에반게리온처럼 각성을 하면 마성이 깨어나 악마가 되는 게 마징가다.


아무튼 이런 헤비 한 록도, 포크 록도, 그리고 펑크 록을 비롯한 모든 록을 들으며 좋아하는 건 젊음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시끄러운 록을 들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영애의 ‘여울목’을 들어 보자.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 간다


가사의 한 부분인데 시다. 시. 블루스적인 한영애의 목소리가 시를 만나 슬픔의 향을 풍긴다. 임진모 형님이 이 노래를 찬양했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어린 시절에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 속의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첩을 뒤지다가 부모님의 사진을 본다. 옷도 이상하고 화장도 과하고 머리고 촌스럽고. 큭큭 거리며 웃다가 문득 사진 속의 부모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임을 깨닫고 생각에 잠긴다. 내 부모도 나와 같은 시기를 거쳤으니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 모든 시간을 거치고 헤쳐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다는 걸 느끼고 인간의 삶에 평범한 삶은 없다는 것과 위대하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마냥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뚝딱 해결될 줄 알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조그만 움직임에도 선뜻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온통 정글이고 겁나는 것 투성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나를 배신하고 만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유가와’가 옆에 있다면 무심하게 이랬을 것이다. 문제에는 분명히 답이 있지, 그렇지만 그것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부터 너는 몇 개든 그런 경험을 하겠지, 그건 나도 똑같아, 그렇지만 초조할 필요는 없어, 우리들 자신이 성장해나가면 분명 그 해답에 도달할 것이다, 네가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도 같이 생각할게, 함께 고민해 나가는 거다, 잊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


유가와의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면 목놓아 울 수도 없다. 책임이라는 막중한 무게가 눈물도 쏙 들어가게 만든다. 어른이 될수록 ‘약해짐’에 가까워진다.


시간 5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매들렌 렝글’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약점이 없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약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한영애의 여울목을 와삭 거리는 낙엽이 많은 계곡에서 들으면 좋다는 임진모는 이 노래를 한없이 찬양했다. 발 밑으로는 색이 죽은 낙엽이 가득하여 쓸쓸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찬란한 색으로 물든 단풍과 파란색 물감을 부어 놓은 하늘이 있다.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다. 그 어른은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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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1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수님의 가족사는 교관님 글에서 처음 읽는데, 충격적이네요....

교관 2021-09-16 12:14   좋아요 0 | URL
한대수가 직접 ㅂ밝힌 일화도 있구요, 또 많은 곳에서 자세하게 다뤘거든요.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어떻든 열심히 원데이 같은 곡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디오는 계란찜과 비슷하다. 너무 해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또 하면 맛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계란찜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괜찮은 삶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라디오는 매일 나오지만 라디오보다 더 나은 플랫폼이 많아서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그래도 라디오를 매일 들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라디오 따위 듣는 사람들이 없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듣고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너와 나, 우리의 사연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하면서,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고 웃고 눈물을 흘린다.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에서 신나는 일 중에 하나는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되는 일이다.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가 되는 일을 나는 몇 번 겪었다. 일단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선물이 전혀 없는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선물도 날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 정희에서도 사연이 소개가 되어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파우치 세트가 온 적도 있었다. 라디오는 MBC FM포유를 죽 듣는다.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다. 라디오는 집중해서 리스닝하기보다 그저 히어링 하는 것이다. 디제이들이 오전 시간에는 차근차근 새록새록,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톤으로 사연들을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준다. 오히려 규디가 하는 오전 7시의 굿모닝 FM이 무척 소란스럽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깨우고 출근과 등교를 돕기 위해서 시끄럽다.


