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인터넷의 사연이다.


중학교 때 할아버지 과학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았다. 머리가 반쯤 까진 할아버지 선생님은 우리 동네를 도시로 생각할 만큼 깡시골에서 오셨다고 했다. 가장 사춘기의 여자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무시했다. 자고, 떠들고, 킬킬거리고 여자애들은 할아버지 선생님의 늙고 따분한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 대신에 자신이 만들어온 설문지를 돌렸다. 자신의 수업이 왜 싫은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수업을 들을 것인지 그 애들의 생각을 물었다. 여자애들은 철이 없고 버릇이 없어서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그대로 썼다. 어떤 애는 할아버지가 재밌는 얘기 하나 없이 수업만 해서 싫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한 말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선생님은 머리를 빡빡 밀고 모자를 쓰고 오셨다. 어느 날은 빨간색, 어느 날은 노란색,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가장 젊어 보이는 색으로 늘 정장 차림이었던 선생님 머리 위에 두건, 어느 날은 야구모자. 그걸 보고 여자애들은 더 킬킬거리고 웃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유머 모음집 같은 이름의 책을 사서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한 페이지씩 읽으셨다. 그러자 그 버릇없던 애들이 선생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숙제를 꼬박꼬박 해오는 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 이후로 여태 그런 어른을 본 적이 없다. 사춘기 여자애들의 생각 없는 말들을 진심으로 수용하고 노력했다. 분홍색 재킷을 사 입고 빨간 두건을 두르는 것은 그에게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닮고 싶은 어른이다.


라는 인터넷 사연이 있다. 앞에서 빨강머리 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앤보다는 마릴라 아줌마 때문이다. 마릴라 아줌마는 앤 셜리를 처음부터 반대하고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앤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앤을 키운다. 마릴라는 자신의 잘못으로 브로치를 잃어버렸는데 앤을 의심하고 소풍을 가지 못하게 한다. 앤은 소풍이 가고 싶어서 자신이 가져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앤은 그렇게라도 해서 다이애나와 함께 소풍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마릴라는 앤이 브로치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걸 알고 방으로 올라가 앤에게 자신이 잃어버렸는데 널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빈다. 어른이 되어서 본 마릴라 아줌마의 모습은 어른인 나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어른이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거짓 웃음으로 변명과 이해시키려고만 했다. 무뚝뚝하지만 마릴라 아줌마 같은 어른은 정말 보기 드물다는 걸 알았다. 그런 마릴라 아줌마에게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나중에 앤 셜리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된다.

나의 앤 셜리 피규어들



어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매년 유월이 되면 이상하게 보게 되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고 18분부터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해서 따뜻함이 지치지 않고 끝날 때까지 죽 이어지는 신기한 영화다. 18분에 스즈가 언니들에게 언니들의 집에 가고 싶다며 출발하는 기차를 따라 뛰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칸노 요코의 피아노 곡이 죽 흐른다. 원작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온 마을이, 온 마을의 사람들이 스즈를 한 식구로 받아들인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만화처럼 기쁘게 이어진다.


스즈를 위해 후타는 터널을 구경시켜주고, 니노미야 아줌마는 스즈를 보물로 생각하고, 후쿠다 아저씨는 언제든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싶으면 몰래 오라고 한다. 서포트를 해주는 하마다 점장부터 마을 사람 모두가 스즈를 그대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일말의 의심이나 고민 같은 것도 없다. 그래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졌지만 영화는 해내고 있다. 세 언니들은 자신들과 전혀 닮지 않은 스즈와 지내면서 점점 자신들과 닮은 모습을 하나둘씩 발견한다. 매사에 꾹꾹 참고 견디는 선 큰 언니 사치와 닮았다. 게다가 귀 모양까지 닮았다. 술을 마시고 주정 부리는 건 둘째 언니와 닮았다.


초반 하마다 점장이 집으로 와서 같이 튀김과 모밀국수를 먹을 때 하마다 점장이 에베레스트 등산 후에 발가락 6개가 동상으로 없어진 걸 보여준다고 했을 때 온통 아버지의 기억으로 채워진 스즈와 큰언니 사치의 행동은 비슷하다. 두 사람은 기겁을 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시다는 밥이나 먹고 치카는 혼자서 계속 자신의 말만 한다. 스타일이 다 다른 것이다.

