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AR


하루키는 노몬한 전쟁에 대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정말 암담한 심정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러하리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오래전 오늘 우리도 일본의 침략에서 독립을 한 날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름도 한 번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죽어갔을까.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보면 죽음이 대량 생산된다. 우리가 매일 만지고 보고 먹는 것들이 대량 생산되는 것들인데 죽음의 가장 좋은 방법이 대량 학살이다.


차별이라는 말도 사라져야 하는 말이지만 무차별 역시 없어져야 하는 말이다. 대량 생산된 미사일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우크라이나의 어린이가 사망한 사진이 기사에 올라왔다. 너무 암담하다. 따분하지만 고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고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없었으면.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유튜의 ‘원’을 크게 틀어 놓았다.


보노와 메리 제인 블라이즈가 부른 원 https://youtu.be/ZpDQJnI4O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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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컵라면만 한 게 없다. 날이 헤실헤실 거리며 바람을 동반하여 하늘이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보일 때에는 고민할 필요 없이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몸이 국물을 갈구할 때 이것저것 엄청난 것을 떠올리려 해 봐야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고민 없이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으면 그만이다. 빠르고, 간단하고, 무엇보다 맛있다. 근래에는 컵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지만 컵라면에도 계란을 하나 톡 넣어서 먹었었다. 겨울에 컵라면을 먹을 때는 계란을 하나 넣어야지. 끓이는 라면과는 다른, 계란이 풀어진 맛이 좋았다. 매운맛이 싫어서 컵라면을 더 그렇게 먹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 벤치에 앉아서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의 겨울은 분명 고드름이 꽁꽁 열리는 추운 겨울일 텐데 기억 속에서는 따뜻한 겨울의 모습이 가득하다. 아직 방학 전이었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후후 불어서 웃으면서 컵라면을 맛있게도 먹었다. 걔의 이름은 남자 이름 같아서 늘 놀림을 받았는데 집이 한 동네에 있어서 같이 등하교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에도 컵라면만큼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뜨거운 물에 데쳐진 후레이크를 서로 보이며 낄낄거리던 겨울이었다. 우리의 손에는 작은 컵라면이 있었다. 초4부터 아바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데 컵라면 옆에는 아바의 치키티타가 흐른다고 생각을 하자. 겨울이지만 해가 쨍하게 떠 있고 바람이 없어서 포근했다고 하자.


아바의 노래를 듣게 된 건 순전히 특별 활동하는 부서의 선생님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형도 없고 누나도 없으니 내가 팝을 자연스럽게 듣게 된 건 아무래도 그 선생님 덕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 동화부라고 하는 특별활동반이 있었다. 나는 4, 5, 6학년 내내 동화부였다. 동화부라고 해서 특별히 동화를 배우거나 파고는 건 아니고 그냥 모여서 이야기하고 논다. 좋게 말해서 동화 이야기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늘 다른 길로 새 버린다. 동화부 선생님은 늘 팝을 들었고 우리에게 팝 가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팝송도 가르쳐 주었다. 이를테면 ‘워스~ 돈 컵이지 투미~’ 같은 노래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선생님은 뜨거운 물을 끓여 우리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이라는 게 각자 하나씩 들고 먹을 뿐인데 마치 다 같이 끓인 라면을 떠서 먹는 것처럼 친밀감이 있었다. 교실의 난로 주위를 빙 둘러앉아서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4, 5, 6학년 때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았다. 학교가 재미있었다. 학교가 재미있다니.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먼지처럼 보내서 그렇지 또 고등학교 시절에도 꽤나 드라마틱하게 보낸 것 같다.


5학년 때 담임은 싫었다. 담임은 장난감이 많은 나에게 자신의 어린아이들에게 줄 거라며 이사할 때 버리려거든 장난감을 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아버지에게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버리지도 않을 거면서 내 장난감을 5학년 담임에게 꽤나 주었다. 나는 미술작품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담임은 나를 부려 먹기도 했다. 자신의 어린아이들 숙제 같은 것도 같이 만들기를 바랐고 그림도 같이 그려주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교실에 와서 담임의 부탁으로 커튼을 갈아주기도 했고 손재주가 좋은 아버지는 교탁이나 책상 같은 것들도 손봐주었다. 나는 뒤에서 뾰로통하게 서 있었다. 어린 눈에도 담임은 밉상이었다.


