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물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대만에서 만들어낸 청춘물이다. 그런데 기기괴괴한 청춘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나 유령이 나오는 판타지물이 가미된 거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초현실적이다. 몹시 현실적인데 아주 초현실적이다. 파릇파릇 푸릇푸릇한 청춘물을 잘 만드는 대만인데 또 이렇게 기기괴괴한 청춘물도 꽤 재미있다.

A24에서 만든 아시아 버전 같은 영화다. 주인공은 헌책을 당근 하면서 책을 받으러 온 여성에게 반하게 된다. 여자의 요구는 뽁뽁이에 싸서 달라는 것.

주인공은 현장에 나온 예쁜 여성에 반하지만, 책을 받고 인사만 하고 그냥 가버린다. 그 뒤로 주인공은 헌책을 계속 올린다. 그리고 여성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데이트하게 되는 사이가 된다. 여성은 주인공에게 나는 꽤 까다롭고 몸이 좋지 못하여 채식만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오케이 함으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첫 데이트에 영화를 보러 가는 대신 지구를 살리자는 전단지를 돌리며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물에 녹지도 않으며 꽁초 속 미세 플라스틱 때문에 지구가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마냥 재미있는 주인공.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회사 사장 집에서 저렴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애인은 자기 집으로 들어와서 같지 살자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동거한다. 단지 규칙이 있다.

침대에는 항상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누울 것, 회사에서 일할 때 두 시간마다 보고 할 것, 내가 말하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사진을 찍어서 라인으로 보낼 것, 하루 동안 사용한 영수증을 보여줄 것, 무엇보다 종교적인 이유로 결혼 전까지는 몸에 손을 대지 말 것.

규칙이 까다롭지만, 주인공은 괜찮았다.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같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데다 성적 욕구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고 두 시간마다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보고 하는 것 역시 주인공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여자친구가 항상 밥을 해주었는데 전부 채식이라 그게 별로였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주인공 친구는 그렇게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중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이 모든 것이 너를 미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듣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말처럼 애인의 간섭은 주인공을 점점 조여 온다. 그러다 거래처에서 한 사람이 오는데 고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여자친구에게 점점 거짓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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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하고 껄렁껄렁한 고리대금업자의 심부름이나 하면서도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두목이 때려주라는 것도 잘 못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농담으로 표현을 하는 골목의 어두운 쓸쓸함과 벽난로의 장작이 피어나는 따뜻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남자, 록키 발보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태리에서 온 종마 록키 발보아. 돈을 걸어 내기를 하는 3류 복서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70년대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성지이며 그 해가 독립 200년이 되는 해였다.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한 슈퍼스타 크리드는 화젯거리를 찾아서 록키 발보아를 지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과 인간의, 슈퍼 복서와 삼류 복서의 시합이 시작된다.


록키는 삼류 복서로 내기를 위해 시합을 뛰기 때문에 여기저기 몸이 성할 날이 없다. 나이도 젊은데 벌써 60전을 뛰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권투의 포즈도 없고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복서다.


록키의 말투는 배운 것 없고, 배우기도 싫고, 나는 몸으로 되는대로 먹고살아,라는 말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투박한 말투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밀해진다.


그러다가 마지막 눈두덩이 다 터져 에이드리안을 부르짖을 땐 그 말투가 사랑스러워진다.


록키는 동물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순수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록키에게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 위해 쓸쓸한 집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반기는 거북이와 금붕어에게 농담 연습을 한다.


어둡기만 한 필라델피아 골목은 록키의 앞날과도 같다. 하지만 록키는 친구의 여동생을 악의 소굴에서 데리고 집으로 바래다준다던가, 주위를 돌아보고 사람들을 챙긴다.

그리하여 시합을 위해 새벽마다 조깅을 할 때 먹고살기 힘든 시장 상인들이 록키에게 과일을 던져준다. 이 장면은 당시 실제로 무명 권투 선수가 매일 훈련을 하는 줄 알고 과일을 던졌는데 그대로 영화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에이드리안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할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이스링크를 두 사람이 타는 장면에서 낭만이라고는 1도 없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작을 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 판정승을 한 크리드. 사람들은 록키에게 제시합을 할 거냐고 묻는다. 록키는 미쳤냐고 대답한다.

록키의 얼굴이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것처럼 될 때 에이드리안의 마음은 깨진다. 에이드리안의 얼굴을 비추는 그 장면이 압권이며 마지막 에이드리안을 부르며 그녀가 달려와 안겼을 때 박수치게 된다.


몇 번을 봐도 좋은 영화. 지치고 쓰러질 때 록키의 주제가를 들으면 어김없이 저 필라델피아 광장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양손을 높이 들고 싶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앞도 보이게 될 것만 같다. 록키의 주먹이 슬픈 건 감성적인 삶이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록키의 주먹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주먹을 펴서 에이드리안을 꼭 안아 주었다. 