이 영화가 소설이었다면 치카와 스즈가 함께 카레를 먹는 장면을 길게 몇 장에 걸쳐 썼을지도 모른다. 낚시를 즐기는 치카는 스즈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자주 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처음 본 동생과 기억이 없는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카가 만든 어묵 카레를 먹으며, 아버지와의 추억이 1도 없는 치카 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으로만 가득한 스즈는 그것을 공유한다.

고래 뱃속 같은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스즈를 가족처럼 대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모두가 하나같이 슬퍼한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남겨진 이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그들은 가족이 된다. 그런 가족에게 스즈는 사랑받는다. 보는 이들도 스즈를 통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가족을 울타리 안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스즈를 가족으로 받아주는 어른들 덕분에 스즈는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마을에 스며든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족이라는 건 전부 생판 모르는 타인을 만나서 가족을 이루기 때문에 늘 어렵고 부딪히고 힘들다. 새로운 가족은 이미 이루어진 가족에게 스며드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다. https://youtu.be/V-MoXpzKXv0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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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물김치


바야흐로 오이물김치의 계절이다. 작년에도 오이에 대해서 글을 적고 1년 뒤에 보자,라고 했는데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1시간은 참 안 가는데 1년은 참 빨리 지나간다. 1년이 지나가고 오이의 계절이 곁으로 왔다. 조깅을 하며 땀을 열심히 흘린 다음 시원한 오이를 와그작 씹어 먹는 맛은 아주 좋다.


오이를 먹는다는 건 비관하지는 않지만 낙관적이지 않는 나의 생활을 반영한다. 나는 빨강머리 앤을 좋아한다. 소설도 좋아하고 만화도, 그리고 시즌 2까지만 봤지만 넷플릭스 드라마도 좋아한다. 앤 셜리는 극강의 긍정주의며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에 하루가 너무나 재미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다. 빨강머리 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앤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하루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오늘 어떤 재미있는 일어날까 하는 기대가 1도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을 보면 하루에 재미있는 어떤 이벤트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반복이다. 또 그 순환을 지겨워하지도 않으며 밀어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변화 없는 하루 속에 작은 일이 일어나면 그 하찮은 일 때문에 재미없을 하루가 꽤나 괜찮다고 느낀다. 아무 기대 없이 지내다가 여름이 시작되어서 이렇게 오이냉국의 오이를 와그작 씹어 먹으면 기분이 좋다. 오이는 그런 기대 없는 하루에 비관적이지 않는 작은 기분 좋음을 전해준다.


맛도 좋아서 여름에는 오이를 씹는다. 이렇게 오이를 먹고 있으면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대청마루에 앉아서 오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이로 냉국을 만들어서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마당에 핀 포도나무를 보며 같이 후루룩 먹는다. 포도나무는 작년에 식목에 묘목을 구입해서 화단에 심어 놓았다.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약도 주고 거름도 줘야 하지만 그냥 묻어 놨을 뿐이다. 그런데도 포도가 열렸다. 비록 맛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무는 어떻게든 뿌리를 통해 양분을 배달해 포도를 맺었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그런 대견한 포도나무를 보며 냉국을 후루룩 먹는다. 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현실은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지만 우리는 오이냉국을 먹으며 현실의 통증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준비를 한다.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마당에 심어 놓은 포도나무를 비롯해 상추와 허브들 사이로 벌레들이 날아다닌다. 매미들이 신나게 울고 틀어 놓은 선풍기의 머리가 왔다 갔다 하면서 더위를 식혀주었다. 오이를 먹으면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찬밥이 있다면 말아먹어도 맛있다. 여름에는 자주 오이냉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여름에는 자주 오이냉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오이냉국에 밥을 말아먹으면 밥알이 탱글탱글 살아있어서 씹는 맛이 일품이다. 라면 마니아들이 라면을 먹고 난 후에 미지근해진 국물에 찬밥을 말아먹으면 맛있다고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씹는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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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6월 5일에 때 아닌 차가운 비가 내렸다. 유월의 비였다. 오월 내내 뜨거운 여름 같았는데 유월에 비가 내려 세상을 차갑게 적셨다. 비가 내려도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너무 와서 산스장 같은 곳에서 40분가량 몸을 풀었다. 스쾃을 여러 번 하고, 팔 굽혀 펴기를 하다 보면 비가 오는 쌀쌀한 날에도 땀이 난다.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추워서 땀을 내느라 몰랐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추운 날에 이런 곳에서? 하는 생각에 돌아보니 노인은 그래도 따뜻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 한 시간 넘게 있으면 추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이 너무 까맸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얼굴이 까맣게 보였다.