무엇보다 담임이 가장 밉게 보일 때가 내가 컵라면을 먹을 때 나의 컵라면을 꼭 한 젓가락씩 먹었다. 계란이 들어있는 그 부분에 젓가락을 넣어서 면과 계란을 가져가서 먹었다. 내색은 못했지만 담임이 아주 싫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아니면 나는 늘 동화부에 가서 동화부 선생님과 아이들과 놀았다. 그곳에는 미운 사람도 없고 팝송도 있고 내가 컵라면을 먹을 때 한 젓가락씩 뺐어 먹는 사람도 없었다. 겨울이면 일주일에 몇 번은 컵라면을 먹었다. 동화부에서는 여러 가지 것들을 했다. 방패연을 만들어서 날리기도 했고, 학교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같이 다녔는데 그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했다.


동화부 교실 하면 늘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창으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빛이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컵라면을 물에 붓고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이 아주 좋았다. 컵라면의 맛있는 냄새가 동화부 교실에 퍼지고 그 애와 컵라면 3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이 정말 기가 막힌 시간이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그 애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은 기억이 난다. 컵라면의 뚜껑을 열기 직전까지의 그 시간. 그리고 우리는 호로록 거리며 맛있게 컵라면을 먹었다.


요즘은 컵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지 않는다. 대신 오징어도 넣고, 치즈를 넣기도 하고, 김치를 넣어서 휘휘 저어서 먹기도 한다. 조깅을 하다가 편의점을 지나치면 그곳에 앉아서 초등학생이 컵라면을 세 개를 놓고 먹고 있는 모습은 왕왕 본다. 그냥 컵라면, 마라탕 컵라면, 불닭 볶음면 컵라면, 이렇게 3개를 먹더라. 편의점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세계가 격하게 갈라졌다. 나이가 든다는 건 컵라면 하나 정도를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면 배가 부르다는 것이다. 거기에 밥까지 말아먹으면 뒹굴뒹굴하게 된다. 나도 한 번에 세 개의 컵라면을 꼭 먹으리라.


사랑의 달콤함을 알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길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터무니없이 짧다고 했는데, 컵라면도 주로 먹는 것만 먹게 된다. 수많은 컵라면을 다 먹어보기에는 나의 인생이 짧아도 한참 짧다고 생각된다.

또 먹고 싶네 컵라면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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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유튜브 자막, 근래의 일본 드라마에도 자막에 ~~ 하달까, ~~ 한달까, 같은 말이 많이 보인다. ~~ 하달까, 같은 말을 분명 몇 해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파란만장하달까, 이번 주는 어마어마하달까, 뿌듯하달까 같은 말이 여러 곳에 쓰이고 있고 또 대체로 다 어울린다. 약간의 의문스럽지만 긍적으로 말을 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전혀 알 수 없는 말에도 사용된다. ‘아방 아방 하달까’ ‘슭이한달까’ 같은 말은 큭큭큭 웃음이 나오면서 무슨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하달까, 이 말을 내가 처음 본 건 몇 해 전에 사진동호회 사이트에서였다. 내가 올려놓은 사진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는데 ‘달달하달까’라고 되어 있었다. 세상의 변화가 많고 그 폭이 있기 때문에 그 변화의 폭 안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 하달까 같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에서 많이도 쓰이고 있어서 지금은 “오늘 몸이 상쾌한 건 운동 때문이랄까”라고 한 번 내뱉어야 할 것만 같다.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위 사진은(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연출한 사진이다. 그때 한창 사랑, 반가움, 그리움을 주제로 사진을 담고 있을 때라서 그에 맞는 사진을 찍고 다녔다. 둘 다 여자이고 한 명에게 남자 청바지를 입히고 남자 운동화를 신겨서 막 사귀는 연인처럼 확 덮쳐야 해! 해서 찍게 되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으로 올린 것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녀가 여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인해 다리가 나무처럼 뻣뻣해진 것이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속았다. 그래도 재밌었달까.