요즘처럼 잠 못 자고 지치고 힘들 때 눈 속의 키세스 시위대를 보면서 이태리 종마 록키 발보아가 떠올랐다.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그렇게 처맞고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맞고 또 맞아서 쓰러질 것 같지만 끝까지 버틴다면 지더라도 그게 이긴 것이다. 



록키의 명장면 https://youtu.be/eZquhQ4bLqo?si=JbWtRl3QH02u8X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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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로 일요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 속에는 당시에도 내몰리는 청춘들의 보이지 않는 휴일의 끝없는 결락과 우울 그리고 불안을 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68년에 만들어진 영환데 프랑스 누벨바그만큼 모호하고 비극적이며 우울하다. 그리하여 당시에 상영 금지처분을 받았다.


영화는 어둠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00년대에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


서울의 복잡하고 문명의 건물들이 빼곡한 곳에서 돈이 없어 갈 곳 없는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갈 곳이라곤 남산도서관 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공원이나 육교 같은 곳뿐이다.


돈이 없는 허욱은 지연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린다. 감독은 장면들의 화면 전환,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과 신시사이저의 기괴한 배경음악으로 허욱의 우울의 극치를 표현한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가 미래인 허욱. 일요일이란 오전에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지만 밤이 올수록 초조해지는 이상한 날이다.


일요일마다 자연을 만나는 허욱은 일요일이 너무 기다려지지만 일요일이 오는 게 싫다. 빈털털이라 지연을 다방에도 데리고 갈 수 없다.


허욱이 돈을 빌리는 동안 모래바람을 맞으며 허욱만을 기다리는 지연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보여주는데 묘하게 우울하고 아주 불안하다.


허욱이 한달음에 달려 병원으로 지연의 수술 결과를 보러 오지만 결국 눈을 뜨지 못한 지연. 허욱은 휴일이면 축축한 추억만을 잔뜩 끌어안고 암울하고 외롭게 보낸다.


감독은 지연과 행복했던 지난날을 보내는 추억을 편집하며 보여준다. 추억이 가득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허욱은 미친 듯이 떠돈다.


전철을 타지만 목적지가 없는 허욱. 추억 속 지연의 아름다운 미소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만추와 여로 같은 영화로 유명한 이만희 감독의 영화들은 60년대지만 인간을 담고 있어서 재미있다. 아주 짧게 살다가 고인이 되었지만 영화는 꽤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다 볼 수가 없다.


짧게 살다 고인이 된 천재 감독 중에는 대부의 프란시스코폴라 감독과 같이 영화 공부를 한 하길종 감독이 있는데 바보들의 행진이 유명하다.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이만희 감독은 이혜영의 아버지고,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 고교얄개에서 정윤희의 남편으로 나온 하명중으로 지금도 활동 중이다.


오래됐지만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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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샤워를 왜 두 번이나 해? 나는 한 번 한다. 샤워를 거의 매일 해서 한 번이면 족하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므로 등에 땀을 흘린다. 그건 여름에는 당연하고 오늘처럼 이렇게 추운 날에도 등에 땀이 난다. 겨울이면 조깅할 때 입는 체육복이 두꺼워서 달리기 시작하고 10분 후면 몸이 후끈거리고 그 이상이 되면 등에 땀이 난다. 그리고 집에서 샤워한다. 


거의 매일 달리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샤워를 한다. 누군가는 샤워를 두 번 해야 한다는데 나는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 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기 십상이고 물도 아깝다. 물이 아까운 건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티브이나 영화에서 샤워기를 틀고 놓고 딴짓하고 있으면 그게 꼴을 보기 싫어서 다른 곳에 돌려 버린다. 고독한 미식가 씨가 어떤 횟집에서 먹는 편에서도 주인이 물을 계속 틀어놔서 아내가 파파 오미즈라고 한다. 그러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물을 끈다. 


그래서 물이 아까워서 샤워도 금방 끝낸다. 물을 뿌리는 시간은 비교적 짧다. 뜨거운 물을 한참 몸에 뿌리는 일이 없다. 비누칠하는 시간이 훨씬 길고 물로 재빠르게 씻어버린다. 이건 우리 집 물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도 손에 비누칠할 때는 물을 잠근다. 손에 비누칠해서 문댄 다음에 물을 틀고 씻어 낸다.   

  

물이 아깝다고 느끼게 된 건 일 하는 건물의 내가 있는 층의 화장실에는 비번이 걸려있다. 비번이 달리기 전 사람들이 오가며 사용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왜 자기 것이 아니면 막 사용을 할까. 왜 변기 안에 신발을 넣고, 대변을 밖에 싸 놓을까. 무엇보다 물을 틀어 놓고 왜 그냥 나올까. 물론 그런 사람은 적다. 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암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적은 수가 화장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몇 달 하지도 못하고 다 도망을 가버렸다. 가장 짜증이 나는 건 화장실 수도세와 전기세는 같은 층의 세입자들이 나눠 내는데 이게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번을 달았다. 비번을 달고 나서부터 화장실은 눈에 띄게 깨끗함을 유지했고 물세도 적게 나온다.     