노인은 꼼짝도 않은 채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노인의 굽은 등을 보면 그의 삶이 등에 묻어나는 것 같다. 노인은 저렇게 앉아서 지난 세월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식들 생각을 할까.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까. 알 수는 없다. 노인은 추운지 새까만 양손을 허벅지 밑으로 넣어서 앉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노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등졌다. 나에게 굽은 등을 보이기 싫어서였을까. 저 노인도 굽은 등을 자식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이런 곳까지 나와서 굽은 등으로 멍하게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노인의 굽은 등을 보니 ‘아버지와 이토 씨’에서 집이 홀라당 타 버리고 딸의 집에서 굽은 등으로 멍하게 화단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타인은 다가갈 수 있지만 자식은 다가갈 수 없는 등이 노인의 굽은 등이다. 그런 등에는 노인의 세계가 있다.


바닷가에서도 노인들의 등을 볼 수 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날이 좋으면 바닷가에도 소설 속 난쟁이들이 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노인들이 나와서 바닷가 벤치에 죽 앉아서 등을 구부리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바다를 보라보는 노인의 등을 보고 있으면 옆에 심어놓은 나무 같아서 바다에 조금씩 숨을 빼앗기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바다에 영혼이라도 빨려 버린 것처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등을 구부리고 가만히 바다의 너울거림을 바라본다.


나는 그런 노인의 등을 바라본다. 그들의 등에는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들어차 있다. 더없이 고독한 노인의 등이 노인의 행성을 만든다. 주파수는 89.09 헤르츠다. 문을 닫고 불을 끄면 비로소 밝아지는 세계다. 영혼이 이주하는 소리가 들리고 호우 호우 하는 리틀 피플들이 바다의 갈림길에서 올라온다. 갈색 바람의 행로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노인의 행성으로 그들은 조금씩 그곳에서 가고 있다. 노인은 노인의 행성으로 가고 있다. 누구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신 만의 고독한 문제를 끌어안고 행성으로 한 발 내딛기 위한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앉아서 리틀 피플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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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 2022-06-11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이면서 배우도 하고 마시미와 미회도 즐기고 멋진 인생이에요ㅎㅎ 영화들 속에서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헤실헤실 하며 정곡도 찌르는 연기가 좋습니다

교관 2022-06-11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회의 치명적 오타 ㅋ
 


팥죽을 좋아하는데 단팥죽보다 그냥 팥죽이 좋다. 예전에 어머니의 여동생 딸과 함께 인사동에 놀러 한 번 갔었는데 단팥죽을 먹고 싶대서 단팥죽 집에 갔는데 글쎄, 사람들이 그 단팥죽 한 그릇을 먹자고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단팥죽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가자고 했지만 사촌동생의 간절한 눈망울 때문에 50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해서 먹은 단팥죽은 정말 단팥죽 맛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달달한 단팥죽 맛이었다. 손님 대부분이 일본인들이라서 놀랐고 그들은 줄 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랜 기다림 끝에 단팥죽 한 그릇을 냠냠 먹고 나가는 것에 또 놀랐다. 단팥죽만 먹고 나오면 되는데 이것저것 파는데 이것저것 주섬주섬 주문해서 먹다 보면 돈이 쑥 빠져나간다. 고로 세 번 놀라게 된다.