사실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는 ~~ 하달까 라는 말을 지금 이 피드를 빼고는 써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딱히 글에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유라면 익숙하지 않아서이고 익숙해지지도 않을 것 같고, 익숙해지기도 싫다. 이런 고집은 왜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달까.


이것이 유행이라면 이 유행에는 흥 하고 만다. 딱히 유행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휩쓸리기 싫은 유행도 있다. 영화도 사람들이 너무 한 목소리로 말하면 보기 싫어진다. 근래에 본 킹메이커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들 해도 크게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예전에 DC의 수어사이드가 나올 때는 이상하게 보기 싫었다. 너도 나도 마고 로비의 할리 퀸 이야기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만 봐도 한참 못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방구석 1열에 패널로 나온 감독(영화 괴물에서 박해일의 선배 뚱게바라로 나오는)마저 그놈의 할리 퀸 퀸 퀸 퀸 최고! 하니까 더 보기 싫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있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그 목소리가 꼭 못으로 유리병을 긁을 때 나는 소름 돋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몸이 거부를 한다. 라디오에 그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거나 소리를 제거한다. 문제는 너무 인기가 좋아서 라디오에는 아주 많이 노래가 나오며 광고에도 나온다. 맙소사랄까.


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도 많다. 외국에는 조니 미첼의 목소리가 정말 좋다. 가수 비의 음색도 좋아하고, 이소라의 소리도 좋아한달까.


~하달까, 이 말도 유행처럼 느껴져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하달까, 라는 말을 글로 읽어도 뭔가 웃긴데 초등학생의 입에서 말로 하는 걸 들으니까 하하 웃음이 나왔다. ~~ 하달까, 도 토착화가 될까. ‘너무’도 원래는 부정 의미의 부사였다. 너무 크고, 너무 밝고, 너무 깊고, 너무 춥다에 쓰였는데 ‘너무 좋다’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쓰이다 보니 부정적인 의미의 ‘너무’가 긍정적 ‘좋다’와도 나란히 할 수 있게 토착화가 되었다. 그리하여 몇 해 전에 ‘너무 좋다’가 되었다. 그래서 다 합쳐보면 ‘아 너무 좋달까.’


이런 말줄임은 어디까지는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고 어디부터는 안 되는 것일까. 스카, 생파, 아카, 버정 정도는 괜찮은데, 핑크 플로이드를 핑플이라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좀 그렇달까.

한 폭의 그림이랄까



노을과 하늘의 보색이 아름답달까



해넘이 직전이 멋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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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28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관님 이제 보니 음란하지 않고 매우 건전하신 분이시로군요!ㅋㅋ
사진 멋집니다. 나중에 전시회 하세요.^^

교관 2022-02-28 18:03   좋아요 1 | URL
저 사진 전시회만 한 열 번 했을 걸요 ㅋㅋ 작년에는 시에서 지원받아서 소설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푸로젝트 빔을 쏴서 소설을 영화처럼 볼 수 있게요. 하지만 작년에는 10명 나오던 확진자가 느닷없이 500명이 넘게 나오는 바람에 폭증이라서 사람들 거의 못 오게 해서 망했지만요 ㅋㅋ 요즘을 보면 500명은 참 병아리 수준이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22-02-28 19:45   좋아요 0 | URL
앗, 사진 작가시군요! 몰라 뵈었네요. 어쩐지!ㅋ
와, 빔 프로젝트 쏴서 소설을 영화처럼요? 정말 볼만했겠어요.
안타까워라.ㅠ 조만간 다시하세요.
혹시 유튭에 올리시지 않으셨나요?ㅋ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면서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의 하이 홉스가 너무 어울려서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보자.