9시부터 11시까지 지디가 하는 라디오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가 하는 골든 디스크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듯 조용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정오를 넘어가면 으랏차차, 우당탕탕, 하며 열심히 라디오를 진행한다. 정말 들어보면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는다. 회사원처럼 하루에 5시간, 6시간씩 디제이를 했다면 아마도 바로 병원행일 것이다. 음악과 소개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4시에 하는 샵디(이지혜)가 하는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점심 먹고 노곤해지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난리난리 대환장이다. 그때가 가장 나른하고 잠이 오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샵디는 자신의 골수까지 뽑아낼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오버해서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 들어보시길.


그래서 요즘 라디오 디제이들은 전문 디제이들은 없다. 김기덕이나, “안녕하쉽니꽈, 이 종 환입니돠”라며 젊잖게 시작을 하며 전문 음악 소개 방송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방송은 새벽으로 가거나 거의 없어졌다. 자정을 지나면서 음악평론가라고 해야 할까, 아직은 좀 웃긴 부분을 맡고 있는 배순탁, 음악 작가 신혜림,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각각 시간별로 해서 새벽 3시까지 한다.


이제는 라디오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방송으로 바뀌어서 전문 디제이보다는 가수나, 코미디언이 하는 경우가 다분해졌다. 컬투의 생명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 역시 이상하다거나 별로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래에는 라디오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사연을 보내는데 여름이 오기 바로 직전에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소개가 되었다.


지디(정지영 디제이)가 하는 오전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 노래 세 곡을 들려주는 코너에 사연을 보내면 소개가 되면서 신청곡이 세 곡이나 나온다. 내가 보낸 사연은 대충 위에서 말한 것처럼 라디오 디제이들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디제이들도 사람이라 일상에서 힘들거나 아픈 일들이 있을 텐데, 라디오 부스에만 앉으면 사연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매일 웃고 기뻐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디제이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청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디제이들도 청취자가 힘든 사연을 보내듯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청취자들이 고민을 듣고 위로를 해주고 방법을 같이 찾으면 배철수처럼 긴긴 시간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내용의 사연이었다.


지디가 사연을 소개하면서 이런 사연은 처음이었다. 디제이들을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그리고 댓글창에서도 사연이 좋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신청한 노래 세 곡이 나왔다.


정오가 되면 나는 지역 방송국의 정희(정오의 희망곡)를 유튜브로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과 방송에 참여를 한다. 지역 방송 정희에는 늘 조촐한 멤버들이 시간만 되면 온다. 그래서 뭐랄까 대체로 친구들 같다. 그리고 사연을 보낸 사람이 식당을 하면 그곳으로 가서 우연을 가장하여 서로 만나기도 한다. 이 조촐한 지방의 정희에 참여를 하면 사연이 매일 소개가 된다. 사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한 줄의 댓글과 교관님은 이런 노래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루에 두 번도 소개가 된다.


이게 좀 재미있고 웃긴 건 매일 이렇게 두 시간씩 조촐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방송에 참여를 하니까 실제로 만나도 마치 꼭 늘 만나던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라디오에 이름이 매일 나온다. 메이저 방송은 사연 소개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지역 방송은 경쟁에서 덜 치열해서 그런지 꽤나 가족적인 분위기다. 또 그 나름대로의 소소한 재미가 있다.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동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 쉬는 날 오전에 창을 미미하게 투과하는 빛 때문에 잠에서 깨다 다시 잠들고, 그런 반복이 주는 안정감 속에 라디오의 소리가 그 사이를 조용하게 파고든다.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나와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픈 내가 부딪히는 그 사이를 라디오는 아무런 의심 없이 평온하게 이어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태어나는 순간 노래를 만든 이의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것이라, 빛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색채처럼 만든 이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는 계란찜처럼 부드럽다.


예전에는 참 많이도 사연을 보내고 글을 올렸는데 언젠가부터 하지 않게 된 라디오 사연. 그러다가 문득 며칠 전에 사연을 한 번 보냈는데 그 사연이 아침의 평온한 공기 틈을 가르고 나왔다. 위로와 공감, 그 흔한 말도 디제이의 입을 빌려 스피커를 통해서 듣게 되면 또 조금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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