단팥빵은 좋아하는데, 또 붕어빵 속의 단팥도 참 좋은데 단팥죽은 아주 별로다. 그래서 인간은 참 제멋대로 생겨먹었다. 단팥죽보다는 팥죽이지. 소화도 잘 되고(웃음). 나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일단 마음에 든다. 팥이라고 다 소화가 잘 되는 건 아니고 팥죽이 그렇다. 팥죽은 뜨거울 때 먹어도 좋지만 나는 팥죽이 식어빠진 것도 아주 잘 먹는다. 식은 팥죽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잘 맞는 것 같다. 새알이 둥둥 빠져있는 팥죽은 겨울의 음식이지만 식은 팥죽에 물김치나 동치미나 깍두기와 함께 먹는 게 맛있어서 여름에도 가끔 먹게 된다. 팥죽을 먹을 때 동치미를 곁들여 먹는 건 순전히 학습 때문이다. 동치미는 이름이 왜 동치미일까. 이런 건 또 궁금하잖아? 그래서 찾아보면 겨울 '동'에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 '침'에서 유래가 되었다.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먹으면 정말,,,,,


내가 사는 이 도시에는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팥죽 골목이 있다. 시장이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있으니 대략 60년 정도가 되었을까. 지금은 팥죽 골목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골목은 골목이지만 팥죽을 파는 집이 몇 집 밖에 없다. 주로 할머니들이 팥죽을 파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아마도 젊은 새댁 정도였을 것이다. 그녀들이 전통시장의 팥죽 골목에 자리를 잡고 팥죽을 팔기 시작해서 지금,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 사이에 없어진 팥죽집도 있고 팥죽 대신 튀김을 팔거나 김밥을 말아서 파는 사람도 생겼다.


골목의 양옆으로 팔 죽집들이 있는데 한쪽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식당 형식이지만 맞은편에는 그저 길바닥에 나무로 만든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다. 다닥다닥 붙어서 먹는데 요즘은 그렇게 먹는 게 별로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멋과 맛이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팥죽을 먹으면 늘 물김치가 딸려 나왔다. 어릴 때는 맛도 없는 팥죽을 한 숟가락 먹고 인상을 쓰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물김치를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을 리가 없지만 지나고 나니 그렇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팥죽을 먹을 때에는 물김치와 함께 먹게 된다. 어릴 때 맛없던 팥죽이 어른이 되니 이렇게나 맛있게 먹는다. 인간이란 참 제멋대로다.


어린 시절에 초겨울이 되면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전통시장으로 갔다. 외할머니는 나의 내복을 구입하고 뿌듯한 얼굴로 나의 손을 잡고 팥죽 골목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 근처에도 큰 전통시장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팥죽을 파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좀 더 열심히 걸어서 팥죽 골목이 있는 전통시장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나는 그저 멀리까지 걸어서 간다는 생각에 신났다. 도착해서 추운 날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김이 폴폴 나는 팥죽이 나왔다. 외할머니는 꼭 나에게 먼저 한 입 먹이고 외할머니도 팥죽을 드셨다.


그때는 어려서 맛없었을 팥죽을 외할머니와 함께 먹고 내복 상자를 품에 안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와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겨울을 맞이했다. 나는 꼬꼬마 어린 시절에 어떤 사정 때문에 집을 떠나 외할머니 손에서 몇 년 자랐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품이 나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자식도 많고 손주들도 많지만 멀리 떨어진 내가 사는 집에 자주 오셨다. 40년 동안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며 산 할머니는 남은 인생 하고픈대로 멋대로 살다가 갔으면 좋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이렇다 할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 아버지와 내 외할머니는 지금 누구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 기억을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하찮은 팥죽 하나로 내 외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면 팥죽은 내게 큰 음식이다. 그래서 방탄이들이 그렇게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나 싶기도 하고. 이제 전통시장의 팥죽을 사 먹는 건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후 그들은 오후 6시만 되면 쏜살같이 문을 닫고 집으로 간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팥죽의 가격도 많이 올랐다. 팥죽을 파는 할머니들의 입맛이 변했는지 어떤지 예전의 그 맛도 이제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죽 전문점에서 사 먹는 팥죽이 이제는 훨씬 맛있어졌다. 죽 전문점에서도 적은 양이지만 달달한 동치미도 준다. 형태가 있는 것이든, 형태가 없던,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정말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몇 집 안 남았지만 그래도 팥죽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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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밥상에 마요네즈가 빠지면 이상하게 되었다. 정말 마요네즈에 진심을 다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진으로 더 올리지 못했지만 찌개에도 마요네즈를 넣어서 먹기도 했고, 아무튼 커피 빼고는 마요네즈라는 마법은 모든 음식에 다 어울리는 것 같다.  