큰 소리로 명! 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앨범이다. 많이도 들었다. 하지만 기기괴괴해져 갈수록 따라 부르기 쉬운 라디오 헤드보다 핑크 플로이드는 따라 부르기는 그만큼 어렵지만 그래서 계속 들어도 들어도 또 들어도 자꾸 들어도 더 좋아지는 이상하고 묘한 음악이다.


이 앨범은 폭군이자 천재의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난 후 7년이나 잠잠하다가 데이비드 길무어 주축으로 세상에 나왔다. 세상은 뭐야? 역시 로저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에 없어서 이제 끝난 거야? 같은 시선이었다.


로저 워터스가 누구인가. 앨범 회사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천재 뮤지션, 록스타가 아닌가. 그리고 ‘더 월'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세계는 충격으로 일렁거렸다. 핑크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마치 음악으로 다큐식으로 노래를 부른다. 한 편의 길고 긴, 마치 반지의 제왕처럼 아주 긴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음악이 예술 제일 최상위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에서 나오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더 월 공연을 독일에서 펼쳤다. 도대체 지구에서 이런 뮤지션이 존재하다니. 세상은 로저 워터스의 악독하고 독재 같은 면모 이전에, 그의 천재성에 눈과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


특히 밥 겔도프 주연의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의 각본도 로저 워터스가 썼다. 이 영화, 죽기 전에는 한 번 봐야 하지 않을까. 냉소라는 것도, 세상에 대한 냉소라는 것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흘리는 건 꽤나 멋진 일이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밥 겔도프 하면 85년에 라이브 에이드에서 두 데이 노우 잇츠 크리스마스를 조지 마이클과 데이비드 보위, 프레디 머큐리, 보노 등과 같이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밥 겔도프에게는 예쁜 딸이 두 명 있었는데 큰 딸이 14년도에 25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느닷없이 약물로 사망하고 만다. 얼굴에 밥 겔도프라고 할 만큼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나왔는데 엄마도 그렇게 죽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부와 명예가 가득한 유명인들의 삶이라는 게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은 죽고 나면 더 이상 죽을 일이 없지만 25살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로저 워터스의 빈자리를 데이비드 길무어가 이어받아서 길고 긴 시간을 견디고 버티며 ‘디비전 벨’이 나왔다. 그리고 94년에 데이비드 길무어 주축으로 ‘펄스’ 공연을 했는데 이게 정말 미쳤다.


디비전 벨도 마치 영화처럼 노래가 죽 이어지는 느낌이다. 이 앨범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가치, 관념, 관계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몹시 철학적이라 어떤 작가들은 이 앨범을 가지고 책을 내기도 했고 니체의 사상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깊이를 떠나 들어보면 몹시 감동적이다. 하이 홉스 같은 경우 후반부의 기타 연주는 연주가 꼭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저 하늘에 있는 어떤 신적인 존재에게 인간의 마음을 연주로 노래를 부른다. 정말 감동이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디비전 벨 앨범의 수록곡들의 가사 해석이 이루어졌다. 전부 제각각이며 어렵기도 하고 심오하기도 하지만 유튜브로 가사 해석을 정말 잘해놓은 영상이 있다. 노래로 이런 가사 전달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어떤 노력이나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 같은 생각이 든다.