화장실이 멈추는 순간, 이 세상은 지옥으로 바뀔 거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오늘도 조깅을 하면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을 봤다. 집집이 화장실에 있고 물을 사용한다. 화장실과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화장실은 화장실로 생명은 끝이다. 


사람들이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건 ‘눈먼 자들의 도시’다. 사람들이 어느 날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들은 바이러스 때문인지 정부에서 시설에 수용한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서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 점점 시력이 상실된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다가 시설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나 정부 관계자들 역시 시력을 상실한다. 안내를 해 주는 사람이 없이 시설에서 화장실에 가는 그 거리와 시간이 너무나 길고 험하다. 결국 생리현상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복도나 방에 싸버리고 만다. 결국 시설은 똥 밭이 된다. 그 지독한 냄새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그 냄새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다. 


여러 끔찍한 아포칼립스 영화가 있지만 이만큼 처절하며 실제 같은 기분이 드는 공포는 없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세계에서 권력을 쥐고 잘 지내는 사람은 애초에 시각장애가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선이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느닷없이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게 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물 부족 현상으로 권력을 가진 자는 힘이 더욱 막강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제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이다. 인간의 몸은 수준으로 되어 있고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다. 바로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어간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화장실의 물을 아껴 쓴다. 나 하나 아껴 쓴다고 해서 뭐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물이 줄줄 새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비가 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기에 물이라도 아껴 쓰려고 한다. 정말 내가 살아있는 동안 물이 부족한 사태가 온다고 생각하면 아 그건 정말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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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더 로드는 영화로도 있다. 연기 잘하는 비고 모텐슨과 미국판 ‘렛미 인’의 코디 스밋 맥피가 아빠와 아들로 나온다.


더 로드 속 세상에서 아빠와 아들은 휑하고 삭막하고 바람만 있는 곳을 살아간다.


이 세계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식량고갈로 인육을 먹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것과 신발을 구해야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먹을 걸 구해야 하는 일이다.


먹을 것이 소멸해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본능의 최우선 감각을 심각하게 건드리는 일이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커트 같은 것을 몰고 오로지 식량을 찾아서 어디든 헤맨다. 그러다가 총을 든 갱단에게 붙잡히면 여자는 강간당하고 먹히고 만다.


같은 사람, 예전에 이웃집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먹히고 만다. 이 세계에서 타인은 그저 식량일 뿐이다.

그 세계에서 아빠와 아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찾아간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아빠는 곧 자신도 죽을 거라는 걸 안다.


자신이 죽는다면 아들, 이 어린 소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빠가 멸망한 지구에서 식량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아빠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지만 이 멸망한 지구에서 아들을 통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영화 속 대사도 소설과 비슷하다. 아빠는 멸망한 세계에서 아들에게 줄 선물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망한 이 세계에서 아들과 아빠에게 기쁨을 주는 건 현실에서 멀리하던 치토스나 스팸 같은 가공식품이다. 우리가 그토록 몸에 나쁘다고 하던 것들.


소년은 난생처음 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음을 보여준다. 소년은 트림을 한다. 이 장면이 너무나 좋다.


아주 맛있어, 아빠도 좀 마셔

나중에 아빠는 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대비한다.


소년은 아빠에게 자꾸 묻는다.


우리는 안 먹을 거지? 아무리 배고파도?

그래, 그럼.라고 아빠는 대답한다.

우리는 착한 사람인가요?

그래 우리는 착한 사람이야

후에 아빠는 죽는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한때 신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히면 이끼 냄새가 났다. (중략)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린다.


소설 속이지만 아빠는 아들을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인육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용산의 구중궁궐에 기어 들어간 멧돼지는 마치 사람들을 전부 잡아먹으려 하고 서로 죽이려 들게 만든다.


소설 속 아빠의 모습은 숭고를 넘어 신비하기까지 하는데 현실의 저 멧돼지는 정말 멧돼지로 보인다. 5000년 역사에 이런 미친 멧돼지 같은 인간이 대통령을 하고 있었다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온 국민을 잠 못 들게 하고 병들게 하다니 너무 화가 난다. 

이게 뭐야! 국가는 국민이 부여한 힘을 권력 앞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사정없이 행사하는 모습에 빡침이 시게 올라온다.


공수처의 무능, 최상목의 무책임이, 무지의 멧돼지를 더 살찌우고, 국민들은 오늘도 밤잠 설치게 만드는구나.


술에 절어서 뇌의 여러 구간이 망가져서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배설하듯 나온다.


끌어내리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조현용 앵커가 지난번에 국민이 뽑았으면 국민이 뽑아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쉽지 않네.


0. 몇 퍼센트로 당선된 멧돼지 때문에 이게 뭐야. 투표 잘해야 한다. 오겜 봤지? 투표 잘 못하니까 어떻게 돼? 사람의 죽음에도 무감각해지잖아. 이태원 참사에서도, 오송참사에서도, 이번 항공기 참사에서도 저들은 무감각하다.


O 찍은 사람들의 눈빛 봤지. 광기에 사로잡혀서 사람들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아.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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