덱스터 시즌 3에서도 리타와 슈퍼에서 장을 볼 때 덱스터와 아이들은 마요네즈를 빼먹지 않는다. 덱스터 원작에는 이 어린아이들이 사이코패스로 나온다. 개를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고. 아이들은 원래 있는 그대로를 표출하니까 아마도 사이코패스적인 경향이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으로 커간다. 덱스터는 긴 시리즈를 하면서 극 중에서 티격태격하는 동생 데브라와 실제로 꽁냥꽁냥 하는 사이가 되어서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3년인가? 만에 이혼을 한다. 그래도 계속 시리즈에서 다정하게 나온다.  


그런 사이코패스 덱스터의 가족들도 마요네즈를 잊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특히 마요네즈를 많이 먹을 것 같다. 그들의 식탁이 한국 식탁처럼 여러 반찬과 음식들을 다 갖춰 놓고 매 끼니 먹지는 못하니까 간단하게 마요네즈를 휙 뿌려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지 않을까.


마요네즈는 정말 인류가 발명한 것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다. 아스피린, 베이비오일이나 바셀린, 계단, 그리고 마요네즈가 내가 손꼽는 발명품들이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계란 프라이에 뿌려 먹으면 계란을 고소한 맛이 두 배, 아니 열 배가 되는 것 같다. 계란 프라이를 평소에 4개를 먹는다면 마요네즈를 뿌리면 40개는 거뜬하게 먹을 것만 같다. 살찌겠지 ㅋㅋ.


또 한 번은 그저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뿌려서 오물오물 먹었는데 이거 어떡할 거야. 양배추를 씹을수록 나오는 단맛에 마요네즈의 맛이라니. 양배추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이렇게 마요네즈를 뿌려 먹으니 몇 통은 그대로 먹을 것만 같다. 마요네즈를 근래에 좋아하게 된 이유를 억지로 같다 붙이자면 소화가 잘 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장 때문에 조금만 빠르게, 조금만 많이, 단단한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소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소화가 안 되면 속이 거북하고 혈압도 오르고 두통이 온다. 그런 위장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먹는 것이 한 때는 참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친구들과 한창 고기를 먹을 때, 고기는 먹고 싶은데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가면 그날 밤에는 어김없다.  


이런 소화가 안 되는 것이 담배 하고도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아니라 못 피우는데 담배를 피우면 먹은 밥을 전부 토해낸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면 소화가 전혀 안 된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억지로 몇 대 피우면 먹은 음식을 다 게워내야 했다. 세상에 이런 신체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담배가 해롭다고 하니 그래서 피우지는 않지만 담배를 못 피운다.


이렇게 썰어 먹는  유튜브 영상 보면서  먹기 좋은 각이다내가 유튜브로 자주 보는  영화채널들이다들어가서 보는 몇몇 유명 영화 유튜브가 있는데요컨대 ‘거의 없다 ‘라이너 ‘달콤 살벌한 영화 이야기’ 같은 채널들이다이들의 공통점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충격’  ‘실체’ 같은 단어로 현혹하지 않고 내용도 좋다역대급이나 1위이니 최고니 같은 제목으로 클릭을 하게 만드는 수많은 영화 유튜브가 요즘 계속 늘어난다 며칠은 마요네즈를 먹으며 마요네즈 영상을 보고 있다하하하 인생이란 그런 거겠지마요네즈를 먹으며 인생을 논하게  줄이야.


요즘 미나리 철이다. 미나리가 정말 맛있다. 얼마나 맛있으면 구겨지듯 어색 어색을 장착하고 광고하던 이무진의 ‘미나리싱싱주’까지 나올 정도다. 얼마 전에는 코미디언 이용식으로 바뀌었던데, 이무진 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웠다. 미나리 주 광고가 다른 소주 광고에 비해서 떨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돈 때문이겠지. 하지만 막걸리 광고들도 소주 광고에 비하면 조금은 어색하지만 막걸리는 지역별로 인기가 많다. 내가 사는 곳의 막걸리 광고는 이만기 형님이 한다.