디비전 벨, 이 앨범에는 로저 워터스에 의해 쫓겨나듯이 나갔던 리처드 라이트가 다시 들어와 ‘위시 웨어 히어’를 부른다. 그리고 작곡에도 참여를 한다. 이 앨범에는 11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65곡에서 추렸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가 대단한 건 지구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빌보드 1위에 이런 프로그래시브 음악이 오른다는 게 납득이 간다.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서 2박 3일 동안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유튜브나 여러 곳에서 많이들 언급하고 있으니 궁금하면 찾아보면 된다. 이 앨범을 한 번 듣고, 유튜브로 ‘펄스’ 공연을 보면 무대 상단에 틀어 놓은 영화 같은 영상과 음악이 어떤 식으로 어울려 이야기를 하는지 ‘와 정말 대단하군’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94년 공연 펄스 https://youtu.be/HriYRoxWo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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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이스를 이틀 동안 내놓으면 사람들은 아마도 시큰둥하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어도 좋은 인간에 속한다. 카레 안에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그저 카레만 멀겋게 끓여서 밥 위에 부어 먹어도 좋고, 그 안에 당근만 왕창 들어가도 아주 좋아해서 매일 먹을 수 있는 인간이 나다. 심지어는 카레 가루를 그냥 밥 위에 뿌려 비벼 먹어도 되고, 라면에 카레 가루를 부어서 먹기도 한다. 나는 어째서 이리도 카레를 좋아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처음 카레를 먹었을 때의 그 느낌이 형상기억 합금처럼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 어린 시절에 옆집에 인도 사람인 아미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카레를 먹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자신이 만든 카레를 만들어 주었다. 아미르가 만든 카레는 입안과 혀 그리고 식도를 따뜻하게 자극했다. 카레와 뒤섞인 고기 같은 물컹거리는 것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감자튀김 크기만큼 잘린 물컹한 덩어리들을 씹으면 입안에 자극을 줬던 카레와 궁합을 이루어 묘한 맛을 이루었고 나는 그 맛을 알아버렸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모욕감을 느끼며 다시 카레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카레는 양의 뇌를 넣어서 만든 카레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인스턴트 카레도 좋고, 카레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아한다. 파스타를 만들을 때는 마늘을 가지고 기름에 볶아 준다. 마늘 베이스에 카레를 가지고 만들어 먹는 파스타는 뭘 어떻게 해 먹어도 맛있다.

카레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좀 찾아보니 인도의 향신료 조합이었던 커리가 우리가 밥상에서 먹는 카레라이스가 되기까지 250년 이상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250년 동안 카레에 관여한 국가가 인도, 영국, 프랑스, 일본에 이르기까지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음식이라는 문화가 바다를 건너서 현지화가 되고 대중화가 되는 과정은 음식의 수용과 이런저런 문제에 닿게 된다. 카레의 수용과 대중화는 이 차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영국이 영국식 스튜로 만들어 먹던 것이 영국과 인도를 오가던 선원들이 인도식 향신료 조합으로, 이 카레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해군이 ‘해군 카레’를 해 먹으며 일본 전국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카레 전문점이 늘고 카레라고 하는 곳이 있고, 커리 또는 카리라 부르는 곳도 있다. 카레는 어디에서 나타난 단어일까.


curry라는 용어는 영국의 C&B(크로스 앤드 밸랙웰)가 영국식 마실라를 개발하면서 제품명으로 처음 사용했다. 이 커리라는 단어는 소스를 의미하는 남인도 타밀어 카리 kari에서 따온 말이다. 영국으로 건너간 커리는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curry라 쓰고 카레라고 일본인들이 읽기 시작했다.


이름이 커리나 카리라 해서 그 전문점에서 반드시 맛과 균형을 이루지는 않는다. 카레라는 음식은 수용과 토착화의 문제이기에 오뚜기 카레라고 해서 꼴찌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영화 ‘라스트 레시피: 기린의 혀의 기억'을 보면 마지막에 니노 카즈가 두툼한 돈가스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맛있다고 처음으로 인정을 하며 울먹거린다. 이 영화는 일본의 요리가 수용을 겪고 전쟁통에 중국의 만주를 넘보는 꽤 무시무시한 내용의 영화다. 요리를 통해 황제를 암살하는 계획을 하며 그 사이에서 요리를 지키려는 왕실의 요리사와 그 뜻을 무참히 짓밟으려는 관료가 나온다.




또 브라질 영화 ‘에스토 마고’를 보면 음식으로 권력을 손에 넣고 신분을 바꾸는 모습을 브라질의 음식으로 유쾌하게 통찰했다. 에스토마고의 음식을 보면, 세상에서 음식이 가장 섹시하고, 가장 퇴폐적이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추하기에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역시 수용과 음모와 수탈 그 모든 것 안에 지켜낸 음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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