미나리무침에 마요네즈를 뿌려 먹어도 정말 맛있다. 이게 얼마나 맛있냐면 미나리 무침이 약간은 간이 되어서 짭조름하다. 거기에 밥과 마요네즈를 넣어서 같이 비벼 먹으면 아주 맛있다. 요즘은 미나리 풍년이니까 자주 이렇게 먹고 있다. 미나리 싱싱 주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같이 마시면. 미나리 철이 되면 나는 아주 많이 미나를 먹는데 미나리는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


이건 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조합이다. 명란젓과 마요네즈의 만남이다. 거기에 밥을 넣어서 같이 먹으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마요네즈는 짭짤한 반찬과 만나면 그 맛이 더 극에 달아하는 것 같다. 마요네즈와 와사비와 땡초를 같이 버무려 노가리를 찍어 먹으면 맥주가 꿀꺽꿀꺽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반찬이 아무것도 없을 때 계란 프라이를 해서 그 위에 마요네즈만 뿌려도 아주 맛있다. 거기에 쓰디쓴 싸구려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호박전과 양파전에는 마요네즈다. 간장 양념도 맛있지만 눈이 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마요네즈를 뿌려서 먹게 된다. 편의점에서 파는 6천 원짜리 와인에 탄산수를 부어서 얼음을 넣어서 같이 마시면 더 맛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두루치기에는 마요네즈다. 마요네즈를 뿌려서 휘휘 저어서 먹는 게 아니라 이렇게 고기 위에 마요네즈를 뿌린 다음에 고기를 그대로 건져서 먹는다. 넣은 고추가 아주 맵기 때문에 매운맛도 줄여주고 고기의 맛도 끌어올려준다. 아무튼 고기에 마요네즈를 뿌려 먹으면 이상하게도 고기를 먹어서 소화가 안 되고 하는 게 없다. 그건 어떻게 봐도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고등어구이에 뿌려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는 구워 놓고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고등어다. 비린내가 아주 많이 나는 고등어구이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마요네즈를 뿌려 먹으면 비린내는 덜 한데 비린내가 맛있게 난다. 보고는 싶은데 만나기는 싫다, 그 식당이 좋은데 거기까지 가는 게 싫다? 와 비슷한 말인가. 아무튼 마요네즈를 찬양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마요네즈에 빠져서 몇 통씩 먹게 되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살이 찐다. 나는 최소 10년 정도는 늘 비슷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조깅을 거의 매일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조깅에 대한 글을 많이도 올렸었다. 마요네즈를 많이 먹는 요즘은 조깅의 강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다. 시간적으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조깅을 하면서 걷거나 몸을 푸는데 시간은 같으나 오르막 길을 코스에 넣어서 계속 달린다든가, 반환점을 돌아서 올 때는 어슬렁 걸어서 오는데 요즘은 반환점을 돌아서도 계속 달려서 오거나 빠르게 걷거나 한다.

이렇게 맛있는 마요네즈를 계속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작년은 재작년과 비슷한 몸을 유지했는데 올해는 때 이른 더위 탓에 5월에 집 앞 해변에서 훌러덩 벗고 책을 읽었는데 겨드랑이에 살이 붙었다. 조깅을 하고 작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보면 아직은 유지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 겨드랑이 쪽에는 살이 붙어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맛있는 걸 매일 먹을 수 있는 삶이란 더 없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귀찮을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귀찮은 걸 귀찮아하지 않으면 대체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멍 때리는 것도 좋지만 하루 종일 멍만 때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끔 생긴 여유가 소중하다는 걸 알지 매일이 여유롭다면 그게 여유보다는 불안으로 점철될지도 모른다.


조깅은 운동화와 달릴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되니까 너무 좋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니 달리다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앙 다물고 영차영차 달리면 된다. 그러면 이 맛있는 마요네즈를 매일 먹을 수 있다. 언젠가는 마요네즈와도 이별을 하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찾아서 먹고 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빨리 피부가 탔다



이거 어쩔 거야, 이 맛 이거 어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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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6-0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교관님의 각선미는 언제 보아도 좋은데요.
더구나 적당히 탄 피부에서 건강미가 느껴 집니당~ㅋㅋ

교관 2022-06-07 11:32   좋아요 0 | URL
여름의 피부는 태워야 맛이죠 ㅋㅋ